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

  • 잡초 잡초
  • 1250
  • 0

첨부 1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8)

지금까지 우리는 팔복 가운데 다섯 가지의 복에 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여섯 번 째 복은 “마음이 청결한 자”에게 약속하신 것으로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팔복에 대한 주님의 말씀을 대할 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말씀을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것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야 할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임을 알아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와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하는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역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팔복의 가르침을 마음 판에 새겨서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함으로써 주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마음이 청결한 것’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봅시다.

‘청결한’이란 말을 헬라어로 ‘카타로스’ 라고 하는데, ‘깨끗한’, ‘순수한’ 등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 말은 더러운 옷을 깨끗하게 빨았을 때나, 또는 키질을 통해서 겨를 제거한 알곡을 말할 때, 또는 물을 타지 않은 순수한 우유나 포도주를 말할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청결한 마음이란,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마음의 동기가 언제나 순수하고 깨끗한 것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우리가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무슨 선행을 하건 순수한 마음의 동기에서 하기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선행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자기 만족과 자랑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봅니다. 또는 은근히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을 갖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실상을 잘 아시기에 “너희는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선행을 하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 그것은 그 동기가 청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24편에 보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지를 말씀해 줍니다.

“3)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 누구며 그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군고 4)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데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치 아니하는 자로다 5)저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6)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이 시편에서 청결한 자는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신실하고 정직한 사람을 말합니다.


두 번째로, 마음이 정결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람은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심판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서도 양심에 가책이나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라면 극악한 범죄도 서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자기에게 유리하면 얼마든지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빼앗으면서도 조금도 가책이 없습니다. 지난날 공산주의자들이 공산혁명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 모릅니다. 그들은 공산당에게 유익이 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 쓰레기 취급을 해서 무자비하게 죽였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이 그처럼 잔인하게 숙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자들이라는데 그 원인이 있습니다. 유물론에 의하면,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본질상 조금도 다를 바가 없고, 사람이 가진 지능이나 인격은 진화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양과 형상대로 존귀한 존재로 사람을 지으셨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고 살기 때문에 함부로 악행을 하고 죄를 지을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시골길을 가다가 외딴 곳에 있는 참외 밭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걸음을 멈추고 아들에게 말하기를 “아버지가 잠시 밭에 들어갔다 올 터이니 너는 여기서 누가 오는지 망을 보거라” 하고는 밭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막 참외를 따려는데 어린 아들이 다급하게 “아버지, 누가 봐요” 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급히 나와서 아들에게 “그래, 어디서 누가 보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하늘을 가리키면서 “하나님이 보세요”라고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다보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함부로 악을 행하지 못합니다. 시편 139편을 지은 성도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1)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2)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3)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4)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우리가 이 같으신 하나님을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 자연스럽게 거짓을 멀리하고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을 갖고 살려고 힘쓰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회개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죄 사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생명을 희생하셨으므로 이제 예수 믿는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성도들도 죄를 짓습니다. 이는 우리 각자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에 보면, 이같이 말씀합니다. “6)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저가 빛 가운데 계신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0)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그러나 성도들은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하지는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을 부인한다거나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이 회개하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구원 받은 자답게 살지 못한 것을 용서 받기 위한 것입니다. 성도들의 회개에 관해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목욕을 해서 온 몸이 깨끗하지만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손발을 씻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아 의롭다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을지라도 일상의 삶 속에서 알게 모르게 죄를 짓기 때문에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매일 행동으로 지은 죄 뿐 아니라 생각으로 지은 죄도 회개해야 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보니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언행심사가 바르고 깨끗한지 알려면 진리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준으로는 옳게 보여도 하나님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미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이나 경험을 기준으로 삼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이 지시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우리의 심령을 정결하게 만들어 줍니다. 

시편 119편 105절에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캄캄한 밤길을 걷다 보면 언제 발을 헛디뎌 구덩이에 빠질는지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등을 환히 밝혔다면 밤도 낮처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죄악으로 칠흑 같이 어두운 세상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길을 헤매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떤 길이 바른 길인지, 생명의 길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성도들은 그 말씀이 등이 되고 빛이 되기 때문에 바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마음이 청결한 자가 받을 복이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본다는 말씀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서로 간에 소통을 통해서 친밀한 사귐을 갖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므로 속되거나 불의한 자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자들을 물리치십니다. 오직 마음이 정결한 사람이라야 거룩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담은 타락 전에 에덴동산에서 살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교통을 나누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을 만나서 대면하여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고 나자 그만 그 마음이 죄로 인해 더러워졌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하나님을 대하기가 두려워졌습니다. 아담은 그 아내 하와와 함께 무화과 나뭇잎으로 치마를 하고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창세기 3장 8절에 이같이 증언합니다. “그들이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아담과 하와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낯을 볼 면목이 없어집니다. 아니, 하나님을 뵙는 것이 두려워서 숨습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서 심판을 외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요나서 1장 3절에 보면, 그의 행동에 대하여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이 곧 불순종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는 자는 그 마음이 더러워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우리는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육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을 봅니다.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라고 한 로마서 5장 5절 말씀과 같이, 우리는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지만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믿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낍니다. 

그리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계시록 21장 3절에 보면, 천국이 어떤 곳인지 단정적으로 말해 주는데, 그곳은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거하시는 곳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뵙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사는 곳이 천국입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이 말씀은 마음이 청결한 성도들이 장차 누리게 될 복 된 상태를 가리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요 4:24)고 하셨습니다. 신령과 진정이란 곧 청결한 심령을 말합니다. 반면에, 거짓되고 위선에 찬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둘째로, 마음이 청결한 성도는 담대하게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 자녀들을 보면, 학교에서 시험을 쳐서 백 점을 맞으면 기뻐하며 돌아와서 아빠, 엄마 앞에서 자랑합니다. 백점을 맞고서도 제 방에 틀어박혀서 침울하게 지내는 아이는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잘못을 저질렀거나 거짓말을 하면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요나처럼 하나님을 피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을 피하려는 마음이 가득한데 기도가 될 리가 만무합니다. 또한 예배 생활을 등한히 하게 됩니다. 우리는 회개를 통해서 허물과 죄를 고하고 용서 받음으로써 하나님과 단절되는 비참한 일이 생기지 않게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청결할 때, 백점 맞은 아이가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칭찬 받기 위해 집으로 달려가듯이, 우리 마음이 담대함을 얻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기를 즐겨하게 됩니다. 그뿐 입니까? 기도하면 즉시 응답이 임합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일서 3장에 이르기를 “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22)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다 함은 곧 마음이 청결한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청결한 마음으로 기도할 때,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내려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기도는 듣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 기도할지라도, 금식하면서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청결하지 못한 사람의 기도는 물리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원하시거든 마음을 청결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마음이 청결할 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만나든지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간증하기를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 3:)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와 감람나무에서 거둘 것이 없고,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다는 것은 경제적인 파탄에 직면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사업이 망했는데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 안에 있는 부요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 받는 사람이므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한 결과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거짓과 술수를 써서라도 경쟁에서 이기는 편을 택하기를 좋아하지만, 성도들은 그래서는 오히려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청결한 마음을 가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의의 길로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우리 마음이 청결할 때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믿음의 선언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하신 말씀과 같이, 우리는 언제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는데 힘써야 합니다. 팔복의 다른 복들도 그렇지만, 마음의 청결함도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과거에는 마음이 청결했으나 지금은 추하다면 과거의 청결함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과거의 행위를 인정받으려면 오늘 나의 행위가 올발라야 합니다. 언제나 마음이 청결한 자가 되어서 마음눈이 밝게 열려 하나님을 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추천인 1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