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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갈까 (마 18: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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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천국에 갈까 (마 18:1~10)

1. 사람들이 이 본문에 가지는 편견

  오늘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 가운에 어떤 분은 성경과 설교 제목을 보고 이미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지 예상하는 분들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오늘은 어린이집과 선교원의 예배가 아닌가? ‘아하! 분명히 이렇게 설교할거야.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되려면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어린 아이처럼 순수해 집시다. 그래야만 여러분도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린 아이 함부로 막 대하지 말고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도덕적인 설교 한 편을 듣고 다시 돌아간다. 설교 잘 들었다고 생각하고 돌아간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달라진다. 월요일 아침부터 전쟁이 난다. 우리 집 자녀가 말 안 듣는다고, 부모의 맘을 몰라준다고, 시키는 일 제대로 안 했다고 욕이 나오고 때리기도 한다. 설교를 듣기 전보다 더 험악해 진다.... 설교를 들었지만 우리는 아무런 변화도 없다. 이것은 분명히 주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니다. 
  
오늘 본문은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을 한 번 생각해 보고 넘어가는 감상적인 본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 주님의 말씀을 보라. 제자들이 물은 질문은 이것이다. “천국에서 누가 큽니까?” - 천국에 들어가기는 다 들어가는데 과연 누가 큰 자리하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을 보라. (3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강조하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쓰셨다. “진실로,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예수님은 누가 더 크냐는 고사하고, “천국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 라는 보다 심각한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이 말씀은 감상적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느냐 들어가지 못하느냐의 문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문제가 달려 있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2. 예수님의 말씀을 보자. 

① 천국에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들어가는가?

(3절)“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람들은 이 본문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단어를 “어린아이”라고 지목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단어가 있다. “돌이켜”와 “된다”(되지 아니하면-되어야만)이다.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했다. “change and become like this child" 중요한 것은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어린이는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가 됨에 있어서 하나의 예(모델)로 제시되었을 뿐이다. 이렇게 되어야 복음의 논리에도 맞는다.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가? 인간의 의로, 인간의 성품으로, 인간의 정결로 들어가지 못한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인간은 남자나 여자나 다 죄인이다. 인간은 어린이나 청년이나 어른이나 다 죄인이다. 인간은 조금 성품이 나은 사람도 죄인이고, 성품이 개떡 같은 사람도 다 죄인이다. 결코 인간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의는 아무 곳에도 없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찾아 오셨다. 그 분이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셨다. 하나님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할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교만하고 악한 죄인인지 알게 하셨고, 나의 힘으로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인생임을 깨닫게 하셨다. 그 때 우리는 비로소 그 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의, 나의 힘, 나의 노력, 나의 능력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을 붙잡고 주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이켜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해 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복음의 본질이 많이 흐려지고 있다. 

일치와 연합이라는 에큐메니칼 운동은 좋은 것이지만, 교파나 종교간의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 종교의 관용을 외치는 이런 운동은 복음의 본질을 상당히 왜곡시켰다. 

1997년 빌리 그레이엄은 로버트 슐러와의 대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세상으로부터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그의 민족을 부르고 있다. 그들이 무슬림이든지, 불교에 속해 있든지 아니면 무교에 속해 있든지 상관이 없다. 그들은 다 그리스도의 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부름을 이미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쩌면 예수라는 이름은 모를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내면을 통해 자신들에게는 없는 뭔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한다. 나는 그런 사람들은 구원받고 우리와 천국에 간다고 생각한다.” 로버트 슐러는 너무나 놀라서 다시 물었다. “어둠 속에서 태어났고, 성경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도 예수님이 그의 마음에 들어가 생명을 줄 수 있다는 말이냐?” 빌리는 대답했다. “예스!"

이런 인식은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이 교회 안으로 얼마나 심각하게 파고 들어와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용주의는 복음의 본질마저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② (4절) 말씀도 (3절)과 연결되어 있는 그런 의미다. (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것, 자신의 죄인됨과 비참함, 전적인 부패와 타락을 인정할 때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질 수 있다. 그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향해서 도움을 요청할 때 하나님은 그의 손을 잡아 주신다. 


③ 어린아이와 같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린아이들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첫째, 어린아이는 아주 단순하다. 
ex) 아이가 잘못하면 “이 놈!”하면 금방 울어버린다.
그러면 다시 달랜다. 처음에는 얼굴을 돌리고 “아빠 미워!” 그런다. 그러면 “아빠랑 수퍼에 까까 사러 가자.” “그래 가자!” 그리고 내 손을 잡고 나선다. 그러면 속으로 “에라이! 단순한 놈아!” 어린이들은 참 단순하다. 단순하다는 것은 생각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른은 참 복잡하다. 복잡하다는 것은 생각이 많다는 것이다. 저 사람이 이렇게 나올 때 이렇게 하고, 저 사람이 저렇게 나오면 저렇게 해야지... 그래서 어른은 복잡하다. 그래서 꿍하게 숨기는 것도 많고 비밀도 많다. 

둘째, 어린아이는 아주 순수하다. 이 순수함은 단순성으로부터 나온다. 단순하기 때문에, 숨길 것도 없고, 투명하고, 순수해진다. 어린아이들의 기도는 참 순수하다. 
"사랑하는 하나님!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을 대라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여동생이 눈을 찌르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좋으신 하나님! 눈이 너무 많이 와서 학교에 못 갔던 날 있잖아요. 기억하세요? 다섯 번만 더 그랬으면 좋겠어요."

셋째, 어린아이는 그대로 믿는다. 아이들은 단순하고 순수해서 부모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조금 크면 문제는 달라지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 그런데 어른들은 너무 의심이 많다. 의심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세상 속에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저 사람의 말은 반 만 믿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조차 이미 마음속에 50%의 진실밖에 가지고 있지 않는 셈이다. 

넷째, 어린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아이들은 집에 오면 엄마부터 찾는다. 아무리 시골에 할머니가 있고, 먹을 것이 많고, 놀 것이 많아도 엄마 없으면 안 간다고 한다. 아이들은 밤에 자다가 항상 엄마를 찾는다. 그들은 엄마를 아빠를 절대적으로 의지한다. 부모가 없으면 살 수 없을 것처럼 생각한다. 
  
우리도 어린아이의 이런 신앙적 자질들을 배워야 한다. 조금은 단순해져야 한다. 조금은 어리숙해 보일지 몰라도 순수해져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들의 말도 그대로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들도 어린아이처럼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없으면 안 된다는 절대적 믿음을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성서학자인 윌리엄 바클레이는 "우리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멀어질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즉 신앙 년조와 신앙의 질이 같다고 볼 수 없다는 말이다. 처음 믿었던 마음이 훨씬 더 순수할 수가 있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주님을 믿었던 때가 우리에게도 있었다. 그런데 우리의 신앙 년조가 길어지고 직분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우리의 마음은 순수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점점 복잡해지고 생각하지 말아야 될 생각들을 하게 된다. 

처음 예수 믿고 교회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복잡하지 않았다. 머리도 복잡하지 않았다. 그저 주님이 좋고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너무도 기뻤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감격이 우리 속에 언제나 있었다. 그런데 신앙의 년조가 길어지면서 서서히 우리의 마음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우리의 관심은 '누가 교회에서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영향력이 큰가? 누가 더 목소리가 큰가? 누가 더 똑똑한가?' 에 두게 되지 않았는가? 
  
오늘 우리에게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이다. (“하나님의 은총이요? 권총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쏘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은데요?”라고 할 분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이 오늘도 내 곁에서 내 품에서 함께 살아가고, 내 눈 앞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해야 한다. “너를 보고 있으면 하나님의 나라가 보인다. 천국은 너와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하지? 아! 그 천국에 빨리 가고 싶구나.” 이렇게 해야지. “뒤꼭지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아 내 뒤꼭지, 아 혈압이야. 나 천국에 간다.”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 


④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시는 것과 만난다.

(5-6절)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10절) “삼가 이 작은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님은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 가운데 하나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가 믿음에서 떨어지도록 해서는 안 된다. 만약 죄로 인해 넘어지게 하여 믿음에서 떨어지면 그 원인을 제공한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메서 바다의 깊은 곳에 빠뜨리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라. 예수님은 지금 가장 높은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런데 실족케 한 사람은 천국으로부터 정반대의 이미지, 가장 낮은 바다 속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18장 바로 앞 본문에서 성전세의 문제를 말씀하실 때도 나는 임금(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성전세를 낼 필요가 없지만, 나의 이런 행동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성전세를 베드로를 통해서 내게 하셨다. 주님은 사람들이 실족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셨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였지만 고집대로 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예수님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가장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믿음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계셨을 때도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오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신 주님의 기도의 제목이기도 하다. 
  
가장 귀한 믿음과 천국을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 무심코 던지는 우리의 사려 깊지 못한 말이 어린아이의 믿음을 그 마음에서 빼앗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내가 생각 없이 던진 한 마디, 내 편할 대로 한 행동 하나가 어린아이처럼 믿음이 연약한 자의 마음을 건드려 그로 하여금 실족하게 할 수도 있다. 그 실족으로 인해 그 사람이 믿음과 천국의 길에서 벗어난다면 그 책임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여러분 모두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어린 아이의 성품처럼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새로운 존재가 되도록 하십시오.
주님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신 믿음과 천국을 위해 바로 당신 앞에 당신 옆에 계신 사람에게 믿음과 천국을 더 생각나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앞, 뒤, 옆에 있는 사람과 인사하십시오. 

“나는 당신을 주님처럼 영접하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믿음을 위해 섬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는 천국을 위해 당신을 도와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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