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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레갑 자손의 전통 (렘 3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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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갑 자손의 전통 (렘 35:1~17)


전통(傳統)에 대한 사전적 의미는 관습 가운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특히 높은 규범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따라서 전통은 그 사람을 평가하는 가장 적절한 기준이 됩니다. 
일본 사람과 우리가 다른 것은 각자 가지고 있는 고유한 전통 때문입니다. 여기 레갑 자손의 전통은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통의 가치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민 유다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면서 레갑 자손의 신앙 전통을 통해 유다와 이스라엘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레갑 사람들은 정통 유대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야곱의 자손이 아닙니다. 이들을 가리켜 겐 족속이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2장 55절에 『 야베스에 거한 서기관 족속 곧 디랏 족속과 시므앗 족속과 수갓족속이니 이는 다 레갑의 집 조상 함맛에게서 나온 겐 족속이더라 』고 했습니다. 
이들은 모세의 장인 호밥이 속하였던 족속이었습니다. 민수기 10장 29절에 『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라고 했습니다. 
레갑 족속은 팔레스틴 지역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소수민족이었는데 바벨론 제국의 국토 확장 정책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으로 피난 와서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가르침에 따라 엄격한 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들의 선조 요나답의 교훈은 
① 포도주를 마시지 말고 ② 집도 짓지 말며 ③ 파종도 하지 말고 ④ 포도원을 재배하지 말며 ⑤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레갑 족속을 시험해 보았습니다(2-5절). 그러나 레갑 족속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생활규범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단호히 거절했습니다(6-11절). 결국 그들은 그들이 지켜오던 전통 파수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18-19절). 

오늘 우리는 레갑 족속의 그들 나름대로의 고집의 의미를 살펴보자는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의 선조들이 교훈한 전통을 소중히 여겼다는 데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교훈이나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레갑 족속의 전통성과 선조들의 교훈을 지키려는 단호한 태도에 주목해야 합니다. 레갑 족속은 그들의 조상들의 명령에 저렇게도 순종하는데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레갑 족속의 예를 들어 유대인들을 교훈한 것을 상기하면서 레갑 자손의 전통의 의미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들의 전통은 

Ⅰ. 선조들이 교훈한 규례에 절대 가치 를 두는 거룩한 삶입니다. 

레갑 족속은 모세 당시 모세의 장인 호밥이 속한 겐 족속이라고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 후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섞여 가나안에 정착한 겐 족속 가운데 한 사람이 레갑이었습니다. 
레갑은 많은 자손을 두어서 레갑 족속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장남은 요나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자손들에게 세 가지 유언을 남겼습니다. 

1) 포도주를 마시지 말라는 금주령입니다. 

본문 35장 5-6절에 『 내가 레갑 족속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사발과 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가로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영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이들을 시험하기 위하여 레갑 족속의 사람들 앞에 포도주가 담긴 사발과 잔을 내 놓았습니다. 그리고 마실 것을 권했습니다. 이것은 예레미야의 의도적 발상입니다. 그는 소위 선민이라고 자처하면서 혈통적 우월주의로 자만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을 이들과 대비시키고자 함입니다. 

이때 그들은 포도주 마시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조상의 유언을 따라 지금까지 지켜온 규례를 설명했습니다. 
이미 그들은 술이 믿음과 경건생활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노아는 술에 취하여 아들들 앞에서 벌거벗은 수치를 범했습니다. 

창세기 9장 20-21절에 『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고 했습니다. 

롯은 술에 취하여 두 딸과 동침하는 실수를 범했습니다. 

창세기 19장 32-33절에 『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고 했습니다. 

술은 자제력을 잃게 합니다. 
사무엘하 13장 28절에 『 압살롬이 이미 그 사환들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저를 죽이라… 』고 했습니다. 

술은 사람을 가난하게 만듭니다. 
잠언 21장 17절에 『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 속담에 이마에 대접을 붙이는 자식과 남의 보증을 서는 자식은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술 마시는 일을 금할 것을 명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라고 했습니다. 

술은 그 양(量)에 관계없이 취하게 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요나답이 자손들에게 한 교훈은 매우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2) 주거(집)건축의 금지령입니다. 

본문 35장 7절에 『 집도 짓지 말며… 』라고 했습니다. 
본문 35장 9절에 『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라고 했습니다. 
이 지상에 자기 소유의 집을 짓고 한 곳에 정착하다 보면 재물에 대한 욕심과 소유욕이 자연스럽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이러한 전통은 유목민으로서 유랑생활을 통해 항상 하늘나라를 소망하고 살 것을 교훈하기 위함입니다. 또한 일정한 영토를 가지고 안주하여 살면 외적의 침략을 받게 될 것을 고려하여 한 일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들이 집단 거주지역을 만들어 생활한다면 도시 생활에서 오는 온갖 부도덕과 부패와 사치로 인해 오는 타락을 염려하여 장막에 거하라고 한 것입니다. 

레갑 자손들은 비록 정통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삶이요 내세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대인들에게 레갑 자손들의 삶을 상기시킴으로서 그들로 하여금 신앙의 자리로 돌이키려고 했습니다. 
레갑 족속의 전통에서 받는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명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3) 장막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35장 7절에 『 … 너희 평생에 장막에 거처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우거하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같은 열조들도 장막생활을 했습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와 순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0절에 『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13-15절에 『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라고 했습니다. 

저들은 언제나 내세 지향적 삶을 살았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면서 오늘의 고난을 감수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유대 백성들은 선민의 긍지를 가지지 못하고 그 자리를 스스로 포기해 버렸습니다. 레갑 자손의 전통은 


Ⅱ. 선조들의 교훈에 절대 가치를 두는 계명적 삶입니다. 

본문 35장 8-10절에 『 우리가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모든 말을 순종하여 우리와 우리 아내와 자녀가 평생에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거처할 집도 짓지 아니하며 포도원이나 밭이나 종자도 두지 아니하고 장막에 거처하여 우리 선조 요나답의 우리에게 명한 대로 다 준행하였노라 』고 했습니다. 

이들의 조상들이 가르쳐준 규례는 그들의 의존적 사색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조상들의 유전한 규례에 절대가치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여기 레갑 족속들이 사용하는 부정의 부사는 알 이 아닙니다. 바로 강조적 의미를 띄고 있는 로입니다. 

그들의 선조들이 가르쳐 준 신앙 노선은 곧 그들의 계명이었습니다. 레갑 족속들은 바벨론의 공격으로 인하여 예루살렘에 들어와 사는 신세이지만 여전히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교훈에 따라 믿음 생활과 경건 생활을 소홀히 하지 아니했습니다. 
소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는 유대인들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레갑 족속들은 조상의 교훈을 지키기 위하여 온갖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는데 비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했습니다. 

레갑 족속들은 조상들의 교훈을 준종함에 있어서 그 어떤 타의 충고나 권면도 필요치 아니했습니다. 선조들의 훈계를 지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본문 35장 18절에 『 예레미야가 레갑 족속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준종하여 그 모든 훈계를 지키며 그가 너희에게 명한 것을 행하였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서 책망하고 훈계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했습니다. 
레갑 자손들은 이미 죽은 지 오랜 세월이 흐른 자기 조상들의 교훈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도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레갑 족속들은 자기 열조에 대해 효성을 다했습니다. 
레갑 족속들은 부득이하게 정착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조상들의 교훈 외에는 다른 것을 알기조차 원하지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고통을 당하는 중에서도 불평을 하는 등 하나님의 교훈을 떠나 신앙을 저버리는 죄를 범했습니다. 레갑 자손의 전통은 


Ⅲ. 선조들의 교훈에 절대가치를 둔 삶의 결과는 계대적 축복입니다. 

본문 35장 19절에 『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서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나의 그들에게 대하여 선포한 모든 재앙을 필연적으로 내린다는 말씀과는 대조적입니다.

유다와 이스라엘 모든 거민들이 받을 재앙에 대하여 그 이유가 명백했습니다. ① 말하여도 듣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② 불러도 대답하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레갑 족속에게는 축복한다고 했습니다. ① 선조 요나답의 명령을 순종하여 받들었다는 것입니다. ② 모든 훈계를 지키며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레갑 족속을 축복하신 내용은 유대와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대조적입니다. 레갑의 아들 요나답에게 내 앞에 설 사람이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 내 앞에서 』라는 말은 성전에서 제사장 직분을 맡아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사용했습니다. 

신명기 4장 10절에 『 네가 호렙산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섰던 날에 … 』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7장 10절에 『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이 집에 들어와서 내 앞에 서서 … 』라고 했습니다. 

BC 586년 예루살렘 멸망 후에 레갑 족속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서에 보면 레갑의 아들 말기야란 사람이 분문을 수리하는 일에 관여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느헤미야 3장 14절에 『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 』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로 볼 때 경건한 믿음의 자손들이 계승되었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에 거룩한 직분이 계승되는 가정, 예배하는 인격자가 계승되는 가정, 이웃을 사랑하는 인화 협동적인 인격자가 계승되는 가정은 축복 받은 가정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레갑 족속의 전통은 철저히 창조가 먼저가 아닙니다. 조상적부터 내려오는 것을 지키며 잃어버리지 아니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레갑 족속들의 전통과 관련하여 절제된 삶을 상기합시다. 본향을 사모하는 내세 중심의 삶을 상기합시다. 교회는 이 땅에 함부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피로 값 주고 산 것입니다. 
레갑 족속들은 선지자의 시험에도 넘어지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교훈을 철저히 지키면서 불굴의 투지로 살아갔습니다. 

가정의 부모, 학교의 교사, 교회의 목사는 권위주의적이어서는 안되지만 그렇다고 권위마저 없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세상 끝날까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이 땅에서 최고의 권위 있는 단체이어야 합니다. 
교회가 권위를 잃으면 세상은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교회의 권위를 대통령과 맞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내어 주고라도 교회의 권위가 남아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조상들을 두었습니다. 순교적 삶을 살았던 앞서간 신앙의 열조들의 후예가 되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그들의 신앙과 신학을 계승한다는 것은 우리의 긍지입니다. 인간적으로 연약과 죄가 없을 수는 없지만 그들의 신앙만큼은 그들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앞서간 신앙조부들의 모범된 신앙에 절대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무감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양식으로 삼았던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받아야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조상의 교훈보다 더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조상들의 요구는 지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면 안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길은 전도를 얼마나 잘하느냐가 아니라 전도하는 것을 자신이 얼마나 많이 실천하느냐에 달렸다"고 했습니다. 
표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라 이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입니다. 유대인들이 레갑 자손들의 충성을 보고 깨닫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 레갑 자손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때 부끄러운 일입니다. 

아니 레갑 자손들에게 비웃음을 당할 때도 늦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할 때가 두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 중에서도 소망이 있습니다. 
진정 부끄러운 것은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고 다시 말하려고 불러도 대답지 아니할 때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창조와 개발이라고 하는 미명아래 옛 것이 여과 없이 잊혀져 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논어에서 말하는 온고지신(溫故知新)도, 조선의 실학자 박지원이 말한 법고창신(法故創新)도 고(故)가 먼저입니다. 
우리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도 옛 것을 도로 찾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것은 어거스틴 신학의 계승이요 바울 신앙의 부활입니다. 
레갑 족속이 그들의 조상들의 교훈한 것을 지키는 것으로 이스라엘을 교훈하신 하나님의 요구를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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