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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길과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 (요 14: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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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진리요, 생명되시는 예수님 (요 14:6~11)


주석가 랑게(Lange)는 말하기를 "불신앙인들은 그의 길에서 지옥과 가시와 올무만을 발견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길을 계속해서 간다"라고 했습니다. 
공자는 아침에 길(道)을 들을 수 있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조문도 석사가의, 朝聞道夕死可矣)고 하였습니다.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10년을 보냈으나 참된 길을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라고 했습니다. 

Ⅰ. 예수는 곧 그 길입니다. 

본문 14장 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 』라고 했습니다. 
내가 곧 그 길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나는 ∼ 이다(에고 에이미, )'의 어법은 신약 성경 특히 요한복음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 자신의 계시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특별한 어법입니다. 에고 에이미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의 계시적 언어의 맥락과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자 예수께서 성부 하나님의 자기 계시적 언어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그 자신의 말이 성부와 동일한 신적 권위를 가졌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들의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오직 그 말씀을 수용하여 믿고 따르는 결단만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 나타난 에고 에이미( ) 즉 '나는 ∼이다'라는 예수님의 자기 선언(I am declaration)적 표현은 일곱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① 참 포도나무(요 15:1)
② 길, 진리, 생명(요 14:6)
③ 양의 문(요 10:7)
④ 생명의 떡(요 6:35)
⑤ 부활, 생명(요 11:25)
⑥ 세상의 빛(요 8:12)
⑦ 선한 목자(요 10:11,14)

예수께서 나는 곧 그 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길은 사람이나 탈 것(배, 차, 비행기 등)이 왕래하는 길(路, way)의 여자적 의미를 고집하지 아니합니다. 이면적으로 길에 대한 의미는 다양합니다.
①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리를 가리켜 길이라고 합니다. 
② 방법, 수단을 가리켜 길이라고 합니다. 
③ 방편, 분야를 가리켜 길이라고 합니다. 
신명기 5장 32-33절에 『 그런즉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대로 너희는 삼가 행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모든 도를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삶을 얻고 복을 얻어서 너희의 얻은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길을 떠났다 (신 31:29)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사 30:21)고 했습니다. 
거룩한 길(사 35:8)이라고 했습니다.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시 25:4)라고 했습니다. 악한 길로 가지 아니 하였사오며(시 119:101)라고 했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잠 4:18)라고 했습니다.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사 26:7)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왕상 2:2)라고 했습니다. 
그 악한 길에서 떠나(왕상 13:33)라고 했습니다.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왕하 22:2)라고 했습니다. 의인은 그 길을 독실히 행하고(욥 17:9)라고 했습니다.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시 1:6)라고 했습니다.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라고 했습니다.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사 55:9)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나의 명한 모든 길로 행하라(렘 7:23)고 했습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3)라고 했습니다.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눅 1:79)라고 했습니다. .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고 했습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롬 3:17)라고 했습니다.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계 15:3)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지막에 나타내신 길이 바로 예수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나만이 그 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인간이 하나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Ⅱ. 예수는 그 진리입니다. 

본문 14장 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 진리요… 』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사전적 의미는 '참된 도리'라고 합니다. 나는 곧 그 진리라는 말입니다. 나만이 오직 그 진리라는 말입니다. 성경은 진리를 의인화시켰습니다. 
시편 86편 11절에 『 여호와여 주의 도로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시편 26편 3절에 『 주의 인자하심이 내 목전에 있나이다 내가 주의 진리 중에 행하여 』라고 했습니다. 시편 119편 30절에 『 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를 내 앞에 두었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진리라고 하신 것은 말씀(로고스, )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말씀은 만물을 지으신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곧 독생하신 하나님이시라고 했습니다(요 1:18). 이 진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 곧 예수 자신을 의미합니다. 
시편 31편 5절에 『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구속하셨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시 43:3)라고 했습니다. 구원의 진리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69:13)라고 했습니다.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 119:142)라고 했습니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오니(시 119:160)라고 했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요 1:17)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2절에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고 했습니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요 14:17)고 했습니다.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요 15:26)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13)라고 했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요 17:17)라고 했습니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했습니다. 
진리의 말씀(고후 6:7)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진리(갈 2:5,14)라고 했습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엡 4:21)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라(요일 3:19)고 했습니다.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요삼 1:3)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에 『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고 했습니다. 이사야 65장 16절에 『 …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앞에 숨겨졌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진리는 이성작용에서 오는 과학적인 지식이 아닙니다. 그 진리는 세상에 있는 도덕적 고상함이나 윤리적 이상을 실천하는데 있지 아니합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진리입니다. 그 진리는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 진리는 세상의 기쁨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그 진리는 세상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말하는 내가 진리라는 말씀은 참됨의 본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대용품이 없는 유일한 선, 유일한 참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진리만이 인간을 하나님께 이르게 하는 구원의 유일한 방편이자 절대 수단입니다. 


Ⅲ. 예수는 그 생명입니다. 

본문 14장 6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이니… 』라고 했습니다. 
내가 곧 그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나만이 유일한 생명이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생명이라는 성경의 표현은 신구약을 관통하는 중앙통과 같습니다.
시편 16편 11절에 『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시리니… 』라고 했습니다. 
잠언 12장 28절에 『 의로운 길에 생명이 있나니… 』라고 했습니다. 
잠언 6장 23절에 『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의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8절에 『 주께서 생명의 길로 내게 보이셨으니 주의 앞에서 나로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니 』라고 했습니다. 
생명의 실체가 바로 예수 자신이라는 자기 선언입니다. 예수 자신이 생명입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그는 우리의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욥기 1장 21절에 『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는 생명의 본질이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 나는 그 길이다 나는 그 진리다 나는 그 생명이다 』라는 말은 결과적으로 동일한 내용입니다. 


Ⅳ. 예수는 아버지께로 가는 그 길이요 그 진리요 그 생명입니다. 

본문 14장 6절에 『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길, 진리, 생명이란 말에는 모두 '그' 라는 관사( )를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 곧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어떤 길도, 어떤 진리도, 어떤 생명도 그 길, 그 진리, 그 생명을 대신할 대용품이 없다는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는 당시의 혼합주의와 타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천명한 것입니다. 그 당시 영지주의 자들은 영혼이 스스로 하늘에 간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자신만이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오직 자신을 통해서만이 하나님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제 2위 되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는 곧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 『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여기 너희는 바리새인들입니다. 바리새인들 심중에 천국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너희 안이라고 할 때 헬라어 엔( )은 영어로 within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among으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너희 안(within you)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among you)라고 번역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바리새인들 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자신이 있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요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 자신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천국 가는 길을 알려달라는 도마의 질문에 천국 가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아니하시고 아버지께로 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제한 천국을 생각하는 인간들의 이원론(二元論)사상을 경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낙원, 영생, 행복, 축복, 형통, 면류관, 상급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을 일체화시키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7-10절에 『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여기 『 이제부터 』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보혜사 성령이 오시는 때를 말합니다. 보혜사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나타나게 되는 시기를 말합니다. 
빌립을 포함한 제자들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일체성에 대한 영적 지식이 시기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의 요구에 대하여 예수님은 자상하게 빌립을 교훈하셨습니다(요 14:8-12). 
그리스도를 보는 자는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를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에 『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국 가는 길은
천국 가는 진리는 
천국 가는 생명은 곧 아버지의 길, 아버지의 진리, 아버지의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에게로 가는 절대적 수단인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가 곧 하나님 아버지 계시는 천국입니다. 천국과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간격 없이 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한 역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1절에 『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고 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것이 최고의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자기 백성들에게 요구하셨습니다. 그렇게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인하여 믿으라고 했습니다. 행하는 것을 보고 믿는 신앙은 보지 않고 믿는 신앙 다음의 신앙입니다. 행하는 그 일은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들입니다. 눈으로 보고 믿는 것은 최상의 믿음이 아닙니다. 질 좋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절에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라고 했습니다. 

믿음 그 자체에 차등이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믿으면 어떻게 믿었든지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는 과정에 있어서 결과를 보고 나서야 믿는 다고 하면 그 믿음은 보고 믿는 믿음입니다. 결과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그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희의 세월입니다. 
따라서 보고 믿는 신앙은 위험한 신앙입니다. 보고 믿는 신앙은 애태우는 신앙입니다. 

보고 믿는 신앙은 후회하는 신앙입니다. 보고 믿는 신앙은 보기 전에는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에 『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고 했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이미 복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에 『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보지 않고 믿으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신비하고 풍성한 축복의 개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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