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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도의 사명 (골 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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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사명 (골 4:5~6)


사람은 사명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명이 끝나면 인생의 막이 내려갑니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사명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비록 배운 것이 부족하더라도, 비록 경제적으로 가난한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비록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자랑거리가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다면 나는 사명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목회의 길을 가는 사람이나 선교사로 헌신하는 사람들을 사명자라고 말하는데 맞는 말입니다. 그들은 사명자입니다. 하지만 그들만 사명자가 아닙니다. 목회 사명, 선교 사명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사람들마다 생김새가 다른 것처럼 사명도 다른 것입니다. 정말 행복한 인생, 성공한 인생은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고 하루를 살아도 사명대로 사는 것입니다. 불행한 인생, 실패한 인생은 돈이 없고, 재주가 없고, 명예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사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자신의 길이 아닌 남의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남의 길을 가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진정한 성공자, 진정한 행복자는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진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전도의 사명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전도자입니다. 내가 성령을 받았다면 나는 전도자인 것입니다. 

전도의 방법과 대상은 다양합니다. 밥퍼전도, 노방전도, 극빈자전도, 학원선교, 어린이전도, 청소년전도, 노인전도, 외국인근로자전도, 전과자전도, 교도소전도, 기도전도, 능력전도 등등 다양한 전도의 대상과 방법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부르심과 달란트를 따라 전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붙여주시는 사람들을 전도해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운명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내가 암이나 에이즈의 치료법을 알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수 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밀로 숨기고 있다면,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인간의 수명을 50년이나 연장할 수 있는 비결을 알고 있다면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싶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을 좌우할 이 귀한 소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서둘러 전해야 합니다. 내가 그들을 사랑한다면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도전을 받아야 할 내용은 함께 전도하자는 것입니다. 이 전도의 사명은 개별과제가 아닙니다.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감당하자”고 주신 사명입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 모두 함께 감당하라”고 주신 사명이 전도사명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후에 주님과 함께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전도를 내보내실 때도 둘씩 짝을 지어서 전도하게 하셨습니다. 

전도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입니다.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전략도 필요합니다. 마 10:16에 보면 주님께서 전도를 나가는 제자들에게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릭워렌의 [공동체를 세우는 삶]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지혜로운 전도 전략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1. 계획성 있게 전도합시다. 

우선은 예수를 믿지 않는 우리 주변 사람들의 영원한 운명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그들의 영혼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기 위하여 애써 시간을 투자하거나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하나님이 가장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영혼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로마에 가면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로마로 향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에 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얻고 로마를 통해서 세계의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얻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고 말했습니다. 

골 4:5, 6에서 바울은 우리가 불신자들을 계획성 있게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는 네 가지 방법을 제시합니다. 

첫째,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지혜롭게 행동하라고 말합니다. 내가 행동하고 말하는 것이 예수님에 대해서 긍정적인 증거, 또는 부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면 나를 면밀히 살핍니다. 그들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어합니다. 전에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 이런 예화를 들은 기억이 납니다. 목사님이 버스를 타고 있었습니다. 만원버스에 두 자리가 났습니다. 자리가 나면 그 자리 앞에 앉아있던 사람이 앉는 것이 상식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뒤쪽에서 손가방을 집어던지더니 날아와서 앉더랍니다. 그리고 옆 자리에 자기 가방을 놓고는 다른 사람에게 빨리 오라고 손짓하면서 “집사님! 빨리 와서 앉아” 하더랍니다. 곁에서 지켜보던 목사님 얼굴이 빨개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비리에 대해서는 잠잠하던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비리를 저지르면 지나칠 정도로 비난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싶어 합니다. 실망스럽거나 짜증스러운 일이 생길 때, 일이 계획대로 잘 진행되지 않을 때, 특별히 인간관계의 문제가 생겼을 때, 이러한 상황들을 믿는 자들이 어떻게 대처해 나가는지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날 때 지혜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둘째, 바울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내 삶속에서 역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를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나에게 날마다 주시는 기회들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매일 대화를 나누면 주변 사람들의 영적인 필요에 민감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셋째, 바울은 항상 친절하고 상냥하게 말하라고 합니다. 전도는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논쟁을 통해서는 결코 사람들을 하나님의 가족이 되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말로 상대를 이긴다 하더라도 논쟁적이고 거친 말투로는 사람들의 영혼을 얻을 수 없습니다. 아덴에서 사도바울은 철학적인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철학자들에게도 ‘말쟁이’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논쟁에서 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사도의 전도여행지 중에 가장 열매가 적었던 곳이 아덴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을 느낄 때 하나님에게로 이끌립니다. 그러므로 따뜻하고 정중한 태도를 취하십시오.

넷째, 바울은 누구에게든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기독교 복음에 대한 이해와 믿음이 중요합니다. 베드로사도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라”(벧전 3:15)고 말합니다. 합당한 대답을 하기 위해서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과 친밀한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아닌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말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전도 내보내시면서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 지혜와 지식의 영이십니다. 성령의 감동을 따라 말한다면 그는 지혜로운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소그룹을 통해서 함께 전도합시다.

전도는 팀 사역입니다. 그래서 ‘혼자’보다는 ‘함께’가 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전 4:9)고 말씀합니다. 우리의 셀가족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닙니다. 반드시 있어야 할 절대적인 존재들입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온 친구들을 생각해봅시다. 혼자서는 병상을 들 수 없었지만, 4명이서는 쉽게 들 수 있었습니다. 소그룹 동역자들과 함께 전도합시다. 예수님께서도 12명의 제자들과 함께 전도하셨습니다. 제자들을 보내실 때도 둘씩 짝지어서 보내셨습니다. 바울도 팀으로 전도했습니다. 

소그룹 안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함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전도대상자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개인적으로 기도할 때도 셀가족들의 전도대상자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바울이 전도할 때 주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열어주셔서 복음을 받아드리게 하신 것처럼 전도대상자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하십시오, 

전도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을 초대하십시오. 함께 식사하거나 차를 마시거나 함께 취미생활을 하면서 다른 셀가족들 하고도 교제하게 하십시오. 전도대상자를 도울 일이 있다면 함께 도우십시오. 함께 전도할 때 불신의 여리고성은 더 쉽게 무너질 것입니다. 


3. 대접함으로써 전도합시다.

대접하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성경은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롬 12:13)고 말씀합니다. 

기독교 신앙의 특징은 주고, 베풀고, 대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주면 내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더욱 풍성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잠 11:24, 25을 보면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고 말씀합니다. 

형편 때문에 대접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대접할 조건이 안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물질을 주는 것만이 대접이 아닙니다. 외로운 이들을 집에 초청하는 것도 대접입니다. 슬픈 사람, 외로운 사람, 억울한 사람, 답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대접하는 것입니다. 대접의 하이라이트는 마음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밥 못 먹는 사람보다는 마음을 주고받을 상대가 없는 사람이 더 많습니다. 제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 저에게 가장 감동을 주었던 친구는 병원비에 보태라고 돈을 주는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감자 부침개를 해온 친구였습니다. 

우선적으로 대접할 사람은 소외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먼 자, 억눌린 자를 돌보아 주셨습니다(눅 4:18). 우리도 예수님처럼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들을 우리의 소그룹에 초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셀모임을 집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소외된 이웃에게 필요한 것은 구제품이 아니라, 구원의 복음입니다. 사회보장제도만이 아니라, 사람냄새입니다. 우리가 그들에게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들고 나가 삶의 치유자가 됩시다. 


4. 받아들임으로써 전도합시다.

받아들이는 것은 용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용납하기 힘든 사람을 볼 때마다,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직 죄인일 때, 사랑하셨습니다(롬 5:8).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용납해야 합니다. 그들의 죄를 용납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우리처럼 되기 전에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편협한 생각을 버려야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친구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죄를 보기 전에 그들이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지음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용납할 수 없었던 사람들을 예수님은 용납하시고 받아드리셨습니다. 마 9장에 보면 주님께서 마태를 부르십니다. 마태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의 집에서 들어가서 앉아 음식을 잡수십니다.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앉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광경을 보고는 주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마음이 넓은 사람이 많은 사람을 받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실개천 보다는 강이 더 많은 것을 받아드리고 강보다는 바다가 더 많은 것을 받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행복하려면 부모가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부모에게 용납되어지는 자녀는 행복합니다.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건강한 정신을 갖습니다. 자녀는 용납하는 부모의 품에 안기게 됩니다. 부모가 자녀를 용납하지 못하면 자녀는 사랑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하지 못합니다. 자존감이 낮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합니다. 그런 자녀는 부모의 품에 안기지 않습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용납해주지 못하는 교회에 올수가 없습니다. 나의 어떤 잘못도 용서하고 나를 용납해주는 교회에 사람들은 오는 것입니다. 


5. 우정을 쌓음으로써 전도합시다.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출발점은 우정을 쌓는 것입니다. 복음 증거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의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자주장사 루디아가 변화되어 예수를 믿고 자기 집을 빌립보 교회로 내어주었던 것은 루디아의 마음 열렸기 때문입니다. 

우정을 쌓기 위해서는 먼저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거대한 벽이 있습니다. 벽을 사이에 둔 채 복음을 외치면 목만 아플 뿐입니다. 먼저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공통점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21)고 말씀합니다. 공통점을 찾는 것은 곧 친밀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 대화하실 때 “물을 좀 달라”는 공통주제로 대화를 여셨습니다. 

우정을 쌓으려면 공손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안 됩니다. 어떤 사람도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족끼리도 부드럽게 말하는 훈련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벽을 허물게 되고 사랑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할 때면 늘 상대를 찌르는 말만 하는 고슴도치 같은 사람 주의에는 사람들이 모이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가까이 가면 찔리는데 누가 가까이 가겠습니까? 

또한 우정을 쌓으려면 자주 만나야 합니다. 자주 만나면 정이 듭니다. 만나지 않았는데 우정이 쌓이는 경우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전도 대상자를 자주 만나십시오. 애경사는 적극적으로 챙기십시오. 우리 주변에 보면 애경사를 챙기는 일은 돈이 드니까 가능하면 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인간관계는 다 심는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 피곤하기는 했지만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맙더군요. 기회가 되는 대로 만나십시오. 자주 만나면 우정이 쌓이게 됩니다. 

우정을 쌓으려면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이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친구 한명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어찌나 붙임성이 좋던지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리 오래가지 못해서 관계가 깨지고 말았습니다. 관계가 깨진 이유는 약속을 깨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실수라고 생각했는데 몇 번 반복되니 더 이상 관계를 지속할 사람이 아니라는 판단이 서게 되었습니다. 거짓된 우정은 곧 깨어지게 됩니다. 진실한 사람은 처음에는 좀 친해지기 어려워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쌓인 신뢰로 인하여 깊은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6. 실제적인 도움을 줌으로써 전도합시다. 

사람마다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구덩이에 빠진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괜찮아 나올 수 있을 거야!”라는 격려보다 구덩이에 빠진 자에게 손을 내밀어 끌어올려주는 것이 그에게 필요한 실제적인 도움입니다. 그러므로 실제적인 도움은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행동입니다. 사랑은 동사입니다. 그래서 요한사도는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성 프란시스가 “행함으로 복음을 전하라. 필요할 때만 말을 사용하라”고 말했습니다. 실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한 기본자세는 섬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섬김의 본이 되셨습니다. 특별히 남들이 꺼리는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마 8장에 보면 주님께서 나병환자 한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나변환자가 주님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말하자 주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시자 즉시로 나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주님은 나병환자에게 말씀만 하지 않으시고 손을 대셨습니다. 나병환자는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다른 사람의 터치 즉 스킨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은 스킨십을 통해서 안정감을 얻게 됩니다. 스킨십을 통해서 사랑이 전달됩니다. 그런데 그가 나병에 걸린 후에 아무도 그를 만져준 일이 없습니다. 가족들도 나병환자를 터치 하지 않았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환자를 만지면 부정해지기 때문에 가족들까지도 그를 멀리했습니다. 주님은 그 사람의 진정한 필요를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를 만지시며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은 말로만 하는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사랑입니다. 
복음으로 잃어버린 영혼을 찾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매일 이웃에게 이렇게 질문해야 합니다. “오늘 제가 도울 일은 무엇인가요?”


7. 예수님을 나타냄으로써 전도합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타내고 보여주는 대사입니다(고후 5:20). 예수님의 대사인 우리를 통해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야 하고 예수님의 메시지가 전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가진 소망에 대해서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을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벧전 3:15). 

우리가 착한 일을 많이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가 전달되지 않으면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는 두 가지의 영역을 다 이해해야 합니다. 먼저,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을 그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동시에, 믿지 않는 자들의 문화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복음은 문화라는 옷을 입고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로님이 어린이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로님은 복음을 잘 이해하셨지만 듣는 어린이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린이의 언어가 아닌 어른의 언어로 설교를 하니 아이들이 듣지를 않고 아주 심하게 떠들었습니다. 당황하신 장로님이 강대상을 두드리면서 소리쳤습니다. 

“아동들이여 논쟁하지 말고 정숙하시오” 

아이들은 장로님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떠들었습니다. 장로님은 어린아이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잘 이해하고 있는 복음을 아이들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믿지 않는 사람들의 문화는 목회자보다 평신도들이 더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전도는 목사보다는 평신도들이 더 잘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침으로써 그들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릭 워렌은 영향력을 끼치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합니다. 

웃는 얼굴로 대화하라. 웃는 얼굴은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우리 속담에도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고 합니다. 작은 미소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어느 나라 속담에는 “내가 웃으면 세상도 웃는다. 네가 울면 너는 혼자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위로하라. 고통 중에 있는 사람을 위로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 가지 환난을 당할 때 위로해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위로로써 여러 환난을 당한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섬기라. 다른 사람들을 사랑으로 섬길수록 우리의 영향력은 더욱 커집니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고전 9:19)고 말했습니다. 

담대히 선포하라. 그리스도의 대변자가 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의 행동에 당당히 맞서야 합니다. 

희생하라. 흠 없으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인류가 구원에 이르게 된 것처럼 우리의 희생으로 세상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나의 희생으로 세상이 변화될 수 있다면 가치 있는 일입니다. 
전도는 영혼을 죄악의 늪에서 건지는 일입니다. 혼자 하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둘이 하면 쉽습니다. 셋이 하면 더 잘됩니다. 함께 전도하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을 행복하게 하며, 셀이 부흥되는, 우리 모두 천국가족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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