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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말씀을 받는 자세 (계 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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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말씀을 받는 자세 (계 1:1~3)
 

1. 요한계시록을 받을 준비

1) 준비의 중요성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였던 토스카니니(1869∼1957)는 원래 첼로 연주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불행하게도 아주 심한 근시여서 잘 보지를 못했습니다. 관현악단의 일원으로 연주를 할 때마다 앞에 놓인 악보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늘 미리 외워서 연주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연주회 직전에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그 많은 오케스트라의 단원들 중에 곡을 전부 암기하여 외우고 있던 사람은 오직 토스카니니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임시 지휘자로 발탁되어 지휘대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때가 세계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탄생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모든 것에는 준비가 필수적입니다. 성공은 준비된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어쩌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성공을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준비된 자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요. 이것은 마치 어떤 운동을 하기 전에 준비 운동을 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준비운동이 잘 안되면 쉽게 다치기도 하구요, 운동 후 피로도도 더하고, 회복도 잘 안 됩니다. 운동만이 아닙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반드시 준비가 필요합니다.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아야 하고, 선원이 되기 위해서는 뱃사람으로서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무튼 어떤 일이든 사전에 준비가 많고 충분할수록 좋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입니다. 


2) 사도 요한이 부탁하는 준비

오늘 본문은 <요한계시록>의 시작 부분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름 그대로 “계시”의 말씀입니다. “계시”란 성경 원어로 “아포칼륍시스(αποκά́λυψις)”라고 하는데요. 이 말은 ‘덮개를 벗기다, 드러내다, 폭로하다’에서 유래했으며, ‘덮개를 벗김, 전에 감추어져 있던 것을 나타냄’이란 의미와 더불어 ‘폭로, 드러냄, 벌거벗김, 계시’를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일반 헬라어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주로 기독교에서 종교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의미는 말씀드린 대로 감추어져 있던 것을 드러내고, 쉽게 알 수 없는 것을 알려주고, 미래의 것을 미리 가르친다는 의미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 때문에 계시는 상징적인 표현이 많으며, 그리고 종말론적인 의미를 가진 용어나 표현들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당대나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이나 해석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죠. 물론, 본문이 말하는 이 ‘계시’라는 것은 새롭게 주어지는 것이나 전혀 예상치 못했던 어떤 것을 말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있던 것이지만, 덮개나 뚜껑이 덮이거나 닫혀있어 볼 수 없었던 것, 혹은 보자기에 싸여 있어 그 내용물을 볼 수 없었던 것을 이제는 보여준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요한계시록은 이미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 있던 일에 관한 것이라는 말씀이고요, 또 지금까지는 뭔가에 가려진 듯 볼 수 없었고 알 수 없었던 것을, 이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구체적이고 선명하게 볼 수 있고 알 수 있게 만들어 주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덮여 있던 ‘지금과 장차 될 일’을 열어서 보여주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계시’라고 말합니다. 즉 지금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볼 수 없고 알 수 없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보게 하고 알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이지요. 또 장차 될 일에 대해서도 그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면서 우리에게 알게 해주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지금의 일과 장차 될 일에 관한 정보도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또한 모든 신령한 복들과 이 땅의 것들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우리에게 전달됩니다. 

오늘 본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또한 땅의 것들과 신령한 것들, 지금의 것들과 장차의 것들 역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전달되어 집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현재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계시들이 참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마호멧의 계시, 요셉 스미스의 몰몬경, 천부경, 가끔씩 신문에 오르내리는 하늘의 계시 어쩌고 하는 것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았기 때문에 가짜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모든 것을 우리에게 전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성도와 교회에게 주시는 위대한 계시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그 전에 아주 중요한 당부를 하나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독자들에게 계시를 받을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즉 <요한계시록>이라는 위대한 주님의 말씀, 즉 지금은 가려져 있어 쉽게 알 수 없고, 또 현재로서는 알 수 없는 장차 될 일을 알려주시는 계시의 말씀은 어렵고 신비하고 복잡한 것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 말씀을 받을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계시록을 받을 자의 준비 자세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을 받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즉 오늘 본문은 좁게는 요한계시록을 받는 가장 좋은 자세에 관한 것이요, 넓게는 주님의 말씀 전체를 받는 가장 좋은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말씀을 받는 가장 좋은 자세는 어떤 자세일까요? 


2. 말씀을 받는 자세

1) 읽어라!

주님의 말씀을 받는 첫 번째 자세는 “읽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읽는다”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하냐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 ‘읽는다’는 말은 한글의 ‘읽는다’는 말과는 조금 다른 말입니다. 

❶ 본문에서 읽는다는 것은 말씀을 반복적으로 읽어 그것을 제대로 알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즉 바르게 알 때까지 읽기를 반복한다는 뜻입니다. 세계적인 작가 마크 트웨인은 미국 플로리다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2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인쇄소에서 일했습니다. 그는 일을 하면서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여 틈틈이 책을 읽었습니다.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던 그에게 우연히 종이 한 장이 바람에 날려 왔습니다. 그것은 유명한 <잔 다르크 전기>의 일부였는데요. 이것은 그에게 큰 호기심을 불러 일으켜 그 낱장을 반복하여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잔 다르크에 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해서 읽기를 반복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는 <잔 다르크의 회상>이라는 책을 쓰게 되었고, 이 책으로써 인쇄공 마크 트웨인은 작가 마크 트웨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한 권의 책, 그것도 뜯겨 버려진 낱장 하나, 그리고 그 하나를 읽고 또 읽은 것이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만든 것입니다. 본문의 “읽는다”는 말은 이렇게 반복하여 읽는다는 의미입니다. 

❷ 그런데요, 이 “읽는다”는 말은 성경 원어로 볼 때, 조금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이 말의 성경 원어는 “아나기노스코(αναγινωσκω)”입니다. 이 단어 속에는 '기노스코(γινωσκω)', 즉 '알다'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성경이 말하는 이 ‘안다’는 말의 의미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동안 제가 여러 차례 여러분들에게 소개했지 않습니까? ‘안다’는 것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아온 부부가 자신의 배우자를 실제 생활 속에서 경험을 통하여 인격적이고 육체적이며 영적으로 아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본문의 ‘읽는다’는 말은 여러분이 주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실제 생활에서 그대로 경험하여 안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성경을 읽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겠습니까? “읽는다”는 말이 이렇게 중요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받을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잘 읽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읽어 그것을 여러분의 생활에서 체험하는 것이 진정한 “읽음”입니다. 여러분들도 본문이 말하는 이런 의미로서 주님의 말씀을 읽어 그것을 여러분의 삶에서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들으라!

성경 말씀을 받는 두 번째 자세는 “듣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첫 번째 “읽다”에 관한 설명을 들으면서 ‘단순히 읽는 것이 아니구나’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대로 이 ‘듣는다’는 것 역시 단순히 ‘듣는 것’ 그 이상의 의미입니다. 

❶ 훌륭한 신앙인은 잘 듣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께 대하여 잘 듣는 사람이며, 또한 이웃의 말을 충분히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신앙인입니다. 남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말만 많이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 아닐 뿐 더러 좋은 신앙인도 아닙니다. 외국어를 배우는 가장 우선적인 방법도 소위 “귀가 열리는 것”이지 않습니까? 즉 들을 때 비로소 말문도 트인다는 말입니다.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반드시 잘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또한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듣는 것뿐 아니라 이해한다는 의미입니다. 들으면서 그 사람과 그 사람이 전하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잘 들음입니다. 이렇게 잘 듣는 사람은 말을 잘 할 수 있고, 잘 살 수 있고, 다른 사람들과 가장 좋은 관계 속에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잘 들어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우선이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우선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❷ 그런데,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잘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들은 것을 삶으로 실천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들음”이라고 말합니다. 이 ‘듣는다’는 말의 성경 원어는 "아쿠오(ακουω)"인데요. 이 말은 듣고 그에 따라 바른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뜻합니다. 이러한 의미 때문에 성경 다른 곳에서는 이 '듣다'는 말, 즉 성경 원어로 '아쿠오'를 ‘청종하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청종하다'가 무슨 뜻입니까? 들을 청(聽), 좇을 종(從), 즉 ‘이르는 대로 잘 들어 따름’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대하는 성도의 바른 자세는 듣기만하는 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들은 말씀의 내용대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논어>에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즉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이 “습(習)”이라는 말을 복습의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습'의 뜻은 그 글자의 모양이 나타내고 있듯이 '실천'의 의미입니다. 부리가 하얀(白) 어린 새가 날갯짓(羽)을 하는 모양입니다. 즉 이것은 반복적인 실천의 의미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배운 것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한 기쁨이라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실천이 없는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아는 것이 천하를 덮을 만큼 많다고 해도 실행이 되지 않으면 털끝만큼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이 되는 것입니다. 말만 많았지 실천은 조금도 하지 않는 사람의 가벼움은 인생의 작은 바람에도 쉽게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행동으로 옮겨야 성과를 거두고, 멋진 말도 행동이 뒤따라야 빛이 납니다.

성도 여러분, 지난 주 제 설교가 인내에 관한 것이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인내라는 말씀을 들었다면 잘 듣는 자세는 무엇입니까? 설교 시간에 졸지 않고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들은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여 그 말씀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대로 한다면, 여러분은 지난주일 “인내”에 관한 말씀을 들으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생활 현장에서 인내하기 위하여 얼마나 씨름을 하셨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듣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들음”입니다.


3) 지켜라!

오늘 본문이 말하는 말씀을 받는 세 번째 자세는 “지키라”입니다. 

❶ 이 “지킨다”는 말의 일차적인 의미는 ‘들은 말씀이 자신의 영혼과 머리와 생활에 그대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로 ‘preserve’라고 하는데요. 이 말의 뜻은 ‘마음에 간직하다’, ‘잊지 않다’, ‘간수해 두다’, ‘저장하다’입니다. 이 말에서 저수지라는 단어도 나왔지요. 즉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말씀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과 인격과 생활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을 뜻합니다. 2주 전 사역자 훈련을 하면서 제가 물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주일날 들은 말씀을 며칠 동안이나 간직하고 계십니까?” 며칠을 간직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어떤 설교는 제가 우리 교회 온 초창기에 한 설교임에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혜롭게 제 질문을 피해 갔지만 나쁘지만 않았지요. 아무튼 오늘 본문이 말하는 “지킨다”는 말씀의 의미는 여러분이 그 말씀을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❷ 그리고 이 “지킨다”는 말이 가진 또 다른 의미는 ‘준수한다, 실천한다’는 뜻입니다. 즉 말씀을 그냥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대로 삶에서 실천한다는 것입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던 전장에서 그 날의 전투가 끝나자, 지휘관이 그날의 전투 상황에 대해 장교들과 함께 평가를 하고 있었습니다. 지휘관이 물었습니다. “어느 군인이 가장 탁월한 군인이었는지 생각들을 말해보세요.” 어느 장교는 가장 탁월한 군인은 그날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군인’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장교들은 ‘이 군인’, ‘저 군인’ 자기 나름대로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그러자 지휘관은 말했습니다. “아니오. 여러분 모두가 다 틀렸어요. 오늘 전장에서의 최고의 병사는 적을 죽이려고 칼을 들어 막 내리치려는 순간 퇴각 나팔 소리를 듣고 적을 치지 않고 팔을 내리고 나팔 소리대로 후퇴한 군인입니다. 지휘관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복종한 것이 가장 고귀한 일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바로 이 “순종”이라는 것을 알고 계시죠? 사무엘상 15장 22절에서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는 것보다 여호와께서 번제물과 희생제물을 더 기뻐하시겠느냐? 보라 순종하는 것이 희생제물보다 낫고 말을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라”고 말했습니다. 단 한 번의 순종이 몇 마리의 양이나 소보다 더 크고 좋은 제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을 심령에 잘 간직하고, 그것을 실천함으로서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말씀을 잘 받은 자의 복

오늘 본문은 이런 자세로 말씀을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기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성경 원어로 보면 약간 차이가 납니다. ‘복이 있도다, 읽는 자들이여!’, ‘복이 있도다, 듣는 자들이여!’, ‘복이 있도다, 지키는 자들이여!’ 물론 ‘복이 있도다’는 말은 제일 앞에 한 번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복이 있도다!”가 세 가지 다에 해당된다는 말씀입니다. 즉 말씀을 읽고 그것을 경험하여 알아가는 사람,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 그리고 말씀을 간직하고 그 말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은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복은 어떤 복일까요? 이 복은 성경원어로 “마카리오스(μακάριος)”라고 합니다. 그 의미는 기본적으로 ‘행복한’이고, '일상적인 염려와 걱정들로부터 놓여 자유하는'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행복은 사람이 살면서 만나는 여러 가지 염려와 걱정이 전혀 없는 ‘걱정 free, 염려 free’의 상태라는 말입니다. 즉 복이란 염려 걱정 근심이 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특별히 헬라 문화권에서는 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진 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신들의 행복'을 뜻했습니다. 즉 본문이 말하는 복은 ‘신들이 가진 행복’, ‘신들의 상태, 또는 신들의 행복한 실존을 함께 나누는 자들의 상태’를 뜻하는 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이 말씀을 바른 자세로 받는 사람들에게 약속하는 복이 무엇입니까? 신들의 행복, 즉 하나님의 행복을 맛보면서 사는 것이며, 하나님이 누리시는 행복에 여러분도 함께 머물게 된다는 뜻입니다. 성도 여러분! 주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받는 이들을 위하여 약속하신 복이 얼마나 놀랍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이러한 복을 누리고 있으신가요? 이미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실존과 하나님의 복을 함께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지금까지 누리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바르게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제대로만 받았다면, 신령한 영적인 복과 장차 누릴 천국의 복 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안전과 경제적인 필요와 건강의 복들까지도 누렸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계시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성도 여러분들이 복을 받으실 수 있도록 ‘복 받을 준비’를 시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복에 대한 온갖 약속이 성경 속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 복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했을까요?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에 우리 모두 솔직하게 시인합시다. 우리 삶에 이러한 복이 없었던 원인은 말씀을 읽고 그대로 경험하여 알아가는 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씀을 간직하고서 그 말씀이 우리 삶 속에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기까지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그렇지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이 복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말씀을 읽는 일과 듣는 일과 지키는 일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 만큼 확실한 투자도 없습니다.


4. 성경말씀만 잘 받아도 복이 온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의 종 사도 요한에게와 당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계시의 말씀입니다. 그 계시의 말씀의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계시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시키는 것이 오늘 본문이지요. 이러한 오늘 본문은 단순히 계시의 말씀을 받을 준비만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모든 성경 말씀을 받는 자세에 관한 것이고, 말씀을 제대로 받기만 한다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복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는가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더 여러분에게 당부 드립니다. 주님의 말씀을 잘 읽고 그 말씀을 경험하여 알아 가십시오.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십시오. 말씀을 잘 간직하여 그 말씀이 여러분의 영혼과 인격과 삶을 움직이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상상치 못한 놀라운 주님의 복들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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