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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 (롬 5: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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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성도 (롬 5:12~21)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대하여 아무도 개입하거나 조작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자신이 한국에 태어나 한국인이 된 것과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성(性)이나 얼굴 모양이나 성품 등입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의 노력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결정되어진 숙명적인 현실입니다. 특별히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불행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도, 어떤 종교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은 인간의 좌절과 불행을 극복하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고통과 실패를 반전시키며 새 생명을 일으키는 힘을 발견해 보기를 원합니다. 
  

1. 인간의 숙명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행할 수 없는 고질적인 질병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오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은 자기 나름대로 의를 행하고 선한 행실을 나타내곤 하지만 결코 하나님의 의(義)에 이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고통과 좌절 허무, 후회와 비관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결국 피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지난 20세기에서 인간이 발명한 최대의 의약품은 페니실린과 아스피린이었습니다. 만약에 21세기에 인간의 유전자 지도 즉 케놈을 통해서 인간 개개인이 갖고 있는 유전자적 질병을 발견해 낸다면 위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건강과 장수길이 열리고 불치병인 암이나 에이즈 같은 병들을 완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의학은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많은 숙제를 풀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숙명적인 불치의 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병에 한 번 걸리면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병은 누구든지 나면서부터 타고난 병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죄(罪)인 것입니다. 죄는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롬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는 인류의 시조인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극한 오염으로 모든 인류는 범죄 아래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죄의 고통과 죽음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원죄(原罪)입니다. 한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다 죽게 된 것입니다. 

(롬 5:12)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아버지가 사업에 성공하면 가족이 다 행복해 질 수 있지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 모든 가족은 그 고통을 같이 받게 됩니다. 그리고 월드컵 때에 보니 우리나라 선수가 승리하면 모든 대한민국백성들이 모두 승리자가 됩니다. 

사람이 죄에 대하여 부담을 가지든 죄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살든 사람은 피할 수 없는 죄의 굴레라는 숙명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요, 극복할 수 없는 난제인 것이다. 이런 인간의 치명적인 약점은 인간의 노력이나 일반 종교적 수양을 통하여도 해결할 수 없는 한계점인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교양과 수양 그리고 도덕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죄는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2. 영적 비밀

인간의 근본적인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게 하시고 그를 믿음으로 우리가 살 수 있는 신령한 길을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롬 5:18,19)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들을 범죄케 한 것이라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롬 5: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인간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죽음 앞에서 살길을 얻게 된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입니다. 이 축복은 우리를 더 이상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고 의(義)를 입혀 주시는 하나님의 법정적인 선언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사람이 죄에서 벗어난다면 그로 말미암아 발생했던 인간의 죽음과 고통 그리고 좌절과 불행에도 벗어난다는 의미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인간에게 전가(轉嫁)되어 내려오는 죄의 대가로 죽음과 질병 그리고 불행이 왔습니다. 그러므로 죄 문제는 인간이 분명히 해결되어야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죄의 균(菌)은 박멸되어야 하고 죄의 권세는 우리에게서 사라져야하는데,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이것은 희열과 감사 그리고 기쁨으로 말미암아 약동하는 새 삶의 모습을 말합니다. 만끽하는 행복의 상태를 말합니다. 생명으로 우리 삶에서 왕 노릇 하는 바로 그 모습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은혜’는 믿는 자에게 거져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선물은 죄인들에게 의(義)를 선물로 안겨 주신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인 클레이풀 교수가 한 친구의 집을 방문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두 팔과 두 다리가 없는 기형아인 친구의 여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러나 예술에 대한 정서가 발달해 음악과 미술에 조예가 깊었습니다. 클레이풀이 그 소녀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네 처지였다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 너를 이렇게 밝은 얼굴로 바꾸어 놓았는가” 소녀는 눈을 반짝이며 말했습니다. “내가 가진 것은 너무 많아요. 음악을 듣고 명작을 읽을 수 있는 귀와 눈이 있어요. 또한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도 있구요. 그러나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내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물이 많은데 왜 내가 슬퍼해야 하나요.” 클레이풀 교수는 소녀의 고백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신앙의 위대한 능력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3. 죄가 더한 곳

이상에서 표현된 진술을 요약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한사람 아담의 범죄→ 모든 사람이 죄인 됨→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행동→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됨→ 생명에 이르게 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롭게 됨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에서 기인된 것인데, 이것이 무상으로 공급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아무런 효력이 없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좋은 약을 가지고 있어도 먹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 것입니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우리가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율법를 배우게 되면 인간은 죄인이라는 사실과 우리는 죄의 한계 속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죄의 심각성에 고민을 하게 되고 죄의 해결방법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게 된다. 믿음의 첫 단계는 죄의 발견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교회를 나오게 되면 스스로의 죄를 발견하게 되고, 회피하거나 심하면 불쾌히 느끼고 반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회는 말씀을 통하여 죄를 깨닫게 하고 그 죄의 해결책을 소개해 주는 곳입니다. 

성도가 교회 생활을 통하여 알아야 할 중요한 사항 중에 하나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자신의 죄인임과 연약하고 부족함을 재확인하는 일에서부터 믿음은 생성되고 유지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배와 설교를 통하여 이 사실을 지적 받지 못하거나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깨닫지 못한다면 사실 그 예배는 죽은 예배에 지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성도는 영적인 수면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설교도 잘 해야 하겠지만 성도가 말씀을 들을 때에 말씀을 거부하거나 그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그의 영성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설교는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영적인 모습을 비춰주는 거울이며(약 1:23), 죄를 말씀으로 분쇄시키는 방망이(렘 23:29)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더 나아가 말씀은 듣는 자로 하여금 가슴치며 통회하며 스스로 자복하게 하는 강한 정화기능을 하게 됩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씀은 성도가 하나님의 복음을 접하면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심각하게 깨닫고 그것에 대하여 고민하며 하나님을 찾게 되면 저들은 하나님은 사랑과 풍성한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스스로 죄를 깨닫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채움을 받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곳에서는 죄사함도 용서도 하나님의 은혜도 감격도 감사도 없는 것입니다. 다만 죄가 죄로서 인정되는 곳에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필요로 하고 결국 그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게 됩니다.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 속에서 얼굴에 묻은 티나 흠을 발견하는 사람은 더 아름다워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미인들, 여성들은 더 아름다워지기 위하여 항시 거울을 하루에도 몇 번이고 들여다보게 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맑은 성도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세계적인 대문호인 ‘빅토르 위고’의 삶은 1841년을 기점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원래 그는 방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딸 레오폴디느가 아버지의 타락한 삶을 보다 못해 유서 한 장을 남기고 강물에 뛰어들었습니다. 이에 빅토르 위고는 딸의 주검과 유서 앞에서 울부짖었습니다. “나의 타락한 삶이 딸을 죽였다. 이제 하나님의 품에 거하리라.” 그렇게 회개하고 결단한 후, 그는 후생국에 들어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고, 20년 후에는, 불후의 명작 ‘무정’을 집필했습니다. ‘방탕한 사람’에서 ‘존경받는 사람’으로 변한 빅토르 위고는 “회개하고 하나님을 만난 순간부터 내 인생관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결 론

우리는 지난 과거의 삶을 돌이켜 공과(功過)를 따져보면 공(功)보다고 과(過)가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공로보다 허물이 더 많았고, 선한 일보다 악한 일에 우리는 마음도 정신도 삶도 많이 빼앗겼습니다. 외적으로는 우리의 삶에 감사한 일도 있고 축복된 일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서 우리를 공격해 오는 죄성(罪性)을 막아내고 물리치는 일에는 패배를 자인해야 할 것입니다. 

더구나 나의 인간적인 노력이나 도덕적 추구, 고상한 삶을 향한 노력도 죄 앞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며, 주님께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Sola Gratias! ‘오직 믿음으로!' Sola Fide!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 함께 기도해 봅시다!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주 없는 삶은 실패의 연속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믿습니다. 주님은 나의 삶에 주인 되시기를 원합니다. 나를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담대히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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