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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룻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룻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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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의 은혜를 사모합시다 (룻 2:1~13)

룻기는 은혜의 성경입니다. 
한 가정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서 모압이라는 땅으로 내려가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상황까지도 하나님이 역전시켜 주시는 것이 바로 룻기입니다. 

하나님을 거부했던 엘리멜렉 대신 그의 아내 나오미가 다시 베들레헴으로 오게 됩니다. 
끝까지 거부하고 모압여인과 결혼했던 그의 두 아들을 대신해서...두 며느리가 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중에 오르바라는 며느리는 결국 떠나고 룻은 끝까지 어머니를 따라와서 결국 복의 근원이 되고 은혜의 중심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전체적인 룻기의 간단한 줄거리입니다.

자~ 그럼...
오늘 본문을 보기 전에 먼저 1장을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거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람들이 운명은 지금 현재 어떠합니까? 
좋지 않습니다. 자기 밭도 없어서 남의 밭에서 떨어지는 이삭을 줍고 있는 형편이 바로 현재 나오미와 룻의 형편입니다.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가 1장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습니다. 

원래 나오미는 남편과 아들이 두명이나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얼마나 부자이고 가난한지는 나타나 있지 않지만 처음부터 과부는 아니었습니다. 남편 엘리멜렉이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가게 됩니다. 솔직히 베들레헴하고 모압하고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 곳으로 데리고 갑니다. 한마디로 생각이 벌써 하나님 중심에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모압이 어떤 지역입니까?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지역입니다. 

 민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이런 곳이 바로 모압이라는 곳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때는 풍요롭고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마치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이 바로 모압이라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멜렉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모압이라는 곳으로 가족들을 이끌고 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거기서 죽게 됩니다. 

여기서 남편이자 아버지가 죽은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이 오히려 더 중요합니다. 두 아들이 어떻게 합니까?
모압 여자 중에서 아내를 취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모압에 와서 잘 안 되는 부분을 봤으면 아들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다시 하나님 곁으로 갈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모압 여자와 결혼을 합니다. 이것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거역하겠다는 의사 표시인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이방여인과 혼인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이상하게 이스라엘 사람들은 결혼을 하면 상대방의 종교와 풍습이 같이 들어와서 혼란스러워지고 종교적 분쟁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우상숭배를 하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 두 아들도 하나님이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데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영원히 모압에 머물겠다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기 마련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 묻고 나아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묻지 않고 나아가서 어려움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잘잘못을 따지시기 보다는 돌이키는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고 보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는 어머니를 모시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가는 것이 옳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아들은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꺼 얹는것처럼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더 하고 만 것입니다. 돌이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아들마저 죽게 됩니다. 
 
자! 이제 남은 식구는 세사람입니다. 어머니 나오미와 두 며느리 오르바와 룻입니다. 
그러다가 베들레헴에 양식을 풍족하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는 결심합니다.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리라....그러면서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지금까지 함께 해 준 것만 해도 너무나도 고맙다. 이제는 너희 친정으로 돌아가라...이스라엘의 풍습으로 하자면 내가 아들을 낳아서 너희에게 남편으로 주어야 하는데 이제 나이도 많아서 그것도 안 되고...너희들 나랑 같이 가면 평생 과부로 살아야 하니 지금이라도 친정으로 가서 새 출발해라...결국 오르바는 가고 룻만 남게 됩니다. 
 
여기에 여러분 잘 아시는 명언이 나옵니다. 
 1:16-17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은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이 정도로 말을 하니 나오미도 어쩔 수 없이 같이 살기로 결심합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중에 아드님이 계시면 이런 며느리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혹시 현재 며느리가 있으신 분은 이렇게 며느리가 변하기를 축원합니다. 더 나아가서 따님 있으신 분들은 반대로 이런 사위 얻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솔직히 이런 룻이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기 않았나 싶습니다. 시어머니에게 이렇게 잘 하는 사람이 하나님께도 잘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얻고자 하십니까? 그러면 세상의 시어머니가 이런 며느리 만나고 싶은 것처럼 우리 하나님도 이런 성도 만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런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때 은혜가 넘칠 것입니다. 

이제 고난 극복에 대한 능동적인 모습이 나옵니다. 바로 이 모습이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모습입니다. 
 
2절 읽기
 “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나로 밭에 가게 하소서 내가 뉘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찌어다 하매”

불행과 어려움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 말고 열심히 뛰어보자

어린 독수리의 날개를 강하게 만들려는 의미
룻이 바로 이런 능동적인 인생 살았다

여러분!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고, 안 되는 것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가만히 있지 마시고, 열심히 움직이고 발버둥칩시다.
여기 와서 짧은 기간 보냈지만 이민 사회 모두 다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어느 정도 안정된 삶을 사시는 분들을 보니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셨는지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미련한 곰처럼 감나무 밑에서 누워서 감이 떨어지기를 원하는 모습 원치 않으십니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긴 장대를 만들어서 떨어뜨리던지...아님 올라가서 따든지 해야 된다는 겁니다. 하나님도 노력하는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지 노력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2-3절 읽기
 “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  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우리는 여기서 2절에 있는 ‘우연히’라는 단어와 3절에 있는 ‘마침’이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룻이 넓게 펼쳐진 밭들 가운데 ‘우연히’ 보아스의 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보아스가 그 밭에 오게 됩니다. 이것을 과연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보아스는 1절에 소개된 대로 ‘유력한 자’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한 갑부 이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추수하는 들녘에 무엇 때문에 친히 나오겠습니까? 만약에 나오다고 해도 매일 나오겠습니까? 아닐겁니다. 그런데 마치 시계의 톱니바퀴보다 더 정교한 ‘마침’을 단지 ‘우연’이라고 지나쳐 버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룻에게 임한 은혜입니다. 

저녁 무렵 아브라함은 그의 집 앞에서 길손을 만났는데 잘 대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정성을 다하여 대접하자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해 주었습니다 . 그들의 축복대로 이듬해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이것이 진정 우연만입니까?
 
당시 최고 권력자인 나아만이 일개 계집종을 만나 엘리사를 소개 받아 병 고침을 받게 된 것이 진정 우연입니까? 
 
모든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손길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초자연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현장에서 보일 듯 말 듯, 그러면서도 무척 자연스럽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분명 은혜를 주시리라는 믿음으로 나아간다면 우리가 가는 곳이 바로 은헤의 장소가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은 은혜의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일하는 현장은 은혜의 현장이 됩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이 비록 떨어진 보리이삭을 주워야 하는 기막힌 현장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은혜가 됩니다. 우리 모두 룻처럼 은혜적 사고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랍니다. 지금 당장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은혜의 밭으로 담대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며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에 이른 룻에게 하나님은 하늘 문을 여시고 그냥 복을 쏟아 부어 주시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갑자기 호박이 넝쿨 채 굴러들어 오듯 축복이 부어진 것이 아닙니다. 베들레헴이란 낯선 곳에 왔으나 그녀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굶주림을 면할 수 있을지 고심해야 하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룻은 ‘은혜’라는 단어를 놓지 않았습니다. 이 단어를 붙잡고 낯선 들판, 외간 남자들이 있는 보리밭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나에게 은혜를 내려 주실 것이다”라는 이 믿음 하나로 나아갔습니다. 이런 룻을 하나님은 실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안의 패배주의를 날려 버려야 합니다. 생각의 전환은 곧 인생의 전환입니다. 새로운 생각이 새로운 생각, 찬란한 미래를 열어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내일을 바라보며 묵묵히 삶의 현장에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연’과 ‘마침’의 절묘한 만남이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분명 일어날 줄 믿습니다. 우연은 열심히 뛰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7절 읽기
 “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 

룻은 지금 현재 이방여인입니다. 그것도 남편도 없이 시어머니와 함께 온 여자의 몸입니다. 그런데 이삭을 좀 줍게 해 달라고 하고선, 열심히 일을 합니다. 남자들도 하루종일 하면 힘들 이삭줍기를 열심히 합니다. 잠시 집에서 쉰 외에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아마도 점심 식사를 먹으러 간 시간일 것입니다. 그 시간에 룻이 쉬다 왔겠습니까? 시어머니 밥상 차려드리고 설거지 하고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계속 또 쉬지 않고 이삭을 줍는 것입니다. 

그러자 8,9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뭐라고 말합니까?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그들의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의 길어 온 것을 마실찌니라”


3. 서로 서로 도와야 합니다.

서로 서로 돕는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오미와 룻은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아니라 엄마와 딸입니다.
보아스가 룻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듯이 돕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반대로 룻의 지경에 있는 자는 보아스를 만나기를 바랍니다.

서로 도와주면서 서로가 힘을 얻고 회복되게 됩니다.
한쪽이 한쪽을 도와주면 점점 힘이 빠지고 같이 죽을 거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 서로 도와주면서 같이 힘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낯선 땅에 와서 정말...교회가 없고, 돕는 자가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민국에서 제 비자에 교회에서 일한다는 글을 적어주지 않아서 4년짜리 비자임에도 불구하고 헬스카드를 만들러 갔는데 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알아봐 주셔서 폭스라는 곳에 있는 이민국 업무를 보는데에 가서 바로 다시 바지를 발급받게 되어서 해결이 되었습니다. 또 저 때문에 원로장로님은 몇일동안 매일 아침 저와 가족들을 픽업해서 행정적인 부분을 처리해 주시고 제가 못하는 영어 때문에 동행해 주시면서 말씀을 잘 해주셔서 일주일만에 모든 부분이 잘 처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게 바로 하나님이 돕는 자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라고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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