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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2008년 신앙의 결산 (딤후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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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신앙의 결산 (딤후 4:6~8)
 
   
어느덧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이 맘 때가 되면 기업들은 저마다 ‘결산’하느라 분주합니다. 

여기서 결산이란 회계 용어로 “일정한 기간 동안 일어났던 수입과 지출을 마감하여 재산 상태를 알 수 있도록 계산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 말이 일반 용어로 확대되어 쓰이기도 하는데 “일정 기간 동안의 활동이나 업적을 모아 정리하거나 마무리 하는 일”을 말합니다.

한 해를 마감하는 이 시점에 우리에게도 결산이 필요합니다. 2008년 한 해 동안 우리의 삶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또 마무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 앞에서의 결산이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서 신앙의 결산이 필요합니다.

일반적으로 결산할 때 흔히 “흑자”(黑字)가 났느니 혹은 “적자”(赤字)가 났느니 하는 말을 사용합니다. 수익이 비용보다 많은 경우 흑자이고, 반대로 비용이 수익보다 많은 경우 적자입니다. 옛날 회계 장부를 일일이 손으로 기록할 때 비용이 수익보다 많아서 손해를 보게 됐을 때 경고의 의미로 적색으로 표기했습니다. 여기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흑자 곧 흑색으로 표기할 때는 결산이 잘 된 것이고, 적자 곧 적색으로 표기할 때는 결산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결산은 어떻습니까? 혹시 적자가 나지는 않았습니까? 즉 붉은 색으로 기록해서 경고를 삼아야 하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흑자가 나셨습니까? 즉 잘해서 내년에도 금년처럼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셨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이 시점에서 신앙의 결산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흑자로 기록해야 할 부분이 많기를 바랍니다. 혹 적자로 기록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정확하게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내년에는 그 부분을 흑자로 기록할 수 있게 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도 신앙의 결산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로 사도 바울의 신앙의 결산 이야기입니다. 감사하게도 사도 바울의 신앙의 결산은 흑자입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피면서 신앙의 결산에 흑자를 낼 수 있는 비결을 찾아보겠습니다. 


주어진 시간을 아는 지혜

본문 6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이 말씀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여기서 전제라는 것은 구약의 제사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단 위에 제물을 올려놓고 마지막 의식으로 그 제물 위에 제주(祭酒)로서 포도주를 붓습니다. 이것은 제물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을 상징하는 의식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희생제사로 비유한 것입니다.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이제 전제가 부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끝낼 시점이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마지막까지 온전히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제 이런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끝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은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알고 살았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그 때 자신의 삶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죽어 마땅한 자신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셨습니다. 이제 자기가 살아가야 할 시간들은 전적으로 주님께서 주신 시간들입니다. 그 시간이 다할 때까지 온전히 주를 위해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끝이 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 시간이 점점 다하고 있습니다. 그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독일에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독일 바이에른 지방에 황제 비서실장을 맡아 봉사하던 한 공작이 살고 있었습니다. 황제가 그의 능력을 높이 사서 총리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교만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방탕하고 포악해져갔습니다. 모두가 그를 싫어했습니다.

어느 날 사냥 나갔다가 숲 속에서 한 작은 교회를 발견했습니다. 교회에 들어서 잠깐 기도하고 고개를 드는데 강대상 뒤 십자가 위에서 밝은 빛과 함께 “3”이란 숫자가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그는 이 숫자가 자기에게 남겨진 날이 3일 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3일 후면 자기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겨진 3일 동안 천사처럼 살았습니다. 총리로서 황제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주변 신하들에게도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3일이 지났습니다.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3일이 아니고 3개월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개월을 또 천사처럼 살았습니다. 주변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이 천국처럼 변했습니다. 나라가 천국처럼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이 지났습니다. 아직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그가 3개월이 아니고 3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3년을 또 천사처럼 살았습니다. 3년이 지나는 동안 황제가 감동을 받았습니다. 신하들과 온 국민들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침 황제가 후계자도 없이 병으로 죽게 되었습니다. 황제는 이 총리를 다음 황제로 세우라고 유언을 하고 죽게 되었습니다. 온 신하들과 국민들이 모두 기뻐하며 황제의 유언을 받들었습니다. 

그래서 3년이 되는 날 그는 황제로 등극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1314년 프랑크푸르트의 다섯 제후들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추대된 루드비히(Ludwig)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알고 살면 신앙의 결산에서 흑자를 낼 수 있습니다. 특히 주어진 날들 중 남겨진 날들을 알고 살면 더욱 흑자를 낼 수 있습니다. 그 날들을 천사처럼 살려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세모에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 저 세월의 흐름을 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겨진 날들이 얼마 없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세

본문 7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 말씀에는 같은 의미의 세 가지 내용이 하나로 묶여있습니다.

첫째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입니다. 

여기서 선한 싸움이란 바울이 즐겨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의 비유입니다. 로마 시대에는 격투기를 즐겼습니다. 레슬링이나 복싱같은 경기를 즐겼습니다. 심할 경우 검투사들이 무기를 들고 싸우는 검투 경기도 즐겼습니다. 이 경기들의 특징은 승패가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이기면 살고 지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격투기 선수들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지지않으려고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격투기 장에 선 선수들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기느냐 지느냐의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입니다. 

여기서 달려갈 길이란 말은 원어로 “드로몬”(dromon)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마라톤 경기에서 달려야 할 경주코스를 말합니다. 마라톤 경주를 마치려면 이 드로몬 곧 경주코스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완주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먼 거리를 다 달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죽을 힘을 다해서 달려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마라톤 선수들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완주하려고 최선을 다하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라톤 선수들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끝까지 완주하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셋째는 “믿음을 지켰으니”입니다. 

여기서 믿음을 지켰다는 말은 군인이 상관에게 충성을 다했다는 말입니다. 전쟁터에서 상관으로부터 “돌격 앞으로” 공격 명령이 떨어집니다. 포탄이 빗발칩니다. 적군이 공격하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갈 수 없습니다. 갔다간 죽을 것이 뻔합니다. 상관의 명령을 끝까지 지킨다는 것은 정말 힘드는 일입니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 명령을 목숨처럼 받들고 나아갑니다. 바울은 이렇게 전쟁터의 군인들처럼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자세로 최선을 다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전쟁터의 군인들처럼 살아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님의 명령은 지켜가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이솝의 우화 중에 사냥 잘하는 들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들개는 너무나 빨라서 어떤 짐승들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토끼를 쫓다가 놓치고 말았습니다.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다른 짐승들이 놀려댑니다. “야 발 빠르다더니 별거 아니구나. 이제 그 실력도 녹슬었구나. 앞으로 어디 제대로 먹고 살겠니”

이 때 들개가 이렇게 해명을 했습니다. “그 놈의 토끼는 목숨을 위해 뛰었고, 나는 저녁식사나 하려고 뛰어서 그래”

그렇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당해내기가 힘이 듭니다. 어떤 일을 맡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그들이 일을 냅니다. 반면에 능력이 있고. 모든 것을 다 갖추고 있어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일을 낼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금년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최선을 다하셨습니까? 우리의 여건을 탓하기 보다는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의 상황에서 핑계거리를 찾기보다는 최선을 다했는가를 돌아봐야 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우리 신앙의 결산에 흑자를 남길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맡았든지, 또한 어떤 상황 속에 놓여있든지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우리는 흑자를 낼 수 있습니다.


칭찬에 대한 기대

본문 8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 말씀도 하나의 비유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면류관”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원어로 “스테파노스”(stefano")라는 말입니다. 이 “스테파노스”라는 말은 고대 올림픽에서 우승자에게 주어지던 올리브 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말합니다.

올림픽 대회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원래 이 대회는 제우스신에게 바치는 하나의 제사 의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원래 “올림피아 제전”(祭典)이라고 불렀습니다. 

올림픽 대회는 제우스 신전이 있는 올림피아드에서 4년에 한 번씩 열렸습니다. 제우스신을 섬기는 그리스 각 도시국가에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전쟁도 멈추고 모든 국가적 대소사를 다 중단하고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함께 제사를 지낸 후 각 도시국가에서 대표로 출전한 선수들이 신전 곁의 스타디움에 모여 경기를 펼쳤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나면 우승자 한 사람에게 신전 곁의 올리브 나무 가지를 꺾어서 관을 만들어 씌웠습니다. 그는 최고의 영예를 얻게 됩니다. 자기 나라에서 영웅일 뿐 아니라 온 그리스 세계에서 최고의 영웅 대접을 받습니다. 돈을 받거나 토지를 받는 등 물질적 보상은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 영예일 뿐입니다.

바울은 이 점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모든 사역을 마치고 최선의 경주를 끝내고 한 가지 소망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칭찬입니다. 

마 25장을 보면 소위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이 타국에 다녀오기 위해 길을 떠나면서 세 사람의 종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재능에 맞게 소유를 맡겼습니다.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19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때가 돼서 주인이 돌아왔고, 그 때 결산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살펴보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다섯 달란트를 남겨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두 달란트 받은 종도 두 달란트를 남겨서 가져왔습니다. 종이 이 두 사람에게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저 한 달란트만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핑계를 댔습니다.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이 때 주인이 크게 책망을 했습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그렇습니다. 신앙의 결산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때 둘 중의 하나의 결과가 나타납니다. 하나는 하나님께 칭찬 받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책망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저는 자랄 때 내성적이었고 참 소심한 편이었습니다. 수기도 없고 뭐하나 적극적이질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에게 인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는 부모님이 벌써 연세가 높으셔서 제게는 관심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통 칭찬을 받아보질 못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저를 기쁘게 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숙제 하고 나면 선생님께서 숙제를 한 공책에 도장을 찍어주셨습니다. “참 잘했어요!”가 새겨진 도장입니다. 어떤 때는 그 위에 빨간 색연필로 별도 몇 개씩 그려주셨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그 도장을 한번 보고 또 보고 했습니다. 그 도장 받을 기대감에 집에 오면 제일 먼저 숙제부터 했습니다. 별까지 받아보려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하며 오늘 내게 맡겨주신 일에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대감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세모입니다. 금년 한 해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칭찬 받을 일이 많으셨습니까? 아니면 혹시 하나님께 책망받을 일만 가득하지 않으십니까? 우리가 한 해 한 해 하나님께 칭찬 받을 일들을 쌓아간다면 우리의 신앙의 결산을 흑자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한 해를 지는 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떠나보내야 할 시점입니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신앙의 결산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금년 한 해가 흑자로 기록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 적자가 있거든 내년에는 반드시 흑자가 될 수 있도록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어진 시간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칭찬을 기대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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