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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에 감동되어 사는 삶 (창 41:3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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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에 감동되어 사는 삶 (창 41:37~43)

1. 최근 울컥하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해 방화, 도박, 절도, 자살하는 등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인격장애 환자(충동조절장애)가 5년새 143%나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충동조절장애’는 나중에 곤경을 당할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어떤 행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 종류로는 모든 중독은 전형적인 충동조절장애에 속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정신과 질환 진단목록에는 도벽과 도박장애를 ‘충동조절장애’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넓은 의미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충동이 고조되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문제가 되는 행동을 되풀이하는 것도 충동조절장애라고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대화를 하다 공격적 충동을 억제하지 못하는 ‘간헐 폭발장애’, 사람에 대한 평가나 기분이 극에서 극으로 오가는 ‘경계선 인격장애’, 한 가지 일에 쉽게 싫증을 내고 매사에 안달복달하고 호들갑스러운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불뚝 성미’가 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지나치게 억누르고 있다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하는 것입니다. 

인격을 라틴어로 ‘페르소나’(persona)라고 하는데, ‘가면’이라는 뜻입니다. ‘가면’을 썻다는 것은 내면의 모습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이는 모습이 다르다는 인격의 이중성을 말합니다. 그러나 ‘페르소나’를 ‘인격’이라고 해석한 것은 이중성에 대한 개념보다 잘 정돈된 자기 내면의 모습을 다른 이들에게 나타내 보이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합니다. 그래서 인격적이란 말은 내면의 본능적 욕구와 갈등을 스스로 조절해 정돈된 자기 모습을 나타내는 능력임을 의미합니다. 

자기 본능을 통제하지 못해 있는 그대로의 내면적 욕구를 분출하고 살아가면 이들을 가리켜 ‘인격 파탄자’라고 부릅니다. 내면에서 터져나오는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면 바로 ‘충동 조절 장애’라고 하는 것입니다. 끓어오는 내면의 충동을 잘 다스리는 능력을 ‘절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옛 헬라인들은 문명인이 가져야 할 가장 고도의 인격적 요소를 ‘절제’에 두었습니다. 

성경 지혜서인 잠언은 구절마다 자기 다스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고 교훈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을 다스리는 ‘절제’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성령의 9가지 열매 중 제일 마지막에 맺어지는 것으로 인격의 최고봉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절제’는 자신의 노력이나 수련, 또는 취미생활 등으로 어느 정도 갈고 닦아갈 수 있지만 그러한 방법은 결정적인 어느 한 순간에 무너져 버려 그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하신 분은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십니다.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본성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여 결국 인격의 아름답고 선한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절제’를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성령의 열매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요셉은 어린 나이에 노예로 팔려가 애굽의 경호대장 보디발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주인되는 보디발이 요셉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 바 그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고 가정 총무로 삼았던 것입니다. 요셉이 가정총무가 된 때로부터 “(창39:5-10) 여호와께서 보디발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그의 집안 일이 잘되고 재산이 날로 늘어갔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그의 재산을 다 요셉에게 맡기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그야말로 요즈음 하는 말로 ‘몸짱’에 ‘얼짱’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함께 잠자리에 들자고 유혹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이 집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맡기고 아무것도 간섭하는 일이 없으니 이 집에는 나만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없습니다. 주인은 나에게 아무것도 금하지 않았지만 당신만은 금하셨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그의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감히 이런 악한 짓을 하여 하나님께 범죄할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날마다 요셉에게 치근거리며 온갖 유혹을 다했지만 요셉은 단호하게 거절하며 그녀와 함께 있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애굽의 바로는 요셉을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깨끗하고 아름답게 자기를 관리해 노예 죄수의 신분에서 총리의 자리에 이른 것은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살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아무리 좋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해도 하나님의 영, 성령의 감동으로 살지 아니했다면 그만 유혹에 넘어가 한 순간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었을 것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요셉을 가리켜 ‘하나님의 신에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라며 성령에 의한 요셉의 대단한 지혜와 인격,그리고 그의 믿음에 감복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을 그 자리에서 애굽의 총리로 세워 나라 전체를 맡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과 같이 성령에 감동되는 생활을 통해 마침내 그 아름답고 존귀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지혜롭고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지라도 ‘하나님의 영’, ‘성령’,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 곧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예수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든지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감동되는 진정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성령에 감동되어 사는 사람이 반드시 승리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 왕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삼상15:26)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새 왕이 될 사람으로 다윗을 벌써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사무엘 선지자로 하여금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 말씀대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삼상16:13)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성령)에게 크게 감동되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악령이 그를 번뇌케 하기 시작했습니다.(삼상16:14) 이후로 사울 왕은 기회만 주어지면 다윗을 살해하고자 온갖 수단 방법을 다했습니다. 악령의 지배아래 사는 왕이 성령에 감동되어 사는 다윗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전국에 다윗 살해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수배망을 피해 유리하던 다윗에게 목숨을 걸고 그를 도울 큰 군대를 붙여주셨습니다.(대상12:22) 

다윗이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 시글락에 숨어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사울 왕의 심복들 중 ‘모두 활을 잘 쏘고 물맷돌도 잘 던지며 왼손과 오른손을 다 같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군인들 30명’이 있었는데 이들 모두가 다 사울과 같은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울 왕의 군대에는 1000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방패와 창을 능숙하게 쓰는 자들로서 얼굴은 사자처럼 날카롭게 생겼고 빠르기는 산의 사슴과도 같았던 갓 지파 맹장들이 즐비했습니다.’ 이들이 그 동안 사울 왕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다윗과 함께 할 의사를 가지고 다윗을 찾아갑니다. 요새에 있던 다윗은 그들을 맞으러 나가서 이렇게 말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진정으로 나를 도우러 왔다면 나는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그러나 만일 여러분이 나를 속여서 내 대적에게 넘겨 주려는 속셈으로 여기까지 왔다면 비록 내가 여러분을 해하지 않을지라도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 사실을 아시고 여러분에게 벌을 주실 것입니다.’ 

이때 ‘성령께서 30명 용장의 대장인 아마새를 감동시키시자’ 그가 다윗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다윗 장군님, 우리는 당신의 부하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당신의 편입니다. 당신과 당신을 돕는 사람들에게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시시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다윗은 그 사람들을 영접하고 그들을 자기 군대의 지휘관으로 삼았습니다. 이 후에도 다윗을 지지하겠다는 사람들이 매일 찾아왔으며 마침내 그들은 막강한 군대가 되었는데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다고 했습니다.(대상12:1-22)

(대상12:22) 그 때에 사람이 날마다 다윗에게로 돌아와서 돕고자 하매 큰 군대를 이루어 하나님의 군대와 같았더라 

30명 용장의 대장인 아마새가 다윗에게 ‘당신과 당신을 돕는 사람들에게 승리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시시기 때문입니다.’ 라고 한 말은 성령에 감동되어 나온 것입니다. 아마새와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사울 왕과 같은 지파 출신 장군들임에도 불구하고 동족을 버리고 다윗을 돕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 ‘당신의 하나님이 당신을 도우십니다.’는 말에서 ‘돕는다.’는 바로 성령의 감동을 말합니다. 

성령은 ‘보혜사’ 곧 도우시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감동’의 어원 히브리어 ‘라브솨’는 문자적으로 ‘옷 입히다’는 의미로서, 성령께서 인간의 전 인격을 관할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마새와 그 무리들에게 성령의 옷을 입히자 그 동안 악령에 사로잡힌 사울 왕의 인격과 삶을 바로 분별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에 감동되는 인격과 삶을 보여준 다윗 편에 가담하여 마침내 다윗의 승리를 이룩하게 한 것입니다. 이후 성령의 감동의 물결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전 군대와 전 백성들에게까지 성령이 감동했습니다.

(38) 전투 태세를 갖춘 이 모든 군인들이 헤브론으로 와서 하나같이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려고 했으며 다른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도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성령에 감동된 자, 다윗이 승리하여 왕이 될 것을 미리 알고 원근각처의 각 지파 사람들이 최대의 잔치를 준비하고 배풀어 나라 전체가 희락으로 충만했습니다.  

(39) 헤브론에 온 모든 군인들은 다윗과 함께 3일 동안을 먹고 마시며 즐겼다. 이것은 그들이 올 것을 대비하여 그 형제들이 음식을 미리 준비해 두었기 때문이었으며, 또 근처에 있는 자로부터 잇사갈과 스불론과 납달리까지도 식물을 나귀와 약대와 노새와 소에 무수히 실어왔으니 곧 과자와 무화과병과 건포도와 포도주와 기름이요 소와 양도 많이 가져왔으니 이스라엘 가운데 희락이 있음이었더라. 
다윗과 같이 성령에 감동되는 인격과 삶을 통해 ‘하나님의 군대’가 함께 하여 승리와 희락의 축복이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3. 성령에 감동되는 삶을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며 오직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깨끗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다윗 왕처럼 행하여 오직 한 분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 말씀대로 사는 깨끗한 삶으로 나라를 통치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므로 나라를 견고하게 하시고 그의 부귀와 영광이 크게 떨치게 되었습니다. 

(대하17:3-5) 여호와께서 여호사밧과 함께 하셨으니 이는 그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여호사밧 왕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큰 긍지를 가지고 과감하게 산 속에 있는 온갖 우상의 단과 형상들을 찾아내 없애 버렸습니다. 그는 더 나아가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했습니다.(대하17:6-9) 

그 결과 여호사밧의 부귀와 영화가 극에 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우상숭배로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의 집안과 혼인으로 인연을 맺었습니다. 사돈지간이 된 여호사밧이 아합을 찾아갔다가 아람과의 전쟁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받고 어쩔 수 없이 아람과의 전쟁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이 때 아합 왕이 참된 선지자 미가야의 예언에 불길한 마음으로 자신은 사병 복장을 하고 여호사밧 왕에게 왕의 복장으로 전쟁에 나가도록 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아람 왕이 그의 지휘관들에게 ‘너희는 졸병들과 싸우지 말고 이스라엘 왕에게만 집중 공격을 하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아람 군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았을 때 왕복을 입었기 때문에 그가 이스라엘 왕인 줄 알고 그를 집중공격하여 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구해 달라고 소리를 지르자 하나님께서는 그를 도와 그들을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가 이스라엘 왕이 아닌 것을 알고 추격을 중단한 것입니다. 이를 두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대하18:31)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저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저희를 감동시키사 저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즉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매,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들을 감동시키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지라’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아람의 지휘관들을 성령으로 감동시켜 이스라엘 왕의 복장을 한 여호사밧이 이스라엘 왕 아합이 아님을 깨닫게 하여 추격을 그치고 돌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 왕은 아무리 사병 복장으로 변장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적군이 ‘우연히’ 쏜 화살을 맞고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호사밧이 무사히 왕궁에 돌아왔을 때 선지자 예후가 왕을 맞으며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대하19:2-3) 선견자 예후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가로되 ‘왕은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십니까? 왕이 행하신 그일 때문에 여호와께서는 왕에 대한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왕에게는 선한 일도 있는데 이것은 왕이 이 땅에서 아세라 여신상을 없애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찾으려고 했던 점입니다.’ 

그래서 여호사밧은 그 후로 두 번 다시 이스라엘을 방문하지 않고 예루살렘에 조용히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처럼 여호사밧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를 사랑하는 옳지 않은 행동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샀지만, 더러운 우상들을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깨끗한 신앙생활을 보시고 적군 아람 지휘관들을 감동시켜 여호사밧 왕을 집중공격하지 못하도록 해서 그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 깨끗해야만 성령의 감동이 적군들에게까지라도 역사하여 구원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도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고전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후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예수 믿는 성도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 값으로 산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입니다. 성령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깨끗하지 않으면 성령이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성령은 깨끗한 사람에게만 감동하십니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그 중에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도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

(딤후2:20-21) 성령이 사용하시는 그릇은 반드시 깨끗해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무로 만든 그릇이든, 흙으로 빚은 그릇이든, 금으로 만든 그릇이든 사용하지 못할 그릇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결코 사용하시지 않는 그릇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더러운 그릇입니다. 예수 믿고 죄 사함을 얻어 깨끗할 뿐만 아니라 더러워졌다면 반드시 죄를 회개함으로 깨끗함을 받아야만 거룩한 성령의 감동되는 복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 왕이 생을 다할 때까지 존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철저한 회개생활때문이었습니다. 충신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죄악으로 하나님의 책망을 받았을 때 그는 철저히 회개했습니다. 그 참회의 고백이 시편 51편입니다. 

(시51:1-17)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기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대저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케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도말하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신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의 참회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령을 거두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성령이 함께 하지 않은 사울 왕의 비참하고 참담한 말로를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 ‘성령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거듭 나게 하소서’, ‘성령으로 내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간절히 회개하며 기도했던 것입니다. 성령에 감동되는 신앙생활로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며 지혜롭고 복된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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