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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큰 선물 : 예수 그리스도 (엡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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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선물 : 예수 그리스도 (엡 2:1~10)


I. 인간 진단서

영어로 역사를 history라고 합니다. 이 말은 His 그분 이라는 말과 Story 이야기라는 말이 합쳐서 된 말입니다.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입니다. 인류역사는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금년은 2008년입니다. 이 말은 A.D.2008. Ano Domini.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지 2008년이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 이전의 역사를 우리는 B.C. Before Christ.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전 몇 년 그런 뜻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탄생하던 바로 그날 아침, 인류 역사는 두 동강이 났습니다. 예수 이전과 예수 이후의 역사로.

한 인간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알기 이전의 삶과 예수 이후의 삶으로 나뉘어 집니다. 예수 이전의 삶은 그가 아무리 위대한 인물이라 할지라도 그의 종국은 멸망입니다. 예수 이후의 삶은 그가 세상사람들의 눈에 볼 때에 보잘 것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는 천국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전의 나를 뭐라 말하고 있습니까? 에베소서 2장 1절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존재입니다. 죽을 지도 모르는 존재가 아닙니다. "이미 죽었다" 과거형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우리가 죽은 다음에 자식들로부터 어떤 얘기를 들으면 가장 행복할까?" "우리 아버지는 참 자랑스러운 분이셨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참 사랑하셨던 분이셨다." "우리 아버지는 이웃을 위해서 늘 사시던 분이시다." 여러 이야기를 주고 받는데 한 어르신이 그러십니다. "나는 내가 죽었을 때 우리 아이들이 내 주변에 둘러 앉아서 앗! 우리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셨다!" 이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한 사형수가 사형을 받는데 목사님이 기도를 해주고 "마지막 소원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죽으면 좋을지 죽는 방법에 도움을 드렸으면 좋겠습니다. 총살을 해도 좋고 교수형을 해도 좋고 죽는 방법을 제게 소원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네. 저는 늙어서 죽고 싶습니다."


II. 사망과 그 원인

죽음이 무엇입니까? 삶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에 흙으로 사람을 빚어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living soul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흙의 요소인 육체와 생기의 요소인 영혼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존재 living soul입니다. 죽음은 바로 흙의 요소인 이 육체와 생기의 요소인 영혼이 분리되는 것을 말합니다. 나누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2:17)고 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자마자 선악과 속에 독약의 성분이 있어서 즉사했습니까? 아니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되어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영광스러운 교제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천국으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그래서 영생을 잃은 것이요, 이것이 곧 죽은 상태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은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는 구원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공로를 가지고, 자신의 자격을 가지고, 자신이 쌓아왔던 선행을 가지고 그가 아무리 고상한 이념과 철학을 가졌다 할지라도 이것들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제일 긴 얘기를 해 드리겠습니다.

황새 한 마리가 깊은 늪에 빠졌습니다. 묘하게도 빠져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다리는 점점 더 깊은 수렁이에 빠져들어 가는 겁니다. 그렇지 내게는 긴 부리가 있지. 그래서 부리를 흙에다가 박았습니다. 그리고는 거기다 힘을 주고 다리를 부들부들 힘을 주었더니 아 다리가 쑥 빠지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그렇지 날개를 좍 펴고 하늘을 날려고 하는데 날아지지가 않는 겁니다. 다리는 빠져나왔는데 부리가 더 깊이 푹 빠진 겁니다. 아 부리를 아무리 흔들어도 더 깊이 빠져만 들어가는 겁니다. 그렇지 내게 다리가 있지. 두 다리로 버티고 부리를 뽑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힘을 줘서 뽑는데 부리가 쑤욱 빠져 나왔어요. 아 그러면 그렇지. 날개를 좍 펴고 하늘을 날려고 하는데 또 날아지지가 않는 겁니다. 이번엔 다리가 푹 빠졌습니다. 다리를 아무리 뺄려고 해도 더 깊이 빠져들어 갑니다. 그래 부리에다 힘을 주자. 다시 부리를 흙에다 박았습니다. 그리고 몸부림해서 겨우 다리가 빠져나왔습니다. 아 또 날 수가 없네요. 부리가 빠져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얘기를 10년을 해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얘기의 제목이「세상에서 가장 긴 이야기」입니다. 

인간이라는 게 바로 이런 존재라고 하는 것이지요. 사람이 하는 일이란 모두 그렇습니다.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또 다른 하나의 문제가 발생되어집니다. 의롭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했는데 교만한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겁니다. 산업을 발전시켜야지 부지런히 공장 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했습니다. 공해문제가 생겨버렸습니다. 지역경제를 살려야지. 개발을 허가합니다. 식수원이 오염되어서져서 더 심각한 문제가 발생되어집니다. 잘 살아 봐야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합니다. 이제는 집 한 칸 마련했는데 건강을 잃어버립니다. 몸부림을 하면 할수록 문제가 더 커지는 게 인간 아니었습니까? 내 자식만큼은 제대로 공부시키고 사회에 우등생을 만들어야지. 애착을 가지고 하나하나 간섭을 해 봅니다. 아뿔사! 벌써 반항아, 방탕아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느 담배 꼴초가 담배를 끊으려고 은단을 하루에 두통씩 먹었더니 은단 중독자가 되더랍니다. 이번엔 은단을 끊기위해 담배를 하루 두갑씩 피웠더니 다시 담배 중독자가 되더랍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모순된 공기관이 KT&G(담배인삼공사)라고 합니다. 
그 기관을 놀리는 표어가 뭔지 아십니까? "담배로 버린 몸 인삼으로 보신하자."

이런 인간을 향한 본문의 진단이 무엇입니까? "그때에"(2절) "죽었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인간의 상황을 세 가지 생생한 이미지를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는 이미 죽었다는 "시신의 이미지"요.
2절에서는 악령에 사로잡힌 "노예의 이미지"요.
3절에서는 진노의 자녀가 된 "죄수 이미지"입니다.

오늘 본문 1절 "너는 죽었다"고 하는 사망진단서의 사망원인을 두 가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었던" 

허물이 무엇입니까? 원문에 허물이라고 하는 말은 밟지 말아야 될 땅을 밟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한 것이 허물입니다.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것이 허물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것이 허물입니다.

죄는 무엇입니까? 과녁이 빗나갔다는 뜻입니다. 화살로 명중시켜야 할 과녁이 있습니다. 거기 가서 박혀야 될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이것을 성경은 죄라고 얘기했습니다. 해야할 일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땅히 해야할 말을 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랑해야될 사람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땅히 기도해야될 때에 기도하지 못한 것입니다. 내 주변에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해야될 대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친절을 베풀어야 되는데 친절을 베풀지 못했고, 헌신해야 될 시간에 헌신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죄라고 얘기합니다.

우리의 행동으로 지은 죄보다 입으로 눈으로 지은 죄가 더 많고 마음으로 지은 죄는 더더욱 많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살았고 너는 반쯤 죽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너도 죽고 나도 죽었다. 모두다 죽었다. 모두 죄인이다. 누가 누구에게 죄인이라고 돌을 던질 수 있더란 말입니까? 

또 어떤 사람은 죄에 대한 이야기조차 싫어합니다. 철저히 회개를 거부합니다. 교회에서 죄 문제 얘기하면 즉각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때문에 교회에서는 죄 문제를 언급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병원에서 질병의 문제를 말하지 말 것이며, 질병을 치료하지 말라고, 그냥 격려해서 보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 바가 있겠습니까?

더 나쁜 죄에 대한 태도가 있습니다. 자신의 죄에는 둔감하고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민감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함부로 비판합니다. 회개를 말하는데 자신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나의 조금 나은 점을 들어서 다른 사람의 나만 못한 점을 부각시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작은 모래알 하나도 물에 빠집니다. 큰 바위도 물에 빠져들어 갑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크고 작은 죄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큰 죄, 작은 죄가 없습니다. 큰 죄도 지옥갈 죄요, 작은 죄도 지옥에 빠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죄 중에 가장 악한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았던 지난 날의 우리 모든 삶이 가장 악한 죄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 고등학생이 부모와 갈등을 겪었습니다. 아버지도 말이 안통하고 어머니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말이 안통해. 그러고는 후딱 집을 나가더니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가출을 했습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10년 세월이 흘러갑니다. 10년 세월동안 자기 나름대로 출세 해보겠다고 주유소에 가서 기름도 넣고, 철가방을 들고 배달도 하고, 우유배달, 신문배달, 아 그럴듯한 사업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돈 꽤나 벌어서 10년 후에 부모 앞에 나타났습니다. 착한 아이입니까? 아니요. 그 사이에 부모 속은 다 썩었습니다. 어머니는 화병으로 이미 병상에 누운지 오랜세월이 돼 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난 10년동안 그 어떤 것 보다도 가장 무서운 죄를 범하고 만 것 아니겠습니까? 앞으로 그가 아무리 착하게 살더라도 어쩌면 회복하지 못할 무서운 죄를 범한 것인지도 모르지요.

여러분이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아무리 존경받는 거룩한 삶을 살아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왔던 바로 그 삶이 가장 악한 죄임을 아십니까? 하나님의 품인 교회를 떠나서 살았던 그 삶이 하나님을 가장 아프게 한 것입니다.

개도 주인을 아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자신의 주인을 모른데서야, 내 인생의 주인 하나님을 떠나서 산데서야 말이 될 것 같습니까? 

이미 죽은 자가 사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의 풍속을 좇는 자, 둘째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죽은 자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풍속을 좇는 자'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을 가리킵니까?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풍속'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성경 원문은 '아이온'인데 그 의미는 상당히 다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생명, 시대, 수명, 영원, 기간, 등등의 의미로 쓰입니다. 

풍속이란 말을 여기의 단어로 바꾸어 보면
'이 세상의 수명을 좇는 자' 
'이 세상의 영원을 좇는 자'
'이 세상의 생명을 좇는 자'
'이 세상의 시대를 좇는 자'

무엇을 의미합니까? 마치 이 세상의 삶이 영원한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죽은 자'란 누구입니까? 그것은 세상에서의 나의 삶이 마치 영원히 이어질 것으로 생각하며 사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의 운명을 맡기며 살아가는 자는 분명히 죽은 자라고 성경은 가리킵니다. 세상은 인간이 거처를 삼은 곳을 뜻합니다. 인간의 눈에 보이는 물질세계를 통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풀이하면 사람이 자신이 거하는 거쳐, 보여지는 세계가 영원한 줄을 알고 사는 사람은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미지는 노예 이미지입니다.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해석하는 문제입니다. 따른다는 것의 의미는 좇는다는 것과 같은 단어로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공중은 '순수하지 못한 영들이 거처하는 곳'을 의미합니다. 그 곳에서 권세를 잡은 자는 누구입니까? 그는 사단입니다. 사단의 영의 지배를 받으면 그는 죽은 자입니다.

본문 3절의 말씀을 보면 세 번째 이미지 죄수 이미지가 나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이 말씀은 쉽게 해석하면 '본능적인 욕망을 따라 사는 자' '육정에 끌려 사는 자'란 말입니다. 

인간에게는 육체의 본능이 있습니다. 식욕과 성욕입니다. 식욕은 우리 몸을 살아 있게 하는 것이고 성욕은 인간의 삶에 대를 이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먹는 것, 자녀를 낳는 것이 죽은 자로서의 삶이란 말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인간은 욕망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육체의 욕망을 제어할 힘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육체를 다스리며 살도록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동물은 본능에 의하여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돼지에게 조금만 먹고 운동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맹수에게 네가 천하에 사자인데 힘없고 병든 짐승은 잡지말고 힘있는 짐승만 잡아먹고 살아라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욕망을 따라 산다는 것은 결국 인간이 짐승처럼 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얻어야 할 가장 귀한 선물은 바로 하나님입니다. 구원입니다. 영원히 아버지 품에서 살아가게 될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무수히 하나님을 아프게 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괴롭혔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하나님은 어떻게 해결 하셨습니까?


III. 가장 큰 선물 - 예수

오늘 본문 4절 5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과 함께 죽은 우리를 살리셨도다" 8절 "이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여기에 당신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시는 최대, 최고, 최선의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왜 예수님이 가장 큰 선물입니까?

1. 이 땅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모두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또 가장 귀한 것이 독생자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2. 예수는 오래 전부터 준비하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범죄하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은 독생자를 보내 인간을 구원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3:15) 인류역사, 구약의 모든 사건은 예수님을 준비하시는 내용입니다. 

3. 예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멸망받을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집도 좋은 옷도 예쁜 애인도 아닙니다. 그에겐 구세주가 필요합니다. 예수님만이 유일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최대, 최고, 최선의 선물입니다.

이 지구가 생긴 이래 제일 축복받는 날은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시던 날이었습니다. 이 날은 인류의 자유가 탄생한 날이요, 구원의 오랜 꿈이 실현된 날입니다. 이 날 죄 중에 고민하던 사람들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신음하던 자연이 '용서의 소리'를 들은 날입니다. 

우리는 일주일 중 6일은 일을 하고 오늘은 쉽니다. 왜요? 그분이 부활하신 날이기 때문입니다. 일 주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인류의 고백입니다.

그분은 내가 버림받아야 할 자리에 버려지셨습니다.
어디까지 버림을 받으셨습니까? 지옥까지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곳입니다.

그분은 나를 죽일 수가 없어서 당신의 외아들을 죽이기까지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내가 저주받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 당신의 외아들을 저주의 자리에 내어 주시기까지 주님은 나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0절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 우리는 그분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의 걸작품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IV. 손을 내밀어 이 선물을 받으십시요.

어떻게 이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까? 선물이란 손을 내밀어 받기만 하면 됩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내 것이 되는 게 선물입니다.

옛날 한 마을이 큰 홍수를 만났습니다. 집은 형체를 찾을 수도 없었고 논과 밭들도 개울창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갈 길도 희망도 없었습니다. 그 마을에 임금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놀랍게도 살기 좋은 낙원과 궁궐 같은 집들이 잘 지어진 마을을 준비하고 그 마을 입주권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누구든지 손을 내밀어 그 입주권을 받기만 하면 그 낙원 마을에 들어가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마을 입구에 거지 소년이 땅굴을 파고 살고 있었는데 그 땅굴마져 홍수에 없어지고 만 것이지요. 거지 소년은 내 손이 이렇게 더러운데, 내 옷은 냄새가 나는데, 내가 잃은 것은 땅굴밖에 없는데 - 임금님이 내게 낙원 마을 입주권을 주실까? 그러나 소년은 임금님의 자비로움을 믿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임금님은 거지소년의 손을 꼭잡아 주시며 "많이 추웠겠구나! 많이 힘들었겠구나! 어서 낙원 마을에 들어가 행복하게 살아라." 입주권을 손에 꼭 쥐어 주셨습니다.

이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죄가 있어도 괜찮습니다. 선한행위가 모자라도 괜찮습니다. 내 모습이 거지 소년과 같아도 좋습니다. 하나님께 나오십시오. 이제 손을 내밀어 그 선물 - 예수 그리스도 - 구원을 받으십시오.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십시오. 내 마음의 문을 엽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합니다. 내 마음에 들어오십시오. 주님만을 의지합니다. 예수님만을 이제 믿고 따르겠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 아멘 -

이 기도가 바로 여러분 자신의 기도가 되셨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을 선물로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이길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온 우주에 가득차흘러 넘쳐도 여러분이 입을 열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신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 구원의 길은 이 길! 한 길 밖에 없습니다.
- 진리는 하나! 예수 밖에 없습니다.
- 생명은 하나! 예수 안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두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기독교가 너무 독선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다. 모든 종교는 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종교가 가는 길은 다 같다"라고 말하면 참 고상해 보이지요. 인격자처럼 보입니다. 도량 있고 아량 있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암에 걸린 사람에게 소화제 한 알만 먹으면 나을 것입니다. 좋은 소리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소리입니다. 진리는 하나, 구원도 하나, 영생의 길도 하나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어떤 길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 길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독선적이라도 할 수 없습니다. 편협해 보여도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구원해 주실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그렇게 만들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게 믿어지면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이게 믿어지지 않으면 구원하고 나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믿어지지 않는 것은 이미 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십시요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의 집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VI. 예수님을 얻으면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던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어느날 인생이 수학문제처럼 풀리면 얼마나 좋겠는가? 인생의 신비를 깨닫고 싶었습니다. 인생의 허무를 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중이 되어 절간에 들어갔습니다. 중이 되고 보니 불교계가 썩어도 너무 썩었더랍니다. 그는 순수하고 깨끗한 불교대학을 세워보겠다고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사기꾼들에게 속아 감옥에 들어갑니다. 자기를 지키는 간수에게 목탁과 불경을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했더니 간수가 성경책을 주더랍니다. 좋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감옥에 있는 동안 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여 기독교인들을 불자로 만들어 보리라.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불경에 그런 얘기가 있답니다. 어떤 과부가 외아들을 사랑으로 키우다 그 외아들이 죽었습니다. 죽은 외아들을 안고 부처님을 만나 살려달라 애원했습니다. 그때 부처님이 아래 마을로 내려가 죽음을 맛보지 않은 가문을 찾아 그 집의 물 한 사발을 죽은 아들에게 먹이면 곧 살아나게 된다고 대답해 주었습니다. 어미는 좋아서 마을로 내려가 죽음을 맛보지 않은 가문을 찾는데 어디 그런 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실망으로 돌아온 어미에게 부처가 얘기합니다. 이게 인생입니다. 모든 인생은 죽음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감옥의 스님이 마태복음, 마가복음을 읽어가는데 마음이 이상해집니다. 그렇게도 찾고 찾든 진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복음을 읽는데 성경에도 한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죽은 아들을 향하여 말씀하십니다. "청년아 일어나라" 그 아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렇다. 석가는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나셨다. 석가에겐 무덤이 있지만 예수는 부활하셨고 지금도 살아 계신다. 그는 기독교인이 되고 마침내 목사님이 되어 허무하게 죽어 가는 불교도들에게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극락의 불나비」「나는 예수를 이렇게 믿게 되었다」라는 책을 쓴 김성화 목사님의 얘기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예수를 잃은 사람은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요, 예수를 얻은 사람은 모든 것을 얻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독생자를 죽이시고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예수님! 당신을 살리기 위해 준비해 주신 가장 큰 선물입니다. 이 엄청난 선물을 거절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어떤 길도 없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에 갑니다.

교회는 우리를 살리려 피 흘리신 아들을 품에 안으신 하나님의 품입니다. 설교는 죽으신 아들을 품에 안고 흐느끼시는 하나님의 울음소리입니다. 찬송과 기도는 그분 때문에 살아난 심령들의 감사의 외침입니다.

예수! 그분은 바로 당신의 그리스도, 당신의 왕, 당신의 주님이십니다.
예수! 그는 당신 인생의 가장 큰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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