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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도하기를 쉬는 죄 (삼상 12: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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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기를 쉬는 죄 (삼상 12:19~25) 


아침, 저녁으로 제법 가을을 재촉하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합니다. 
가을철이 되면 우리교회는 중요한 신앙프로그램을 갖습니다. 
‘가을철 다니엘 세이레 새벽기도회’입니다. 

우리는 이 영적 축제를 통하여 흐트러진 신앙자세를 바로잡곤 합니다. 
올해도 10월 13일부터 11월 2일까지 21일간 새벽기도회를 갖습니다. 
오늘 말씀은 ‘기도’라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본문, 삼상12장은 사무엘이 자신의 사역을 사울에게 이양하면서 행한 고별 설교입니다. 
그 내용은, 비록 왕정체제를 갖춘다하더라도 왕이 이방민족의 침략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만일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면 여호와의 손이 너희의 열조를 치신 것같이 너희를 치실 것이라.”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습니까? 
오직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고별설교를 마치면서 반복하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20절, “........오직 너희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섬기라.” 
24절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그러나 사무엘은 이렇게 권면하면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에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권면을 받아들일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만이라도, 생명이 다할 때까지 기도하겠노라고 결연한 의지를 천명합니다. 

23절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뭔가 절박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1. 왜 사무엘은 그 많은 일들 중에 기도하겠다고 천명했을까요? 

은퇴를 하면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통령이 은퇴하면 회고록을 쓰듯이 지난 통치 기간을 회고하면서 후대에 남겨놓을 글이라도 써야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시골에 낙향하여 여생을 편안히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 때문에 사무엘은 기도한다고 했습니까? 

기도의 중요성을 두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1) 기도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신앙생활에서 기도의 희생 없이는 값어치 있는 것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가 성장하려면 누군가가 기도의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후배들이 큰 교회를 목회하는 선배 목사님에게 ‘교회가 이렇게 성장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 선배 목사님은 후배들을 기도실로 안내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이 기도실에 10명이 모이면 교인은 100명이 되었고, 이 기도실에 100명이 모이면 교인은 1,000명이 되었고, 이 기도실에 300명이 모이면 교인은 3,000명이 되었습니다. 기도하는 교인은 전체 교인의 십일조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려면 누군가가 기도의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겔3장17-21절까지는‘파숫군’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겔3:17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으로 세웠으니” 

민족이 살려면 그 민족을 위한 기도의 파숫군이 있어야 합니다. 
가정이 살려면 그 가정을 위한 기도의 파숫군이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가 살려면 그 교회를 위한 기도의 파숫군이 있어야만 합니다. 

모두가 피곤하다고, 졸음이 온다고, 영적인 파수를 서지 않고 잠에 떨어지면 사탄은 교회를, 가정을  마음 놓고 노략질 할 것입니다. 
파수군은 남이 잘 때 자지 않는 희생을 해야 합니다. 
남 잘 때 혼자 전선을 지켜야 하는 고독한 희생을 감당해야 합니다. 

요즘 새벽기도회를 강조하면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자식을 낳는다는 것은 ‘나는 이 자식을 위하여 평생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하나님과 약속하는 것이란 사실입니다. 

사고와 질병이 많은 세상에서 건강하게 잘 자랄지, 사춘기의 정신적인 혼돈을 잘 견딜지, 좋은 대학에 잘 들어가게 될지, 군대생활을 잘 마칠지, 취직을 잘 할 수 있을지, 세상에 많고 많은 것이 남자 여자인데 제대로 된 배우자를 만나게 될지, 건강한 아기를 낳을 수 있을지, 흐트러지지 않고 가정생활을 잘 영위할지........ 하나하나가 다 기도제목입니다. 

정말 뱃속에 있을 때가 편했지 자식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사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없이도 잘 해나갈 수 있다는 오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마음대로 하시라는 배짱입니까? 
이도저도 아니라면 무지입니까? 
기도의 희생 없이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2) 기도는 하나님의 이미 정하신 뜻까지라도 변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기에 그 뜻을 변개하셨겠지요. 
아무튼 성경은‘그 뜻을 돌이키셨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 세 군데를 인용하겠습니다. 

창18:23-3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의 악함을 보시고 유황불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이때 기도의 사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의인 50인이 있다면 그들을 봐서라도 용서해주실 수 있지요? 의인 45인이 있다면? 의인 40인이 있다면? 의인 30인이 있다면? 의인 20인이 있다면? 의인 10인이 있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브라함의 기도로 말미암아 6차례나 변경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도가 뭐 길래 이렇게 하나님의 정하신 뜻까지 변경시킬 수 있습니까? 

출32:9-14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후 아론을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자 그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때 기도의 사람 모세가 하나님을 가로막고 “하나님 그렇게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탄원합니다. 
출32:14절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왕하20:1-6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이제 죽게 되니 너의 삶을 정리하라.’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듣고 히스기야 왕은 낯을 벽으로 향하고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 기도로 그의 죽음의 때를 15년 후로 밀어놓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도는 하나님의 이미 정하신 뜻이라도 변경시킬 수 있는 위대한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러면 왜 기도를 쉬게 될까요? 

왜 사무엘은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거론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기도하기를 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지 못하는, 기도하지 않는 이유 세 가지를 지적해보고자 합니다. 

1) 기도하지 않는 이유로,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고 하는 영적인 무지 때문일 수 있습니다. 

“기도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나 할 일이지 나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이 왜 쓸 데 없이 기도하는데 시간을 보내겠어?” 

“기도는 사업이 기우뚱거리거나, 직장생활이 흔들리거나, 아이들이 대학에 떨어진 사람들이 오만가지 인상을 찌푸려가면서 하는 것이 아닌가?” 

“내 직장생활은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가족들도 건강하고, 아이들도 공부를 잘하고 있는데 뭐가 답답해서 새벽바람을 맞겠어?”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의외로 많이 봅니다. 
영적으로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아니면 헤쳐나 갈수가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면 해결되지 않고, 하나님이 붙들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마음이 없으면 기도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기도할 제목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할 제목이 많아집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닮아 세계의 문제가 내 문제로 여겨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라크에서 수십 명이 자살 폭탄으로 죽어갈 때, 예전에는 “그 놈들 엉뚱한 짓 하더니 잘 죽는군!”하고 중얼거리고 말았는데 하나님의 아픔을 느끼고부터는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깊어지면 기도의 깊이는 깊어지고, 기도의 넓이는 넓어집니다. 
그러니까 기도 시간은 점점 더 길어지고, 기도의 횟수는 점점 더 많아집니다. 
우리가 만일‘나는 문제가 없어 별로 기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바로 이때야말로 기도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인정하길 바랍니다. 


2) 기도하지 않는 두 번째 이유로는, ‘기도해봤자 그저 그렇더라.’는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기도해도 그렇고 그래요.”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기도하지 않게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기도응답이 없는데 왜 기도하겠습니까? 

그러면 기도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간단합니다. 
기도응답에 대한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체험이 없기 때문에 ‘정말 그럴까? 라고 의심하는 것입니다. 

목회를 통하여 발견한 사실은, 기도 응답에 대한 체험이 없는 사람들 대부분은 무엇을 기도했는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기도한 사람조차 모르는 기도제목을 하나님이 응답하셨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래서 저가 강조하는 것은 기도수첩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섬세한 역사하심을 체험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응답의 체험이 있어야만 기도하는 맛을 알게 됩니다. 
기도하는 맛을 알게 되면 인생살이에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누가 어떤 일로 염려하면, “그걸 가지고 뭘 걱정 하십니까? 기도하면 될 걸 가지고!”라고 권면하게 됩니다. 

신문에(국민일보 2008년 9월 5일 자) 국내 학부 졸업생 중 최초로 유엔 정직원으로 채용된 정한나 씨에 대한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인터뷰 중에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는 얘기를 빼면 설명이 안 될 것 같아요.”라고 고백했습니다. 

정한나 씨는 대학 졸업(경희대 정치외교학과)을 앞두고 지난 1월부터 6개월 동안 유엔 인턴 쉽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한 가지 목표를 정했습니다. 
‘유엔 정식 직원에 도전해보자.’ 

하지만 주위에서는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수두룩한 석, 박사출신을 놔두고 학부 졸업생을 뽑을 리가 있겠는가?” 
그가 기도를 시작하면서 확신한 바는 “그래, 하나님이 쓰실 거라면 합격될 거고 만약 안 되더라도 다른 기회를 주시겠지.”였습니다. 

그는 최종합격통보를 받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디서든지 항상 예외는 있으니까 지레 겁부터 먹고 가능성을 꺾지 마세요. 무엇보다 꿈은 절대 포기하면 안돼요. 그걸 이루는 분은 하나님이시니까요.” 


3) 셋째로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르는 신앙적인 무지 때문입니다. 

처음 예수를 믿는 분들은 기도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저는 어제 설교 준비를 하면서 놀라운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스가랴서 8장 23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날에 다른 나라 사람 열 명이 유다사람 하나의 옷자락을 잡는다.’는 의미는 ‘나를 살려 달라.’고 매어 달린다는 말이지요. 
그런데 그 유다 사람 한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하면, 스가랴8;21절에 보면, “속히 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자.”하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즉 기도하는 사람 하나에게 기도하지 않는 열 사람이 옷자락을 잡고 살려달라고 한다는 말씀입니다.
기도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국민일보 ‘미션 플라자’ 라는 섹션에 ‘문흥수 변호사’의 간증이 나왔습니다. 
그의 글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새벽에 엎드려 기도하면 성령이 폭포수처럼 나의 마음속에 임했다. 새벽기도를 한 날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창공을 날아오르듯 나도 상승기류 가운데 하루 종일 살 수 있었다. 밤에 3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새벽기도를 한 뒤 1시간 공부하는 것이 서너 배 더 공부가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공부한 덕택에 우리나라 시험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험 중의 하나라는 사법연수원 수료시험에서 수석 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새벽에 도우시리라고 하셨다. 그야말로 달디 단 잠을 깨우고, 포근한 잠자리를 뒤로 한 채 새벽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의 은혜가 마른 땅 위에 내리는 단비처럼 촉촉이 내리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기도 없이 세상에 나가는 것은 무기 없이 나가는 것이고, 그날은 세상의 가시에 찔리고 돌에 채이며 상처투성이 패배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는 새벽기도를 한 날과 새벽기도를 하지 않은 날의 차이를 보면서 그리스도인의 생명은 새벽에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관이 된 후 생활이 안정되자 새벽기도를 놓치게 되었다. 그러다가 10여 년 전에 새벽기도를 하지 않는 날은 아침과 저녁을 굶기로 작정했다. 현기증이 났다. 그러나 차라리 새벽기도를 안 할 바에는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 후 거의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왜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라고 말했습니까? 
그것은 기도하는 일이 인생살이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은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단정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죄를 범하지 맙시다. 
우리 교회를 ‘새벽기도 불꽃’으로 유명한 교회로 만듭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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