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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진정한 부자인가?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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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정한 부자인가? (눅 12:13~21)
 
 
상식적으로 부자는 돈이 많은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얼마나 돈이 많아야 부자 소리를 들을까요? 부자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세계적인 경제 전문지인 <포브스>는 연 수입이 10억 원 이상인 사람을 부자라고 정의합니다. 로버트 기요사키라는 사람이 쓴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보면 자산이 100억 원 이상이며,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연간 10억 원을 버는 사람이 부자라고 정의합니다. 혼다켄이라는 사람이 쓴 [행복한 작은 부자의 8가지 스텝]이라는 책을 보면 행복한 작은 부자는 자산이 10억원 이상이며,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연간 3억원 이상을 버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신한은행이 전자메일 설문조사를 통해서 고객에게 물었습니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절반이 넘는 사람이 30억은 있어야 부자라고 답했답니다. 금융 전문가들 이야기로는 자기가 사는 집을 제외하고 금융자산이 10억 이상인 사람이 부자라 할 수 있답니다. 

국제적인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와 보스턴 컨설팅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 이 정도의 부자가 약 7만 명 정도 있답니다. 생각보다 부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돈만 많다고 다 부자일까요? 사실 부자를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존경 받는 부자이고, 다른 하나는 비난 받는 부자입니다. 왜 누구는 존경을 받고 또 누구는 비난을 받을 까요? 한 마디로 격이 있고 없고의 차이 때문입니다. 격을 갖춘 부자는 존경을 받지만 격을 갖추지 못한 부자는 비난을 받습니다.

우리 속담에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있습니다. 돈을 벌고 쓸 때의 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개는 격이 없는 것을 비유하고, 반대로 정승은 격이 있는 것을 비유합니다.

우선 돈을 벌 때의 격입니다. 개처럼 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데 혈안이 되어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투기를 일삼습니다. 돈 몇 푼 더 벌자고 멜라닌을 우유에 첨가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라도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승처럼 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정도를 걷습니다. 공익을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부자라도 존경을 받습니다.

다음 돈을 쓸 때의 격입니다. 개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이야 뭐라든지 나만을 위해서 씁니다. 명품으로 치장하고 과소비를 일삼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승처럼 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몰래 기부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존경을 받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부자에 대한 기준이 두 가지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표면적인 기준입니다. 바로 돈이 많은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면적인 기준입니다. 바로 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부자는 돈이 많으면서도 격을 갖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부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6절을 보면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분명히 돈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자라고 지칭했습니다. 그런데 2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러니까 하나님 보실 때는 부자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는 사람들이 볼 때 부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는 부자가 아닙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씀해 줍니까?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자의 기준과 하나님이 보시는 부자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선 돈이 많으면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격이 더해지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것이 있어야 진정한 부자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 보실 때 진정한 부자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부자의 문제를 통해서 그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첫째, 믿음입니다.

13-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부자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이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유산 문제로 형과 다투던 사람이 예수님께 와서 형이 유산을 나누게 말씀 좀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 마음속에 탐심이 있음을 보셨습니다. 그 탐심 때문에 형과 유산 다툼을 하게 됐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 속에 탐심이 있음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 이 부자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본문비유에 나오는 이 부자는 그 마음에 탐심이 있는 사람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이 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부를 더 쌓아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입니다. 부를 더 쌓아가기 위해 염려하는 모습입니다. 지금 가진 것도 부족해서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탐심입니다.

그런 우스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발가벗겨 놓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옷을 만들어 주면 주머니를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고, 주머니를 만들어주면 거기에 돈을 채워달라고 할 것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래서 아예 발가벗겨 놓으셨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탐심은 끝이 없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조금만 더 가지고 싶어합니다. 만족을 모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탐심의 정말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돈만 많으면 단줄 안다는 것입니다. 그 돈이 내 안전을 보장해 주고 그 돈이 내 노후를 보장해 줄 것으로 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부자의 문제입니다. 바로 돈을 하나님처럼 받드는 것입니다. 

골 3:5를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탐심의 정체를 밝혀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이 탐심을 드러내는 이유는 돈을 최고로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돈만 있으면 노후도 보장되고, 돈만 있으면 든든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돈이 우상인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탐하는 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본문의 부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 부자는 돈은 많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습니다. 그 돈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멀게 한 것입니다. 그 돈을 손에 쥐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붙잡을 손이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전폭적으로 맡기고 의지하고 나갈 분이 오직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믿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가 진정한 부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칫 돈 때문에 하나님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이 있고 없고 간에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이 있는 사람 그가 진정한 부자입니다.


둘째, 사랑입니다.

본문 1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이 부자는 재산을 쌓아두는 일에만 몰두 했습니다. 쌓아 둘 곳간이 부족하니까 더 큰 곳간을 짓겠다는 것입니다. 오직 재산을 더 많이 증식하는 데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할까요? 이웃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 어려운 이웃들 그들을 향한 마음이 열려 있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10억 이상 복권 당첨된 사람들 그 이후를 조사해 봤답니다. 놀랍게도 복권 당첨 후 80%가 삶이 불행해 졌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기부에 대한 권유와 협박에 시달려 이사를 가거나 잠적했답니다. 60%는 경마나 도박 그리고 유흥에 가산을 탕진했답니다. 그리고 60%는 돈 때문에 아내와 이혼했답니다. 그리고 80%는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다가 실패했답니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20%의 사람들이 삶이 행복해 졌는데 그 이유입니다. 바로 그들은 모두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기부하고 나누었답니다. 기부하고 나누었더니 마음에 여유가 생기더랍니다. 자기 삶을 돌아보게 되었고 행복을 찾게 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자칫 돈은 우리 눈을 멀게 합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눈, 형제를 살피는 눈을 멀게 합니다. 그래서 돈이 없을 때는 우애가 좋던 형제가 돈이 생기면 다툽니다. 그게 돈의 마력입니다.

지난 9월 26일 미국의 영화배우 폴 뉴먼이 향년 8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50년간 6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여 수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전설적인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헐리우드 최고의 배우, 20세기 최고의 영화배우 등의 찬사를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뉴욕 브로드웨이에서는 지난 3일 오후 8시 1분간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소등하기도 했습니다. 영화계는 물론이고 미국 사람들이 이렇게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폴 뉴먼은 1982년부터 식품 사업을 해서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그 번 돈 100% 모두를 은밀하게 학교나 자선 단체에 기부해 왔습니다. 그 돈이 자그마치 2억 5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3000억 원이나 된답니다. 그리고 장례식 이후 그가 남긴 유산 26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310억원도 추가로 기부할 계획이랍니다.

폴 뉴먼이 그토록 존경 받고 사랑받는 것은 그 마음에 따뜻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이웃들, 가까운 가족들, 방황하는 청소년들 늘 그들을 생각하며 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부자는 돈 때문에 눈이 멀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눈, 어려운 사람들을 보듬는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의 부자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창고에 쌓을 수 없을 정도로 곡식이 넘쳐났습니다. 가까운 곳에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찾아와서 도움을 청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을 돌아볼 눈이 멀었습니다. 마음이 닫혀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라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칫 돈 때문에 이웃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 때문에 사랑의 마음을 닫지 마시기 바랍니다. 돈이 있고 없고 간에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열려있는 사람 그가 진정한 부자입니다.


셋째, 소망입니다.

본문 19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 부자가 돈을 많이 벌어 두었으니 앞으로 여러 해 걱정 없이 지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20절을 보면 이 부자에게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한 마디로 주님이 보실 때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 생애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실 텐데 전혀 그 때를 준비해 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프리카에 그런 부족이 있다고 합니다.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추장을 세운답니다. 그리고 추장이 되면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답니다. 문제는 7년이 지나면 추장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답니다. 더 큰 문제는 추장 자리에서 내려올 때 부족 사람들 앞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추장이 되겠고 서로 경쟁하고 다툰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내 다보는 눈이 멀기 쉽습니다. 장차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많은 경우 돈 때문에 먼 미래에 대한 소망을 잃게 됩니다.

마 6:19-20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나 자신을 위해서 돈을 모으는 일에만 열중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돈을 쓰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 땅에서 저축하는 것과 달리 저 하늘에 저축해 놓는 것을 의미한다는 말씀입니다. 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사람이 진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 장로님의 푸념을 들었습니다. 정말 자린고비 짓을 해 가면 악착같이 돈을 모아 중국 펀드에 투자했답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가끔 십일조도 빼먹고 계속 투자했답니다. 투자 수익이 쏠쏠해서 돈도 많이 벌었는데 그 때도 제대로 헌금도 하지 않고 계속 투자했답니다. 그런데 그만 일이 잘못돼서 돈을 다 날리고 말았답니다.

그러면서 그럴 줄 알았으면 그 돈 교회 건축하는데 헌금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절반이라도 선교하는데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 십일조라도 제대로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다 날아갈 줄 알았다면...“

안타깝게도 돈이 있을 때는 그런 생각이 잘 안듭니다. 돈 때문에 먼 미래가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집 한 채 없이 사셨습니다. 돈 한 푼 주머니에 없이 사셨습니다. 미래를 위해 저축해 놓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투자하셨습니다. 바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내다 보는 눈이 열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안개처럼 잠깐 지나갈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상 받을 것을 바라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소망에 다 투자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진정한 부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돈 때문에 소망을 잃지 말기 바랍니다. 그 돈을 하늘에 쌓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오늘도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삽니다. 그저 돈을 많이 벌 꿈을 꾸며 삽니다. 안타깝게도 그 꿈은 진정한 부자가 되는 꿈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한 부자가 되는 꿈을 꾸라고 말씀합니다. 믿음, 사랑, 소망이 담긴 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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