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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사 5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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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사 55:10~13)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옛날에 천사와 악마가 한 마을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너무 못 생겼고 악마는 사람들이 반할만큼 잘 생겼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못생긴 자를 천사라고 불렀고 잘생긴 자를 악마라고 불렀습니다. 어떻게 사람들은 둘을 이렇게 구별했을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외모를 본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로 천사와 악마를 구별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탄 마귀도 우리가 상상하듯이 머리에 뿔이 달린 흉악한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악마도 처음에는 천사로 만들어져서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마음에 교만함이 생겨졌을 때 악마로 변했습니다. 마음속에 욕심과 탐욕이 생길 때 천사가 마귀가 된 것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곧 그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담겨져 있는지를 분별하는 기준입니다. 특히 젊은 청년들이 사람을 사귈 때 제일 먼저 외모를 볼 수밖에 없겠지만 그보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속에서부터 나오는 말이 그 사람의 인격이기 때문입니다. 잠깐 멋진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젊은 청년들이 연애를 시작하여 결혼을 하려면 춘하추동을 경험해보라고 권유합니다. 사랑의 감정에만 빠져 결혼하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인가를 알려면 사람의 마음속에서부터 나오는 말이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산다면 인간은 매일 말과 언어 속에서 산다고 해도 틀림 없습니다. 말 한마디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우리는 날마다 경험합니다.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무례한 말 한마디가 오랫동안 쌓은 신뢰와 사랑의 불을 꺼버리기도 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는 말, 칭찬하는 말 한마디가 슬픔에 잠겨 인생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다시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말 한마디가 주저앉았던 사람을 다시 일으키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애를 되돌아보면 누구에게 들은 말 한마디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구가 참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말이 곧 당신입니다. 당신이 곧 당신의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의 생각과 뜻과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사람의 말은 그의 인격이고 삶 전체입니다. 우리의 육체가 어딘가에 부딪치고 얻어맞으면 피부부터 손상되고 멍이 듭니다. 상처에 피가 나면 우리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금방 깨닫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은 말을 들으면 마음속에 생긴 상처와 멍은 너무 오래 갑니다. 그것은 외면적으로는 안보이지만 가슴속에 오래 남습니다. 어떤 이들은 몇 년 혹은 몇 십 년 동안 가슴에 상처의 말이 남아 고통을 받습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한이 맺혀서 평생 동안 고통을 받으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육체적인 학대는 그 순간을 모면하면 지나갑니다. 그런데 언어적인 학대는 평생 삶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때로는 자녀에게 잔인한 말을 하고 나서 ‘그냥 농담이었어.’하고 태연하게 말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거짓으로 다른 사람의 가슴을 찢고 멍들게 한 후 ‘아니면 말고.’하며 시치미를 떼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도 자주 목격합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말은 소망을 주기도 하고 절망을 주기도 합니다. 

말은 힘입니다. 말은 에너지입니다. 말은 능력입니다. 말이 있는 곳에 변화가 일어나고, 말이 있는 곳에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을 절제하고 조심하라고 끊임없이 가르칩니다. 잠언에 사람의 말에 대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잠언 16:28)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언 16:24)

말은 우리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고 슬픔을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치료할 수도 있고 병들게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은 나를 규정하기도 하는 인격입니다. 말에 의해 인생의 방향이 결정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말을 스스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에 대한 명백한 말을 해야 합니다. 
  
입으로 쏟아낸 말을 뒤따라가는 것이 인간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핸들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은 곧 말이라는 핸들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느냐는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오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인간이 하는 말의 원판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나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하나님의 생각,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말씀은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바꾸는 변화의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우리 가슴에 심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이는 비와 눈이 하늘로부터 내려서 그리로 되돌아가지 아니하고 땅을 적셔서 소출이 나게 하며 싹이 나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는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는 양식을 줌과 같이” (이사야 55:10)

땅에 내리는 비와 눈은 하나님의 말씀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땅을 적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속에 들어와 거하신다는 뜻입니다. 소출이 나게 한다는 것은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생각을 바꾸고 행동하게 하셔서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로 헛되이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무의미한 소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이 들어 있어 우리에게 다가올 때 변화의 역사를 일으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파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화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으면 인생이 바뀝니다. 왜냐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면서 하나님이 주신 약속과 꿈과 비전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을 주심으로 그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신다고 말씀합니다.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이와 같이 헛되이 내게로 되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기뻐하는 뜻을 이루며 내가 보낸 일에 형통함이니라” (이사야 55:11)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을 이룹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건을 만듭니다. 인간을 위한 구원의 계획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축복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사랑받는 자이며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지닌 존재임을 증명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면서 주시는 두 가지 선물이 있습니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이사야 55:1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기쁨과 평안함을 선물로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을 믿으면서 생긴 기쁨과 평안함이 있습니까? 만약 예수를 믿으면서 내 안에 기쁨과 평안이 없다면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야합니다. 
  
사랑은 우리에게 기쁨과 평안을 줍니다. 사랑하면 때로 아프기도 하지만 기쁨이 있습니다. 때로는 불안하기도 하지만 평안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사랑도 그런데 살아계신 인격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기쁨과 평안을 가져다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믿음과 사랑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새로운 사랑의 신앙고백을 하십시오. 

인간관계에 있어서 최고로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믿음과 사랑입니다. 믿기를 포기하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기를 포기하면 더 이상 관계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남녀 간에 사랑의 열정도 인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많은 문학가들이 사랑의 시를 노래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독일의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가 쓴 “내 눈을 감게 하세요”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눈을 감게 하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꺽으세요, 그래도 나는 당신을 잡을 것입니다. 
손으로 잡듯이 심장으로 잡을 겁니다. 
심장을 멎게 하세요, 그럼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마침내 당신이 불로 나의 머리를 태워 버린다면, 
그 때는 내 피가 흘러 당신을 실어 나르렵니다.

한 여자를 사랑하는 순간에도 눈을 감아도 보입니다. 한 남자를 사랑할 때도 귀를 막아도 들리고 입을 봉해도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과 믿음에 생명의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애인보다 더 크신 분입니다. 사랑하는 아내, 남편보다 더 위대하신 사랑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생명을 잉태하고 창조를 만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씀이 우리 안에 용해되어 새로운 고백이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으로 인생을 살겠다는 결심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사랑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날 사랑하는 공동체가 된 신비한 경험을 고백하는 것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을 붙들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으로 받으십시오. 예수님을 사랑으로 받으십시오. 약속된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용해하여 입으로 고백하십시오. 믿음이란 현실을 말하지만 현실 이상의 것을 끌어들이는 힘입니다. 신문기자들은 현실을 말하며 가능하면 비판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현실의 문제, 아픔과 위기를 하나님의 약속된 말씀으로 미래에서부터 현재로 끌어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기뻐하시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구약 성경 중에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인 ‘여호와 이레’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고 아브라함의 믿음의 향기가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가 되어 늘그막에 아들 이삭을 낳아 너무나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성인이 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셔서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을 때 눈 앞이 캄캄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신다 함은 잔인하고 인생을 파괴시키는 말이라고 고통스럽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미래를 맡기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올라갔습니다. 그때 이삭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여 아버지에게 질문했습니다.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창세기 22:7) 

이 때 아브라함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 미래를 맡기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세기 22: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에 자기 삶 전체를 맡겼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입니다. 현실을 몰라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아픔을 몰라서 믿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 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끌어들이는 것이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능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믿음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고통과 비참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끄집어들였습니다. 그러면서 현실을 이겨나가는 승리를 했습니다. 


불평과 원망을 버리고 성경말씀을 붙들며 기도하십시오.

지금 우리나라가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렵습니다. 가정이나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을 모두가 탄식하면서 힘들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향한 약속을 바라보면서 미래를 다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현실 속으로 끌어들여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고비를 넘어갈 수가 있습니다. 
  
우리에게 지금 이 시대에 두 가지가 꼭 필요합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의 말은 인격이고 삶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말들이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중에 가장 싫어하는 말이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종 되었던 애굽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의 비전을 보고 출애굽 합니다. 그런데 광야에서 고통을 당하면서 그들은 약속을 잊어먹었습니다. 정탐꾼이 가나안 땅까지 가서 거대한 아낙자손을 보면서 들어갈 수 없다고 울부짖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이 불평하고 원망한대로 내가 너희들의 입에서 한말을 내가 들은 대로 시행하리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기서 죽음을 당합니다. 그런데 두 사람 여호수와와 갈렙이 정탐꾼으로 갔습니다. 저들의 백성이 큰 줄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면 갈 수 있다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 되라 네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인 그대로 내가 네게 이루겠다.” 
  
조금 어렵다고 불평하고 원망하지 마세요. 스무 살 이상 된 사람들은 부모를 원망하지 마세요. 환경을 탓하지 말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두 번째, 하나님의 약속인 성경말씀을 읽고 들으며 다시 기도하세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약속을 가슴에 품고 개인적인 어려움을 이겨나가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면서 하나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어나가는 믿음의 성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너무 빨리 낙심하고 불평하며 원망합니다. 우리의 어리석음을 용서하여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하게 하옵소서. 주님과 더불어 승리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김지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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