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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잠든 친구를 깨우러 가자 (요 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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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든 친구를 깨우러 가자 (요 11:1~11)


새생명축제를 두 주일 앞에 두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한 사람, 한 영혼을 구원하는데,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자기 가족에 대하여, 자기 친구에 대하여 구령의 열정을 가져야겠습니다. 우리 가족 중엔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형제가 있는데, 지금 죽는다면,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껴야 합니다.  우리 가족 중에 아직도 믿지 않는 이가 있다면, 내게 화가 미칠 것만 같다는 간절한 생각을 가져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친구들 중에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이들은 없습니까?  전에는 조금 다닌 것 같았는데, 지금은 쉬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까?  우리는 믿지 않는 친구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평소에 많은 관심과 우정을 쌓아야 그를 전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친구가 있으므로, 더없는 우정을 느끼고 든든한 마음을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친구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면 좋은 사람이 되고 나쁜 친구를 사귀면 나쁘게 될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사귀면, 덩달아 공부를 잘하게 되고, 전혀 공부하지 않는 친구를 사귀면, 공부와 담을 쌓고, 나중에는 가출하여 놀게 되는 것입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친구의 의미 30가지”라는 글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고쳐야 할 점은 충고해 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서로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서로 잘못이 있으면 덮어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서로 허물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함께 울어줄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한밤중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아픔을 반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기쁨을 두 배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때론 내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일을 말할 수 있는 것이 친구입니다.  기쁜 소식을 먼저 알리고 싶은 것이 친구입니다. 등등을 말하고 있습니다. 친구를 사귀는데, 교회를 통하여, 기도하면서, 성경을 함께 공부하면서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합니다. 

일본 치매예방협회라는 곳에서 발표한 ‘치매 예방10가지’라는 글에 보면 8번째로 “배려가 있는 좋은 교제를 유지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좋은 친구를 사귀고, 좋은 친구를 잃어버리지 말고, 서로 배려하면서 노후를 의미 있게 지내라고 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없이 홀로 지내는 사람이 치매에 걸린 확률이 많다는 것입니다.  

일전에 신세계백화점에 저의 집 사람하고 나갔는데, 물건을 사지 못하고, 저녁 식사하고 나오게 되었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나이가 많으신 할머니들이 7-8명이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할머니들이 연로하신 분들인데, 보니 다 멋쟁이시고, 건강하게 보였습니다.   저의 집사람이 할머니들에게 말을 붙였습니다.  “어르신들이 이렇게 함께 다니는 것을 보니, 정말 보기 좋아요. 다들 친구들이십니까, 지금 연세가 얼마나 되셨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원산여고 동기동창들인데, 지금 다 80이 훨씬 넘었다고 하셨습니다.  친한 친구들이 있으면 치매에 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다 멋있게 늙어가야 합니다.  친구들이 있어 좋아보였습니다. 

악성 베토벤에 대한 글을 보았는데, 베토벤은 가정부를 수십 차례나 바꿀 정도로 까다로운 성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돕는 친한 친구들은 많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멜첼 메트로놈’이라는 친구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베토벤을 위해 직접 보청기를 만들어 선물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토벤의 작곡을 돕기 위해 ‘박자 측정기’를 개발하였고, 베토벤은 이 기계의 최초 사용자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메트로놈’은 바로 이 친구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습니다. 그들의 우정만큼이나 그들의 이름도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 기억되고 있습니다. 참된 친구는 좋은 환경이나 성격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늘 아낌없이 베풀 줄 아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중국사에 있어 유명한 친구가 있습니다. 제나라의 재상이 된 관중과 그의 친구 포숙아를 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절친한 친구사이를 말할 때에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춘추전국지라는 책에 보면 관중과 포숙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포숙아를 포숙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관중과 포숙을 비교해보면 그들을 아는 동문들은 포숙을 더 알아주고, 그가 출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관중의 집은 그렇게 좋은 집안이 아니었고, 어려운 일이나 싸움이 나면 뒤에 빠지는 성격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포숙의 집안은 집안도 좋은 편이요, 싸움나면 항상 앞장서는 편이었습니다.  그런데 관중은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을 챙기는 데는 앞서는 사람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동업을 하여 장사하게 되었습니다.  포숙의 집안은 잘 살기 때문에 모든 자금은 포숙이 대었는데, 이익금을 나눌 때에는 관중이 더 가져가게 했습니다. 관중은 노모를 모시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도록 친구 포숙이 배려한 것입니다. 제나라의 환공이 즉위할 때에 포숙은 친구 관중을 재상으로 추천하였습니다.  관중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나를 낳아준 이는 어머니요, 하지만 나를 알아주는 이는 오로지 포숙뿐이라”고 했습니다. 관중의 모자람과 미숙함을 덮어주고, 감싸준 친구 포숙이 있었기에 관중은 훌륭한 재상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이란 이해하고 허물을 덮어주고, 관심을 가지고 배려하는 것입니다. 친구를 소중한 사람으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 믿음이 좋은 사람, 성실한 사람을 친구로 삼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진정한 친구,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십니까? 

잠17:17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8:24 “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고 했습니다.   잠27:17입니다.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것 같이 사람이 그의 친구의 얼굴을 빛나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함께 빛이 난다는 말입니다.  

유대인으로 랍비이신 마빈 토케이어는 탈무드를 현대인들에게 알기 쉽게 풀이하여 “몸을 굽히면 진리를 줍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책에 보면 “개와 놀면 이가 옮는다.”라는 글이 있습니다.  “오랜 친구 한 사람을 새로운 친구 열 사람보다 귀중하게 알라.   친구가 없는 사람은 한쪽 팔이 없는 인간과 같다.  철새와 같은 친구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계절이 바뀌면 날아가 버린다. 개와 놀면 이가 옮는다.”라고 했습니다. 

“오랜 친구 한 사람을 새로운 친구 열 사람보다 귀중하게 알라. 친구가 없는 사람은 한쪽 팔이 없는 인간과 같다”  탈무드에는 주옥같은 말씀들이 많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요나단은 참된 친구였습니다. 그들의 친밀한 우정을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삼상20:17)  삼상18:1에도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생명같이 사랑하였다”는 말은 몇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요나단이란 사람은 다윗의 처남이었지만, 큰 인물이었습니다. 요나단이라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 사울에게 복이었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슬피 울었습니다. 요나단을 사랑하여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데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도다”(삼하1:26)라는 애가를 불렀습니다. 예전의 개역성경에는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도다.”라고 했는데, 개정판에서는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새번역 성경은 “나의 형 요나단, 형 생각에 나의 마음이 아프오.  형이 나를 그렇게도 아껴주더니, 나를 끔찍이 아껴 주던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라고 했습니다.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진한 것이었소”라고 했습니다.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고 더하고, 더 진한 친구의 우정으로 보람 있는 인생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시고 당신의 친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보시면서 종이라고 하시면 더 마음이 편할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이 친히 친구라고 하셨지만, 친구로 불러주신 주님 앞에서 우리들이 친구답게 행동해야 하고 친구이신 주님의 얼굴을 빛나게 해야만 하는데, 어디 가서 친구라고 하지 말라고 하실 것만 같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친구로 삼아주시고,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려주셨습니다. 요15:13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반드시 십자가를 지시므로 우리를 구원하시겠다는 의지를 표명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가장 숭고한 사랑은 한 사람이 자기의 친구를 위하여 그의 목숨까지도 버리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요한복음11장에 오면서, 당신의 친구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시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감람산을 넘어 베다니라는 동리가 있는데, 이 동리에는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와 그의 누이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주님께 향유를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씻은 여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였습니다. 나사로가 죽을병에 든 것을 보면서 두 자매는 사람을 예수님에게 보내어 ‘속히 오셨으면 좋겠다.’ 하는 전갈을 보냈습니다.  “주님, 보십시오.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 앓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는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다니에 살고 있는 마르다와 그의 동생 마리아, 그리고 친구 나사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 개인적으로 친구가 있었다는 말은 인성을 가지신 예수님을 잘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진정한 친구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앓는다는 말을 들으시고도 , 계시던 곳에서 이틀이나 더 머무르셨습니다.  

이틀 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다시 유대지방으로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선생님, 방금도 유대 사람들이 선생님을 돌로 치려고 하였는데, 다시 그리로 가려고 하십니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낮은 열두 시간이나 되지 않느냐? 사람이 낮에 걸어 다니면, 햇빛이 있으므로 걸려서 넘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밤에 걸어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으므로, 걸려서 넘어진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말씀을 하시고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 내가 가서 그를 깨우겠다.”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시간을 하나님에게 맡기고, 담대하게 행동하시는 주님을 보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시러 유대인들의 돌팔매를 무릅쓰고 베다니로 나아가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친구의 어려운 사정을 들으시고, 그 문제를 해결해주시고 있습니다.  

우리의 친구에게 가장 소중한 배려는 그로 하여금 주님을 알게 하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친구가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두 사람이 다 죽었는데, 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고, 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였다고 하면, 하나님은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친구들의 영혼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진정한 친구”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탐이라는 사람은 작은 비행기 한 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절친한 친구인 ‘쿨’을 포함해서 여섯 명의 사람들과 함께 경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쯤 날아 인적이 드문 해협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이제 30분만 더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문득 계기판을 바라본 탐은 기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딘가 기름이 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 사실에 사람들은 아연실색했습니다.  탐은 침착한 모습으로 그들을 안심시켰습니다. “낙하산이 있으니까 괜찮아.” 라고 했습니다. 

탐은 조종간을 둘도 없는 친구 쿨에게 넘기고는 비행기 뒤쪽에서 낙하산을 꺼내어 가지고 와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 쿨 옆에도 낙하산이 든 가방을 놓아두었습니다. 탐은 말했습니다.  “쿨, 자넨 내게 둘도 없는 친구야. 내가 다섯 명과 함께 먼저 뛰어내릴게. 자넨 비행기를 조종하다가 마지막으로 뛰어내리게.” 그리고는 탐은 사람들과 함께 뛰어내렸습니다. 

쿨은 조금 더 날아가다가 그도 뛰어내리기 위해 한 손으로는 조종간을 꼭 쥐고 다른 한 손으로 낙하산이 든 가방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가방 안에는 낙하산은 없고, 대신 탐의 낡은 옷가지들이 들어있었다. 쿨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습니다. 이대로라면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얼마나 갔을까 비행기는 바다를 향해 곤두박질치기 시작했고, 쿨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눈앞에 해안선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까?  쿨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조종간을 잡아당겼고, 비행기는 해변 쪽으로 얕은 바다에 떨어졌습니다. 낡은 옷이 든 낙하산 가방을 들고 고향으로 돌아온 쿨은 제일 먼저 탐의 집으로 가서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습니다.  “탐! 이 나쁜 자식! 배신자 같으니! 어서 나와!” 탐의 아내와 세 아이들이 놀라 뛰쳐나와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습니다. 쿨은 씩씩거리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였고, 낙하산 가방을 내밀며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보세요, 이걸 주면서 나를 속였다고요! 그 놈은 내가 살아있을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늘이 도왔기에 망정이지!”,   
“쿨, 그이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탐의 아내는 가방 안을 살펴보더니 한 장의 쪽지를 발견하였고, 그것을 읽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삐뚤삐뚤하게 쓰여 있었지만 탐의 필체가 분명했습니다.  

“쿨, 내 소중한 친구! 지금 저 아래에는 상어가 득실거리고 있어. 지금 뛰어내린다 해도 살 가망이 없어. 이대로 가다가는 이 많은 사람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추락하고 말 거야. 나는 이제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뛰어내릴 거야. 그러면 비행기가 지금보다 가벼워져 조금 더 날아갈 수 있겠지. 마음 단단히 먹어! 그럼 행운을 비네!” 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를 살리고 바다에 뛰어 내려 상어밥이 된 친구의 사연이었습니다.   
“삶이 가져다 준 위대한 선물, 친구”라는 글이었습니다.  거는 그 사연을 읽고, 가슴이 찡하는 감동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당신의 친구 나사로의 죽음 앞에 한없이 슬피 울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사로야 나오너라.”고 무덤에서 불러내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가 멸망으로 치닫고 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친구라고 불러주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랑하는 친구들을 죽음의 골짜기에서 불러내어, 함께 주님을 위하여 일하다가 함께 천국에 들어가야겠습니다.  

여러분 산다는 것을 “Live”라고 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Love”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원은 같다고 합니다.  인간이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사랑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가장 사랑할 대상은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산다는 말은 사랑하며 살아야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가지고 우리의 친구를 깨우러 가시기를 바랍니다. 이 시간 여러 친구들 중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한 친구를 생각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친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의 구원은 여러분의 전도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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