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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년] 성도의 가정 (엡 4: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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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가정 (엡 4:17~24)


독일의 학자요 시인이요 기독교인이었던 괴테는 '한 사람이 임금이 되든,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이 되든 자기 가정에서 행복을 찾지 못하는 자는 가장 불행한 자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최고의 권력을 가지고 천하를 호령한다고 할지라고 가정에서 편안한 안식과 행복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매년 오월을 가정의 달로 지킵니다. 그런데 올 한해에는 1월 정초를 가정의 달로 삼았는데 목회방침을 그 계획에 맞춘 동기를 설명한다. 

믿음의 가정하면 고넬료인데 고넬료는 이스라엘을 식민통치하는 로마의 장교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경건하고 집안 식구들을 모두 하나님을 믿도록 믿음으로 인도하였고 가난한 유대 사람들을 보면 구제하고 사랑해 주고 항상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는 일가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이웃에게도 충실했는데 특별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충실했던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 좋은 가장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이고 튼튼한 가정입니까? 괴테는 건강한 가정은 2가지 요소를 갖추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부부가 힘을 합하여 영과 육이 쉴 수 있는 안식처를 만들어야 하고 둘째는 자녀들이 밝고 씩씩하게 자랄 수 있는 요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정은 무엇으로 만들어집니까? 신앙으로 만들어집니다. 교회가 잘되면 가정이 잘됩니다. 가정이 잘되면 나라가 잘됩니다. 교회가 신앙으로 건전하고 교회가 바른 말씀을 선포하고 그 말씀을 들은 성도들이 가정에 돌아가서 그 말씀대로 살고 사회에 나가서 말씀을 실천하며 살 때에 그 사회가 건강하고 튼튼한 사회가 됩니다.

가정의 뿌리는 신앙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튼튼할 때 그 나무가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가정의 신앙도 뿌리가 튼튼할 때 그 가정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요셉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신앙의 맥과 신앙의 뿌리의 중요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딤후1장에 보면 로이스, 유니게, 디모데라는 3대에 걸친 이름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신앙의 맥을 잘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신앙의 맥이 잘 이어지고 있습니까? 

디모데가 어떻게 해서 이와 같이 되었습니까? 그 믿음이 어려서부터 자랐습니다. 어려서부터 그는 성경을 알았다고 했습니다(딤후 3:15). 조상적부터 이와 같은 신앙을 물려받았는데 바로 이 거룩한 힘을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전승받고 자라났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에게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자녀 된 여러분들은 부모님에게 성경을 배운 기억이 있습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여러분들은 손자, 손녀들에게 성경 말씀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까? 디모데는 부모님으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딤후 3:15). 부모님이 성경말씀으로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를 교육하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의 힘이 성경 말씀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여러분, 고넬료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자녀들과 같이 믿음의 생활을 잘 감당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신앙계보가 나오는 것이고 그래야 로이스와 유니게, 디모데의 신앙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자녀들을 신앙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부모님들이 신앙으로 무장되어야 합니다.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준비되지 않고서는 자녀들에게 신앙과 양심을 물려줄 수가 없습니다.

이번 고넬료 가정의 달에 우리 부모님들이 청결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서 이 험난한 세상에 우리 자녀들이 부끄러움 없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저와 성도님들의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믿지 않는 가정과 어떻게 달라야 하나 생각해 보겠습니다(.엡 4:17-24)

하나님의 가정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의 가정과 어떻게 다릅니까? 다른 모습이 분명이 있어야 하는데 다른 모습은 무엇입니까? 먹는 것이나 입는 것이 다릅니까? 아니면 겉모양이 다릅니까? 그도 아니면 다른 것 없이 모두 같습니까? 집에 예수님의 그림 하나 걸려있다는 것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예수를 안 믿는 어떤 집은 ‘제사’ 라도 드리면서 온 가족을 다 불러 모아서 우리 집안은 ‘유교집안’이요 ‘불교집안’이요 하는데 우리는 무엇으로 믿는 가정이라 말할 수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고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모여 있다고 해서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면 무언가 합니다. 모이면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봉사하고 전도하며 서로 교제하고 친교하지 않습니까? 이와 같이 하나님의 가정이라면 모여서 뭔가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모였다고 해서 예수 믿는 가정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아버지, 엄마, 아들, 딸이 모였다 하면 공동체적으로 같이 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아버지의 믿음이 좋고, 어머니의 믿음도 또 자식들의 믿음도 좋아 각자 봉사는 잘하여도 하나의 공동체로서,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서 무엇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두 세 사람이 모이는 곳에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고 하셨는데 두 세 사람이 모인 이 소그룹은 바로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을 축복의 그릇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가정을 교회보다, 국가보다 먼저 세우셨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돕는 베필 하와를 만드셔서 가정을 이루게 하신 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가정은 하나님께서 행복하게 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축복의 그릇입니다. 그래서 성경 히13:4에는 “침소를 더럽히지 말라”고 말씀하시며 귀하게 여기라 하셨습니다. 

가정을 소홀히 여기면 복을 받지 못합니다. 
딤전5:8에 “누구든지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악하다”고 했습니다. 

또한 딤전3:4-5에 교회의 일군은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단정함으로 복종케 하는 자라야 할찌며”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의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정입니다. 

바울은 엡5:22-23에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결혼한 관계로서 가정에 비유했으며, 

계19:7-9,21:2에는 예수님과 하나님의 백성의 관계를 신랑신부의 관계로 비유했습니다. 결국 가정은 이렇게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만큼 귀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의 역사는 이 가정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무너뜨렸던 사탄의 역사가 오늘날까지 우리의 가정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는 무신론을 주장하면서 교회는 아편이라 하여 교회의 문만 닫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정도 파괴하는 것입니다. 특히 북한을 보면 부모와 자식의 만남이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이시대의 문화도 가정을 깨뜨립니다. 아버지는 일에 바쁘고, 어머니는 살림과 여권신장에 앞장서서 바쁘며, 아이들은 공부와 친구에 바빠 뿔뿔이 흩어져 가정이 잘 되어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잘 안 되고 있는 것입니다. 21세기의 문화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바로 가정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정을 귀하게 여기시며 구별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한 사람만의 선택이 아니라 가정의 선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했을 때 아브라함만 선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혼자서 돈 벌어 성공한 후 가족을 데려간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족과 종 조카까지 선택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요셉의 주인은 요셉 때문에 그 가족이 복을 받았습니다. 요셉 때문에 그 민족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와 함께 한 공동체를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콘스탄틴과 막센티우스가 로마의 황제자리를 놓고 싸울 때 예수님이 콘스탄틴의 꿈에‘십자가를 그려주면서 이 그림으로 나가 싸워 승리하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십자가의 환상을 보고 십자가로 승리했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워 황제가 된 이후에 로마의 기독교에 대한 핍박을 멈추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게 한 십자가 형벌까지도 못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복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민족을 복되게 하셨습니다.

삼하6:21에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오므로 온 집이 복을 받게 되었고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정탐군을 숨겨 주어서 그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까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반대로 아합의 죄(왕하10:11)는, 아간의 죄(수7:24)는 그 가족 전부를 멸망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선택은 그 가정의 선택이며 한 사람을 구별되게 하는 것은 그 가정을 복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신 것은 여러분을 통해서 여러분의 가정이 복되게 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마음이 있으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가정 내 가정을 복되게 만들어 가야 됩니다. 

혼돈에 빠진 학교의 모습을 보면 구심점이 없습니다. 학생이, 이사회가, 교수회가 저마다 운영하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하나 되는 공동체가 무너지면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직장도 마찬가지로 사장이, 노조가 저마다 운영하겠다고 한다면 혼돈이 올 것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을 운영하는 능력의 원천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자녀들입니까? 부모입니까? 하나님의 가정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이 능력이 원천이 되고 하나님 안에서 질서가 잡힐 때에 그 가정이 잘되고 나라가 잘 되고 민족이 잘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과 이방인의 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방인의 특징은 17-19절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없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는 자는 이방인이요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도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면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어떠한 것을 가져야 할까요? 고린도 교회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 교회는 병을 고치며 예언하고 방언하며 통역을 하는 등 가지 각색의 능력이 넘쳤지만 교회가 시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가르쳤고 사랑을 따라 구하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하기를 구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좋지만 가장 성숙된 모습은 항상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고 모든 형편과 처지에서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쁠 때나 슬플 때도 주님을 사랑하며 그와의 관계를 의심치 아니하며 온갖 비극과 감당키 어려운 정도의 실패에도 하나님께 매달리는 능력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히11:1에서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 가정에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소망은 키워가는 것입니다. 소망과 믿음 밀접한 관계가 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영생과도 관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확고부동하며 안정된 신념을 나타냅니다. 기독교인 가정의 구성원들이 갖는 영생의 희망과 그들의 구원에 대한 확증을 통하여 소망은 표현됩니다. 예수님의 재림, 영생, 구원의 확증이 우리 가정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랑의 공동체가 되게 해야 합니다. 사랑은 한마디로 ‘그리스도를 닮는것’ 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하셨던 일들이 사랑입니다. 바로 그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그 일을 우리 가정이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사랑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로 그리스도인 가정의 신앙의 성숙도를 측정해 보기를 원합니다.

 1.믿음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러분의 신앙을 관찰하고, 따르고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여러분들이 어떤 위기에 직면했을 때 맨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불평하고 성내며 낙심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심지어 하나님께 까지도 대들 것인가. 또는 신경질 내고 초조해 하며 불안 해 하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안에서 굳센 믿음을 과시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롬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는 믿음을 보이시겠습니까?

여러분을 인도하실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신중히 그리고 기도하는 자세로 행동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에서 문제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으로 생각하고 ‘오늘부터 40일 동안 기도한다! 금식한다!’ 하고 가족들에서 선포하고 먼저 은혜 받은 사람이 기도하기 시작한다면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문제를 해결해 주며 약한 자를 강하게 하고 없는 자를 있게 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알듯이 자녀들은 부모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에게 무엇을 배우도록 할 것인가 생각하며 자녀들 또한 가정의 믿음을 시험하는 시련 속에 함께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관심의 초점을 믿음 보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2.소망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은 부모의 위치를 어떻게 지키고 계십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현세와 내세에서 여러분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활 자세는 어떤 것입니까? 또한 예수님의 재림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재림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으며 어떻게 대비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소망을 두기보다 땅에 소망을 두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 보물을 쌓는 것을 최고의 일처럼 생각하며 자랑하고 즐거워합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이 땅에 쌓아두는 보물은 성경의 말씀처럼 우리 자신들은 잘 되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는 자가 그 자손이 잘되고 가정이 잘 될 줄로 믿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들에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 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그들을 무시하지 말고 그들을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 봉사도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하신 말씀에 소망을 두고 일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건축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던 다윗의 가문이 복 받은 것을 기억하면서 봉사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기도하고 눈물 흘린 부모의 모습은 자녀들의 마음에 각인될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의 상태는 늘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3.사랑의 상태는 어떠한가?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고 내 죄 값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죽게 하신 그 사랑 때문에 내가 살게 되었고, 그 사랑을 알고 있으며 그 사랑을 받은 자 입니다. 사랑받은 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를, 가족들을, 이웃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계십니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책에 미국의 여러 가정들이 식탁에서 주고 받는 대화들을 녹음하여 그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각 가정의 식탁에서 대화하는 내용의 첫 번째는 “주유소 식 대화”였습니다. 주유소에서 ‘얼 만큼 넣을까요?, 가득!, 다 넣었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그냥 가듯‘ 밥 줘! 얼 만큼? 많이!’ 라는 대화만 주고 받는 것입니다. 이 대화 속에는 아무런 사랑의 교제도 없으며 기분이 나쁠 것도 없습니다. 이 대화가 제일 많았다고 합니다. 

둘째로 많은 것은 “훈계식 대화” 였습니다. 밥, 반찬 등을 투정하는 아버지와 자녀들이 엄마를 향해서 훈계를 하는 것입니다. 엄마는 밥 먹는 자녀들을 공부에 대해, 복장에 대해 야단치는 대화입니다.

세 번째는 “비판의 대화”였습니다. 남의 잘못만을 들춰내는 대화입니다. ‘어느 집 아이는... 어느 교회는...’하면서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넷째로 극히 작은 부분을 차지한 “사랑의 대화”였습니다. ‘밥이 맛있다, 수고했어요’ 라고 하는 사랑의 대화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을 어떻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든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랑의 대화가 여러분 가정에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믿음, 소망, 사랑을 가지고 그러한 일들을 이루어 가는 가정이 참 하나님의 가정이요 복 받는 가정입니다. 그러기 위해 가정예배를 회복시키시기 바랍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기도회라도 하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자식이 부모를 위해 기도해 주는 그 소리가 정말 그리운 때입니다. 마음을 하나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송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고, 그 말씀의 생명의 역사가 우리의 심장 속에 고동치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가정예배, 기도회를 회복시키는 가정속에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우리의 가정을 복받는 그릇으로 만들어가는 여러분의 가정 위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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