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마 5:13~16)

  • 잡초 잡초
  • 430
  • 0

첨부 1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과 빛입니다 (마 5:13~16)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13세기 스페인의 귀족이며 명문 대학의 교수였던 라몬 럴은 자신의 유망한 장래를 포기하고 모슬렘 복음화를 위해서 헌신했습니다. 그는 두 번이나 모슬렘 지역에서 추방 되었고 일 년 반을 감옥에 감금당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노인이 될 때까지 모슬렘 교도를 복음화 하는 일에 쉬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성벽으로 끌려가 돌에 맞아 순교 당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살아 있으나 죽은 것이요, 그리스도로 인하여 사는 사람은 결코 죽지 않는다. 오직 예수님!”이란 말을 남겼습니다.

겔런드 물러는 목사 안수식 때 “오, 주 하나님! 주님께 제 자신과 제 아내 그리고 제 자녀와 저의 모든 소유를 드립니다”라고 고백하며 죽는 날까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네덜란드에서 핍박이 심해질 때에 겔런드 물러 목사는 "믿음을 버리고 성경 읽기를 포기하면 화형을 면하게 될 것이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네 자녀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아내와 자녀를 사랑하는가?”하고 재판관이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만일 하늘이 진주이고 땅이 금덩어리인 이 세상을 내가 소유하고 있다고 할지라도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서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다. 하지만 결단코 그리스도만은 포기할 수 없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을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결국 그는 교살되어 화장되었습니다.
  

겉모습은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른 것들

겉모습은 비슷하나 속은 전혀 다른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지난번에 말씀 드린 공산주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입니다. 공산주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은 겉모습에서는 아주 비슷합니다. 이 두 가지 영성은 모두 자기의 생명을 겁니다. 자기를 포기하고 사람들에게 핍박과 무시와 모욕을 당하고 견디기 힘든 고난을 받으면서도 그 공산주의 정신을 위해서,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 모든 것을 참고 견딜 뿐 니라 그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공산주의 영성과 기독교 영성은 엄청나게 다릅니다. 공산주의 영성은 공산주의 정신의 구현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할 수 있고 폭력과 수단을 정당화하고 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영성은 생명을 존중하며 생명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 헌신하는 도수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며 존중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구원하고 풍성한 삶을 선물로 주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분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모시고 살게 되면 예수님을 따라서 사람들을 위해생명을 바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것과 중독현상도 겉모습은 비슷하지만 내면은 전혀 다릅니다. 사랑도 중독도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오직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입니다. 오직 목적하는 그 한 가지에 관심과 행동을 집중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집중력이 높아집니다. 중독현상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그 목적물에 집중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라몬 럴은 모슬렘 교도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서 유망한 장래를 포기합니다. 그는 모슬렘 교도들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서 추방당하는 수치와 고난을 견딥니다. 그리고 그는 순교를 당하여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을 모슬렘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쉬지 않습니다. 겔런드 뮬러는 어떻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언제나 예수님께 집중하고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죽으면서도 감사하며 찬송하며 죽습니다. 

중독은 자기가 얻고 싶은 감정을 얻기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합니다. 가족도 직장도 세상도 잊어버리고 오직 그 감정을 얻기 위해서 집중합니다. 알코올 중독, 도박 중독, 마약 중독들을 생각해 보세요. 요사이는 경마 중독, 경륜 중독, 고스톱 중독, 권력 중독, 재물 중독, 성 중독 등등 중독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중독자들은 자신이 얻고 싶은 감정에 집중합니다. 그들은 이웃이나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합니다. 자기를 위해 살고 자기를 위해 죽을 수도 있는 것이 중독현상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집중합니다.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의 유익과 행복과 기쁨, 성장, 축복 등을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합니다. 마치 소금이 자신을 녹이고 맛을 내며 썩지 않게 방지하고, 촛불이 자신을 태우며 세상을 밝히는 것과 같습니다. 소금과 빛은 자신을 위하지 않습니다. 소금이 되고 빛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위해서 자신을 녹이고 태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소금이 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 되라고 부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 땅의 소금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동경 뒷골목의 빛이 된 하천풍언 목사님

일본의 가가와 도요히꼬(하천풍언)목사님은 일본의 성자, 또는 동경 뒷골목의 빛이라고 불립니다. 그분은 20대 초반에 폐결핵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두려움과 절망 가운데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다가 한밤중에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은 가가와 목사님은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내가 병으로 죽어가면서 이렇게 신음하기 보다는 아직 남아 있는 시간에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자. 기력이 남아 있는 동안에 최선을 다해서 사람들을 사랑하며 섬기자.” 

그는 동경 뒷골목 빈민가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은 도시빈민들, 돈 한 푼 없는 깡패들, 창기들, 사기꾼들 등등이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도시에서는 우범지역으로 정해서 사람들의 통행을 제한하였습니다. 가가와는 바로 이곳에 들어가서 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에 살고 있는 문제 사람들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서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한번은 그가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고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2)는 말씀을 설교하였습니다. 이 설교를 들은 깡패 한 사람이 날마다 목사님을 찾아와서 돈을 뜯어갔습니다. 그러다가 목사님이 돈이 떨어졌다고 하자 입고 있는 양복을 내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그 양복을 벗어주었습니다. 다음 날에는 그가 입고 있는 와이셔츠까지 가져갔습니다. 입을 것이 없어진 목사님은 구호물자로 와 있는 여자 옷을 임시로 입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급한 일이 있어서 밖에 나가서 일을 보고 돌아오는데 아는 분이 “목사님, 여자 옷을 입고 뭐하세요?”하고 묻자 자신이 여자 옷을 입고 돌아다닌 것을 알게 되어 당황해 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하천풍언 목사님은 소외당하고 무시당하고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달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사랑들을 섬겼습니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을 전달했습니다. 그는 동경 뒷골목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소금이 되었습니다. 그는 미래가 없는 사람들에게 빛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그는 50년을 더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땅의 소금으로 만들기 위하여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의 빛이 되게 하고자 부르셨습니다. 여러분, 옆 사람들과 함께 나눕시다. “이 땅의 소금이 됩시다!”, “이 세상의 빛이 됩시다!”
  

여러분은 하늘의 복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존재들인가를 계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을 같이 읽읍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예수님이 산 위에 올라가 앉았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산 위에까지 올라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바로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을 따라 올라온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마태복음 4장 12절에서 25절에 예수님을 따라 올라온 사람들의 면모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요,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에서 대대로 어부생활을 하던 평범한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각색병자들, 고통에 걸린 자들, 귀신 들린 사람들, 간질병자들, 중풍병자들, 그들 가운데는 예수님께 이미 고침을 받은 사람들도 있고 고침을 받기 위하여 따라온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세리 마태와 같은 죄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촌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있고 도시 출신들도 있고 이방지역에서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따라온 이방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눌린 자들이요, 비천한 자들이요 ,배우지 못한 자들이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 대부분은 소외계층의 사람들이요, 사람대접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바로 여러분이 진정으로 축복의 사람입니다” (마 5:3-12)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은 축복과 거리가 먼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요, 슬퍼하는 사람들이요,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며 눌리며 살아온 사람들이요,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며 핍박을 받고 욕을 먹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과연 이런 사람들을 축복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왜 이 사람들이 복 받은 사람들일까요? 남미 신학자 한 분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 부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것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새로운 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더 나은 미래, 새로운 세상의 꿈을 꾸지 않습니다. 이미 가진 것을 누리고자 하고 기득권을 지키려고 합니다. 그들은 마치 흐르지 않는 물과 같아서 얼마 후에는 썩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가난한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우는 자, 고난당하는 자들은 지금의 그 고난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들은 미래의 꿈을 꾸며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며 소망을 가지고 변화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들은 흐르는 물 같이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찾는 자들에게만 미래의 문은 열릴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고난당하는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 사람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무시와 천대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메시야 시대를 선포할 때에 그들은 열심히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진정으로 축복의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이제 마음이 상한 사람들, 외롭고 슬픈 사람들, 무시당하며 차별 받는 사람들, 억울하고 속상한 사람들,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이 가운데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초대교회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따라 산 위에까지 올라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안에서 하늘의 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하늘의 복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땅의 소금이요, 이 세상의 빛입니다. 

예수님은 산 위에까지 따라 올라온 사람들을 향해서 “너희는 이 땅의 소금이다”, “너희는 이 세상의 빛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너희가 소금이다”는 말씀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바로 소금입니다” 또는 “바로 여러분들이 소금입니다”하는 말씀입니다. 

원래 헬라어의 Be동사를 사용할 때는 주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주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너희가 소금이다”하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주어를 사용할 때는 아주 강조해서 “바로 여러분들이”라는 말씀이 됩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과 14절에서 예수님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너희들이’라는 주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후메이스’는 ‘너희들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인데 예수님은 이 주어를 두 번이나 사용해서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의 소금이요 빛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3절과 14절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를 살려서 번역한다면 “여러분들이 바로 이 땅의 소금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빛입니다”입니다. 

여러분, 지금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들은 병들고, 귀신 들리고, 각색 장애자가 되고, 마음의 상처를 입고, 가난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눌려 살면서도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죽어 살며,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배운 것도 없는 자들을 향해서(이런 사람들에 대해서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습니까?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도 이런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이 땅의 소금입니다.” “바로 여러분들이 이 세상의 빛입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웃기고 있네!” “소금은 무슨 소금” “빛은 무슨 빛” “죽지 못해 사는 우리가 세상의 빛이라니. 농담도 지나치시네요.” 지금 예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들을 향해서 “여러분이 바로 이 땅의 소금이요, 이 세상의 빛입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농담같이 들립니까? 만일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리 멀리 떠나 있습니다.

이사야 35장은 하나님을 이런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막을 백합화 같이 피어나게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약한 손을 강하게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떨리는 무릎을 굳세게 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물을 솟아나게 하시며 사막에 물이 흐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믿습니까? 하나님은 사막이 백합화처럼 피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약한 손을 강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떨리는 무릎을 강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러분의 광야에 물이 솟아나게 하시고 말랐던 시냇물을 다시 흐르게 하실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찬송가 248장은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1절)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어둡던 이 땅이 밝아오네. 
슬픔과 애통이 기쁨이 되니 시온의 영광이 비쳐오네

3절) 보아라 광야에 화초가 피고 말랐던 시냇물 흘러오네.
이 산과 저 산이 마주쳐 울려 주 예수 은총을 찬송하네.

우리 하나님은 어둡던 이 땅을 밝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슬픔과 애통을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온의 영광으로 우리 가운데 빛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화초가 피어나게 하시고 말랐던 시냇물을 흘러오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산과 저 산을 마주쳐 울리게 하여 주 예수 은총을 찬송하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의 하나님을 믿습니까? 찬송의 하나님의 믿습니까? 성경의 하나님, 찬송의 하나님은 상처입고 눌리고 무시를 당하던 자들을 이 땅의 소금으로 만드시고 이 세상의 빛으로 만드시고 존귀한 영광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무시 받던 세리 마태를 사도로 삼으시고 하늘의 별 같이 빛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바로 여러분들을 이 세상의 소금으로, 그리고 이 세상의 빛으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들을 소금과 빛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 말씀과 14절 말씀은 약한 자들을 불러서 이 땅의 소금으로 만들어주시고 죄인들을 불러서 세상의 빛으로 만들어 주시는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계시해 줍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런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들을 이 땅의 소금과 이 세상의 빛으로 만들어 주겠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는 말씀은 우리에게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 되라.”는 명령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은 소금이 될 수 없는 우리들을 세상의 소금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약속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만 볼까요? 요한복음 14장 12절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런 약속을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이 하는 일을 할 것이요,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믿는 사람들을 이렇게 변화시키시고 만드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변하기 잘하고 겁 많은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이 되게 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뢰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 거칠고 급한 성격의 야고보와 요한을 교회의 기둥, 사랑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심 많은 졸장부 도마를 불러 역사의 빛을 발하는 인도의 순교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착취와 배신과 탐욕의 화신 삭개오를 성경의 주인공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드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는 분이십니다.
  

거친 광야 속에 하늘의 보화를 숨겨두신 하나님

미국을 가로질러 여행해 본 사람들은 알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미국 중서부지역을 지날 때는 아름답고 비옥한 땅으로 뒤덮인 광활한 농장들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땅은 한 뙤기도 버릴 것이 없는 좋은 땅들입니다. 중서부를 지나면 광활한 초원이 나옵니다. 목장이 있고 수림이 있습니다. 그런데 험악한 로키산맥을 정상에 올라서서 동서를 보면 동과 서가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 동쪽은 호수와 강줄기가 뻗어 져있고 풍요한 농지와 초원이 까마득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산맥의 서쪽을 보면 거기에는 산줄기가 끝없이 뻗어져있고 농토도 없고 삼림도 없고 거칠고 메마른 땅만 보입니다.

한 사람이 거기에 서서 서쪽을 바라보면서 옆에 서 있는 사람에게 “필요 없는 땅이 많죠?”하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건 못쓰는 땅이 아니에요. 저 바위들과 거친 땅 속에는 광물질들이 많아요. 발견된 것들도 많이 있지만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아요. 석유도, 우라늄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이죠.” 

여러분, 예수님은 로키산맥 서부와 같은 사람들, 메마르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 성질도 더럽고 의지도 약하고 가진 것도 지위도 신분도 아무런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들, 그들 속에 숨겨진 엄청난 보화, 잠자는 보화를 캐어내어 이 땅의 소금과 세상의 소금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민족의 배신자 마태를 민족의 순교자로 만드신 예수님

오늘 말씀을 기록한 마태를 생각해 보세요. 그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지난 번 삭개오를 말씀드릴 때 세리에 관해 설명 드린 것을 기억하시지요? 마태도 삭개오와 같이 돈과 권력의 중독자였습니다. 그는 돈과 권력을 위해서 자기 민족을 배신한 자였습니다. 그는 제국주의 권력을 등에 업고 자기 백성을 착취하여 자기 배만 채우는 자였습니다. 그는 유대민족의 자격을 박탈당한 자였습니다. 그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금지당하고 함께 식사해서는 안 되는 소외받은 자였습니다. 그는 악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악인의 지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악인 마태와 함께 식사하며 교제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메마르고 거칠고 삭막하고 쓸모없는 로키산맥의 서부와 같은 마태를 제자로 삼으시고 그 속에 숨겨진 빛나는 광물질을 찾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를 이 땅의 소금과 이 세상의 빛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는 과거에 자기 민족을 배신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됨으로써 자기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며 사랑으로 섬기며 자기민족의 구원을 위해서 생명을 바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디도 장군에게 멸망을 당할 때에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예언을 따라 피난하여 예수님의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자기 민족이 죽임을 당하는데 자기만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여 자기 민족과 함께 죽기로 작정하고 예루살렘에 남았습니다.

그는 마태복음을 기록하여 유대인들에게 전했습니다. 사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한 복음이라고 합니다. 마태는 자기 민족을 구원하려고 마태복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여러분, 마태의 가슴 속에는 지금 자기 백성을 사랑하는 열정과 사랑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망할 때에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도시, 알렉산드리아로 갔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유대인들에게 전도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아직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마태를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결국 마태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생명을 버리는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 민족을 위해서 예수님과 같이 온 몸을 녹이는 소금이 된 것입니다. 그는 지금도 유대인들을 비취는 빛이 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께 순종하세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이 땅의 소금이요, 이 세상의 빛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점점 어두워지고 썩어가는 대한민국을 보십니까?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들을 대한민국의 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으로, 그리고 대한민국을 비추는 빛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따라갑시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읍시다. 예수님께 순종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대한민국의 소금이요, 빛이 될 것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