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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믿음으로 살아야 할 새해 (빌 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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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살아야 할 새해 (빌 3:13~14)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지난 해 12월 6일자 국민일보에 우리나라 직장인 10명 중 8명이 복권을 구입했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복권을 구매하는 이유가 “대박을 꿈꾸며” 가 57,6%로 절반을 넘었고 마음에 위안을 얻기 위해서가 다음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이 경기침체가 복권구입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습니다. 
즉 경제위기로 한탕을 꿈꾸는 직장인이 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 전문가들의 입에서 새해 경제 성장률을 1% 내지는 어쩌면 마이너스 성장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어 벌서 4일이나 지났지만 금년에도 지난해의 어둡고 무거운 먹구름은 쉽게 가실 것 같지 않습니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 경제의 침체는 쉽게 안정될 조짐이 보이지 않습니다. 
중동지역에서는 들리는 전쟁의 소식이나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들리는 분쟁의 소식은 가뜩이나 어려운 세계 경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국내 정치 상황역시 기대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정치권은 여전히 여야의 기득권 싸움에 여념이 없는 추한 꼴들을 어김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두운 전망 때문에 새해를 맞는 우리의 마음까지 어두워지면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좀 우스운 이야기를 하나를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에 갓 부임한 외국인 선교사가 한해를 보내며 새로운 해를 맞는 송구영신 예배의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록 서툴기는 하지만 한국어로 열심히 설교했습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잠시 후면 지난 년이 가고 새 년이 옵니다. 오는 년을 맞이함에 있어, 새 년과 함께 보낼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듯, 간년을 과감하게 정리하여야 할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참으로 지난 년들을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 기대가 충만한 년도 있었지만 어떤 년은 대단히 실망스럽기도 했습니다. 

어떤 년은 참 재미있기도 했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조금 있으면 돌아올 새 년에 대해 우리 각자의 마음속은 과연, 이년은 어떤 년일까 하는 기대에 찬 호기심으로 꽉 차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년 저년 할 것 없이 모든 년은 하나님이 주신 년’ 이란 사실입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재밌게 풍자된 이야기입니다. 
욕설 같아 좀 그렇긴 하지만 “이년 저년 할 것 없이 모든 년은 하나님이 주신 년” 이라는 말이 한 번 웃어넘기고 말기엔 아까울 정도로 귀중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 되어 집니다. 흘러가는 시간까지라도 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뜻일 것입니다. 

새로 맞은 금년이 어떨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여러 가지 예측이 있을 뿐입니다. 다만 어떤 경우에든 우리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새로 맞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본문에서 주님이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뒤 엣것은 잊어 버려야 합니다. 

믿음으로 맞는 새해를 위해서 첫째는 뒤엣것을 잊어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뒤엣것이란 전진하지 못하도록 발목 잡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잊어버린다는 것은 청산하여 없앤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빚을 진자는 빚을 갚기까지는 채권자의 독촉을 잊어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빚을 갚으면 다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어제의 슬픈 일들 아픈 일 들을 잊어버립시다. 잊어버리기 위해서 돌려줄 것이 있으면 깨끗하게 돌려줍시다. 갚아야 할 것이 있으면 깨끗이 갚아야 합니다. 갚을 것을 갚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돌려줄 것을 돌려주지 않으면 잊어버릴 것을 잊어버릴 수 없습니다. 


앞에 있는 것을 잡아야 합니다. 

둘째로 2009년을 믿음으로 맞기 위해서 우리는 앞에 있는 것을 잡아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 고 했습니다. 앞에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 다음 성구가 그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습니다.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소명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시는 부르심에는 3종류가 있습니다. 
① 구원으로의 부르심
② 사명으로의 부르심
③ 천국으로의 부르심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이 세 가지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구원으로의 부르심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살던 우리들을 불러 예수 믿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는 부르심입니다. 복음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을 모두 입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게 되었고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구원으로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사명을 주시는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의 일터에 우리를 세우시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다가 어느 날 천국으로 부르심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썩을 육체를 떠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영원한 여행을 할 때 그때가 바로 세 번째 천국으로의 부르심을 입는 날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부르심에는 상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원받아 하나님의 일을 잘 감당하고 천국으로 부름받아 갔을 때 그곳에서 누릴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반짝 반짝 빛나는 면류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야야 합니다. 금년에는 무엇 보다 이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한해가 되게 합시다. 

그런데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기 위해서 우리가 잡아야 할 푯대가 있습니다. 푯대는 달려가는 방향과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앞에 설치해놓는 표시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생활에서 방향과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게 설정해 놓는 푯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저는 금년 목회의 방향을 두 구절의 말씀의 푯대를 세웠습니다. 이미 송구 영신 예배시에 선포된대로 한손엔 축복의 말씀을 붙들고 다른 한손엔 명령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바울이 강조한 앞에 있는 부름의 상급을 얻기 위해서 오늘 붙들어야 할 말씀이 무엇입니다. 

첫째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금년에 축복의 말씀은 롬 1:7절입니다. 
“로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그 옛날 로마에 있던 성도가 아닌 2009년 오늘 현재 우리 교회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금년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넘치게 임하기를 축복합니다. 
은혜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평강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붙들어야 할 말씀은 명령의 말씀입니다. 

명령의 말씀은 엡 4:32절입니다.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에서 친절하게 하며 불쌍하게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는 말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바로 긍휼입니다. 금년에는 긍휼과 용서를 나타내며 삽시다. 

은혜와 평강을 입은 자는 긍휼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내가 사랑을 입은 만큼 사랑을 나타낼 때 내 안의 사랑이 풍성해집니다. 내가 은혜를 입은 만큼 은혜를 누군가에게 은혜를 베풀 때 내 안의 은혜가 더욱 풍성해 지는 법입니다. 

긍휼이란 남을 불쌍히 여겨서 돕는 마음입니다. 히브리어로 '헤세드' 헬라어로는 '엘레에모네스'로서 "인자, 자비, 사랑, 불쌍히 여긴다, 민망히 여긴다" 등으로 번역이 되고 있습니다.
 
왓슨(Thomas Watson)은 긍휼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이 애인을 방문하는 친구와 같은 것이라면, 긍휼은 병자를 방문하는 의사와 같은 것이다. 은혜가 죄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애정이라면, 긍휼은 죄의 결과로 비참한 상태 속에 있는 사람을 향한 애정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긍휼은 저주받아 마땅한 죄인에게 저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시해도 될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버림받아야 할 사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며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무한 경쟁의 시대입니다. 남이 죽어야 자신이 산다고 생각합니다. 긍휼을 베풀고 남에게 양보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불이익과 패배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매정하고 냉정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정을 억제해야 하며, 표독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인마저 긍휼은 단지 종교적 용어에 불과하고 현실 속에서는 바리새인들처럼 양의 탈을 쓴 이리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긍휼은 단지 장식품에 불과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대를 정죄하고 매장하며, 해치는데 익숙해지기 쉽습니다.

피에르 반 파센의 작품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보우그’ 라는 마을에 '우고린'이란 본성이 착한 곱추가 살고 있었습니다. 우고린의 어머니는 주정뱅이여서 '소랑케'라는 누이의 보살핌을 받으며 함께 살았습니다. 그의 누이 소랑케가 어느 날 도둑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되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석방되었으나 직장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불구인 동생이 병석에 눕게 되자 그녀는 몸을 팔아 동생의 약값을 대었습니다. 어느 날 ‘우고린’은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조롱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우고린’을 넘어뜨린 그들은 춤을 추면서, "네 누이의 연인들이 각각 한 프랑씩 지불했다."라고 조소하며 외쳤습니다. 그때 그 동리의 나이 많은 신부가 와서 그들을 물러가게 하고 ‘우고린’을 구해주었습니다. 그 다음 날 곱추는 모멸감과 치욕을 참을 수 없어 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누이 소랑케도 동생을 뒤따르듯 총으로 자살했습니다. 
그 늙은 신부는 "이 어린것들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자비가 없는 사회에 의해 살해당했다."고 비통하게 말합니다. 그들 남매의 장례식 때 많은 사람들로 교회가 꽉 찼습니다. 신부는 강단에서 설교하면서 통곡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 생사의 주관이신 주님께서 심판 날 나에게 '네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때 나는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주님이 두 번째로 '네 양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셔도 나는 주님께 대답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로 '네 양이 어디 있느냐?' 고 물으신다면 나는 부끄럼을 무릅쓰고 '그들은 양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리떼 였습니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긍휼이 없는 이 시대 사람, 아니 우리를 두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그 사람에게 만 달란트를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갚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불쌍히 여기고 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이 고맙다고 문을 나가는데 나가다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그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라고 했습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가혹하게 감옥에 쳐 넣었습니다. 이 소식을 주인이 듣고 다시 불러 "내가 네게 긍휼을 베풀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는 왜 긍휼을 베풀 줄을 모르느냐, 내가 너의 만 달란트 탕감해 주었으면 너도 백 데나리온을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치않느냐"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조금 깊이 생각해 보면 불쌍합니다. 

긍휼은 사람의 마음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긍휼은 꼭 강자의 윤리만은 아닙니다. 힘이 있어야 남을 불쌍히 여기며 돕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예수님의 마음을 품으면 누구든지 가능합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마 5:7절에서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라고 했고 롬12:8절에서는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약2:13절에서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금년에 앞에 있는 은혜와 평강의 축복의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긍휼과 용서의 명령의 말씀을 붙으십시다. 뒤에 있는 모든 것, 과거의 실수와 실패 낙심과 절망 미움과 원망 시기와 질투의 얽매이기 쉬운 악한 것들 다 벗어버리고 이젠 앞에 있는 부르심의 상급을 위해 축복의 말씀과 명령의 말씀을 붙들고 전진합시다. 

2008년의 주제어가 행복이었다면 금년 주제어 “은혜와 평강”, 그리고 “긍휼과 용서”입니다. 우리가 붙들 축복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붙들 명령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이 주제어를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합시다. 주님 오실 때 까지 은혜와 평강의 복을 긍휼과 용서로 전합시다. 

한손에 축복의 말씀을 붙들고 한손엔 명령의 말씀을 붙들고 부르신 부르심의 상급을 바라보며 전진합시다. 주님 오셔서 우리를 보실 때 까지 ... 아니 금년 2009년 그렇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한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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