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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 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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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신 8:11~18)


[삶으로 경제위기를 맛보며 사는 시대]

미국 발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있기 전 여러 해 전입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어느 교우 가정 심방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파는 교우신데, 그 분이 그러셨습니다. “목사님, 어떤 날은 하루 만원어치 파는 날도 있습니다.” 새벽에 나가서 온 종일 장사해서, 옷 한 장 파는 날도 있으니, 그 장사가 되는 장사가 아니지요. 늘 잠이 부족합니다. 밤낮이 바뀐 생활 얼마나 힘듭니까? 남편 모르게 빚도 많이 졌습니다. 빚이 있는 건 알지만, 그렇게 많은 줄 남편이 모른다고 합니다. 얼굴이 푸석푸석합니다. 

희망적이었던 것은, 경제적인 위기에 남대문에서 같이 동업하고 있던 예수 믿지 않던 자기 언니를 데리고 교회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주일마다 예배 후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때 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일밖에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저들이 살려고 하나님께 찾아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하나님 되어 주옵소서.” 교우들 중에도, 이에 못지않은 아픔을 가지고 계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저는, 경제를 잘 모릅니다. 요즘 보니, 경제전문가들도 경제전망을 못한다고 합니다. 법칙이라는 것은, 법이 통할 때 통하는 것이지요. 이미 세계경제는 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경제법칙이 통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백약이 무익하다 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였던 J. K. Galbraith는 이미 1970년 대 중반에 오늘의 경제사회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 The Age of Uncerrtainty」라고 진단한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경제의 價値不在, 哲學의 不在 때문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경제의 법칙을 잃어버렸고, 무시하기 때문에, 경제법칙이 통할 리가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21세기 현대사회를 이해하는 두 가지 키 워드(Key-Word)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입니다(심지어 북한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입니다. 

지나간 20세기에 이미 K. Marx(1918-83)나 Lenin(1870-1924)이 주창하던 공산주의는 실패한 경제이론이 되고 말았습니다. 단순비교만 한다면,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라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에 와서 자본주의 역시, 깊은 위기의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시대, 이미 지났습니다). 빈부격차의 문제, 기아의 문제, 천민자본주의 문제, 더 위험한 문제는 맘몬이즘(Mammonism)입니다. 황금만능주의, 물질지상주의입니다. 돈이 신(物神 Mammon)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물질이 인간의 생각과 행동, 삶을 모두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위기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불변하는 삶의 진리, 역사의 진리, 온 인류가 죽지 않고 사는 길이 무엇인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명기는 토라(유대인들은 모세오경을 토라!)의 제일 마지막 책입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광야 40년을 이끈 모세가,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그의 나이 120세가 되었을 때), 가나안 서쪽 모압 평지에서 한 마지막 설교입니다.

430년간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이 모세의 지도아래 탈출합니다. 해방을 맞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광야 40년을 보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지역에서 그들을 집중적으로 훈련하시고 말씀하셨습니다.

(1) 시내산입니다. 시내산에서는 약 1년을 보냅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은, 율법말씀을 주셨습니다. 성막을 짓게 합니다. 십계명과 온갖 규례와 법도를 배우게 하셨습니다. 

(2) 바란 광야 북단에 위치한 가데스 바네아입니다. 여기서는 무려 37년을 보내었습니다. 12정탐꾼 사건 때문에(불신앙, 메뚜기 정체성 때문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37년이라는 세월을 가데스 바네아에서 맴돕니다(낭비,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까지는 느린 걸음으로도 열흘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집트에서 나온 20세 이상 되는 모든 1세대들이 다 죽어 장사지냅니다. 이집트에서 나온 20세 이하 사람들과 광야에서 태어난 2세들, 여호수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습니까?

(3) 모압 평지입니다. 가나안 서쪽지역 모압 사람들이 사는 땅입니다.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얻기 전에 마지막으로 모입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에게 다시(再次) 하나님의 율법 말씀을 듣고, 교육받습니다. 

본문은, 모압 평지에서 한 모세의 설교 중 하나입니다. 모세는, 자신은 들어가지도 못하는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신명기 말씀의 핵심은, 이스라엘 백성들, 나아가 온 인류가 죽지 않고 사는 길, 하나님께 복 받고 사는 길, 생명의 길, 구원의 길이 무엇인가를 선포하는 데 있습니다. 본문은,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소극적인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언제 염려가 된다는 것입니까? 경제적으로 부요하게 되었을 때입니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 12-14).

(2) 적극적인 말씀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신 8, 18상). 어느 때도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하십니까? 문맥상으로 보면, 명확합니다. 경제적으로 풍요하게 되었을 때에도, 네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닙니다. 21세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경제적인 부요함이, 대단히 위험한 삶의 위기요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오늘의 세계 환경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부요하게 사는 나라나 국민들을 보면, 그들의 삶의 기준과 신앙이 하나님이 아니라, 물질입니다. 바로 여기에 위기의 요인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어가서 살게 될 가나안 땅이 어떤 땅입니까?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땅입니다. 풍요와 多産의 神인 바알을 섬기는 세속문화, 종교를 가진 도시국가입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유목민들이 아니라 농사를 짓고 사는 정착민들입니다. 이들은 풍요와 다산을 위해서, 바알(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풍요와 다산을 위한 바알 종교의 핵심은, 음란함에 있습니다. 자식을 제물로 드립니다. 그런 후에, 바알제단에서 일하는 종교창기들(남창, 여창)과 백성들이 음란한 행위를 합니다. 그래야, 바알 神이 감동을 받아서 그 해 농사의 풍요와 다산을 허락해준다는 신앙을 가진 종교입니다. 

모세의 설교를 듣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앞, 가나안 땅이 바로 이런 세속문화, 종교, 하나님 없는 죄악들이 가득한 땅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땅에 들어가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염려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사는 21세기 자본주의사회도, 가나안 땅의 바알종교나 세속문화와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시대의 천민자본주의가 바로 현대적 바알종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이 시대의 세속문화에 대한 태도문제]

휘튼대학의 교수였던 Robert E. Webber는 'The Secular Saint, 기독교문화관'라는 책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 시대 문화에 대하여 3가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 분리적인 모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의 문화(가치) 중, 수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을 때, 세속문화에 대하여 분리적인 입장을 가져야 합니다. 모압 평지에서 마지막 설교를 하고 있는 모세는, 이런 신앙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바로 궁중에서 바로의 아들로 장성했을 때, 나이 40이 되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였다”(그 이유가 뭡니까? 히브리인,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기의 정체성 때문; 히 11, 24). 자기 부인, 자기 내려놓음입니다.

(2) 동일시 모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 문화 속에서 동일시 모델의 대상을 바로 찾는 자이어야 합니다. 모세는, 자기를 동일시하는 대상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나타낸 사람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히 11, 25상). 모세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인들과 자신을 동일시했습니다.

(3) 변혁모델입니다. 모세의 믿음은 여기에서도 나타납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受侮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 25-26). 분리모델, 동일시 모델에서 그치지 아니했습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430년 간 바로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인들을 끌어내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召命에, 자기 인생을 다 던졌습니다. 역사변혁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자본주의라는 이 시대의 거대한 물결을 거스르며 산다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시대의 가치는, 물질만능주의입니다. 성공의 척도가 돈입니다. 좋은 직업의 기준도 돈 많이 버는 직장입니다. 사람의 인격까지도 물질로 판단합니다(어디를 가도 그런 대우 받습니다). 이런 시대가치를 거슬러서 하나님의 자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부름 받은 召命을 따라서 꿋꿋하게 살아간다는 것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가난하게 살아도 당당함을 잃지 않는 믿음, 혹 부요하게 살아도 내가 가진 부와 재물,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쓰겠습니다, 언제든지 내어 놓을 수 있는 믿음, 그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사는” 삶이요, 믿음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낭비적인 소비 줄이고, 창조적인 투자를 해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실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수도사처럼 淸貧한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과소비와 낭비를 줄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부와 재물, 재능, 자연을 창조적으로 경영하고 다스리며 살아야 합니다. 경제적인 번영과 부요와 편리함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세속가치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 세계 인구의 절반은 굶주림에 처해 있습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의하면 20년 전인 1980년대 중반에, 이미 당시의 농업생산력으로도 지구는 120억 인구가 거뜬히 먹고 살 수 있는 농산물이 생산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세계 인구의 절반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부자 나라 사람들의 지나친 욕심 때문입니다. 부자나라들이 주로 어떤 나라들입니까? 대체로 기독교를 일찍 받아들인, 제1세계 선진 국가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미 식량을 무기화 한 지 오랩니다. 이는, 죄악입니다.

지나간 20세기는 지나친 부와 사치, 낭비로 하나님 주신 자연생태계가 집중적으로 파괴되어버린 세기입니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신학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1985년도에 독일신학자 J. Moltmann이 󰡔창조세계 안에 계신 하나님󰡕이란 책을 내면서부터, 늦었지만 창조세계에 대한 새로운 신학적인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지 않고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창조주 하나님)으로 올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세계의 保全없이는, 올바른 다스림 없이는, 인간의 생명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와 자연생태계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미래학자들에 의하면, 앞으로 인류는 100억에 이를 것이라고 합니다(65억). 문제는, 100억 인구가 모두, 현재 소위 선진국에 해당되는 8억 명의 사람들처럼 부요하고, 풍요롭게 살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지구는 엄청난 소유욕과 자원낭비에 병듭니다. 절대적인 에너지 위기의 시대가 도래합니다(그와 더불어 급속한 환경위기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이미 인류는, 지나간 20세기에, 특히 부요한 나라와 국민들의 과소비와 자원낭비로, 아직까지도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제3세계 국가의 사람들과, 우리 손자손녀들, 다음 세대들이 써야 할 몫까지, 우리가 지나치고 써 버린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人類 歷史上 최초로 우리의 핏줄인 後孫들과 제3세계국가 사람들에게 아무런 보호본능도, 책임감도, 느끼지 못하는 세대가 되어버렸습니다. 우리의 부끄러운 자화상이요, 죄악입니다.

20세기에, 부자 국가인 제1세계국가들이 自然이 500,000일(일 년 365일) 1,369년이란 시간을 거치면서 만들어 놓은 분량의 석탄과 석유, 천연가스, 우라늄을, 단 하루 만에 소비해버리는 엄청난 과오를 범했습니다. 우리들이 이미, 그만큼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며 살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물질만능주의, 풍요주의, 소비지향적인 삶, 맘몬이즘은,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불신앙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죄악입니다. 하나님 명령을 거역하는 죄악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하나님의 창조질서대로 다스리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 1, 28).

모세는,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씀합니다. “네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기억하고 사는 사람은 망하지 않습니다. 복을 받습니다. 복의 근원이 됩니다. 이 말씀의 복이 우리의 것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자비하신 하나님, 풍요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물질과 돈과 성공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죄악을 범했습니다. 우리 삶의 절망이, 더 많은 물질과 재물을 얻지 못함이 아니라, 세상적인 성공을 하지 못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말씀이 생명과 구원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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