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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에 (막 13:2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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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기다리는 계절에 (막 13:24~37)


시작하는 말 

제가 부산에서 고등학교때 다니던 교회 마당에는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무화과나무를 보면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되지 말라는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곤 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콘크리트 마당에 심기어서 나무가 잘 자라도록 거름을 주거나 가꾸지 않는데도 때가 되면 푸른 잎사귀가 무성하게 덮이고 철따라 열매를 맺는 것을 봅니다. 

어느 해인가는 너무 가물어 작물이 다 말랐는데도 이 무화과나무는 때를 따라 열매를 맺었습니다. 무화과나무는 가물 때나 물이 많을 때나 늘 풍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열매맺는 것은 철따라 내리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경기가 주저앉을 때나 일어설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 때 환경에 상관없이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나려하면 단단한 나무에 물이 오르고 나뭇가지가 연하여지게 됩니다. 잎이 나는 징조입니다. 무성하던 그 잎이 시들어지기 시작하는 때가 옵니다. 겨울이 오는 징조입니다.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성도들이 이 무화과나무에 옷을 입힙니다. 겨울을 대비하여 옷을 입혀두면 얼지 않고 그 다음해 여름에 또다시 풍성한 잎과 열매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에 잎이 시들어 가면 겨울을 준비하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무성하게 열매 맺는 좋은 시절이 지나면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준비하며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강림절, 대림절, 대강절 이라 부르는 주일입니다. 교회력은 이 강림절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강림절의 첫째주일이 신년 정월 초하루가 되는 셈입니다. 강림절 첫째 주일은 해마다 11월 30일에서 가장 가까운 주일이 됩니다. 즉 강림절 첫째주일은 11월 27에서 12월 3일 사이의 어느 한 날에 옵니다. 그리고 강림절 동안 네 번의 주일을 지키게 되는데 그 기간은 짧게는 22일이며 길게는 28일이 됩니다. 금년의 강림절은 태양력 11월 30일(오늘)부터 시작해서 성탄절 전야 24일까지 25일간이 됩니다.

강림절(Advent)이란 도착(Arrive)을 뜻합니다. 공항에서 혹은 기차역에서 오기로 약속되어 있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다시 오시기로 약속되어 있는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가 바로 강림절, 대림절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강림절을 지키는 의미는 이미 2천년 전에 이 땅에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의 성탄을 회상하며, 또 다시 우리들의 마음속에,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말씀으로 영으로 새롭게 임재해 주실 것을 기다리며 지키는데 있습니다. 또한 아직도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거부하고 있는 불신의 세계와 역사 속에, 주님께서 임재해 주실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며 그리고 앞으로 마지막 때에 영광의 주님으로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시간으로 지나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도 우리 가운데 찾아오시는 예수님의 참 사랑의 의미를 묵상하고 기다리는 예배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인생에 꽃피는 봄날이 있고 열매 풍성한 여름이 있듯이, 잎 떨어지고 추운 겨울이 옵니다. 우리의 인생을 마쳐야 할 시간이 오는 것입니다. 준비한 인생에게는 찬란한 영광의 천국이, 그렇지 않는 자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겨울이 찾아 올 것입니다. 겨울은 여름에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해가 있을 때 건초더미를 말려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건강하고 평안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가운데 살 때, 우리는 심판의 날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내일이 오늘과 같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의 생활에 안주해서 심판의 날에 우리에게 다가올 멸망의 징조에 잠들어 있습니다. 심판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 모두에게 임합니다. 믿는 자에게는 생명의 심판으로 믿지 않는 자에게는 영벌의 심판으로 임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심판의 날은 두려운 날이 아니라 축복의 날, 상 받는 날, 영생의 면류관을 받는 기쁨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날은 상상하기도 끔찍한 파멸의 날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처럼 예수 믿기 좋은 시절 예수님을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무슨 덕이 있든지 예수님을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해 우리 주변을 돌아보면 오늘 말씀의 앞부분, 마가복음 13장에서 예고하고 있는 말세에 나타날 징조들을 이미 많이 보았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속임수(5-6), 난리와 전쟁(7-8), 지진과 기근(8), 박해(9-13)와 같은 징조들이 우리에게 보였습니다. 

언론에 기독교보다 더 선한 일을 많이 한다고 칭찬을 받는 이단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천사를 가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따뜻함과 열심에 현혹되어 이단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중국, 미얀마 등지에서 지진과 폭풍으로 수만, 수십만이 죽어 가고 있습니다. 무기가 더 첨단으로 발달되어 더 많은 사람을 마치 게임하듯이 죽이는 전쟁이 보도되고 사람들은 드라마 보듯이 끔직한 전쟁을 아무렇지 않게 보며 무감각해져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인들과 선교사의 박해와 추방이 유래없이 많아지고 있고 끔직한 테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하고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선포 하셨습니다. 영생은“하나님을 믿으며 또 그가 보내신 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라”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함이라”선포 하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의 말씀에 굳게 서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천하 인간에 구원 얻을 믿음을 주신 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을 믿음을 준비하여야 합니다. 이는 나의 힘과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고백하게 하시는 이는 성령입니다. 성령 충만을 간구하여 성령 안에서 주님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자라나는 것입니다. 입으로 주를 고백할 때 믿음은 자라납니다. 처음부터 확실하게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결혼 한 사람들은 압니다. 사랑은 만나서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사랑과 믿음이 조금씩 자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믿음입니다. 의심도 하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사랑을 입으로 고백하면 시간이 갈수록 믿음은 단단해져 갑니다. 그러나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의심하게 됩니다. 로마서 9장에서‘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영생 얻을 믿음은 우리 입술로 주를 고백하는데 있습니다. 오늘도 찬양하고 고백하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믿음이 더욱 강하여지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우리에게 인자의 오심을 예비하며 주님의 현존 앞에 깨어 있으라고 권고하는 말씀입니다. 본문에는 깨어 있으라는 명령이 네 번 나옵니다.

1)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라.(33절)

2) 문지기에게‘깨어 있으라’명함과 같으니.(34절)

3)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알지 못함이라.(35절)

4) 깨어 있으라.(37절) 이것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다.

이제 연속하여 강조하고 있는‘깨어 있으라’는 이 말씀을 하나씩 간단히 살펴 보겠습니다. 33절의 첫 번째‘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때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언제 오시는 지“때”에 관심이 있지만 예수님은 인자의 오실 것을 준비하며“깨어 있으라”명령합니다. 주님이 이 땅에 아기 예수로 오신 것은 이 땅을 구원하기 위함이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심은 죄악을 심판하고 구원을 완성하려고 오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다시 오심에는 심판의 징조들이 있습니다. 

지구 온난화로 많은 재앙이 있었던 지난해 재앙 때마다 재앙의 징조가 나타났지만 사람들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큰 재앙을 당하였습니다. 지난해 봄에 중국의 대지진 참사가 있었습니다. 매일 저녁마다 뉴스로 보내지는 지진의 참상은 보는이로 안타깝게 하였습니다. 이 지진 얼마 전에 두꺼비 떼가 떼로 이동하였다고 합니다. 학자들은 두꺼비가 지진을 탐지하고 이동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징조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산란기에 두꺼비가 이동하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징조에 깨어 있었다면 피할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무화과나무가 연하여지면 여름이 오겠다고 하지 않느냐? 때를 잘 분별하고 깨어 있으라”하십니다. 우리는‘평안하다 평안하다’할 때 깨어 있어 우리 주변의 작은 징조라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잘 살필때 큰 재앙을 당하지 않고 피할 수 있는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그 때가 언제인지 날짜를 알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하십니다. 날짜를 알려고 하는 이들은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날짜에 매달리게 됩니다. 

구원은 날짜에 있지 않고 주님을 믿는 믿음에 있습니다. 지금은 인자가 오실 때의 징조들이 많이 나타나는 때입니다. 지금은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더욱 기도할 때요. 주님께 더욱 붙어있어야 할 때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환난 날에 만날 큰 도움이십니다. 

34절의 두번째‘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맡은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깨어 있음의 정신을 가지고 일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지금은 은혜 받을 때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입니다. 심판의 날은 나무뿌리에 놓인 도끼처럼 이미 우리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지연되는 것은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기 위해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사랑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명령한 명령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임박한 주의 재림 앞에 전도자의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가 이 사명에 깨어있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른 곳으로 빼앗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재미에 마음이 빼앗겨서 전도자의 사명에 깨어 있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은 재리와 근심에 마음이 빼앗겨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우리 주님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이 강림절 주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명에 깨어있지 못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것들을 내려놓는 시간들이 되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에서 마음을 허탄한 데로 빼앗기지 않는 자가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상급을 받는 자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보다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35절의 세번째‘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잠이 들 수 있는 상황과 관련이 됩니다. 주인이 언제 올지 모른다. 저물 때나 밤중이나 닭 울 때나 새벽이나 언제가 될지 알수 없으므로 깨어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지난해 중국 지진 참사 때 매몰되었던 한 남자의 뉴스가 세계 전역에 퍼졌습니다. 두꺼운 콘크리트에 매몰되어 상반신만 밖으로 나온 남자를 꺼내려고 시도했지만 꺼내지 못합니다. 군인이 옆에서 장비가 올 때까지 물을 먹이고 인터뷰로 가족과 아내에게 집에 가서 만나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거 작업이 오래 지연되면서 그 남자는 끝내 정신을 잃고 죽어갑니다. 그때 군인이 그 남자에게 울면서 말하는 것이 자막으로 방영됩니다.“잠들지마! 깨어 있어!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있잖아 잠들지 마! 죽지마, 바보야!”

그는 끝내 깨어있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이 장면이 전 세계로 방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반대로 2주 3주 오랫동안 잔해 속에 묻혀 있으면서 구조대가 올 때까지 살아 난 사람들은 한결같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던 사람들입니다. 깨어 있는 자는 죽음과 심판의 문앞에서도 살게 됩니다. 반대로 삶의 문턱에 걸쳐 있으면서도 잠드는 사람은 죽게 됩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의 신앙이 잠들어 있을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이 곧 오시리라는 믿음으로 처음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재림이 지연되자 낙심하고 의심하고 타락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지 못하는 이들과 낙심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는 주님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신앙의 깊은 잠에 빠지거나 신앙이 습관되어 타성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에 지치지 말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잠들지 않기 위해 우리는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라서 잠들지 말아야 할 때 잠이 들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잠들지 말고 깨어 기도하라 하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잠이 듭니다. 주님은 여러번 꾸짖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을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꾸짖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약한 존재임을 아십니다. 우리 힘으로 깨어 있을수 없습니다. 깨어 있도록 기도하라 하십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면 우리는 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주의 말씀에 깨어 있으십시오, 기도에 깨어 있으십시오, 성령충만함을 받으십시오, 성령의 음성에 민감하게 깨어 있는자 예수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입니다. 

37절의 네 번째‘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인자가 임하는 심판과 구원의 날은 누구에게나 해당되며 우리는 깨어 있어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반복되는 결론의 말씀입니다. 


마무리 하는 말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찰리와 초콜렛”이라는 영화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 찰리는 초콜렛 공장을 방문하는 특별한 초대장에 당첨됩니다. 가난한 집 아이는 당첨을 기뻐하는 부모와 가족에게 “제가 이것을 500달러에 팔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우리 집에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때 외할아버지가 말합니다. “세상에 돈은 매일 만들어 진다. 돈은 언제든지 네가 원하고 노력하면 가질 수 있지만 그러나 특별한 기회는 한번 뿐이다. 매일 만들어지는 돈과 특별한 기회를 바꾸는 사람은 바보다. 너는 바보가 아니지?”라고 묻습니다. 

오늘의 예배는 여러분에게 단 한번 뿐인 기회입니다. 매일 찍어내는 돈을 위하여 여러분의 예배의 기회를 바꾸지 마십시오. 지금은 고린도후서의 말씀 처럼 은혜 받을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바보가 아닙니다. 세상의 하찮은 것과 주님의 초대를 바꿀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지금 주님은 여러분을 부르십니다. 

오늘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준비하는 강림절의 첫째 주일에 서있습니다.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주님을 향해 깨어 있어서 내게오신 주님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찾아오신 주님께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기 바랍니다.‘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1:12).’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이기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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