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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송년] 길갈과 여리고 평지 (수 5: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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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갈과 여리고 평지 (수 5:1~15)

  
등산은 건강에 정말 좋은 운동 중에 하나이며 우리교회 교인들 중에서도 즐기시는 분들이 꽤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등산을 취미로 하고 있지는 않지만 고산 등반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존경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해발 8천 미터 이상의 고봉을 상대로 생사의 한계까지 넘나들면서 오직 자신의 의지와 극기로써 끝내 정복의 승리를 거두고야 마는 감동적인 장면들을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같은 것을 통해 볼 때면, 제일 높이 오른 산이라고 해 봐야 겨우 해발 1천 4백 미터 높이의 가야산에 불과한 저로서는 절로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고산 등반을 할 때에는 주말 등산처럼 그저 도시락 들어 있는 배낭 하나 몸에 걸치고 가는 준비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먼저 그 등반하고자 하는 산 아래쪽에 '베이스캠프'를 설치합니다.
그것은 보급 물자들을 저장해 놓고 또한 등반대원들이 그 곳의 고산 기후와 희박한 공기에 익숙해지도록 훈련하면서 등반연습을 하는 등 모든 계획과 준비를 철저히 갖추는 곳입니다.
  
그 후에 진짜 등반이 시작되면 제일 낮은 곳에 제1캠프, 그 다음에 좀 더 높은 곳에 제2캠프 하는 식으로 차례로 올라가서 마지막 제4캠프 정도까지 설치하게 되는데, 이런 캠프들은 본격적인 정상 도전에 돌입하기 위한 일종의 '전진기지'들이 되는 것입니다.

40년의 광야생활을 끝내고 요단강까지 도하한 후에 이제 본격적인 가나안 정복을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바로 그런 베이스캠프와 전진기지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먼저 '길갈'이라는 베이스캠프를 설치했으며 '여리고 평지'라는 전진기지를 통과한 후에 비로소 가나안 본토에 진입할 수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어떤 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 이전에 완벽한 준비부터 먼저 차근차근 갖추어야 하는 것은 신앙공동체에 있어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제 2008년을 보내는 연종주일입니다.
새해라는 반드시 정복해야 할 또 하나의 축복의 산을 앞에 둔 이 시점에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떤 준비와 결단으로써 나아가야 할지를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함께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1. 길갈은 '교인 각자의 기본적인 신앙생활'을 점검하는 베이스캠프입니다. 

1절 이하 9절에 "1요단 서편의 아모리 사람의 모든 왕과 해변의 가나안 사람의 모든 왕이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시고 우리를 건네셨음을 듣고 마음이 녹았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정신을 잃었더라 2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하시매 3여호수아가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할례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니라 4여호수아가 할례를 시행한 까닭은 이것이니 애굽에서 나온 모든 백성 중 남자 곧 모든 군사는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죽었는데 5그 나온 백성은 다 할례를 받았으나 오직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였음이라 6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대하여 맹세하사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하여 우리에게 주마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그들로 보지 못하게 하리라 하시매 애굽에서 나온 족속 곧 군사들이 다 멸절하기까지 사십년 동안을 광야에 행하였더니 7그들의 대를 잇게 하신 이 자손에게 여호수아가 할례를 행하였으니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으므로 할례 없는 자가 되었음이었더라 8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 9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에 가장 강력한 상대가 될 "아모리 사람"들을 비롯한 모든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은 이미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말리신" 기적의 '요단강 도하 작전' 소식을 듣게 되자 그들은 사기가 저하될 대로 저하되었으며 아예 전의를 상실하는 지경에까지 빠지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그들이 손 번쩍 들고 항복해 온 것은 아니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실제적으로는 여전히 전투를 치르고서 그 땅을 정복해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첫 실전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느닷없는 명령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라는 것은 바로 '돌칼'을 의미하며 그것으로 남자의 양피를 자르는 의식이 바로 할례입니다.
  
이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다른 이방 민족의 경우처럼 무슨 '성인식' 따위의 표식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인 것을 상징하는 중대한 성례였습니다.

여기서 "다시 할례를 행하라"고 하신 것은 이미 할례 받았던 사람도 다시 받으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동안 중단되어 있던 할례의 시행을 재개하라는 의미입니다.
"길에서는 그들에게 할례를 행치 못하였다"고 한대로 광야행군 도중에는 언제 다시 길을 떠나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할례를 행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굽에서 나온 후 광야 노중에서 난 자는 할례를 받지 못하고" 그 결과 다 "할례 없는 자가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길갈에 와서야 비로소 단체로 할례를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술적인 의미에서만 본다면 아주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8절에 "온 백성에게 할례 행하기를 필하매 백성이 진중 각 처소에 처하여 낫기를 기다릴 때에"라고 했듯이 할례는 일종의 외과수술과 같은 것이며 회복 기간이 꽤 소요되는 것인데, 만약 적군이 그것을 알고 그 사이에 기습공격을 해 온다면 큰 낭패를 볼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34장에서도 바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디나가 강간을 당했을 때 그 여동생 대신에 보복을 하러 나선 시므온과 레위는 일단 세겜 사람들을 속여서 할례를 받게 만들어 놓은 후에 "제 삼일에 미쳐 그들이 고통할 때에" 그들을 기습하여 아주 손쉽게 세겜의 모든 남자들을 다 죽여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지척에 두고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은 것은 현실적으로 자기네의 전력을 극도로 약화시키는 큰 위험을 스스로 자초한 행위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공동체의 승리를 위해서는 먼저 각자 개인의 신앙이 확실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됨을 확인하는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그렇게 할례를 받게 하심으로써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고 선언하신 것이었습니다.
  
과거 애굽에서의 압제에서 완전히 자유하게 되고 그들의 우상숭배의 영향으로부터 깨끗하고 정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가 오직 하나님께 속한 언약의 백성임을 확신하게 될 때에 오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길갈" 즉 '굴려 버림'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부르게 된 것이며, 이것이 곧 이스라엘의 가나안 점령을 위한 베이스켐프가 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의 신앙을 재점검하기 위해 또 한 가지 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유월절을 지킨 것이었습니다.
  
10절부터 12절에 기록하기를 "10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 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 11유월절 이튿날에 그 땅 소산을 먹되 그 날에 무교병과 볶은 곡식을 먹었더니 12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길갈에서 출발하여 "여리고 평지" 쪽으로 이동을 시작했을 때, 말하자면 '제1캠프' 같은 것을 치게 되었을 때에 행한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이후에 세 번째로 지키게 된 유월절이었습니다.
  
그들은 사십년 전에 애굽에서 탈출하던 그날 밤에 첫 유월절을 지켰고 그 다음 해에 시내산에서 두 번째로 지킨 후 그 뒤로는 광야생활 38년 내내 한 번도 지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하여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가나안을 향하여 진군을 시작하여 여리고 평지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 유월절을 다시 지키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이 유월절은 "그 땅 소산"과 "가나안 땅의 열매" 즉 가나안 땅에서 난 농산물을 먹으면서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행군 내내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제공해 주셨던 "만나"라는 특식을 먹고 생존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자연적 섭리를 통해 제공해 주시는 '토산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이 시점에서부터 다시 유월절을 지키게 된 것은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유월절에 양고기와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은 그들이 출애굽하던 날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구원받았음을 상기시켜 주는 예식이었습니다.
즉 이들이 이제 가나안의 농산물을 먹기 시작하게 된 이 시점에 와서 사람은 그저 육신의 양식만 생겼다고 해서 살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구원의 은혜와 생명의 양식이 있어야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더욱 되새길 필요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할례'와 '유월절' -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에서 그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에 해당되는 이 두 가지가, 그들이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각자가 확실히 해 두어야 할 최종 점검 사항이요 필수적인 준비물이었습니다. 

우리가 이 2008년을 지내고 새해를 맞이하기 전에 이 베이스캠프에서 꼭 해야 할 준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각자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들부터 다시 점검해 보는 것입니다.
우선 '나는 하나님의 언약의 자녀이다.'라는 구원의 확신부터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혹시라도 '손할례당'에 여전히 속해 있는 '형식적인 교인'은 아닌지를 스스로 솔직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생활에 '뜨거운 눈물의 죄 고백과 회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한 신앙고백, 경건생활을 위한 서원과 실천, 철두철미한 교회중심의 생활'이 아직도 결핍되어 있다면, '내가 지난 2008년에 왜 복을 받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교회에 출석교인의 이름은 올려놓고 있지만 올해에 52회의 주일예배를 드리면서도 하나님께서 365일 내내 날마다 내려주셨던 온갖 일용할 '만나'의 축복들을 진정으로 매주일 기억이라도 하고 있었는지 바로 이 시간에 돌이켜 보아야만 합니다. 
아니 그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보혈이 바로 나 자신의 구원을 위한 '유월절의 어린 양'의 희생제물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하여 내 심령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한 감사가 끊임없이 솟아나고 있는지를 정말이지 분명하게 점검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본'이 되어 있지 아니하면, 제아무리 새해에는 이렇게 저렇게 더 잘 해 보겠다고 결심을 하고 더 큰 축복을 받겠다는 희망을 가져 보아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 너무나도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기독신자라는 사람이 자기 자신의 신앙생활부터가 기본적으로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좋은 교회의 교인이 된다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명색이 예수 믿는다는 사람이 실상은 아직도 '신앙의 초보'도 다 못 떼고 있으면 아무리 훌륭한 설교를 듣고 아무리 많은 기도를 받는다 해도 그것이 실제로는 무슨 축복으로 나타날 수가 있겠습니까?
  
이 2008년의 '베이스캠프'를 떠나기 전에 각자가 우선 자신의 개인 신앙생활의 기본적인 것들부터 하나하나 점검함으로써 새해를 맞이하는 준비를 철저히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여리고 평지는 '지도자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겸손'을 상기시켜 주는 전진기지입니다. 

13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에 "13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14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고 가로되 나의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복의 관문에 해당되는 여리고성에 더욱 접근해 왔을 때였습니다.
본문에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라고 했는데, 어쩌면 그는 그 여리고성 가까이로 정찰을 나와서 공략 계획에 대하여 심사숙고하면서 고민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든지 간에, 에베레스트 같은 고산등반의 경우로 치자면 '제4캠프' 즉 마지막 전진기지에 도착했을 무렵이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여호수아는 뜻하지 않게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나게 됩니다.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란 보통 천사가 아닌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2장 8절과 9절에서 사도 요한이 자기에게 계시를 보여 주던 천사에게 "경배하려고 엎드렸을" 때에 그 천사는 그를 만류하면서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고 했었는데, 여기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여호수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나의 주여"라고 호칭했는데도 그것을 그대로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한술 더 떠서 여호수아에게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것은 잘 아시다시피 과거에 하나님께서 호렙산의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친히 나타나셨을 때에 그에게 제일 처음으로 명하신 말씀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출 3:5).
  
그러므로 이 "여호와의 군대장관"이란 '여호와의 대리자'로서 '구약에 나타나신 그리스도'이심에 분명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하필이면 그런 이름으로 여기서 등장하신 것이었겠습니까?
그것은 이 여리고 정복 전투에 친히 앞장 서셔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가시는 최고사령관은 바로 하나님 당신이심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여호수아 앞에 나타난 것도 하나님 편에서는 이미 임전태세를 완전히 갖추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도와주려 하시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 준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방을 알아보지 못한 여호수아가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즉 '당신은 우리 편이냐 적군 편이냐?'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는 대답을 듣자마자 곧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면서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나님의 지시를 경청하려는 자세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인 6장에 보면 그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공략에 대한 구체적인 작전을 일러 주시는 것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그런 필승전술을 가르쳐 주시기 전에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먼저 명한 것이 바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는 말씀이었던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인도할 지도자가 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서 자기 발의 신을 벗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여호수아 역시 이제 가나안 정복전을 이끌어갈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이것부터 해야만 했습니다.
  
즉 여호수아가 아무리 이스라엘의 새 지도자가 되었다 할지라도 그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는 여전히 즉시 꿇어 엎드려야 할 종의 위치에 있음을 조금이라도 망각하면 안 되었던 것입니다.

사실 당시의 여호수아는 스스로도 상당히 고무되어 있을 법 했습니다.
그때는 그가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권을 위임받은 후에 제일 첫 난관이었던 요단강 도하 작전을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우심을 받아서 대성공으로 끝내었던 직후였습니다.
  
그러니 '모세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는 자자한 칭찬과 '앞으로 가나안 정복전을 이끌어나가는 데에도 아무 문제없겠다.'는 절대적인 지지를 모든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받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까닭에 바로 이 시점에서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바짝 땅에 엎드리고 오로지 그 말씀만을 듣는 겸손의 자세는 더욱 필요했었습니다.
  
그의 앞에 닥친 여리고 공략을 두고 여호수아 자신은 여전히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할 '하나님의 종'일 뿐이지 조금이라도 감히 하나님과 전술을 논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온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을 건너왔다고 해서 이제부터는 자기 마음대로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도 될 만한 능력과 지혜를 갖추게 된 것은 아니었으며, 그 이스라엘 공동체의 실제적 지도자와 최고 사령관은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이실 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여기에 와서 여호수아가 조금이라도 자만에 빠지게 되면 요단강을 성공적으로 도하한 것이나 새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갖추게 된 것들은 그야말로 한순간에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큰 일전을 앞에 두고 여러 가지로 생각이 복잡했던 여호수아는 이처럼 '여리고 평지'에서 자기보다 훨씬 더 일찍 이미 준비해 두신 하나님을 만났으며, 그 자기보다 훨씬 더 높으신 대장, 진짜 지도자 앞에서 겸손의 자세를 갖춤으로써 비로소 여리고의 성공적인 공략을 위한 최종준비까지 완벽히 마치게 된 것이었습니다.

교회가 점점 더 부흥하면서 더 큰 축복을 향한 '전진기지'들이 계속 뻗어나갈 때일수록 특히 교회의 지도자 된 사람들이 더욱 스스로 주의하면서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겸손'입니다.
교역자들은 교인들로부터 '우리 목사님 정말 훌륭하신 분이야.'라는 생각이 절로 우러나오게 하고 '우리 전도사님 정말 좋은 전도사님이야.'라는 칭찬이 자자해질 수 있도록 목회를 잘하고 사역에 충성해야 마땅합니다.
교인들을 바로 이끌어 가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런 '영적 매력'을 당연히 발휘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교인들로부터 바로 그런 진심어린 존경과 지지를 받게 되는 바로 그 순간이 그 교역자 본인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거기서 까딱 잘못해서 '자기 고개가 들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영락없이 급전직하의 내리막이 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장로나 집사나 권사 같이 교인들 앞에 서서 그들을 이끌어 가는 모든 직분자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철칙입니다.
'그래도 내가 헌금한 것이 있기 때문에 이 불경기에도 우리 교회가 이만큼 지탱해 왔지.'라는 생각이 만약 들게 된다면 바로 그 헌금한 것조차 사실 헛수고나 다름없게 됩니다.

'나 때문에 우리 전도회가, 우리 구역이, 우리 주일학교가, 우리 찬양대가 이렇게 발전하고 성장했지.'라는 교만이 조금이라도 생기게 된다면 그 모든 충성했다는 것이 바로 그 교만의 거품에 덮여 다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교회의 지도자로 세움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저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최고 권위로써 행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어떤 직분을 받고 또한 그 얼마나 잘했다 하더라도 자기 자신은 그 최고 통수권자 앞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종'의 신분에 불과함을 단 한순간이라도 잊어서는 아니 됩니다.
하나님께서 2008년에 우리를 사용하셔서 어떤 큰 일들을 행하셨다면 바로 그 하나님께서 2009년에 대한 계획과 작전도 이미 다 짜 놓고 계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이 시점에 또 다시 하나님 앞에서 '발의 신을 벗고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하나님, 이 연말연시에 제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라고 그저 더더욱 겸손한 자세로 기도하며 말씀을 경청해야 할 뿐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목사나 장로는 교회 일 그 자체에 압도되고 억눌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할까?'하는 걱정만으로 교회의 지도자 직분을 결코 제대로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나같이 부족한 종을 당신의 위대한 구속사를 위한 사명에 쓰시려고 교회의 지도자로 세워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욱 겸손한 자세로 엎드리는 '기도의 전진기지'를 통과함으로써 새해에는 이 경향공동체를 더 큰 축복의 승리로 이끌어가는 모든 교역자들과 직분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정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해야 할 '베이스캠프'와 통과해야 할 '전진기지'가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2008년에도 이 경향공동체가 성공적으로 도하한 '요단강'이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쟁기를 잡지 아니하고' 오직 앞에 있는 푯대만을 바라보면서 2009년의 새로운 '여리고' 정복을 향해서 재정비, 재무장을 해야만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우리 각자는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신 언약의 자녀'가 된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로 이 큰 구원받은 은혜'를 다시금 확인하면서 자기 개인의 신앙생활을 철저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바쁘다고, 놀러가느라고 주일에조차 참석하지 않았던 예배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스스로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경기가 나쁘다는 핑계로 '온전한 십일조'를 속인 일이나 '환난의 많은 시련과 극한 가난 중에도 넘치는 기쁨으로써 풍성한 연보'를 바친 특별헌금에 아직까지도 동참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는지 각자 자신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이런 신앙생활의 초보도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고 이런 기본적인 'ABC'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2009년이 와도 아무 축복의 진보 없이 2008년의 그 답답했던 한 해를 그대로 답습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조금 무언가를 이루었다 싶을 때에 더더욱 '하나님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기도드리는 가운데' 전진기지들을 하나하나 설치하면서 교인들을 계속 앞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
  
최근 10년 어간에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다는 올해에도 우리는 교육관을 건축했으며 헌당완결헌금까지 온 힘을 다 모아서 바쳤지만, 우리 교회의 기둥 같은 장로님들이 이럴 때일수록 더욱 겸손의 옷깃을 여미고 자기 자신의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야만 합니다.
  
자기가 맡은 교구나 교육부가 부흥한 교역자일수록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될 뿐임을 기억하면서 다시 한번 '자신의 신을 벗고'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서 새해도 '종으로서 마땅히 해야만 할 뿐인' 사역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성령의 인도에 의지하며 기도하지 않고 자기 머리로만 교회 일을 해 나가려 한다든지, 조그마한 것 하나 해 놓았다고 마치 목사 일, 장로 일 다 한 것처럼 은근히 자만에 빠지다가는 더 높은 정상은커녕 순식간에 골짜기 밑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경향의 모든 교인들은 교역자들이 일일이 지적해 주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개인 신앙생활'을 꼭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경향의 모든 지도자 된 자들은 함께 좀 힘을 모아 주지 아니한 동역자들을 탓하거나 원망하기보다는 우선 자기 자신부터 '지금보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 연종주일에 우리 각자가 '구원 신앙'의 기본자세를 더욱 확실히 재정비하고 우리 모두의 최고 절대주권자 되신 하나님 앞에 '겸손의 기도'로 재무장함으로써 다가오는 새해에는 올해보다 더 큰 축복의 정상을 꼭 함께 정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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