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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열매에 대한 질문 (눅 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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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에 대한 질문 (눅 13:6~9)


교회 정원에는 모과나무 두 그루가 심겨져 있다. 비오는 장마철, 서울에 올라가 박창업 장로님과 함께 이 모과나무를 사서 정원에 심었는데 나무가 뿌리를 내리느라고 무척 힘들어 하였다. 그래도 이 모과나무가 열매를 맺었다. 노란색의 모과를 따서 바구니에 담아 추수감사절에 제단에 올려놓았다. 얼마나 기쁜 지... 이 나무가 잘 살면 내년에도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런데 교회 정면 쪽의 모과나무는 50%가 죽었다. 열매도 서 너개만 맺고 뿌리를 내리지 못한 체 죽었다. 그래서 잘라냈다.

과일 나무는 과일을 맺어야 한다. 과일을 기대하고 나무를 심었는데 그러지 못하니 잘라냈다. 주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무화과나무, 그 나무가 포도원에 심겨졌다. 이 나무를 심은 이유는 무화과 열매에 있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함을 3년 동안 살펴 본 나무 주인은 찍어 버리라고 과원 지기에게 이야기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포도 농장의 과원지기의 대답이다. 

눅13: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하였다. 

여기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1. 이 비유 속에서 무화과나무란 누구를 말하는가? (눅13:6)

포도원에 심겨진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의 국가목이다. 우리나라의 무궁화가 나라꽃이듯 무화과는 이스라엘을 말한다. 학자에 따라 포도원은 이스라엘이요, 거기 심겨진 무화과는 한 개인, 또는 예루살렘으로 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든 이 메시지의 의미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무화과나무가 이스라엘을 의미하던, 한 개인을 의미하던 열매가 없다는 것은 주인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점이다.

농장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도 열매를 원하신다. 
마7:20에서 열매로써 그 나무를 안다고 했는데 좋은 열매를 맺어야 좋은 나무로 인정된다. 
마7:17을 보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나무가 어떤 나무인가에 의해 열매가 결정된다. 열매로써 나무를 알게 되지만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나무에 달린 것이다. 

마3:10에서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 사르신다고 하셨으니 열매 없는 나무의 운명은 찍히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요15:8에서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열매 있는 인생이 되어야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된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열매 맺는 신앙이다.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 그리고 열매가 없는 인생은 영광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나의 신앙, 선민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2. 찍어버림의 대상이 된 나무는 무엇을 말하는가? (눅13:7)

열매를 얻지 못한 포도원 농장의 주인은 눅13:7에서 과원지기에게 이른다.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찍는다는 것은 무서운 말이다. 뿌리의 근원에서 잘라내겠다는 말이다. 결국 찍는다는 것은 심판을 말한다. 무용지물의 나무이기에 찍어서 화목으로 불사르겠다는 말이다. 

무화과나무를 심는 목적은 열매에 있다. 잎을 이용하고 그늘을 이용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열매가 없으니 그 무화과나무는 베어져야 한다. 심판의 이유는 분명하다.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겠다는 것도 기다려주지 않고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분명 “내가 3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라고 했으니 3년간 나무를 기다린 것이다. 

우리 교회, 나무 박사이신 정헌관 집사의 책을 보니깐 무화과나무는 2년이면 열매가 달린다고 하였다. 3년이면 충분한 기회를 준 것이다. 결국 이 나무가 찍혀야 하는 이유는 땅에서 영양을 취하고 자기 사명을 다하지 못한 죄다. 포도원 농장에 심겨진 나무로서 열매를 내어주는 사명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도움, 기도와 가르침, 성령의 늦은 비와 이른 비의 공급 등등을 받고 자라는 신앙의 무화과나무다. 받아만 먹고 아무 것도 내어놓지 못하면 안된다. 농원 지기가 이렇게 저렇게 잡초를 뽑아주고 병충해를 막아주고 토양을 갈아엎고 많은 시간 동안 나무가 잘 자라도록 해주었는데 반응이 없다면 안된다. 성장했다면 성숙의 열매를 보여야 한다. 찍어 버림은 자기의 사명, 자기의 역할에 대해서 그 책임을 정확히 다루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심판은 있다. 죄의 삶이 사망이라는 것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우리의 행위와 삶의 흔적에 대한 하나님의 보응이시다. 미래에 사람의 찍어버림이 있음을 외면하지 말라.

롬2:6~8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분명 우리에게는 심판이 있다. 아무렇게 되는대로 살아서는 안된다. 심판을 피해 갈, 심판에서 건짐을 받는 길, 그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내가 찍어버림의 대상은 아닌가? 심판 날에 서야 되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같은 인생이 아닌가?


3. “무화과나무를 그대로 두소서.”란 무엇을 말하는가? (눅13:8)

눅13:8을 보면 과원지기는 이렇게 말한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그대로 두소서’란 기다려 보자는 말이다. 3년의 기회를 주어 충분히 나무의 열매 맺기를 기다렸지만 이왕 기다려준 것, 넉넉하게, 충분하게 기회를 더 주자는 것이다. 

과원지기는 결심한 것이 있다. 이 나무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다. 땅이 기름지도록 거름을 제공하는 것이다. 땅의 공기 유통이 잘되도록 두루두루 파서 나무가 건강하도록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로 두소서’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하나님의 시간을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기회를 놓친 인생이 되어 살 때가 있다. 조금 더 일찍 신앙 생활을 했으면 더 많은 거룩의 열매를 맺을 것인데, 늦었다고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그나마 하나님께로 돌아와 자신의 열매 없음을 깨닫고 다시 출발하는 것은 모두 다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와 넉넉한 기회주심 때문이다. 하나님은 다시 만져주신다. 찍어버림 당한 나에게 기회를 빼앗아가지 않고 마지막 찬스를 준비해 주신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 회개의 기회, 거룩한 삶의 기회, 섬김의 기회, 몸과 맘을 드리는 기회, 재능을 바쳐 자기의 역할을 감당하는 기회, 영혼을 이끌어 들이는 전도의 기회 등 이런 기회를 재삼 외면하고 자기 삶의 잎사귀만 무성하여 열매 없이 세월을 보낸다면 안된다. 장로, 권사, 오랜 믿음, 모태 신앙, 그 잎사귀는 무성하지만 우리의 기회의 문은 닫히고 아무 소용없는 인생으로 끝날 것이다. 

‘나름대로 성공했기에’라며 세상적으로 살아온 것을 자랑하지 말라. 하나님이 찾는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동안 하나님은 내가 넘어져 있을 때도 일어날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은 내가 실패하여 망연자실하고 무기력할 때도 다시 살아갈 기회를 주셨다. 하나님은 ‘끝장이다.’고 생각하는 자에게도 ‘시작이다.’라고 기회를 더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과원지기의 ‘그대로 두소서’의 은혜, 이 기다려주는 은혜가 바로 잎만 무성한 나를 위해 제공되는 기회의 선물임을 감사하자. 

지난 주간에는 전도 축제가 본 교회에서 열렸다. 국민일보 기자가 전해 준 말에 의하면 김두한의 수제자로 알려진 깡패 두목 조일환 씨가 목사 안수를 천해에서 받았다. 축하객이 1,000명 정도 왔다고 한다. 그에게 하나님이 기회를 주셨다. 열매 맺는 인생이 되도록 기다려 주신 은혜의 모습이다. 조일환 씨는 2006년에 1,000명 그리고 2007년에 1,000명을 전도했다고 한다. 

사랑의 집 짓기로 유명한 해비타트 운동은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미국 변호사가 시작하였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챤으로서 벤처 기업을 일으켜 20대 후반에 백만 장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다. 많은 돈을 벌어다 주는 남편으로서 유능하고 훌륭한 가장이라고 생각하던 풀러는 가정의 위기 앞에서 생각하였다.

‘내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생을 올바르게, 의미있게 사는 것인가?’

그는 결국 1965년 전 재산을 정리하여 나눠주고 코이노니아 농장에서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받은 풀러 부부는 1975년 아프리카 자이레로 가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짓기 시작했고 1976년 오늘의 국제 해비타트를 창설하게 되었다. 그는 가정의 위기 앞에서 새로운 인생의 열매, 신앙의 열매를 맺는 아름다운 부부가 되었다.

하나님은 기다려 주신다. 오늘 찍어서 부서지고 깨지고 잘라지고 불에 태워질 나를 기다리고 기회의 은혜를 주신다. 은혜 속에서 다시 시작하자. 기쁨의 열매, 감사의 열매, 사랑의 열매, 성공의 열매, 전도의 열매 등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열매, 그것은 그분을 의지하기만 하면 맺어지는 열매다. 말씀을 받아들이고 기도를 받아들이고 은혜와 성령의 진액을 받아들이고 영적 자양분을 받아들이면 맺어진다. 

금년을 보내며 CM이란 그릇에 담겨질 영혼 구원의 열매를 위해 새롭게 다짐하자. 
부족한 전도의 열매를 많이 맺도록 허락하신 기회를 통해 대강절을 지내며 성탄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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