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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 5:13 ~ 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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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수 5:13 ~ 수 6:7)

  
지난주 미국은 선거를 통해 민주당의 오바마 후보를 제44대 대통령으로 선출했습니다. 이번 오바마의 대통령선출은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큰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는 미국역사상 획을 긋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우선, 최초의 흑인대통령이라는 소위 검은 혁명을 이루었습니다.  미국은 지금까지 영국계 백인만이 대통령의 자리를 이어왔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그 전통이 깨졌습니다.  그것도 다른 계통의 백인이 아니라 흑인이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미국건국 232년, 아브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한지 146년, 흑인남성이 투표권을 얻은 지 138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라는 명연설을 한지 45년 만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입니다.  또한 오바마는 대통령가운데 많은 득표를 얻었습니다.  처음 상대후보와 오차범위내의 접전으로 예상했지만 실상은 압도적인 승리였습니다.  그만큼 모든 국민의 골 고른 지지를 받았습니다.  

흑인은 물론 백인도, 젊은 사람은 물론 노인도, 서민층과 부유층도, 서부는 물론 공화당 텃밭인 동부도, 모든 곳에서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바마의 당선은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승리라는 것입니다.  그는 백인 어머니와 흑인 아버지라는 감당하기 힘든 정체성의 혼란 속에 성장했습니다.  그러다가 부모의 이혼과 재혼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또한 일찍이 아버지와 어머니의 죽음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았습니다.  또한 청소년시절에도 방황하며 혼란했던 시기를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나 하버드에서 공부하고 정계에 진출하여 명연설가로 주목을 받다가 정상에 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승리는 온 세계에 어려운 환경에 있는 젊은이에게 희망의 동력을 제공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성공하여 정상에 선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대통령이 된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미국언론은 일제히 진짜 선거는 이제부터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은 벌써 다음 선거와 후보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바마의 리더십과 대통령의 역할을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산적해 있는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침체된 미국경제를 살리는 것은 물론, 이념과 인종의 갈등을 풀어야 하고, 무너져 가는 사회의 도덕성도 회복시켜야 합니다.  또한 이라크전쟁으로 인해 받은 세계인의 이미지도 돌려놓아야 합니다.  그가 많은 공약을 내 놓았지만 정작 실행하기가 쉽지 않고, 변화를 외쳤지만 실제로 그의 재임기간동안 이루어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는 대통령의 당선으로 정상에 올랐지만 그것이 끝이 아닙니다.  갈 길이 멀고 험합니다.  어쩌면 그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이 꿈에도 그리던 가나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길갈에 진치고 감격과 기쁨의 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오바마처럼 꿈을 이루고, 약속의 땅을 밟았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앞에는 산적한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밟은 것은 이제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기쁨은 잠시 지나가고 이제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정신을 차리고 다시 새롭게 시작합니다.  과연 그들은 무엇을 시작하는 것일까요?  아직 끝나지 않는 삶에 무엇이 시작된 것일까요?


우선, 전쟁의 시작입니다.

본문은 여리고성 함락의 과정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6장전체가 그것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리고는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관문에 위치한 견고한 성입니다.  이곳을 통과하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여리고는 당시 어떤 성읍보다도 견고했고, 그 성의 사람들은 전쟁에 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당시 최신식의 무기로 무장하여 어떤 적의 공격에도 방어하는 힘을 갖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넌 소식을 이미 알고 있어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본문 6장 1절에 “이스라엘 자손들로 인하여 여리고는 굳게 닫혔고 출입하는 자 없더라”고 말하면서 당시 긴장감과 적막감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은 그들과 불가피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여리고를 통과하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기에 여호수아는 온 백성 앞에서 전쟁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여리고 함락작전을 수행합니다.  

우리는 견고한 여리고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고, 그 명령에 전폭적인 순종을 통해 여리고를 무너트립니다.  당시 전쟁은 오늘처럼 그냥 무기로 싸우는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믿는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이 다른 이방신과 비교하여 얼마나 위대한 가를 보여주는 전쟁입니다.  

보이는 전쟁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전쟁이기도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당시 전쟁을 거룩한 전쟁, Holy War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여리고만이 아니라 여리고 배후에 그 무엇과의 전쟁입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성이나, 보이는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상의 싸움이요,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사탄의 싸움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베드로사도도 또 이렇게 강조했습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전쟁에 들어갑니다.  성경은 그것을 ‘영적전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싸우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우리 싸움의 대상은 혈과 육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합니다.  사람과의 전쟁이 아니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것과의 전쟁이 아닙니다.  모든 것의 배후에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흔드는 악의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사탄은 개인과 공동체가 별일이 없으면 잘 건드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뭔가 큰 역사가 보이는 현장에는 반드시 공격해 옵니다.  그 역사가 크면 클수록 더욱 집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근신하고, 깨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의 대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악의 영들입니다.  사람은 싸울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은 사랑하고, 용서하고, 품고, 이해해야 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는 현장에서 베드로는 죽으시면 안된다고 말렸습니다.  그럴 때 주님은 ‘베드로야 물러가라’고 말씀하지 않고, ‘사탄아 물러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를 보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를 이용하여 뒤에서 역사하는 사탄을 보신 것입니다.  우리도 바로 그것을 보아야 합니다.  이런 영적전쟁이 이미 시작되었고, 지금 한참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성전에 들어온 우리는 믿음을 굳게 해야 합니다.   새성전의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처럼 이제 우리도 전쟁을 채비하고 여리고를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싸움이 아니라 영적전쟁, 거룩한 전쟁을 해야 합니다.  큰 역사와 위대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 앞으로 더 큰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의 큰일을 앞에 두고 사탄이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입니다.  이제 저는 여호수아처럼 이곳에서 영적전쟁을 선포합니다.  거룩한 전쟁을 채비하십시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이 아니라 악의 영들에게 대함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를 정복한 것처럼 우리도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정복의 시작입니다.

여리고와의 전쟁은 궁극적으로 가나안 정복의 시작입니다.  여리고를 시작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에 나섭니다.  난공불락인 여리고를 넘어 아이성, 에발산, 기브온, 그리고 가나안의 동서남북의 지경을 계속 넓혀 가면서 가나안의 나라들을 하나씩 정복해 갑니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바로 정복의 역사서입니다.  여리고를 시작으로 마지막까지 모든 땅을 정복하고 평안과 안식의 시대가 만듭니다.  그리고 각 지파대로 땅을 분배하고, 여호수아는 변함없이 하나님만 섬길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여호수아서는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이처럼 가나안에 진입하여 요단동편에 진을 친 이스라엘은 정복의 시작을 선포하고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정복의 역사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처음 미국에 자리 잡은 조상들은 동부를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점점 서부개척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들은 강경하게, 때론 부드럽게 정복의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모든 땅을 정복하고 'United States of America, 미합중국' 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의 미국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미국에서 이런 정복의 역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운동이 바로 미식축구입니다.  소위 'American football' 이라고 부르는 미식축구는 오직 미국에만 있는 운동입니다.  미식축구는 쉽게 말하면 땅따먹기입니다.  정복의 역사를 그대로 반영하는 미국의 고유문화이기에 그들은 미식축구를 가장 좋아합니다.  정규리그가 끝나면 일년에 한번 슈퍼볼을 하는 날이 옵니다.  그날이 되면 모든 국민이 텔레비전에 둘러앉습니다.  그날은 저녁예배를 드리지 않는 교회도 많습니다.  그만큼 그들은 미식축구에 열광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미식축구는 그들의 조상들이 땅을 정복해간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은 땅을 정복해 갑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면 성경은 땅을 강조하고, 성경의 역사는 땅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특히 구약은 더욱 땅을 강조합니다.  땅을 중심으로 모든 역사, 율법, 심지어는 문화와 신앙관습까지 펼쳐지는 것을 봅니다.  그것은 곧 땅이 주는 의미가 너무도 귀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역사에서 ‘땅’은 신앙과 삶에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전쟁이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거룩한 전쟁인 것처럼, 땅도 그냥 땅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역사,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구원의 역사, 바울로 시작된 이방인의 역사는 모두 하나님나라의 확장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의 땅을 강조하셨고, 땅의 정복을 통해 믿는 자는 언제나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라는 사명을 잊지 말라고 그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복음의 확장이 땅의 확장처럼 번져나갈 것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복음은 전파되고, 구원은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나라는 점점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이 분명한 뜻을 아는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땅을 정복해 가듯, 복음의 확장을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이제 새성전에서 우리의 할 일은 너무도 분명합니다.  성전이 여기에 세워진 이유가 확실하다는 것입니다.  일어나서 빛을 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야 합니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야 합니다.  복음이 편만하게 퍼져 나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야 합니다.  개봉동에서 구로구, 서울과 온 나라의 구석까지, 그리고 세계와 열방을 향해 뻗어나가야 합니다.  한 순간도 우리는 교회를 섬기면서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땅을 정복해 가듯, 우리도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해 가야 합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늘 마음에 담고 사십시오.  그리고 확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는 거룩의 시작입니다. 

본문은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왔을 때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만나는 사건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여호수아는 무장한 군인이 하나님이 보내신 군대장관인 것을 알고 그 앞에 엎드립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이렇게 말합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것은 너무도 명백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합니다.  여리고의 전쟁과 가나안의 정복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큰 뜻으로 거룩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들어와 전쟁과 정복의 역사를 이루어갑니다.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거룩을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심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말은 구별되다, 분리시키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신성시되는 하나님의 영역에서만 통용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보통 세상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은 보통 사람으로부터 구별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에서 분리되신 분이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다른 이방신과 비교할 수 없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강조합니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는 자도 거룩할 것을 요구하고, 거룩하게 살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여호수아가 이런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길갈에서 행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할례’입니다.  5장 2절 이하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할례는 모세 때부터 명령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을 거쳐 오면서 1세대는 모두 죽고 광야 2세대는 아직까지 할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여기 길갈에서 할례를 행합니다.  할례는 남자 생식기의 표피를 벗기는 것입니다.  할례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행했지만, 동시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이제 거룩하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행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제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마치 표피를 벗기듯이, 모든 것의 껍질을 벗고 구별된 사람, 분리된 사람, 거룩한 사람의 길을 걷기를 다짐합니다.  사도바울은 이것을 영적 삶의 규범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사는 모든 사람들은 마음의 할례를 받고 거룩하고 구별된 삶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역설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 우리는 거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을 회복해야 합니다.  새성전에서 거룩을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 모두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악하고 무서운 생각의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말의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우리의 부끄럽고 이중적인 행동의 껍질도 벗겨야 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믿는 사람으로 뭔가 좀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지금 여기 약속의 땅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입니다.  이제 우리 모두 영적전쟁을 선포하고 나아갑시다.  하나님나라의 확장이라는 큰 뜻을 품고 교회를 섬기고 봉사합시다.  그리고 마음의 할례를 받고 하나님과 사람 앞에 다시 거룩을 회복하여 구별된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그런 믿음으로 한주간도 승리의 길을 향해 힘 있게 나아가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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