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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이 아닌 아들 (갈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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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아닌 아들 (갈 4:4~7)


1963년 8월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 앞에 운집한 약 25만 명의 군중 앞에서 행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연설 가운데 일부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그 날은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이 새로운 의미로 노래 부를 수 있는 날이 될 것입니다.
'나의 조국은 자유의 땅, 나의 부모가 살다 죽은 땅, 개척자들의 자부심이 있는 땅, 모든 산에서 자유가 노래하게 하라.'
미국이 위대한 국가가 되려면 이것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합니다.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모든 마을, 모든 부락,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할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을 향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 흑인과 백인, 유태인과 이교도, 개신교인과 천주교인이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그 날이 말입니다.
'드디어 자유, 드디어 자유,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가 마침내 자유로워졌나이다!'"

과연 킹 목사의 그 꿈은 다만 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꿈, 아니 그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미국 국민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오바마라는 흑인 대통령이 선출되는 기적을 경험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도 한 때 자유를 그리워하면서 싸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많은 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의 댓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자유를 결코 다시는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물로 주신 영적인 자유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영적인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그 형편과 처지가 어려울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요즈음 그 어느 때보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하고 있지 않습니까? 날마다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사람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영적인 자유는 이처럼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과연 흔들리지 않고 있습니까? 수많은 교회들이 있고 천만을 헤아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빛인 교회가 그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존재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존재들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깨닫고 또한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은 참으로 귀한 신분입니다. 종의 신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종이 결코 누릴 수 없는 자유가 자녀에게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과 더불어 매우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까? 사도 바울이 분명히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 4:4~5)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는 담이 허물어진다는 말입니다. 이보다 더 친밀한 관계가 어디 또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 위에 오시기 전에 무엇이 사람들을 지배했습니까? 율법이 지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의 초등학문과 다를 바 없는 율법의 종 노릇을 했다는 말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매우 격앙된 어조로 책망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4장 9절 말씀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이 율법주의의 미혹을 받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는 몹시 분개하고 있습니다. 종으로부터 자유인이 되었는데 어떻게 다시 종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까? 때문에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 5:1)

에릭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외로부터의 해방, 궁핍으로부터의 해방, 무지로부터 해방을 가장 중요한 자유의 요소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요소들이 우리를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이미 유대인들이 율법의 성취를 통해서 얻어 보려고 시도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그런 것들은 성취하게 되면 또 다른 욕망이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면 연봉이 이천만 원에서 사천만 원으로 늘어나면 그만큼 여유도 늘어나야 하는데 우리의 정신은 늘 궁핍하지 않습니까? 다만 자유가 아니라 필요한 것만 계속해서 늘어날 뿐입니다.

때문에 자유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게 됩니다. 오직 자유를 주시는 하나님께서 자유를 우리에게 주실 때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모든 죄의 사슬로부터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는 단지 우리의 부도덕성이나 파렴치한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세상과 세상에 속한 헛된 것들에 기울어지는 모든 경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 세상을 제멋대로 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이 세상의 문제들과는 담을 쌓고 초월적인 하나님만을 생각하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율법의 질서가 자리잡고 있는 이 세상에 얽매이지 않고 하나님의 자유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더 이상 이 세상의 가치에 따라 좌절하지도 않고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아서는 결코 아니 됩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는 가운데 이제 우리는 성령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실 수 있도록 맡겨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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