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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로 가는 밝은 길 (롬 8: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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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가는 밝은 길 (롬 8:26~30)
  

82년도에 영락교회 부목사가 되었습니다. 영락교회는 지금도 아마 그럴꺼라고 생각하는데 모든 부 목사가 주일 날 성경 공부 반을 하나씩 맡아서 강의를 해야만 했었습니다. 저는 강의를 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 중에 하나가 강의 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저에게 영락교회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제가 맡은 성경공부반이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교실에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복도 창문을 뜯었습니다. 

그것이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이로 34살 어린 나이에 담임목사 청빙을 받게 되었습니다. 종로구 필운동에 있는 승동교회였습니다. 승동교회는 제가 부임하기 전 분쟁으로 분열된 교회였고 지역적으로 볼 때도 별로 좋은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이 말렸습니다. ‘나이도 어린 사람이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교회를 첫 담임목회지로 선택하려고 하는가?’가 저들이 제게 해준 말들 이었습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는 참으로 교만한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내가 너냐?’  

결국 84년 6월 첫 주일에 승동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였습니다. 부임하자마자 한 일은 배가운동이었습니다. 부임한 첫 주일 주일 예배에 154명이 출석하였습니다. 연말까지 300명 출석교인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도 좋아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노력했습니다.   

어느 날 새벽기도회 후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 속으로 말을 걸어 오셨습니다. ‘왜 300명이냐?’ 깜짝 놀랐습니다. 그때 저는 교회 배가 운동이 하나님을 위해서도 아니고 교회를 위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전혀 저 자신을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야만 ‘내가 너냐?’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와 운동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그와 같은 사실을 교인들에게도 정직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교회와 목회의 목적과 목표를 숫자 위주의 성장에는 두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처럼 그렇게 만만하고 쉬운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감리교회에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목사님 한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몇 년 전 안산 쪽에서 목회를 하셨었습니다. 집사님 한분이 주일 날 자주 빠지셔서 그 집사님을 잘 아시는 어느 권사님(남자 권사님)에게 집사님 댁을 한번 심방해 달라고 부탁을 하셨답니다. 얼마 후 권사님에게 그 집사님 댁 한번 심방해 보셨냐고 물었더니 그 권사님이 이렇게 대답을 하셨답니다. ‘제가 왜 목사님의 목회적인 성공을 위하여 희생해야 합니까?’ 참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저도 그 말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몇 번을 계속 생각해 보니 말을 좀 당돌하고 무례하고 거칠었지만 맞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혼을 하였을 때 아내 몸무게가 40kg 채 되지 않았었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마른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도 낳고, 학교 교사로 멀리 인천까지 학교도 다니고 하다 보니 무척 힘에 부쳤던 모양입니다. 체중 1 kg 늘릴 때마다 상금을 주겠다고까지 하면서 체중을 늘리려고 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저는 결혼 전 몸무게가 63 kg 이었습니다. 결혼을 하고나서 저는 몸무게가 갑자기 늘기 시작했습니다. 영락교회 부목사 때가 가장 피크였던 것 같은데 80 kg가 퍽 넘었습니다. 적정한 몸무게가 있습니다. 적정한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안식년을 하는 동안 몸무게가 조금 줄었습니다. 허리도 한 2인치 정도 줄었습니다. 아니 줄였습니다. 다이어트를 하기 보다는 열심히 운동을 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지난 주 병원에 가서 체크를 했더니 모든 수치가 아주 좋아져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교회의 사이즈나 교인들의 숫자도 적정선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으면 교회로서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든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인들의 숫자가 지나치게 너무 많으면 그것 때문에 생겨나는 성인병과 같은 문제들이 나타나 오히려 교회를 약하게 만듭니다. 사람들은 몸무게가 너무 많이 나가서 비만이 되면 건강에 좋지 않다는 것을 다 잘 압니다. 그래서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교인들의 수가 많아서 대형교회가 되면 될수록 좋다는 생각을 하지 그것이 오히려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하는데 지장이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말씀드린 목회자의 목회적인 야망과 교인들의 쓸데없는 자부심과 연결이 되어 교회의 적정한 체중을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큰 아이가 경제를 공부하기 때문에 귀 동냥으로 얻어 들은 말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장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는 말입니다.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그것을 잘 설명 드릴 수는 없지만 저는 설명 없이 그 말을 그냥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경영과 경제에만 통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성장을 무조건 죄악시 할 필요도 없고 또 해서도 안 되지만 성장 할 때 성장 속에 패망의 인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조심하고 그에 대한 대책과 대비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회의 성장 속에 숨어 있는 패망 인자는 과연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 있지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나친 담임목사 의존입니다. 대형교회로 성장한 교회의 보편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대형교회에는 유명한 담임목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대형교회는 그 유명한 담임목사의 유명세 때문에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교회가 지나치게 담임목사 의존적입니다. 몇몇 교회의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볼 때 그 담임목사가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게 되면 교회는 즉시 힘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겨우 생존에 급급하는 교회로 전락하는 교회가 되기 쉽습니다. 교회가 지나치게 커지게 되면 유지 자체만도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람과 있으나 마나한 사람 그리고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모두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이 되어도 문제입니다.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은 좋은 것 같으나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되는 교회나 조직은 허약하기 이를 때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없으면 그 교회와 조직은 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의 보편적인 문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사람 때문에 성장하다가 그 사람이 없어지게 될 때 안 되는 교회로 전락할 수 밖에 없다는데 있습니다.

교회는 모여야 할 때가 있고 흩어져야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도행전에도 보면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대 교인들은 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위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성령을 받았고, 성령충만한 교회는 급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에 성령충만하여 급성장하던 초대교회에 핍박이 닥쳤습니다. 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엄청난 핍박이 교회에 몰아쳤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교인들은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핍박을 통하여 교회와 교회를 흩은 것에는 사탄이 역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 말에도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성령충만하여 날로 성장하는 교회를 핍박하여 흩으면 죽을 줄 알았습니다. 교회가 망하고 무너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흩어진 것은 사탄의 역사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사탄이 그렇게 하려고 하였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그렇게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핍박으로 인하여 교회가 흩어지는 것에는 사탄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성령의 역사도 있었습니다. 사탄도 미처 보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탄은 흩어지면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오산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흩어짐으로 죽지 않았습니다. 망하지 않았습니다.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 때문에 더 건강해 졌습니다. 더 활발해 졌습니다. 교회가 예루살렘을 벗어나 사방으로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당부하신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이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들이 흩어져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하나의 교회가 핍박으로 말미암아 많은 교회로 확산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성장에 안주하여 그냥 예루살렘에 안주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이제 시작 된지 7년 된 교회입니다. 개척 된지 7년 만에 주일 출석교인이 5천명을 넘었습니다. 제 안식년으로 조금 주춤했던 교회가 다시 성장 추세로 돌아서는 것 같습니다. 그냥 내버려만 둔다면 큰 문제없이 우리 교회도 머지않아 만 명 교회는 될 겁니다. 명실상부한 대형교회 반열(?)에 들어가게 될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의 성장은 이미 발동이 걸린 상태이고 그것을 막는다는 것은 인위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면 우리 교회도 성장 속에 있는 패망 인자의 공격을 받게 될 것이고 계속 건강한 교회로 발전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학교로부터 강당을 비워 달라는 공문을 받은지가 벌써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에도 사탄의 역사가 있고 성령의 역사가 있다고 믿습니다. 사탄은 이것을 통하여 우리를 흩으려하고 흩어 무력하게 하려고 합니다. 성령께서도 우리를 흩으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나 흩어 무너지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흩어 더 건강하게 하려 하십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저는 그동안 어떻게하면 우리 교회를 흩지 않고 다시 한 곳에 잘 모을 수 있을까를 주로 많이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참 쉽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를 수용할만한 곳을 찾는다는 것이 정말로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동안 기도하며 생각하면서 요즘은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때 흩으시려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오천 명 교인을 하나의 교회로 계속 모으려고 하지 말고 이참에 천 명 이 천 명 정도 모이는 교회 몇으로 분립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과 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깊이 하고 있습니다. 독립된 교회로 자리 잡게 하면서 서로 높은 뜻 이라고 하는 철학을 공유하고 서로 협력하는 하나의 교회를 유지하는 교회가 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기도 중에 깊이 하고 있습니다. 핍박으로 흩어진 초대교회가 독립적으로 교회를 잘 운영하면서도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하나의 교회를 이루었던 것과 같이 말입니다. 몇 개의 교회가 분립되어 세워지게 되면 저는 어느 한 교회를 맡지 말고 매주 한 교회씩 순회하며 설교를 하면 어떨까요? 

평시 독립된 교회로 잘 모이다가 일 년에 몇 번 정도 같이 모여서 축제처럼 모여 집회도 하고 예배도 드리면 어떨까요? 구약시대에 평시에는 회당 중심으로 잘 모이다가 일 년 한 번씩 예루살렘 성전으로 다 모이듯 말입니다. 각기 독립된 교회로 활동을 하지만 공통된 관심과 사역에는 서로 협력하여 함께 일을 한다면 몇 만 명 모이는 대형교회가 하는 큰 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제가 은퇴한 후에도 높은 뜻 교회는 까딱없이 계속 건강한 교회가 되지 않을까요? 이번에 분립된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로 또 성장하게 되면 계속 성장만 하려고 하지 말고 또 분립시키면 좋지 않을까요?

이렇게 생각하니까 좀 섭섭한 면은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나도 만 명 이 만 명 모이는 대형교회 담임목사 될 수도 있었는데 하는 아주 인간적인 생각 말입니다. 그러나 흩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얼마든지 포기할 수 있습니다. 교인 여러분들만 동의해 주시고 함께 해주신다면 저는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다. 오천 명 이상 모일 수 있는 예배 처소를 찾는 것은 참 어렵지만 몇 백 명 혹은 일 이 천 명 정도 모일 예배 처소를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도 않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제가 참으로 좋아하는 하나님의 말씀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우리 높은 뜻 숭의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만 주인이 되시기를 바라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높은 뜻 교회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높은 뜻은 하나님의 뜻을 말합니다. 우리 교회의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이루는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내 거신 하나님의 조건에 합당한 교회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조건 말입니다. 때문에 저는 우리 교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임을 믿어 조금도 의심치 않습니다.

때문에 무슨 일을 만나도 두렵지 않습니다.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면 되고 이렇게 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하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렇게 되어서 좋고, 저렇게 되면 저렇게 되어서 좋을 것입니다.

지난 일 년 동안 안식년 하면서 우리 교회가 당한 어려움 때문에 오히려 저는 은혜가 많았습니다. 지 지난 주에도 설교 중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성경 구절 하나 하나, 찬송가 가사 하나 하나에도 은혜가 많았습니다. 은혜 받은 찬송 중 하나가 545장 ‘하늘 가는 밝은 길이’라는 찬송이었습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  

내가 걱정하는 일이 세상에 많은 중 속에 근심 밖에 걱정 늘 시험하여도
예수 보배로운 피 모든 것을 이기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내가 천성 바라보고 가까이 왔으니 아버지의 영광집에 가 쉴맘 있도다.
나는 부족하여도 영접하실 터이니 영광 나라 계신 임금 우리 구주 예수라.

세상에는 슬픈 일도 많고, 걱정스럽고 근심스러운 일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때문에 슬프지도 않고 걱정스럽지도 않고 근심스럽지도 않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당하여 앞이 캄캄하고 답답해야 하는데 그와 같은 일을 당하였는데도 우리의 믿음의 눈 앞에는 하늘로 가는 밝은 길, 영광스럽고 보배스러운 길이 환이 열려 보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아직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세상 길은 막혀 보이는데 하늘로 가는 영광스러운 길은 그럴수록 더 분명하게 보입니다. 우리 교회가 가는 길은 하늘로 가는 영광스러운 길입니다. 저는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뜁니다. 그 길을 보고 가슴이 뛸 수 있어서 얼마나 흥분되고 행복한지 모릅니다. 이와 같은 영광스러운 복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을 저는 찬양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세상 길이 막혔을 때에도 하늘로 열린 밝고 영광스러운 길을 바라보며 당당하게 승리의 삶을 함께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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