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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의 열매 : 온유 (마 11: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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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 : 온유 (마 11:28~30)


<동양의학>에서는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 태음인, 소양인, 소음인이라 하여 네 가지로 설명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체질을 보고 맞는 음식과 맞지 않는 음식을 가려내고 약재를 쓸 때도 이 체질에 따라 각기 다르게 사용합니다. 그런데<서양 심리학>에서는 사람을 기질로 구분합니다. 의학의 창시자라 불리는[히포크라테스(Hippocrates)]가 사람의 기질을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로 나눈<인간의 기질 설>이 그것입니다. 

먼저, 다혈질의 기질은 어떤 일에 대해 쉽게 반응을 나타내며 표정만으로도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정도로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혼자 있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여 주위에 친구들이 항상 많습니다. 잘못 된 일에는 쉽게 분노하고, 연약한 사람에게는 동정적인 성품입니다. 매사가 충동적으로 움직이다보니 쉽게 흥분하여 일 전체를 그릇된 방향으로 진전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침착하지 못하고 꾸준하지 못합니다. 화를 내기도 잘하고 사과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흔히 뒤끝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 다혈질인 사람이 많습니다. 

두 번째로 담즙질은 우리가 흔히"담이 크다."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능동적이고 의지가 강하고 독립적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크게 신뢰하는 편이고 한 번 일을 시작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목적을 향해 줄기차게 밀고 나가는 사람입니다. 다혈질이 충동적으로 움직인다면 이 담즙질은 계획적이고 의도적으로 움직입니다. 언제나 실제적이어서"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스타일의 사람입니다. 다소 거칠고 화를 잘 내며 오만의 위험성이 있고 이기적이고 독재자의 기질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혈질의 사람이 쉽게 화를 내고 쉽게 화해하는 것과는 달리 담즙질의 사람은 한 번 화를 내면 계속 품고, 보복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삽니다. 

세 번째 기질은 우울질인데 감수성이 예민하고 분석적이고 희생적이며 재능이 많습니다. 창의적 사고에 상상력이 활발합니다. 매사를 사려 깊게 생각하며 이상주의자이며, 완전주의 적인 형태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을 사귀려고 하지는 않지만 한 번 사귄 사람은 목숨을 버릴 정도로 우정을 지키는 기질입니다. 앞장서서 일하기보다는 뒤에서 자신을 희생시키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단점은 항상 심사숙고하다가 때로는 적절한 시기를 놓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겉으로는 온화하고 좋은 모습 같지만 지나친 분석력 때문에 속으로는 불평하고, 원망하고, 한숨 쉬고, 좌절하는 사람입니다.

마지막으로 점액질의 사람은 태평스러우면서도 유연하여서 어느 환경에서나 감정을 잘 조절하기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카운셀러 타입>입니다. 어떤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인지를 잘 찾는 방법론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느린 것과 게으름이 이 사람의 가장 큰 단점입니다. 성취욕이 없어서 삶을 방관하기 쉽고 다른 사람의 멋진 계획에 찬물을 끼얹어 사람들을 곧 잘 실망시켜버립니다. 

우리들도 이 네 가지 중에 어떤 하나의 기질에 해당할 것입니다. 개인의 차이가 있고,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각자 나름대로 독특한 기질이 있습니다. 어느 기질이 좋고 어느 기질이 나쁘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다 장점이 있는가 하면 단점과 위험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장점들만 고루 갖출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좋겠지요. 그런데 저는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바로 성령 충만한 기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우리의 기질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야말로 타고난 기질을 뛰어 넘어 하나님의 기질을 가질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 속에 성령으로 충만하면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의도대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기질들이 참 많겠습니다만 그 중에 하나를 본문에서 배우게 됩니다. 바로<온유>가 그것입니다. 

교육학에<하아로우의 실험>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심리학자[하아로우교수]가 실험을 했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것인데 젖을 먹는 아기 원숭이들 앞에 엄마 원숭이 대신 두 개의 인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하나는 철사로 만들어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 두었고 다른 하나는 부드럽고 두꺼운 천으로 만들어 가슴에 우유병을 넣어 두고 우유를 빨아먹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첫날에는 아기원숭이들이 두 인형 속에 있는 우유를 모두 빨아먹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부터는 철사로 만든 인형에게는 한 마리도 가지 않고 부드럽고 두꺼운 천으로 만든 인형에게만 모여들어 우유를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에서 동물들도 딱딱하고 거친 것보다는 부드럽고 온유한 것을 원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인간관계도 그렇습니다. 날카롭고 딱딱하고 매정한 사람보다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을 서로 찾기 마련입니다. 같은 재능, 같은 기술,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사회에서 원하는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부드럽고 온유한 사람에게 친구가 많고, 이웃이 많은 법입니다. 

이렇듯 온유함이라고 하는 깊은 성품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식이나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성에서 나오는 덕성입니다. 한참 전부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지성이냐, 감성이냐 하는 문제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즉 IQ냐 EQ냐 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한 동안 사람의 성공을 측정하는 수단으로 IQ를 꼽았습니다. 성공한 사람을 꼭 천재라 불렀고, 그의 성공의 비결은 머리가 뛰어난 결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그의 IQ가 뛰어나면 무조건 성공할 사람, 무엇이든지 잘 할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실제로 어떻습니까? 나쁜 일을 하는 사람이나, 범죄자들 중에도 IQ가 뛰어난 사람이 훨씬 많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충분히 나쁜 일에도 사용할 수 있는 지성이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감성이 문제입니다. 그러니 이제는 IQ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 통념을 뒤흔든 것이 바로 EQ(Emotional Quotient)라고 하는<감성지수>입니다. 지능지수가 <머리의 지수>라면 감성지수는 <마음의 지수>입니다. 

하버드대학교 심리학 교수인[다니엘 골먼]이 이것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인간의 능력은 지능지수로 표시되는 두뇌력 보다는 인간관계를 결정짓는 성격에 의해 더 정확하게 측정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에게는<성품화된 지능>이 필요합니다. 머리로 익히고 습득해서 임시방편적으로 사용하고 마는 지식이 아니라 자제력이 있고 일관성도 있고 지구력도 있고 자기 동기를 부여할 줄 아는 그런 지능을 가진 인간을 만나야겠고 이런 인간이 되어야겠습니다. 

이런 성품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온유함입니다. 왜 온유함이 필요한지 그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온유(溫柔)하다>는 말은 헬라어 원어로<프라우스>라는 단어를 씁니다. 원래 이 단어는 사람이 아니라 사나운 짐승을 훈련시키는 과정에서 사용되었습니다. 공격적으로 사용 되던 개나 사자나 야생마를 훈련을 시켜서 그 엄청난 힘이 잘 조절되어 유익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되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생마를 그냥 두면 들판에 뛰어다닐 뿐이지만 잘 길들어지면 밭을 갈고 짐을 운반하는 인간과 자기 주인에게 아주 유용한 짐승이 되지 않습니까! 이것을 온유라고 했습니다. 이 말을 사람에게 사용하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억제하고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을 뜻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고로 온유한 성품이란, 내가 충분히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참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부수고 무너뜨릴 수 있지만 나를 억제하고 밖으로 내뱉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물론 옛날에는 제어할 수 없어서 수 없이 되풀이했던 성품이었지만 이제는 하지 않는 법을 압니다. 훈련되었습니다. 내가 나를 조절 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온유입니다. 

성경에서 대표적인 온유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모세]를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는 동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애굽사람을 쳐 죽일 만큼 혈기가 충만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이 소중한 십계명을 아로새겨 주신 그 돌판을 가지고 내려오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걸 보고 분노함이 충천하여 그 돌판을 내려쳐서 깨뜨리는 그런 다혈질의 사람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하며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됐다고 하면서 모세를 원망하고 모세를 죽이겠다고 할 때에 모세가 화를 내며 혈기로 반석을 두 번 내려치는 그런 죄를 범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실수가 있는 사람이요, 혈기에 찬 사람이요, 다혈질의 사람인데 그런 모세를 두고 민수기12:3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이제까지 온유하지 못했던 모세의 허물까지도 덮어주시겠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까? 그가 광야에서 40년 동안 많은 훈련을 통하여 자기가 온전히 죽어지는 경험을 했고 그랬을 때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중요한 말씀입니다. 모세의 온유는 출생적인 것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 얻어진 후천적인 성품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의 본성적 기질로는 불가능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여러분,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비록 선천적으로 온유한 성품을 가지고 출생하지 못했다하더라도 성령을 의지하면 충분히 온유해질 수 있습니다. 다만 나 자신으로는 안 됩니다. 여전히 혈기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 속에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이 나를 이끌어 가도록 한다면 충분히 온유해 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 때, 성령을 의지할 때, 신앙으로 살 때 분명히 주어지는 기질입니다. 

오늘 본분의 예수님의 온유를 배웁니다.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했습니다. 예수님의 온유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저주의 십자가를 지시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얼마든지 회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셨습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당신 스스로 받아들인 결정입니다. 폭력 앞에 기가 죽어서 지신 것이 아닙니다. 벗어날 힘이 없어서 자포자기하고 지신 십자가가 아니란 말입니다. 스스로 낮추시고 자의적으로 받아들인 온유의 십자가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를 잘 아십니다."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난 나대로 생각이 있습니다만 내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나대로 피할 방도가 있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주는 온유의 극치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십자가도 지실만큼 온유하셨는데 왜 우리는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서 온유한 삶을 살지 못합니까!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나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온유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합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뭐라 하십니까?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신 주님의 제자라면 이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성령이 여러분 안에 충만하시다면 반드시 온유의 열매를 맺으십시오. 온유는 하나님의 사람 된 우리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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