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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대림절] 동방박사들 처럼 의미있는 예물을 (마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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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박사들 처럼 의미있는 예물을 (마 2:1~12)
 
  
지난 2003년 회의 참석차 이란을 방문했습니다. 이 때 이란 내의 기독교 성지를 둘러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란 북부 도시 우르미에라는 곳을 찾았습니다. 이 도시 번화한 거리 한 가운데 십자가를 높이 세운 교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우선 이슬람 땅 도시 한 가운데 교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교회 내력을 듣고는 더 놀랐습니다.

이 교회가 바로 “마리아 교회“(켈리써 미리얌)입니다. 이 교회 뒷 건물 지하에 동방박사들의 묘가 있습니다. 원래 동방박사들은 이곳의 조로아스터교 사제들이었습니다. 저들이 별을 연구하다가 하늘의 징조를 보고 그 먼 곳 베들레헴까지 가서 아기 예수께 경배를 드리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개종하여 예수를 믿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섬기던 조로아스터교 신전 자리에 교회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추후에 감사한 마음에 마리아가 이곳까지 답방을 했습니다. 이것을 기념해서 이 교회를 마리아 교회라 부르게 됐고, 동방박사들은 세상 떠난 후 이 곳에 묻히게 됐던 것입니다.

저는 이곳을 다녀온 뒤에 오늘 본문을 다시 읽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성탄 시즌에 마치 전설처럼, 동화처럼 아련한 옛날 이야기로만 읽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것이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라는 점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이제 2008년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다시 본문의 동방박사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대림절은 어떻게 맞아야 하는지 소중한 교훈을 얻게 되었습니다.


1. 기다림

본문 2절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메시야의 탄생에 대한 징조를 알게 됐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 풀기 힘든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어떻게 유대인도 아닌 저 먼 지금의 이란 지방 사람들이 하늘의 별을 보고 이스라엘의 메시야 탄생을 알았을까요? 오랫동안 이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왔습니다. 물론 아직도 확실한 답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유력한 가설은 있습니다.

우선 저들은 ‘박사’라고 불렸습니다. 박사라는 말은 헬라어 ‘마고이’(magoi)를 번역한 것입니다. 당시 페르시아 지방에서 학식과 덕망이 높은 사람들을 현자(賢者)라는 의미로 마고이라 불렀습니다. 이들은 당시 종교, 철학, 천문 등 다방면에 높은 지식을 갖추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특히 저들은 천문에 능해서 천문 현상을 통해서 역사의 징조를 해석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아직도 남아있었던 유대인들의 경전인 구약성경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로마의 지배 하에 모든 나라들이 큰 고통 가운데 있는 현실의 문제도 직시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하늘의 별들에 놀라운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현상입니다. 저들이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자기들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그 현상을 해석하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결론을 도출해 냈습니다. 바로 유대 땅에 메시야가 탄생했다는 것입니다.

마크 키저라는 분이 [베들레헴의 별]이란 책을 썼습니다. 천문학자로서 바로 본문의 이 베들레헴의 별 현상을 연구한 결과를 책으로 낸 것입니다.

이분이 컴퓨터로 천문현상을 시뮬레이션해 본 결과 예수님의 탄생 직전 아주 특별한 천문 현상이 나타났었답니다. 우선 물고기자리에 목성과 토성이 결합된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 서너 달 간격으로 세 차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약 세달 후 달이 목성을 가린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연구하던 중에 이런 현상에 주목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당시 천문학에서 물고기자리는 이스라엘과 관련된 별 자리입니다. 그리고 목성은 영어 Jupiter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왕의 행성이고, 토성은 역시 영어 saturn이라는 이름에서 보듯이 악의 행성입니다. 

물고기자리에 이런 천문현상이 반복해서 일어나는 것은 이스라엘 땅에 무엇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왕의 행성이 악의 행성과 가까워져 하나가 되는 것은 새로운 왕이 일어나 악을 물리친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 땅에 메시야가 일어나 당시 로마를 물리쳐 줄 것이라는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결정적으로 달이 목성을 가린 엄폐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드디어 메시야가 탄생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토대로 이렇게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천문학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매일같이 천문을 연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이스라엘을 뜻하는 물고기 자리에 특별한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왕이 나타나 악을 물리칠 것이라는 징조입니다. 아마도 저들은 이스라엘의 경전인 성경을 연구했을 것입니다. 메시야 탄생의 예언을 알게 됐을 것입니다.

그러던 중에 그런 징조가 반복해서 일어났습니다. 저들이 메시야 탄생이 인박했음을 직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긴박한 마음으로 하늘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속히 그날이 오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주목했을 것입니다. 그러다 달이 목성을 가리는 현상 속에서 메시야 탄생의 징조를 확인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추정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들은 메시야 탄생의 예언을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밤하늘을 바라보며 메시야 탄생을 기다렸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메시야 탄생의 징조를 본 것입니다. 저들은 같은 하늘을 보면서도 남들이 보지 못한 징조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도 아니면서 메시야 탄생을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봐야 하겠습니다. 그저 눈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쫓기듯 떠밀려 살던 발걸음을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만 부둥켜안고 있지 말고 하나님의 역사 통치의 흐름을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고 기다리는 삶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슈바이처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현대인이 하루에 몇 분만이라도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를 생각한다면 현대문명이 이렇게 병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늘 우리 시대의 이 암울한 문제들은 그저 눈 앞의 현실만 바라보며 발등의 이익만 쫓으며 살아온 결과입니다. 긴 호흡으로 역사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대망하며 기다릴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경배

본문 1절을 보면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동방박사들이 지금의 이란 땅에서 예루살렘까지 와서 헤롯왕을 만나 한 말입니다. 자기들이 그 먼 거리를 마다않고 유대 땅을 찾아온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바로 탄생하신 메시야께 경배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입니다.

이 또한 하나의 미스테리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어떻게 그 먼 거리를 단지 경배드리기 위해서 찾아올 수 있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그 거리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란의 우르미에는 이란 북서부에 있습니다. 여기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지금도 터키를 통과해서 시리아를 남북으로 관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르단을 지나 이스라엘로 넘어와 예루살렘까지 와야 합니다. 

2000년 전 교통수단은 걷거나 말이나 낙타를 타는 것입니다. 고대 문헌을 보면 이 거리를 이동하는데 적어도 두 달 정도는 족히 걸리는 거리입니다. 왕복을 생각해 보면 적어도 너 댓 달 정도 걸립니다. 그리고 경배하며 머무르는 기간을 따져보면 거의 반년을 필요로 하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또 경비는 얼마나 들었을까요? 반년 동안 하던 일을 그만 두었으니 수입이 줄었을 것이고 반년이나 여행을 해야 하니 그 경비가 얼마나 됐을까요?

도대체 그 먼 거리를 그렇게 오랜 시간을 투자해서 또 그렇게 많은 경비를 지출하면서 왜 왔을까요? 누가 오라 한 것도 아닙니다. 또 누가 가라 한 것도 아닙니다. 무엇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왜 왔을까요? 본문에서 단지 그 답은 하나입니다. 경배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경배란 무엇입니까? 경배란 영어로 “Worship”이란 말입니다. 이 말은 ‘가치’라는 뜻의 “worth”와 ‘새기다, 매기다, 간주하다’라는 뜻의 “ship”이란 단어가 결합된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럴 가치가 있다고 간주하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한다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내게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가치를 가지신 분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요 12장을 보면 베다니의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붓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나온 이유는 청을 드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 분에게 위로를 받고 힘을 얻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닙니다. 다만 자기의 마음을 담아서 자기가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마리아는 무려 삼백 데나리온의 값이 나가는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습니다. 삼백 데나리온이면 노동자 1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입니다. 현재의 가치로 볼 때 2-3천만 원은 족히 넘는 큰 금액입니다. 이성적으로 볼 때 이것은 낭비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에게 예수님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신 분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이 그것 뿐이어서 그것 밖에 드리지 못했을 뿐입니다. 바로 이것이 경배입니다. 최상의 가치를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그랬습니다. 탄생하신 메시야는 세상 그 어떤 가치로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한 분입니다. 이 세상을 변화시킬 왕이십니다. 이 땅에 놀라운 구원을 시작하실 분이십니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분입니다. 그렇게 귀한 분께 마음을 드리는데 그 먼 거리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경비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여행 도중 생길 그 어떤 위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다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가치입니다. 정말 그분은 내게 가장 귀한 분이신가? 내가 가진 그 모든 것을 다 드려도 아깝지 않은 분이신가? 정말 그분은 내게 경배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신가?

우리가 동방박사들처럼 전정한 경배를 주님께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최고의 가치를 그분께 돌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높이고 그분 앞에 머리를 숙여야 하겠습니다.


3. 예물드림

본문 11절을 보면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동방박사들이 아기께 경배드릴 때 빈손으로 오지 않고 정성껏 예물을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준비한 예물이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 세 가지 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미스테리가 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때 저들이 찾아와 값 비싼 예물을 드렸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세 가지 예물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을 드렸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도 중요한 하나님의 섭리의 장치가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이르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 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어머니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동방박사들이 경배를 마치고 떠난 후 하나님께서 주의 사자를 보내 요셉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 내용은 헤롯이 아기 예수를 죽이려 하니 애굽으로 피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이 명령은 받들기 쉽지 않습니다. 지금 요셉은 갈릴리에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왔습니다. 호적하라는 정부의 명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저 며칠 동안만 다니러 왔을 뿐입니다. 아예 애굽이라는 이국 땅에 가서 얼마가 될 지 모르는 기간 동안 머무를 준비가 되어있지 못합니다. 

특히 경제적인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애굽까지 가려면 한 달 이상의 여행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갓난아기 예수까지 데리고 가려면 필요한 것이 많고 경비도 훨씬 많이 들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에서 당분간 정착하고 살려면 훨씬 많은 돈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 그만한 돈이 준비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동방박사들이 값비싼 예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시킨 것입니다. 저들의 예물 드림이 주를 위해 소중하게 쓰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림절을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것들이 주님께 소중하게 쓰이고 있는가? 많은 경우 주를 위해 드리기 보다는 나를 위해 드릴 때가 있습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그리고 내 만족을 위하여 시간을 드리고 몸을 드리고 헌금을 드릴 때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위해서 주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이제 동방박사들이 드린 예물 하나하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황금입니다. 황금은 왕에게 드리는 예물입니다. 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왕으로 경배하며 예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유향입니다. 유향은 기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하나님께만 드리는 기도를 상징하는 예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몰약입니다. 몰약은 장례 때 사용하는 귀한 물건입니다. 그러니까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를 인간을 대신하여 죽으실 참 사람으로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동방박사들은 이 아기 예수가 만왕의 왕이시고, 참 하나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메시야라는 의미가 담긴 예물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대림절을 맞아 우리도 동방박사들처럼 의미있는 예물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프랑스가 프로이센과 전쟁 중일 때, 오른팔에 총탄을 맞은 어느 병사가 육군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 팔을 자르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군의관은 "안타까운 일입니다만 당신은 오른팔을 잃게 되었습니다"고 말하며 그 병사를 위로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 병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 팔을 조국에 바쳤습니다." 군의관의 눈에는 이 병사의 오른 팔은 조국에 바친 의미있는 예물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우리의 의미있는 예물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의미 있는 예물이 주를 위해 귀하게 쓰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력으로 대림절을 시작합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주님의 역사하심을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진심으로 주님께 경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동방박사들처럼 주님께 의미있는 예물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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