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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뵈뵈와 같은 권사 (롬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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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뵈와 같은 권사 (롬 16:1~3)


초대 교회당시 이방선교의 주역이였던 사도 바울은 제 3차 선교여행을 하던 중 고린도에서 약 3개월을 머물면서 자신이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로마 교회를 향하여 편지를 하게 됩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사랑하는 여신도 한사람을 특별히 천거하여 로마교회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바로 겐그리아 교회의 일군 뵈뵈입니다. 

일군이라는 단어는 집사로 번역될 수 있는 용어입니다. 당시에는 권사라는 제도가 없었습니다. 권사제도는 우리나라에서만 있는 제도입니다. 

권사라는 용어가 국어사전에 보면 “신자를 찾아다니며 신앙심을 두텁게 하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에게 전도하는 교직(敎職). 또는 그런 사람” 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권사라는 용어 자체는 없습니다. 그러나 권사직을 의미하는 ‘권면’ 이라는 용어가 25번 언급되어있고 ‘권하노니...’ 라는 동사적 용법으로 20번, ‘권하는..’ 이라는 형용사적 용법으로 5회가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권사라는 용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성경구절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살전 5:1113절에 보면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라고 했습니다.

피차 권면하라는 말씀이나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 ....이라는 용어를 보면 당시에 목회사역의 중요한 부분이 권면하는 부분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목회 사역의 한 부분인 권면하는 일에 대하여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들을 따로 세워서 권사 제도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영어에서는 권사에 해당하는 단어가 디커니스(dea·con·ess) 라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디커니스를 번역할 때 여자 집사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일군이 되어 집사의 일을 감당하며 권면하는 일로 더 부름 받은 사람이 권사인 것 입니다. 

본문에서 일군이라고 표현된 뵈뵈를 집사로 번역할 수도 있지만 권사로 번역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권사회 헌신예배이기에 뵈뵈 집사가 아니라 뵈뵈 권사라고 부르겠습니다. 

바울은 그를 가리켜 “우리의 자매”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그가 바울에게 뿐 만 아니라 다른 선교의 동역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친 인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오늘은 뵈뵈 권사님의 신앙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 뵈뵈 권사님 같은 사람을 하나님이 쓰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1. 그의 신앙은 추천할 만한 신앙이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1절에 보면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뵈뵈를 추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추천을 받는다는 것은 대단히 기분 좋은 일입니다. 
바울은 뵈뵈 권사님을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천거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사람에게 추천을 받을 만큼의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까? 

특히 본 교회 담임목사에게 추천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담임 교역자가 그의 신앙을 무엇이라고 추천하는가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실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왜냐면 담임목사는 그의 신앙생활의 모든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중국 진나라 때 기해라는 수상이 있었습니다. 
그가 나이가 들어 수상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왕으로부터 "후임자를 천거하라"는 말을 듣고 [원수지간]이었던 해호를 추천했습니다.
"해호는 그대의 원수가 아닌가?" 
왕이 놀란 음성으로 묻자 기해는 침착한 목소리로 이렇게 진언했습니다. 
"왕께서 신하에게 물으신 것은 나라의 수상이 될 재목이었지 개인적인 감정의 인물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소인은 다만 왕께서 물으신 뜻에 합당한 자를 천거했을 뿐입니다"

원수를 추천한 기해도 대인이고 훌륭한 사람이지만 원수에게 추천받은 해호도 훌륭한 인물이라도 생각됩니다. 자신의 원수에게까지 수상이 될 인물로 인정을 받았으니 말입니다. 사람들에게 추천받아야 합니다. 특히 담임목사에게 추천받을 만한 인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헌신적인 신앙인이었습니다. 

1) 그는 겐그리아 교회의 일군이었습니다.

일군이란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사람에게 붙혀 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일군을 쓰십니다. 일하는 사람을 쓰십니다. 살후3:11절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에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바울은 권면합니다.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살후3:12) 라고 말입니다.
교회의 직분자는 일군이 되어야 합니다. 특히 권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일꾼은 그 부르심에 충성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통해 하실 일은 너무나 많습니다. 만일 우리가 그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충성되게 교회 사역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일을 맡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만일 당신의 자동차가 세 번에 한 번 꼴로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그 자동차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둘째, 만일 신문 배달부가 일요일마다 당신의 집에 신문 배달하는 것을 빠뜨린다면, 그 신문 배달부를 성실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만일 어떤 직원이 한 달에 두 번 결근한다면, 사장은 그 직원을 신뢰할 수 있겠습니까? 
넷째, 만일 당신의 집에 일주일에 한두 번씩 수도물 공급이 끊긴다면, 그래도 당신은 시당국이 믿을 만하다고 여기겠습니까?
다섯째, 만일 당신이 일 년에 한두 번씩 집세 내는 것을 잊어버린다면, 집주인은 당신을 좋아하겠습니까?

이 질문에 답하면서 성실, 또는 충성됨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계2:10). 여기서 면류관이란󰡐경기에서 승리한 자에게 씌워지던 월계관󰡑을 말합니다. 충성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최후의 승자에게만 영광의 면류관은 씌워질 것입니다. 아무개는 양정 교회 충성스런 일군이야! 라는 소리를 들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2) 그는 자신을 드려 봉사하였습니다.

바울은 뵈뵈 권사님을 소개하면서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호자란 무슨 뜻입니까? 
원어로 “프로스타티스”라는 이 말은 후원자라는 의미입니다. 후원자라는 의미는 다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위안을 주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그녀는 여성이 지닌 모성의 보호 본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많은 성도들과 복음을 위해 사역하는 바울을 뒤에서 최대한 밀어주고 아낌없이 후원해 주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하려하면 물질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따듯한 마음의 정신적 후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용기와 위로와 격려를 주는 말 한마디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이 일에 뵈뵈 권사님은 자신을 드려 봉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쓰시고 찾고 계십니다. 주의 종이 그는 나의 보호자라고 자신 있게 사람들에게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사실 주의 종처럼 약한 자가 없습니다. 성도들이 보호자가 되지 않으면 누가 보호자가 되겠습니까?
그러기에 권사는 품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권사의 입에선 절대로 남을 비판하고 험담하는 말이 나오면 안됩니다. 허물은 덮어주고 약점은 감싸주며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그런 마음이 권사가 가져야 할 마음이며 해야할 일입니다. 


3. 그는 바울이 자랑하고픈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에서 로마교회로 보내는 편지를 써서 그의 손에 들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를 로마 교회가 따듯하게 영접할 것을 부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바울의 선교 여행 중에 물질적인 후원을 아끼지 아니했습니다. 그리고 우편 제도가 발달되지 않은 때에 바울이 로마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로마 교회에게 까지 전달하는 위험한 여행을 마다하지 않고 감행했던 참으로 용기 있고 활동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인들에게 이 뵈뵈 권사님을 천거하며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자랑은 하지 말 것을 가르칩니다.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어떤 신사가 좋은 차를 몰고 가다가 냇물을 만났습니다. 그곳에 마침 농부가 있었습니다. 신사는 거만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여보시오, 내 차가 여기를 건너갈 수 있겠오? 하고 물으니 농부는 가능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차를 몰고 건너다가 물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신사는 투덜거렸습니다.
이때 농부는 말하기를 조금 전에도 오리가 건너 갔는데요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자랑하다 낭패 본 것입니다. 자기가 자랑하면 안됩니다. 남이 나를 자랑하게 해야합니다. 

골프 재미에 푹 빠진 목사가 있었습니다. 구름 한점 없이 화창하고 맑은 주일이었습니다. 목사는 갈등하다 결국 교회에 몸이 아파 못 간다는 전화를 하고 골프장으로 향했습니다. 이를 본 천사가 하나님에게 말했습니다.
"저 목사, 혼 좀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목사는 1번 홀에서 힘차게 스윙했습니다. 볼은 무려 350 야드를 날아가 그린 위에 떨어진 뒤 홀컵으로 들어갔습니다. 홀인원이 된 것입니다. 
목사는 흥분했습니다. 천사도 충격을 받아서 말했습니다. 
"하나님! 이것은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벌을 주셔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하나님은 미소를 지으며 천사에게 말씀했습니다. 
"목사가 이 일을 누구에게 자랑하겠니? 자랑을 하면 주일에 골프 친 것이 들통 날 테고, 자랑하고 싶은데 자랑할 수 없는 고통보다 더 큰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 

진정한 일군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청년이 일을 아주 잘해서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특히 상을 주는 이가 그에 대해 좀 과하게 칭찬을 했는데 청년은 그 칭찬을 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상 주는 이가 말한 칭찬을 하나도 빼지 않고 그대로 자기의 어머니에게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어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지금 이 세상에서 위대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그러자 어머니는 아들이 묻는 질문의 의도를 생각하고 지혜롭게 대답했습니다.
“얘야,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숫자보다는 한 명이 적을 거야”
 
이러한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청년은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고 곧 뉘우쳤다고 합니다. 자화자찬은 언제나 씁쓸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27:2절에 “너는 다른 사람이 너를 칭찬하게 할 망정 네 입으로는 너를 칭찬하지 말라” 라고 말입니다. 

오늘 당신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자랑할 것이 있다면 예수님을 자랑하고 다른 사람을 자랑하고 여러분 자신은 다른 사람이 특히 목회자가 자랑할 수있는 수준의 신앙생활이 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목사는 자랑하고 싶은 교인이 있습니다. 
바로 뵈뵈 같은 교인입니다.

살전 2:19절에 보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목사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겐그리아 교회의 신실한 일군이었으며 헌신적인 바울의 봉사자였습니다. 그의 믿음은 순결하였고 진실하였습니다. 바울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고픈 인물이였습니다. 뵈뵈 같은 신앙인이 됩시다. 하나님이 쓰십니다. 뵈뵈같은 권사 뵈뵈같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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