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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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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1-24)

오늘은 예언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성경에 이 땅에서 죽지 않고 승천한 분은 세 분입니다.  에녹, 엘리야 그리고 예수님이십니다. 그 중에 에녹에 대하여 알아 보려고 합니다. 정말로 신비한 사람입니다. 에녹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1. 에녹은 예언을 받았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하늘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입니다. 처음부터 동행하지 않았다. 에녹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에녹에게 특이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지점이 있습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므두셀라를 낳은 후부터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여기에 들어 있는 비밀은 무엇일가요? 에녹은 처음부터 잘 하지 않았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지 못 하였어도 괜찮습니다. 처음보다 나중이 중요합니다. 에녹은 65세부터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을 보면 므두셀라를 낳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를 알아 보려고 합니다. 유다서에는 이런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칠 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 14-15) 

하나님은 분명히 에녹에게 예언을 주셨습니다. 심판을 예언하셨습니다. 경건치 않은 자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정죄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에녹은 세상 종말에 대한 예언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에녹이 갑자기 생활이 달라진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므두셀라를 낳으면서 갑자기 생활이 달라진 것은 그 때 종말 예언을 받은 것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아의 홍수가 일어날 것을 예언받았습니다. 에녹은 예언을 받았음을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을 받으면 확실히 달라집니다. 


2. 에녹은 예언을 하였습니다.

에녹은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받은 사람은 주어야 합니다. 아는 사람은 알려야 합니다. 본 사람은 말해야 합니다. 에녹은 하나님으로부터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언을 하였습니다.
에녹은 이 세상에 환란이 올 것을 처음으로 예언으로 받았습니다.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환란이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아들 이름을 므드셀라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라는 뜻은 <창을 던지는 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라고 하는 의미는 상당히 의미심장한 의미입니다. 독특한 말입니다. 창을 던지는 자라는 말은 군사적인 언어입니다. 고대에는 전쟁할 때 군사들이 성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성문에 창 던지는 사람을 한 사람 세워 놓았습니다. 군사들이 밖에서 싸우다가 지게 되면 적들이 성으로 몰려 옵니다. 

그 때 창던지는 자가 마지막으로 죽으면 전쟁은 끝나는 것입니다. 창 던지는 자가 죽음으로 전쟁은 끝나는 것입니다. 이제 환란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적에게 짓밟히고 포로로 잡혀가고 집은 불태워지게 됩니다. 창던지는 자의 죽음은 환란의 시작입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고 창을 던지는 자라는 뜻을 가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종말 예언을 주셨는 데 그 예언은 아들 므두셀라가 죽을 때 이루어질 것같았습니다. 그래서 창던지는 자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아들을 낳았는 데 아들이 죽을 때에는 환란이 시작될 것만 같았습니다. 에녹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예언을 간직하고 믿고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 때 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여기 저기에 두고 같이 일하고 계십니다. 애급 시대에는 요셉을 붙들고 사용하셨습니다. 사무엘 시대에는 사무엘을 하나님은 붙잡고 계셨습니다.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을 때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므두셀라야!

앞으로 이 세상에 재앙이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알려 주셨다. 네가 마지막 사람이다. 너는 창을 던지는 자가 되라. 네가 죽으면 환란이 시작이다.> 그리고 65세에 므두셀라를 낳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의 경건과 하나님과 동행함이 하나님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녹으로 하여금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3. 에녹은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에녹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창 5;21) 므두셀라는 187세에 라멕을 낳았습니다(창 5;25) 라멕은 182세에 노아를 낳았습니다(창 5;28) 그러므로 노아가 태어났을 때 므두셀라의 나이는 369세입니다. 187 더하기 182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창 7;11) 그러므로 므두셀라가 969세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제일 오래 산 사람입니다. 969세 살았습니다. 그가 죽던 해에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므드셀라는 홍수에 빠져 죽었습니다. 노아 가정만 구원만 받았기 때문입니다. 므드셀라가 죽는 날 홍수가 시작되었을지 모릅니다. 반대로 홍수가 시작되며 죽었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립니다.
에녹이 예언한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에녹은 하늘에서 보았습니다. 글자 그대로 므두셀라는 창던지는 자입니다. 그는 마지막 사람입니다. 창던지는 사람이 죽으면 환란의 시작입니다.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성경의 신비입니다.


  4. 에녹은 받은 예언대로 살았습니다.

에녹은 세상에 환란이 올 것이라는 예언을 받았습니다. 그 후부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종말론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환란을 올 것을 대비하면서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1-24) 

종말을 알고 에녹이 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며
2. 자녀를 낳았으며 

에녹이 한 일은 두가지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행하지 못하는 것들이 종종 있습니다. 새벽기도 가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새벽기도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야 함을 알고도 드리지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녹은 아는 것을 행동을 옮겼습니다. 종말론적으로 산 것을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습니다. 

1. 동행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았다는 말입니다. 결혼식 용어입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슬프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같이 느끼며 같이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동행하는 사람은 동행하는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합니다. 30년 같이 사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을 같이 동생하였습니다. 그 분과 같이 살았습니다. 그 보상이 바로 승천이었습니다.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늘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동행한다고 하는 의미는 무엇일가요?
동행한다고 하는 의미는 늘 대화를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동행하는 사람은 늘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나는 지난 주간 수첩을 잃어 버렸습니다. 돈은 무시하여도 좋을 정도로 4만원 가량 들어 있었고, 중요한 것은 카드였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의 금년 말까지 일정이었습니다. 답답하였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습니다. 내가 그 날 하루 종일 지난 온 곳에 모두 전화를 하여도 떨어 뜨리지 않았습니다. 차안에도 없었습니다. 카드 때문에 신고할가 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혼자 찾았지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제비를 뽑아도 일의 작정은 여호와께 있느니라는 잠 16;33이 생각났습니다. 나는 제비를 둘 만들었습니다.
<잃어 버렸다.> <찾는다.>
기도를 하고 뽑았습니다. <찾는다>였습니다.

다시 둘을 만들었습니다.
<사무실 안> <사무실 밖>
사무실 밖이었습니다. 나는 확실히 믿었습니다.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내 강대상에서 찾아 왔습니다. 새벽 설교하려고 하다가 수첩이 무거우니까 강대상위에 놓고 설교하고 그냥 돌아 온 것이었습니다.

나는 조그만 것도 하나님에게 묻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동생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생하면 늘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전 교인 체육대회를 하였습니다. 너무나 좋았습니다. 마지막 시간에 경품을 나누어 주는 순서였습니다. 자전거 두 대가 있었습니다. 뽑았습니다. 두 명이 모두 자전거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전거 노래를 하는 사람이 뽑힌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전기 압력 밥솟이 있었습니다. 솟이 없어서 남비에 밥을 짓고 사는 할머니에게 그 밥솥이 갔습니다.
나는 정말 놀랐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겨도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옆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중국의 유명한 부흥사요 저술가인 워치만 리 이야기입니다. 워치만 리 책이 많이 읽히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간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20대 중반에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들은 고칠 수 없다고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며칠 후 하나님의 응답이 이렇게 임하였습니다. 환상이 나타났습니다. 환상중에 자기가 배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바위에 걸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할 수 없어서 안절부절하고 있는 데    하나님이 낱카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리야! 그 바위를 치워 주랴. 물이 불어나서 물 위로 배가 지나가게 하랴?> 워치만 리는 대답하였습니다. <바위는 그대로 두시고 물이 불어나 그 위로 지나가게 해 주십시요.> 이 말이 떨어지자 말자 비가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강에 물이 엄청나게 불어 났습니다. 그  래서 배가 무사히 강을 건널 수가 있었습니다. 리는 그 환상을 본 후에 특별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병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평생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2. 가정 생활 동행하였다는 말 다음에 나오는 말은 <자녀를 낳았으며>입니다. 종말이 온다는 것을 알고 산속으로 들어 간 것이 아닙니다. 강대상에 엎드린 것이 아닙니다. 골방에 들어가 산 것이 아니었습니다.  종말이 온다는 것을 알고 에녹은 가정 생활에 충실하였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가장 큰 명령이 있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라> 이것이 하나님의 가장 큰 명령이었습니다. 종말이 온다는 예언을 받고 에녹이 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충실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구상에 인구가 얼마 없을 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일 먼저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종말을 예언받고 육신생활을 포기하고 금욕생활로 들어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성도는 은혜받고 나면 부부 생활을 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성 생활이 죄인 것처럼 여겨진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처자식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가정 생활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오늘에 충실하고 여기에 충성하는 것이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구우즈라고 하는 여자가 평생 소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국 여왕을 왕궁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평생 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왕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평생 소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일생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였습니다. 그 때 최선을 다 하여 모든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 때 그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고양이는 궁전에 들어가자 말자 쥐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래서 이 고양이는 쥐 잡느라고 돌아다녔습니다. 고양이에게는 쥐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여왕을 만나 행복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고양이는 한 번도 여왕의 얼굴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직 궁전을 다니면서 쥐만 잡아 먹다가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다가 하나님앞에 갈 것입니까? 누구와 동행하다가 하나님앞에 갈 것입니다. 누구와 무슨 일을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가겠습니까? 이 세상에 와서 돈만 보다가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놀기만 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즐기기만 하다가 가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에녹은 하나님과만 동행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인 생육하고 번성하는 일만 하다가 하나님 앞에 갔습니다. 

인도의 선교사 선다 싱은 네팔에서 선교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살인강도들과 한 감방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는 그 흉악범들에게 전도를 했습니다. 예수 믿고 중생하면 몸은 비록 감옥에 있지만 마음은 천국이라고 열심히 설명하였습니다. 살인 강도들이 감옥에서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어느 날 간수가 들어와 보았습니다. 살인강도들의 얼굴이 언제 사형당할지 모르는 초조함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었습니다. 기쁨에 넘쳐 찬송하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천사같은 얼굴이었습니다. 간수가 말했습니다. <천국이 따로 없다. 여기가 바로 천국이다.> 

어느 곳에 있든지 내일 어떻게 되든지 하던 일을 계속 하는 것이 종말론적인 삶입니다. 에녹은 환란이 이 세상에 올 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삶에 충실하였습니다.

대통령 시절에 가장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은 이가 카터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을 마치고 나서 가장 유능하게 일한 사람이 카터로 알려졌습니다.

수년 전에 미국의 대통령 카터가 대통령 선거 유세를 할 때 이야기입니다. 그에 대한 뒷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 중에 한 가지 이야기입니다. 그는 주일이면 선거 운동의 바쁜 일정을 멈추고 고향 조지아 주에 있는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로 돌아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23년 동안 가르쳐 오던 교회학교 교사직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유세중이었습니다. 기왕이면 큰 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나오는 큰 교회에서 예배도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예배겸 선거 운동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차분하게 자기 교회로 돌아와서 20여명 되는 작은 반의 교사직에 충실했습니다. 

바로 여기에 그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그의 특이함이 있습니다. 그가 20여명을 앉혀 놓고 성경을 가르칠 때 취재 기자들은 70여명이나 모였습니다. 그는 조용히 성경 공부를 가르치고 나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여러분이 이 교회를 나왔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일부터는 각자 여러분의 교회에 나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여기에서 충실하게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내일 지구의 멸망이 온다 할 지라도 오늘 할 일을 오늘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참 삶입니다.
에녹은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하늘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어제 8시 SBS 뉴스에서 깜짝 놀랄만한 사실이 보도되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예언하고 죽은 것이 있습니다.
<꿀벌이 사라지면 지구가 멸망한다.> 
그런데 지금 지구 꿀벌의 36%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양봉하는 사람들도 꿀벌이 줄었다고 야단입니다. 미국에도 꿀벌어 사라지니까 아몬드 농장에 아몬드가 열리지 않아 120만 마리를 사서 풀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공해때문인지 바이러스 때문인지 분석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가장 유력한 설은 핸드폰의 전파 때문에 벌들이 집을 찾지 못 하는 것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오실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에녹. 그는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늘로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강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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