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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책임 : 전도 (겔 3: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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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사명과 책임 (겔 3:16~27)


복음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국가의 왕이 매우 중대한 극비 문서를 전하려 할 대
전령의 손에다 비밀문서를 전하려면 도난당하거나 탈취당할 위험이 있으므로
노예를 선택하여 노예의 머리털을 밀고 그 빡빡머리에 다가 문신을 새겨서
그 머리가 다 자라기 까지 기다렸다가 보내었는데
이 때 이 노예를 <유앙겔리 제스타이> 라고 불렀습니다. 
‘왕의 비밀한 소식을 전하는 자’ 란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세상을 향한 <유앙겔리 제스타이>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왕의 복음을 전하는 종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이 세상을 향한 <유앙겔리 제스타이> 들입니다.
그 사회가 아무리 부패해도 교회만이라도 정신을 차리면 
  그래도 그 사회는 희망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와 이 사회의 파수꾼의 사명이 있습니다. 
파수꾼이 무엇 하는 사람입니까? 
고대사회에 있어서 파수꾼은 성루 파수대에 올라가 
    외부로부터 성을 지키며 적으로부터 침입을 일깨워 주는 자입니다. 

교회가 살아있다는 것은 
먼저 이 세상을 향해 깨우치는 파수꾼의 사명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회를 향한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는 내일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수 조건이 무엇입니까?


1.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필수 조건은 무엇입니까?(참조/1-15절)

하나님은 선지자 에스겔에게 17절에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고 합니다.

사21:11절에 [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파수꾼이여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 ]라고 묻고 있습니다.

교회는 죄악으로 어두워진 이 세상을 깨우치는 파수꾼으로써
       이 세상의 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교회에게 묻고 있습니다.

   우리는 먼저 이 시대의 파수꾼이 되기 위해서 

1) 우리 자신이 신앙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 남자들 군에서 보초서 본적 있지요.
저는 월남 전시에서 보초를 서 본적이 있습니다.
보초수칙 1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잠자지 말 것, 입니다. - 잠자다가 들키면 바로 영창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으로 항상 깨어있어야 합니다.
            깨어있는 교회의 특징은 기도의 불길이 꺼지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시대의 파수꾼은 선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에스겔보다 한세대 앞선 시대에 
선지자 에레미야를 부를 때에 렘1:11에 

[ 에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 네가 잘 보았도다. ] 

          살구나무-사케드-깨게한다. 란 뜻
          성경학자들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나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혼의 눈이 뜨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먼저 선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깨우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말씀을 통해 선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무엇을 보느냐?
13절 [ 끓는 가마를 보는데 그 윗면이 북에서부터 기울어졌나이다. ]

     이 말씀은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말해주는 말씀인데
     북쪽의 신흥제국 바벨론의 침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대의 파수꾼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의 영혼의 눈이 뜨여져야 하고
     그 시대의 역사의식, 사회의식에 눈이 뜨여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초대교회는 역사의식에 눈이 뜨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교육말살 정책을 쓸 때에 
            교회가 먼저 학교를 세웠고 개몽운동을 했습니다.

이러한 절차는 에스겔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겔3:1-3절까지 보면,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인 두루마리를 먹고 이스라엘에게 고하라 합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파수꾼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에 눈이 뜨여져 
이 시대의 현실을 직시하고
          이 시대를 깨워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두루마리를 내가 먹으니 
                그것이 내 입에서 달기가 꿀 같더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사명에 눈이 뜨여졌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출석해도 하나님 말씀에 눈이 뜨여지지 아니하면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에게 아무 일이 없으면 
             신앙의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습니다.
먼저 영적으로 각성운동이 일어나야만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파숫군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2)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다.

4-7절 까지 보면, 에스겔이 깨우쳐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 영적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얼마나 강퍅했으면 5-6절에

하나님께서 [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백성에게 보내었으면 
             그들은 정녕 네 말을 들었으리라 ] 고 하면서
그러나 네가 깨우쳐야할 이스라엘 백성은 7절에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
이 말은 차라리 외국에 나가 선교하기가 쉽지 
국내에서 전도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스라엘이 강퍅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라고 보기보다는
9절에 [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 하지 말며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 하지 말라」
     그들이 아무리 강퍅할지라도 두려워말고 담대 하라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이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같이 하였다고 합니까?
    그들이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고 담대 하라는 것입니다. 

누가 담대합니까? 바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 담대합니다.
     성령의 감동된 사람만이 이 시대를 깨울 줄 믿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강퍅한데 어떻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 비결은 성령충만한 사람이 되면 담대해 집니다. 겁 없는 사람이 됩니다. 

12-14절에 보면 
먼저 주의 신이 에스겔을 들어 올렸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22절에 [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 라는 구절같이  
   여기에 권능이란 말은 손이란 말입니다.
   즉 하나님의 손이 함께하니깐 능력이 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손으로 나를 들어 올렸다는 말입니다.
           즉 여호와의 권능이 함께했다는 말입니다.

헤시드 주석에
[ 의기소침한 에스겔에게 주의 손이 들어 올리니 새로운 용기를 가졌다]는 말이다

그리고 누가 담대합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 담대합니다.

12-13절에 [ 여호와의 처소에서 나는 찬송소리를 들었고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와 
           생물 곁에 바퀴 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 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델아빕으로 가는 에스겔의 여정에 
신속하고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함께 가고 있음을 확신시켜 주시는 말씀입니다
전도하러 갈 때 나 혼자 간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신속하고 역사의 수레바퀴를 주관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14-15절에는                                                 
[ 주의 영이 나를 들어 올려 데리고 가시는데 내가 근심하고 분한 마음으로 가니 
여호와의 권능이 힘 있게 나를 감동시키시더라 ] 고 합니다. 
근심하고 분한 마음은 
이스라엘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심판 때문에
           느끼는 괴로움과 분노를 말하는 말씀으로서
에스겔의 심정이 마치 심판받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심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그발 강 가에 7일을 거주하게 합니다.
에스겔 선지는 먼저 그들과 같이 그발강 가에 가서 
그 포로들과 같이 이레 동안을 앉아 있으면서 
같이 생활하고 그들의 고독을 같이 체험하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한 연후에야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합니다.
그러니 심판 받을 같은 입장이 되어봤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찬522장 3, 4절 
<웬 일인가 내 형제여 재물만 취하다 세상물질 불 탈 때에 너도 타겠구나 
       //            죄악에 매여서 한없이 고생하는 것 참 못 보겠구나>

구령의 열정에 불타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럴 때 여호와의 권능이 힘있게 에스겔을 감동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형제들을 불상한 마음으로 끌어 앉으니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성령충만을 주셔서
       에스겔에게 파숫군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가슴에 불이 붙게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하나님의 파수꾼이 되려면

1) 나 자신이 먼저 선각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이마가 금강석 같이 담대해야 합니다.
3) 구령의 열정에 불붙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파수꾼의 사명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파수꾼의 사명을 통해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가 무엇입니까?(17절)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 하시고자 하는 것은 
교회는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써
죽어 가는 영혼을 살리는 전도의 사명이 얼마나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래서 17절 [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 
이 말씀이 오늘 내게 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시대의 파숫군, 이 도시의 파숫군 
이것은 저와 여러분들의 사명이요 책임입니다.

오늘 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최대의 특권과 축복은 바로 
     이 세상의 생명을 책임져야하는 파수꾼의 사명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잠들고 있으면 이 세상도 잠들 수밖에 없습니다.
       잠든 세상에 활개 치는 것은 바로 마귀의 세력들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향해 깨우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전도입니다. 

부정 부패하지 말라고 피켓 들고 정부 청사에, 국회 의사당에 시위한다고
     이 사회가 정화되고 이 사회가 맑아지겠습니까?
     교통 혼잡만 초래할 따름입니다. 
이 병든 사회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전도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고 햇까닥 변해야 이 사회가 바로 될 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리고 파수꾼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나를 거듭나게 했습니까? 왜 새로운 삶을 주셨습니까?
   왜 나를 불러 주셨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는 자만이 
        부르심의 목적대로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의 요란한 소리를 듣는 청각은 있지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영의 귀는 둔합니다.

저는 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이렇게 비유하고 싶습니다.    

일본의 민화 가운데 <명주북>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성의 군주가 별세하고 외동딸 유미꼬가 군주의 대를 잇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유미꼬의 남편은 군주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유미꼬는 자신의 신랑을 구하는 방법으로 무명을 씌운 북을 만들었습니다.
북은 가죽으로 덮어 씌어야 소리가 나는데                          
무명으로 씌웠으니 소리가 나지를 않습니다.

유미꼬의 신랑으로 지원한 총각들은 한결같이 질문을 받습니다.
[ 그대에게 내가 치는 북소리가 들립니까? ] 
모든 신랑후보가 안 들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총각은 북소리가 들린다고 했습니다.
[ 어떤 소리였소? ] 라고 물으니
[ 고요의 소리였소 ] 라고 대답했습니다.

유미꼬는 고요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년을 남편으로 선택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은 그를 들어 이 시대의 이 사회의 
     선각자로, 파숫군으로, 전도자로 들어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그런데 만약 파숫군이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고 결과를 초래하겠습니까?

김신조 집사의 간증 속에 보면 
김신조 사건은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인 124군부대 무장 
게릴라 31명이 청와대를 기습하기 위해 서울에 침투하였던 사건입니다.
이 사건으로 무장공비 생포1명, 사살29명, 1명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어요.
우리측 피해로는 대령1명, 경찰서장1명 및 민간인 5명이 사망했으며
       급기야 향토예비군 제도가 생겨났습니다.

그때 김 신조가 체포된 후 고백한 충격적인 사실은 
   초소의 군인들이 한결 같이 그들의 임무를 태만히 했기 때문에
          휴전선과 검문소를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파수꾼의 직무유기가 생명과 직결된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등한히 할 수 없는 파수꾼의 사명인 것입니다. 

파숫군의 직무유기 사건으로 일어난 참사가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사건 기록에 보면 최전방 부대에 일어난 사건으로서 
모든 소대원들이 잠든 상태에서 불침번이 잠시 근무지를 이탈하는 순간에
남파 간첩이 막사에 들어와 화염방사기로 소대원 전원을 몰사시킨 
     끔찍한 사건도 있습니다. 

이처럼 파숫군의 사명은 사람들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전시에는 근무지 이탈 또는 직무유기 죄의 최고형은 사형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전도하지 아니한 죄를 
파수꾼의 직무 유기죄와 동일하게 취급하고 있습니다.
전도하지 아니해서 그 사람이 지옥가면 
         그 피 값을 네게서 갚겠다는 말씀 여사로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전도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경고하십니까?


3. 하나님은 전도하지 아니하는 죄가 얼마나 심각하다고 말씀하십니까?(18, 20절)

18절,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파수꾼의 사명은 

1) 18절 악인에게는 
   현재의 악으로부터 회개를 촉구하여 생명을 구원케 하는 일이고

2) 20절 의인에게는 
   앞으로 죄악에 빠지지 않도록 경계하는 사명입니다. 

그런데 파수꾼이 이 직무를 게을리 하여 깨우치지 아니하면 
악인은 죄악 중에 죽으려니와 그 피 값은 네게서 찾겠다고 경고합니다. 
이와 같이 파수꾼과 공동체의 운명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 우리 직장에, 우리 이웃에
내가 전도하지 아니해서 그 사람이 지옥 간다면 
     그 책임을 네게 묻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9:16절에서
[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가 화가 있을 것이로다 ] 고 합니다.

6.25 때 미군 종군 군목의 간증입니다.
6.25 동란 전 이민군 장교 부인이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그 이민군 장교는 기독교가 몹시 못 마땅해 아내를 몹시 핍박을 했습니다.
아내가 예수쟁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의 신변이 위험합니다.
아내에게 협박도 해 보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아내는 죽어도 신앙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는데서는 기도 찬송을 못해도
남편이 잠들면 손을 붙들고 “ 내 주를 가까이 하려하면 ” 찬송을 늘 불렀습니다.

6.25 전쟁이 나서 전방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되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가 포로수용소에 있을 때 미군 군목이 와서 
    기독교 신자가 있으면 석방 시켜 줄 터이니 나와 보라고 했습니다. 
이 때 이민군 장교는 아내가 매일 밤 부르던 찬송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나가서 이 찬송을 부르다가 자신도 모르게 감동이 되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석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도 내가 책임져야할 불신 가족부터 전도합시다.
      안 들으면 찬송이라도 부릅시다.
     그래서 내 가정 파수꾼의 사명을 다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이 전도하고 안하고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4. 그리스도인이 전도하고 안하고의 결과는 무엇입니까?(19, 21절)

우리가 전도 안하면 
       그 사람도 멸망 받고 나도 그 피 값을 물어야 하고
우리가 전도하면 그 사람도 구원받고 
                나도 생명을 보존할 줄 믿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우리가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여 
그 사람이 죄에서 돌이켜 생명의 구원을 받게 되면 
         19절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1절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 고 합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전도하면 영적으로 생명력을 얻고
전도하지 아니하면 영적으로 죽은 생명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예수 믿는 사람이 전도하는 것
       먼저 나 자신을 위한 일이요 
            또한 사명이요 책임이며 나아가 축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가만히 보면 전도하는 교회와 전도하지 않는 교회는 다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1. 교회가 생명력을 얻습니다.
   교회가 불이 꺼졌다는 말은 전도하지 아니한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 생명력은 전도할 때 주어진 성령의 능력입니다.
   내가 전도할 때 신앙의 생명력은 살아납니다.

2. 표적이 나타납니다.                                        
   초대교회가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난 것도 
   저들의 삶의 포커스를 전도에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는 교회에 지금도 믿는 자에게 나타나는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3. 교인들의 삶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은혜는 바로 전도하고 선교하라고 준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데 빼앗긴다는 것은 바로 삶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게을리 할 때

1. 교인들은 신앙생활을 해도 개인적이 되고 편당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주변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개인중심적인 삶이 되어버리니
   전투적인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마귀가 틈탄다는 것입니다.

2. 교회 약점 단점이 드러나서 
   그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니 교회가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신학자가 이렇게 말합니다.
초대교회나 현대교회나 전투적인 교회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마귀의 세력과 싸웠고
       현대교회는 교인들 간에 싸운다.
왜 교인들이 미워하고 싸웁니까? 전도 안하니 싸웁니다.
군인들에게 있어서 전우애가 가장 발동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전쟁 시이고 그리고 강한 훈련을 받을 때입니다.

3. 교인들의 생활이 피폐해 집니다.
   부흥 안 되는 교회 교인들 생활을 살펴보세요.
   전도 안합니다. 그리고 한마디로 문제, 문제투성이입니다.

우리가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있어서 꼭 유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5. 전도를 할 때 우리가 꼭 유념해야할 점이 무엇입니까?(22-27절)

22-27절까지 보면 특이한 광경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들로 나가라고 합니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며 말씀하시기를

[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고 있으면 
    무리가 네를 줄로 묶어 동여매리니 거기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너의 혀가 입천장에 붙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리라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이 열리니
       들을 자는 듣고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라 ]

무슨 말입니까?
파수꾼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그만큼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돌아오는 자가 있겠고
                  듣기 싫은 자는 안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안 듣는다고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가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위로의 말씀인 것입니다.    

인도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어느날 쓰러졌습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니 지쳐서 달진한 것입니다.
그때 묵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 왜 쓰러져 있느냐?” 
“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사람들이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비유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 저 사과 나무를 보라 지금 농부가 아무리 애써도 열매는 맺히지 않는다
  그러나 7년 후면 열매를 맺는단다 지금 열매가 없다고 낙심하지 말라”
그래서 스탠리 존스 선교사는 일생을 인도 선교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김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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