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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요일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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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요일 5:1~5)


오늘은 요한일서 5장 1절-5절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라는 제목으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생명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은 모든 자연인들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생명이 아니라 두 번째 출생을 경험함으로 얻게 된 새로운 생명이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한 번은 어머니의 태 속에서 자라다가 세상에 태어남이고 또 한번의 출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거듭남입니다.  거듭남이라는 말을 우리는 중생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일생에 단 한번의 출생만으로 살다가 영원한 죽음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참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분으로부터 새 생명을 얻어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하셨습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는 말씀은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 영원한 삶으로 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내가 육신으로 살아있는 그 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온 사람은 이미 영원한 죽음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한 삶으로 들어갔다는 선언입니다.    

그래서 지난 번 말씀에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 했던 12절의 말씀이 바로 이것을 확증하는 사도 요한의 선언이었습니다. 

13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그 사람에게 영생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아들이 있는 자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 이름의 능력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내 안에 있는 사람, 즉 예수 그리스도가 내 인생 속으로 들어와 나를 주장하시고 나를 다스려주시는 그 은혜를 누리고 사는 사람은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이름을 믿지 않는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비록 육신의 생명 호흡, 목숨은 있지만 그 안에 생명이 없으니 살았지만 실상은 죽은 인생입니다.  육신으로는 멋지게 살고 있지만 영원한 죽음을 향해 한 걸음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는 소망이 없는 삶일 뿐입니다.   

오늘 아침에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물으며 확인을 합니다.  ‘내 속에 생명이 있는가?’  생명의 참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살아계시는가?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 생명을 소유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부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부모님의 자녀입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를 낳으신 부모님의 자녀입니다. 그 모습이 부모님을 닮고 그 성격과 행동까지 부모를 닮기도 합니다. 부모에게서 난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어 두 번째 출생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의 삶을 닮아갑니다.  

오늘 제목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라는 질문은 ‘내 안에 그분의 생명이 있습니까?’ 했던 지난 번 물음을 다른 말로 반복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물음 속에는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있느냐?’는 물음이 포함되었습니다. 내가 부모님의 자녀라는 증거는 동사무소에 가서 출생신고서를 보거나 호적등본을 떼어보면 확실하게 증명이 됩니다. 요즘은 유전인자를 검사하여 친자확인을 하는 더 확실한 방법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피검사로도 안 되고 하늘나라에서 발행하는 출생신고서도 없고 호적등본은 물론 없습니다. 태어나는 순간 엄마의 가슴 안겨 엄마 아빠랑 함께 찍힌 핏덩어리 아기 사진 같은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들 앞에 자신 내 놓을 수 있는 증명서도 없고 사진도 없다면 무엇으로 내가 중생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까?  사람들 앞에서 나는 중생했다고 자신 있게 외치면 중생한 것으로 인정이 될까요?  교회에 다니고 있으면 거듭난 사람일까요?  아! 세례를 받고 교회에서 준 세례증서가 있으니 나는 중생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까요?  부모님이 나를 낳으실 때 교회를 다니고 계셨으니 부모님이 가지고 있는 영생을 자동적으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교회를 오래 다녔더니 집사와 장로가 되었고 신학교에서 목사수업을 받아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었으니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사람이라고 인정이 될까요? 물론 그 중에는 예수 이름으로 정말 거듭난 삶을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겉으로는 모양을 다 갖추었지만 그 속내용은 아니올시다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올바른 방법이 어디에 있을까요? 이것이 오늘 말씀의 주제입니다.

1800년도 중반부터 말기에 이르러 영국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내가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가 아닌가를 확인하고 바르게 신앙생활 하라’고 외쳤던 청교도 영성을 지닌 분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우리가 자주 언급하는 찰스 스펄전(1834-1892) 목사님이 있고 또 한 분은 오늘 소개해드리는 존 찰스 라일(1816-1900) 목사님이 있습니다.   옥스포드대학 Christ Church에서 공부를 했던 그는 영국 교회가 교리적으로 혼탁해 가는 모습을 보고 ‘오직 성경으로’라는 개혁정신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데 혼신을 다했던 목회자입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 교인으로 등록하면 자동적으로 거듭남을 보장받는다고 가르치던 영국 국교회의 의식주의자들에 맞서 거듭남은 의식과 성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으로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아세례 받았어도, 세례를 받았어도, 교회를 수십 년간 다녔더라도, 교회 직분자라도 거듭나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메시지는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영국 국민은 태어나 세례를 받고 교인으로 등록만 하면 자동적으로 기독교인이 되는 것처럼 여기고 안일하게 지내던 영국 교회를 향한 폭탄과 같은 메시지였습니다. 

교회 안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은 후 마음과 생활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진정 거듭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변한 것도 없으면서 거듭났다고 착각하고 사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느 쪽에 속하였습니까?  

예수를 믿고 수 십 년이 지났는데도, 아니 평생을 믿었는데도 인격과 삶이 전혀 변하지 않았으면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라고 자신하고 있는 나는 아닌지요? 예수를 믿은 후에도 이전에 부리던 고약한 성질 그대로 부리고, 고질적인 습관 하나 바꾸지 못하고, 기도를 해도 마지못해 하고, 봉사를 해도 의무감으로 하며, 성경을 읽어도 아무런 기쁨과 감동이 없다면 예수 믿고 변화된 증거를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삶과 인격에 아무런 변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위하여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계속 하고 있느냐는 말입니다.   나의 삶 가운데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열매가 있는가 살펴봅시다. 나는 거듭남의 체험이 없이 습관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인지 진정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라일(Ryle)은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일서를 중심으로 거듭남의 증거가 무엇인지 전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는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한일서 3:9)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다른 사람들처럼 죄를 가슴에 품고 다니며 거기에 온 의지를 쏟아 붓지 않습니다. 그도 한 때는 자신의 행동이 죄인지 아닌지 따져보지도 않았고 악한 일에 대하여 탄식하는 법 없이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죄와 맞서 다투는 일은 전혀 없었고 오히려 죄와 아주 친한 사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죄를 미워하고 그것들로부터 달아나며, 대항하여 싸우기도 하고, 죄가 불러올 재앙에 대하여 깊이 생각도 하고 죄로 말미암아 실족하게 될 때는 스스로 탄식하게 되었고 모든 죄악들로부터 건짐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죄는 그에게 더 이상 기쁨이 아니며 무감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죄를 지으면 지을수록 하나님과 멀어지기 때문에 죄를 피합니다.   이제 죄는 그에게 지긋지긋한 혐오의 대상입니다.  비록 중생을 체험했을지라도 때로는 나쁜 생각이 일어나고 많은 결점들이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으며, 말이나 행동 속에서 연약하고 부족한 면들이 드러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한 점 거짓이 없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더러운 부분이 매일 자신에게 슬픔과 탄식이 되며 온 마음으로 그것을 혐오합니다.  

스펄전 목사님의 말을 인용하면, 마치 불에 덴 아이가 불을 무서워하듯 그렇게 죄를 무서워하게 됩니다. 마치 최근에 노상 강도를 만나 곤욕을 치른 사람이 다시 길거리에서 강도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워하듯 그렇게 죄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피하되 모든 점에서 죄를 피하려 듭니다.  마치 뱀에게 한 번 놀란 사람이 큰 뱀뿐 아니라 작은 뱀도 무서워 피하듯 큰 문제에서만이 아니라 작은 문제에서도 죄를 범하지 않으려 합니다.  진심으로 죄를 통회하게 되면 이 혀로 한마디도 나쁜 말을 하지 않기 위해 몹시 조심하게 됩니다.  매일 매일의 행동 속에서도 절대 남을 불쾌하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매일 밤 자신이 잘못한 것을 가슴 아프게 고백하며 그날을 마감하게 됩니다.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지 않도록 붙잡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하루를 시작합니다. 

반복적으로 죄를 짓고,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죄를 짓는 것은 중생한 사람의 행동이 아닙니다.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지만 중생한 하나님의 사람, 아들의 영이 있는 사람은 죄를 싫어하고 미워하며 죄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거듭남의 첫째 증거는 죄를 미워하고, 혐오하며, 은근히 즐기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자녀 맞습니까? 


2. 하나님의 자녀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니 또한 내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요한일서 5:1)

거듭난 사람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가 나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습니다. 그분만이 나의 유일한 구주이시며, 그분 외에는 구주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며, 오직 그분만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는 분임을 믿습니다. 때로는 나에게 믿음이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의심과 두려움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자신의 선함과 인간적인 노력들, 심지어 자신의 기도와 봉사 등으로 구원의 안정감을 찾으려 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만 구원의 안정감을 찾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그분 외에 어떤 것도 나의 신뢰가 될 수 없음을 믿습니다. 그래서 결코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징표입니다. 그가 나의 구주이심을 믿는 자는 누구나 그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까?   


3. 하나님의 자녀는 의를 행합니다.

“너희가 그의 의로우신 줄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줄을 알리라” (요한일서2:29)

하나님의 자녀는 죄를 싫어할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의를 행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하려고 애쓰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은 피해가려고 애씁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 속에 내재하는 사악함이 자신을 붙들고 늘어질 때마다 몹시 곤혹스러워합니다. 자신 속에 있는 죄의 법이 하나님의 은혜를 대항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나 그는 죄의 법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에게 수 많은 단점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의 성향 전체를 따져보고 평가한다면 그는 거룩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의 행동이 거룩하고, 마음의 성향 또한 거룩하며, 습관들 역시 거룩합니다.   

그 모든 것들이 가끔씩 삐끗하고 길에서 벗어나기도 하지만 바람을 거슬러 나아가는 배처럼 그의 삶이 향하여 나아가는 큰 푯대는 오직 하나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을 위하여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때로 실족하기도 하고, 자신이 정말 그리스도인인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존 뉴턴이 고백했던 것처럼, “현재의 나는, 내가 되고자 소망하는 그 사람이 아니며, 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의 모습도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의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니다. 그리고 현재의 내가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의를 행하는 이것이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나는 참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4.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 (요한일서 3:14)

영원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간 사람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한 피를 받아 한 몸을 이룬 형제와 자매들입니다. 그러므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의 형제들에게 특별한 애정을 가지기 마련입니다. 자신과 같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으면 그 어느 곳에 있는 것보다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성도들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들 틈에 끼여있을 때 더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다른 사람들은 학식이나 지식, 가진 재물의 정도와 사회적 지위로 친구를 고르지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의 가치기준은 오직 은혜입니다. 거듭난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동일한 적을 대항하여 싸우는 동료 군사로 여겨지고 그들에게서 전우애를 느낍니다.  또한 같은 길을 걸어가는 길동무로 생각하여 동료애를 느낍니다. 그들에게도 사회적인 지위나 신분, 혹은 빈부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들이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입니다. 한 아버지의 아들과 딸입니다. 그러니 무엇이 그들의 사랑을 가로막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 믿음의 형제를 사랑치 못하는 것은 거짓일 뿐입니다.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는 것 이것이 또 하나의 거듭난 사람의 징표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5. 하나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깁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요한일서5:4)

거듭난 사람은 중생하기 전에는 세상과 친구가 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은 후로는 세상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됩니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의견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습니다. 세상의 길과 생각들, 그리고 세상 풍조를 거스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하는 생각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전환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에 대한 사랑을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부르는 것들로부터 아무런 즐거움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그를 피곤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의 눈에는 그런 것들이 영원한 것에 비하면 그저 헛되고, 무익하고, 하찮기 짝이 없는 것으로 비춰질 뿐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세상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행하며 오리려 만족을 느낍니다. 그래서 세상은 그를 비난합니다. 그러나 그 비난은 그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세상이 그를 비웃지만 그는 가던 길을 결코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존경보다 하나님의 칭찬을 더 사모합니다. 사람들에게 혐오거리가 되는 것보다 하나님을 실망시켜드리는 것을 더욱 두려워합니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입니다. 그의 가장 큰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 이것이 또한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6.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지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요한일서5:18)

우리가 읽은 성경대로 해석하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그 분, 곧 예수께서 나를 지킨다고 되지만, 다른 번역(KJV, NIV)을 보면 내가 곧 하나님께로부터 새로 난 사람이고 하나님이 주신 생명이 있는 내가 죄 짓는 자리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는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해석됩니다.  라일 목사님은 이런 번역을 따라 여섯 번째 증표를 설명합니다.

거듭난 사람은 자기에 매우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자기를 죄로부터 깨끗하게 지키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죄로 이끌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부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어합니다. 그는 아무 장소에나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않고 시답지 않은 대화들은 사람의 마음을 타락시키고 악은 항상 선보다 훨씬 전염성이 강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시간을 사용하는데도 매우 조심스럽고 그 시간을 유익하게 사용하려고 애씁니다. 그는 매일의 생활 습관이나 행동들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입니다.   세상은 악으로 가득 차 있으며, 사람의 마음은 속기 쉽고, 마귀는 자신을 해칠 기회를 잡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삽니다.  그리하여 늘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마치 적국의 한 가운데 거주하는 군인처럼 항상 완전 군장을 하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유혹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겸손한 자세와 기도하는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자신의 영혼을 죄로부터 지키는 것 이것이 또한 거듭남의 증표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Ryle 목사님은 말합니다.  이런 징표들이 사람에 따라서 그 깊이와 드러나는 정도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음을 압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희미하고 어렴풋하게 매우 미약하게 드러나서 거의 알아차릴 수 없습니다. 반대로,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도 세차고 뚜렷하며 명확하고 분명해서 눈을 감고 봐도 명확히 보입니다.   

또한 여섯 가지 중에 어떤 것들은 이 사람에게서 좀 더 명확하게 보이고, 또 어떤 것들은 저 사람에게 좀 더 명확히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징표들이 한 사람에게 하나같이 균등하게 드러나기란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런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듭남의 증거들을 아주 명확하게 찾아보았습니다.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합니다. 거듭난 사람만이 위의 여섯 가지 증표를 가지고 있으며, 그 증표가 없는 사람들은 모두 거듭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결론이 바로 사도 요한이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의도한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 징표를 가지고 있습니까? 당신은 거듭났습니까?

Ryle 목사님이 정리한 이상 여섯 가지의 거듭남의 증표는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에서 이미 말씀된 것들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 역시 생전에 사랑하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을 따라 기록한 영생에 관한 진리입니다. 

결국 오늘 우리가 상고한 거듭난 사람의 여섯 가지 증표는 하나님의 말씀이 보증하는 바요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따라 나 자신의 신앙과 삶을 점검해봅시다.  나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죽었던 영혼이 새 생명으로 거듭남 이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참 목적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거듭난 사람들로 가득하며 거듭남의 기쁨을 서로 나누는 간증의 삶이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그리고 아직 거듭남의 체험을 가지지 못한 분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내 안에 들어와 나를 사로잡으시고 나의 삶을 바꾸시며 나의 인생을 지도하시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겸손히 구하는 거룩한 성도의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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