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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각은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민 13:2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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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행복과 불행을 좌우한다 (민 13:25~33)


침대공포증에 걸린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침대에 누우면 침대 밑에 꼭 누가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침대 밑에 들어가서 잠을 청해 보았지만 침대 위에 꼭 누가 누워있는 것 같아서 그것도 불안했습니다.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더니 “당신의 병은 중병인데 1년 동안은 치료받고 약을 먹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걱정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그 동네의 목사님이 그 소문을 듣고는 “나한테 좀 보내라”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그 사람과 잠시 대화하더니“당신의 처방은 간단하오. 오늘부터는 그 침대다리를 잘라버리시오. 침대다리를 잘라버리면 침대 밑에 누가 자는 것 같은 불안을 떨쳐버릴 수 있다오.” 그런 걱정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악한 영들은 우리 마음속에 늘 그런 불안감과 염려를 줍니다. 

그런가하면 또 고장 난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 있습니다. 고장 난 생각을 우리는 고정관념이라고 부릅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회비평가인 ‘버나드 쇼’의 일화가 있습니다. 그가 조사를 해 보니까 그림애호가들 중에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로댕’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같은 그림인데 어떤 사람의 그림은 저렇게 좋아하고, 어떤 화가의 작품을 저렇게 싫어하는 것이 이상해서 그는 파티를 열고 특별히 ‘미켈란젤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잔치가 한창 흥에 돋았을 때 버나드쇼가 들어가서 그림 한 점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여러분! 여기 아주 훌륭한 그림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한번 봐 주세요.” 다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까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 그림은 로댕의 작품입니다.” 사람들은 그 로댕의 작품을 이런 저런 혹독한 비평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이 그림 같지도 않다.” “무슨 색이 우중충하다.” “무슨 구도가 맞지 않는다.” “저것도 그림이라고 그렸느냐?” 아주 혹독한 비판을 쏟아놓았다고 합니다. 그 때 버나드 쇼가 잠시 안색을 고치더니 “여러분!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이 그림이 로댕의 작품인 줄 알고 나왔더니 이게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네요.”

미켈란젤로만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로댕의 작품이라고 했더니 무조건 비판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그 장내가 물을 끼얹은 듯 숙연해 졌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선입관 혹은 편견이라고 합니다. 한번 어떤 선입관을 가지면 일생을 그것에 노예가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떤 편견을 가지면 그 편견을 가지고 모든 잣대를 삼기 때문에 일생에 늘 편견을 깨기 어렵습니다. 그것도 바로 고장 난 생각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런 편견을 깨뜨릴 때 그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식사도 함께 하지 않고 교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느 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는데 유대인들이 먹으면 안 되는 부정한 음식들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먹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 또 동일한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을 먹으라.” “먹을 수 없습니다.” 세 번째 또 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 이방인에게 가서 교재 하라고 하시는 것이구나.’ 그 때 마침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 백부장이 보낸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 사람을 따라서 고넬료의 집에 갔더니 온 가족이 베드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씀을 증거할 때 그 이방인집에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임하고, 거기에 말씀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종교적인 선입관, 어떤 종교적인 편견을 가지고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 고정관념을 깨뜨리지 않으면 우린 진정으로 자유인이 될 수 없습니다. 

한 가지 더 나아가서 세종대왕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종대왕이 어느 날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촛불이 다 꺼져버렸습니다. 깜깜한 암흑이 되었습니다. 옆에 누가 앉았는지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신하 중에 좀 엉큼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부터 중전마마를 은근히 사모하던 한 신하가 있었습니다. ‘촛불도 꺼졌고 어두우니까 괜찮겠지.’ 그는 살며시 기어와서 중전마마의 손을 살며시 잡았습니다. 중전이 보니 자기 남편의 손이 아니었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신하의 갓끈이 손이 잡혀서 그 갓끈을 확 뜯어버렸습니다. 그리곤 자기 남편인 세종에게 이야기 했습니다. ‘누군가 와서 내 손을 만졌는데 얼른 불을 켜고 갓끈이 끌러진 사람을 찾으면 그가 범인입니다. 그 때 세종대왕이 말하길 “절대로 불을 켜지 마라. 그리고 모든 신하들은 자기 갓에 있는 갓끈을 다 뜯어내라. 그리고 갓을 벗어서 앞에 놓아라.” 그리고 불을 켜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신하는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습니다. 북방의 오랑캐가 조선을 침공해 왔는데 세종대왕이 직접 전선에 와서 사정을 살피다 변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랑캐가 세종대왕을 알아봤습니다. 그래서 특공대를 보내어 세종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 때 마지막까지 세종대왕 곁을 떠나지 않고 화살을 몸으로 막아준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병조판서였습니다. 그는 세종대왕을 보호하기 위해 싸우다가 장렬히 죽어갑니다. 마지막 죽는 순간에 세종의 품에 안겨서 “사실은 중전의 손을 잡은 그 사람이 바로 접니다.”라고 이실직고하였습니다. 세종대왕은 말합니다. “내가 이미 알고 있었노라고.” 세종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가 너무 유능한 신하이기 그를 보호하기 위해서 불을 켜지 않도록 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참 생각이 넓은 사람이었습니다. 생각과 도량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만한 훈민정음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다고 하면 그가 천민일지라도 그를 등용해서 신하로 삼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 주었습니다. 세종대왕 시대에 측우기를 비롯한 많은 훌륭한 과학물품들이 많이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면서 나라의 부강함을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종대왕이 그만큼 생각이 깊고 넓은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 편협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넓은 생각과 넓은 도량을 가진 사람은 많은 사람들을 포용하고 훌륭한 사람들과 교제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 스마이스’라는 분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을 심으면 행동을 거두고, 행동을 심으면 습관을 거두고, 습관을 심으면 성품을 거두고, 성품을 심으면 운명을 거둔다.” 오늘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이 바뀌는 것입니다. 내 인생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오늘 지금 나의 생각이 내 인생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모든 일에 생각이 우선입니다. 내가 부산을 가려고 합니다. 그러면 이미 내 마음은 부산에 가 있는 것입니다. 생각이 있고나서야 ‘어떻게 부산을 갈까? 기차를 타고 갈까? 비행기를 탈까? 승용차를 탈까?’ 이렇게 우리가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부산이라고 하는 생각이 우선입니다. 그 생각이 있을 때 행동이 따라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천지를 창조하실 때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빛을 창조하셨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생각이 먼저 있었던 것입니다. 생각이 늘 우선입니다. 여러분! 말이 마차를 끌고 가지 않습니까? 그러면 말이 앞에 있습니까? 마차가 앞에 있습니까? 말이 앞에 있는 거죠. 말이 가는 곳에 마차가 따라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생각이 있는 곳에 행동이 나타나고 우리의 환경이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각입니다. 우리의 환경을 바꾸려고 하지 말고 먼저 내 생각을 바꿀 때 우리는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유명한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존재하는 것이다.”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러면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추석이 지났습니다만 예전에 우리 어른들은 한가위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합니까? ‘저 달에 좀 가볼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달에 가서 달을 산책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실 꿈과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그걸 할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런 생각을 가지면서 결국 로켓을 타고 달에 가게 되었습니다. 우리 한국인 한 사람도 이소연씨도 우주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이 생각을 하면 그것은 언젠가는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라이트형제는 하늘에 날아가는 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사람도 새처럼 훨훨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얼마 후에 라이트형제는 비행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제임스 와트라는 사람은 바다에서 헤엄치는 고기를 보면서 ‘사람도 바다 위를 저렇게 자유롭게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고 최초로 증기선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뭐든지 생각하면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 낸다는 데에 특징이 있습니다. 포드라는 사람은 어릴 때 어머니가 너무 아프셔서 병원에 빨리 모시고 가야하는데 집에 있는 수레에 어머니를 모시고 끌고 가다보니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서,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어머니가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늘 한이 되었습니다. ‘좀 빨리 어머니를 모시고 갈 수 있는 것이 없을까?’ 그는 네발달린 자동차를 만들어내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뭔가를 생각하면 결국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생각 속에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우리는 부정적인 행동을 낳게 됩니다. 

성경 누가복음 22장 3절에 보니까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단이 들어가니” 라고 나옵니다. 유다의 마음속에 사단의 생각이 들어가니까 결국 그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고상한 것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상한 인격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음란하고 불결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은 자기 인생을 그리고 이끌고 가게 됩니다. 그래서 잠언 23장 7절에 보니까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랬습니다. 그가 오늘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것이 바로 그 사람의 가치를 결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은 생각에 대한 좋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나와서 이제 광야 40년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이제 가나안 땅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서서 그들은 잠시 머물면서 각 지파별로 한명씩 대표를 뽑습니다. 12명의 대표를 택해서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탐꾼의 일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차지할 가나안 땅이 어떤 성읍인지, 곡식은 잘 되는지, 성곽은 어떤지, 군사의 수준은 어떤지, 다 살피고 돌아와서 보고하기로 했습니다. 12명이 40일 동안 가나안을 다 살펴보고 돌아왔습니다. 그들의 보고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땅에 들어가 보니까 너무 비옥하고 실과가 잘 되더이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포도송이 하나를 메고 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얼마나 농사가 잘 되면서 포도송이 하나를 둘이서 메고 왔을까요? 이건 대단한 땅입니다. 정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의 보고가 달랐습니다. 10명의 부정적인 보고자들은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그 땅이 좋긴 하지만 그러나 성은 너무나 견고하고, 그 사람들은 키가 장대같이 커서 아낙자손들인데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와 같습니다. 우리는 결코 그들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싸움을 해서는 안 됩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매우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백성들은 낙심과 절망에 빠지고 울고불고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돌로 치려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는 달랐습니다. “우리가 들어가 보니 정말 좋은 땅이더군요. 하나님의 우리에게 그 땅을 주셨습니다. 올라가서 점령합니다. 정복합시다. 우리는 능히 이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야기하면서 올라가서 치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 사람의 말보다는 다수인 10사람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결국 불평하고 원망하고 좌절에 빠졌다가 그들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다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 믿음의 생각을 했던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어린 아이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새로운 역사를 이룰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그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았는데 왜 이렇게 다른 보고를 할 수 있었을까요? 생각의 차이입니다. 믿음의 생각의 눈으로 보느냐? 부정적인 생각의 눈으로 보느냐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모두 검게 보입니다. 그러나 옳은 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검으냐?” 세상은 실제 검은 것만이 아닙니다. 

여러분! 그들이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은 믿음의 눈으로 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싸워서 이길 수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전능하신 여호와가 함께 하시면,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그 믿음이 그들에게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 두려움만 가득 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하고 그들은 두려움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결국 절망적인 보고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생각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이 땅에 이 현실을 보면서 긍정적으로, 믿음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안 된다. 나는 못한다. 우리는 할 수 없다. 우리는 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늘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그들의 인생을 전혀 다른 삶으로 바꿔 놓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생각이 중요할까요? 첫째로 생각은 생명과 멸망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했던 사람들, 두려움이 앞섰던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결국 다 멸망당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목적인 가나안땅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이제 그 가나안땅을 바라보면서 우리가 이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믿음의 생각을 했던 사람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무엇을 기대하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보시고, 또 생각하고 기대하는 것이 여러분의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 그것이 생명과 멸망을 결정합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보니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육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고, 부정적인 생각을 주고, 비판적인 생각을 주고, 좌절과 낙심을 주는 것입니다. 죄의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는 사망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입니다. 성령의 생각은 우리에게 늘 좋은 것을 주는 것입니다. 화평의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생각을 주는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의 마음을 주는 것입니다. 성령의 생각을 쫓는 사람은 생명과 평안을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이제 성령의 생각을 쫓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서 생명을 다 얻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이 똑같은 자리에 나와서 똑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어떤 사람들은 ‘아 하나님의 말씀이구나, 저기에 진리가 있구나!’ 하고 그 말씀을 그대로 전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가하면 어떤 분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저 목사가 무슨 저렇게 허황된 이야기를 하나’ 비평적인 눈으로, 의심으로 눈으로 보는 사람들은 그 말씀을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생명과 멸망을 결정합니다.

왜 생각이 중요한지의 두 번째 이유는 생각은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행복과 불행은 환경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닙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고, 큰 집에 산다고 행복하고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것 믿을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큰 차를 타고 다니면서도 한숨만 짓는 사람이 너무도 많습니다. 큰 차를 타고 다 행복하면, 티코타면 다 불행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티코를 타도 행복한 사람은 여전히 행복합니다. 그러면 환경의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임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할 때 내게 행복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아주 돈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의 진기한 음식은 다 먹어보고, 좋은 옷은 다 입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마음속에 행복이 없었습니다. 늘 마음이 우울하고 슬펐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의사들과 상담해 보았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한 의사가 와서 이 루이 14세에게 조언하는 것이 “왕께서 행복하시려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을 만나시고 그 사람의 속옷을 입으시면 가장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신하들을 보내어 가장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신도 변장을 하고 행복한 사람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오랫동안 찾다가 한 시골동네를 지나가는데 오두막집에서 노랫소리가 나오는데 그렇게 행복한 목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문을 들여다보니까 세상에 그렇게 기분 좋은 모습으로 노래를 부르는데 ‘저렇게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나?’ 물어봤습니다. “당신 정말 행복하오?” “저는 행복합니다.” “뭐가 행복하오? 오두막집에서 사는 주제에?” “저는 잘 오두막이 있고, 먹을 양식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건강이 있으니까 저는 행복합니다.” “아! 당신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군요.” 자초지종을 말하고 “당신의 속옷을 내게 주시오. 그러면 내가 많은 돈을 당신에게 주겠소.” 그랬더니 그 사람이 겉옷을 벗는데 보니까 세상에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속옷이 없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만났지만 그 사람의 속옷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속옷이 없어도 그는 행복했습니다. 여러분! 행복은 외적인 환경에 의해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잠언 15장 13절에 보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잠언 17장 22절에 보니까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기뻐야 합니다. 마음이 기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현대에 가장 무서운 병중에 하나가 우울증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타도 마음이 자꾸 우울해서 죽고 싶습니다. 자꾸 자살하고 싶습니다. 왜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는 좋은 방법은 감사를 찾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내게 주신 복을 하나하나 세는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가는 것입니다. ‘오늘 아침 맛있게 먹었지. 아내가 된장찌개를 끓여줘서 맛있게 먹었는데 오늘 내가 너무 행복하다. 너무 감사한 일이 많아.’ 여러분! 감사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의 마음속에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에 늘 말씀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감사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당에 오셔서 예배드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오늘 여기 와서 찬양 부르고 하나님께 찬양 돌릴 수 있고, 목사님을 통해서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내가 이렇게 양다리가 멀쩡해서 걸어서 여기 올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합니까? 여러분! 좋은 차를 타지 못한 것 불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걸어서 오신 분들이 훨씬 행복한 분들입니다. 많이 걷는 분들은 건강하시거든요. 저도 요즘 걸으려고 노력을 하는데, 시간을 잘 못 내서 자꾸 건너뛸 때가 많습니다. 걷는 것이 건강에 제일 좋다고 합니다. 여러분! 가능하면 자꾸 많이 걸으십시오. 그것이 장수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 정말 어떤 생각을 하는가? 어떤 감사의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보느냐가 우리의 복과 불행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왜 생각이 중요하냐면 생각은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생각 잘 못 해서 실패하는 분들 많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잘 해서 성공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여러분! 생각이 너무 너무 중요합니다. 

메가스터디라고 하는 초중등학생들 인터넷 학습을 하는 회사의 사장을 하고 있는 김성호 장로라고 계십니다. 이 분이 가까운 대방동에 대방교회에 장로님이신데 이 분은 저 지방의 시골교회 목사님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시골교회 목회를 하시니까 늘 가정이 어려워서 하루끼니를 잇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대학 약대를 들어왔습니다. 약대를 졸업을 하는데 자기 동기들은 다 여유가 있으니까 미국 유학가고, 대학원 진학하고, 서울대 약대 나와 가지고 약방을 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는 경우에는 아주 크게 약방을 내고. 자기는 그럴 돈이 없습니다. 아버님이 목사님인데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마산 지역을 돌아다녔습니다. 시내는 비싸서 약방을 낼 수가 없고, 마산시내에서 30분 버스 타고 가는 변두리에 약방자리 조그만 곳 4.5평정도 되는 구했습니다. 돈이 없으니까 친척에게 사정을 해서 600만원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200만원은 약방을 만드는데, 내부 수리하는데 쓰고, 300만원을 가지고 약을 샀습니다. 약을 사니까 한쪽 귀퉁이에 조금 사서는 약방이 잘 안 됩니다. 너무 창피스러워서 약 제조회사 직원에게 부탁해서 빈 약병, 약봉지 이런 것을 많이 가져와서 상자에 넣어 벽 한쪽 면을 다 채웠습니다. 그러고 나서 100만원을 운영자금으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시골이다 보니 시내에서 버스가 하루에 몇 번 왔다 갔다 하는데 무슨 손님이 있겠습니까? 두 시간, 세 시간에 손님 한 사람이 왔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생각이 특이합니다. 손님 한 사람이 오면 절대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친절하게 앉아 상담을 합니다. 인생 상담까지 합니다. 이름 적고, 처방전을 다 기록해 놓습니다. 한번 오면 잊어버리는 법이 없습니다. 약을 조제하면서도 그 사람 이름을 한 40번은 부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있다가 며칠 후에 그 사람이 또 오면 이름과 처방내력을 다 외워서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한 번 왔던 사람은 또 온다는 것입니다. 손님이 오면 늘 세 가지를 생각합니다. ‘이 분이 내 서비스에 만족할까?’ ‘이 분이 다시 우리 약방을 찾을까?’ ‘나중에 올 때 또 한 사람을 데리고 올까?’ 친절한 약사가 되었습니다. 어린 아이가 와도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고 반갑게 맞이합니다. 사탕을 주고 때로는 시간이 날 때 공부도 가르쳐주고 이렇게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어느 날은 약방이니까 길 찾는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개똥이네 집에 가려는데 번지가지고 모르겠는데 알려달라고.” 그러면 약방문을 닫고 그분을 모시고 대문까지 가서 집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며칠 후에 그 집주인이 와서 “아이고 우리 집에 오는 손님을 그렇게 반갑게 안내해 주셨다면서요?” 하면서 고마워서 약을 사러 온다는 것입니다. 그 약방 앞에 시내에서 온 택시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택시가 한번 들어오면 나갈 손님이 있어야 나가니까, 택시기사들을 들어오라고 해서 커피도 한 잔씩 주고, 박카스도 하나씩 주고 대접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돈이 필요하면 잔돈도 바꾸어주는 등 친절을 베풀었습니다.
  
육일약국이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 약국이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택시만 타면 그는 “어느 동네 어디 갑시다.”하지 않고 “육일약국 갑시다.”라고 했습니다. 육일약국이 어딘지 모르는 기사에게 길을 가르쳐 줍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택시만 타면 무조건 육일약국을 가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몇 년 후 마산시내에서 유명한 약국이 되었습니다. 그 약국이 발전을 거듭해 6년 만에 200배 이상 성장했습니다. 

그 사람이 약방을 하다 메가스터디라는 인터넷 사업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발전해서 큰 기업가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일 년 버는 소득이 아시아나항공보다 더 많다고 합니다. 그는 약방 하나 낼 수 없어서 돈을 꾸어서 시작했던 약사였지만 이제는 큰 기업가가 되어서 모든 좋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쓴 책이 <육일약국 갑시다!>라는 책인데 인쇄소에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판매대금은 내가 한 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이 대금을 가지고 어려운 아이들, 그리고 도서관이 없는 지역에 도서관을 만들어 주고, 책을 사 주십시오.” 이분의 생각이 너무나 아름답지 않습니까? 누구나 한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는 생각이 특이했기 때문에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각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이제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을 부탁을 드립니다. 이왕이면 좋은 면을 보십시오. 밝은 면을 보십시오. 우리가 한번 부정적인 생각의 노예가 되어버리면 그런 사람들은 늘 남의 흠을 잡게 됩니다. ‘저 사람은 무슨 문제가 없나?’ ‘저 사람은 꼭 사기치고 도망 온 것 같아.’ 자꾸 남의 뒤나 캐고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눈으로 보셔야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복음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정말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생각입니다. 미움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이런 복음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모두를 다 사랑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고,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으면 좋은 생각을 심으셔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공격할 때 우리의 생각을 공격합니다. 우리의 생각 속에 더러운 생각, 음란한 생각을 심어주면 사람들은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 속에 선하고 아름답고 복음적인 생각이 들어오면 사람은 고상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생각을 잘 지키셔야 합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니까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선한 생각으로 지키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갈라디아아서 5장 19절 이하에 보니까 육체의 생각들이 소개됩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이런 생각이 내게 들어오면 안 됩니다. 그런 생각들은 다 제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에 문지기, 파수꾼을 세우셔야 합니다.

빌립보 4장 8절에 보니까 이런 생각을 가지라고 합니다.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좋은 생각들도, 성령의 생각들로 채우셔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정원이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꽃밭이 있습니다. 그것을 잘 가꾸면 잡초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원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에 정원, 이 생각도 여러분이 잘 가까셔야 합니다. 예배에 참석함으로서, 좋은 생각을 함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서, 우리의 마음의 생각을 늘 정결함으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악한 생각이 여러분의 생각 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지키셔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선한 생각, 성령의 생각, 은혜의 생각, 믿음의 생각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채우시고, 날마다 감사하며 행복하시고 성공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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