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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 받은 후 달라진 모습 (느 8:5~12, 행 2: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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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 받은 후 달라진 모습 (느 8:5~12, 행 2:37~42)


심령이 새롭게 은혜를 받아 소생하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을 얻는 것보다 더 기쁜 일입니다. 진로가 열리고, 좋은 직장을 얻거나 승진하거나 사업이 번창하거나 흥왕 하는 것 이상으로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새로워지면 만사가 새로워지기 때문이며, 속사람이 강건해 지는 은혜를 받으면 법사가 잘 되기 때문에 은혜를 받는 일은 참으로 귀한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사실 우리는 값없이 주시는 선물인 은혜를 여러 가지로 받았지만 가장 큰 하나님의 은혜는 값없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피 흘리신 공로로 구원받은 은혜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가장 큰 은혜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팔자가 바뀌고, 운명이 바뀌고, 벼락부자가 되고, 로또에 당첨된 것보다 더욱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은혜 중의 은혜는 세상에 살면서 순간순간 받는 은혜인데 그 중에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에 그래서 말씀을 깨달았을 때 우리는 은혜 받았다고 표현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죄악으로 추하고 더러워 졌고, 죄에 오염된 마음은 영적으로 여름의 가뭄처럼 메마른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런 추악하고, 아무리 영적으로 메마른 심령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면 옥토 같은 마음으로 변하게 됩니다. 아무리 강퍅한 돌과 같은 마음이라도 말씀의 은혜를 받아 거듭나면 부드러워지고, 천사 같은 마음으로 변화가 일어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담고 있는 느헤미야 8장을 1절부터 읽어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귀환하여 성벽과 성전을 재건한 후에 일어난 일을 은혜를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스스로가 예루살렘 여러 개의 성문 가운데 물을 얻기 위해 다니는 수문 앞 광장에 모였습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말을 알아들을만한 사람은 다 모였습니다. 그리고 학사 에스라를 초청했습니다. 초청한 목적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명하신 모세의 율법 책을 가지고 와서 읽어달라’고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로 잡혀가고 국가가 망한 이유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기 때문이었음을 알고 있기에 회개하기 위해서 그리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청을 받은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 앞에서 펼치고서 말씀을 선포하며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자 포로로 잡혀갔다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7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백성들이 6절에 보니 “아멘! 아멘!”으로 응답하고 몸을 굽히고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 했습니다. 

이렇게 ‘아멘’ ‘아멘’ 으로 말씀을 들으니까 하나님께서 은혜를 사모하는 그들이 너무 기특해서 하나님께서 깨닫는 영을 허락해 주셨는데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니 은혜가 더욱 충만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랜만에 성전을 건축해 놓고 하나님 앞에서 말씀의 잔치를 가졌던 것입니다. 일종의 말씀사경회, 즉 부흥회를 가졌던 것입니다. 당시 강사님은 에스라 선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말씀을 얼마나 사모했는지 강사 에스라가 말씀을 펴고 읽을 때에 ‘아멘’, ‘아멘’ 하면서 말씀에 은혜를 받고 있었습니다. 

본문 8절에 보면 ‘뜻을 해석하여 깨닫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은혜는 우선 말씀을 들을 때 “아멘”하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하는 신앙의 결단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깨달을 수 있도록 진리의 성령께서 역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인 말씀의 진리를 깨닫게 되면 은혜가 충만해집니다. 아멘신앙은 은혜로운 신앙입니다. 아멘 신앙은 은혜를 받습니다. 백성들이 ‘아멘’이라고 외치니 ‘여호와 하나님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깨닫게 은혜를 주셨는데 말씀으로 너무나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멘 신앙은 말씀이 송이 꿀처럼 달게 체험하도록 해 줍니다. 

자! 그러면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요? 이렇게 깨닫는 은혜를 통해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저는 이 시간 말씀을 깨닫고 은혜를 받으면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가에 대하여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찾아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런 은혜 받은 모습은 예수님 이후 신약시대에도 있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초대교회 시대에 있었습니다. 오늘 읽은 신약 말씀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 계시다가 하늘로 승천하시기전에 제자들에게 일러준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4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한 그 말씀대로 제자들이 다락방에 모여서 날마다 기도했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은 오순절 날에 마가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는데 열흘간 간절히 기도하다가 성령의 임재하심을 경험했는데 방언이 터지고 예언을 하게 되는 등 신비로운 일들이 일어나면서 용광로 같은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임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자신 있게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사건은 위대한 기적의 역사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은혜에 대한 구약의 사건과 신약의 사건은 시대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은혜가 있는 곳에 말씀이 있고 말씀이 충만한 곳에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은 동일한 현상인 것입니다. 

이 두 본문 말씀을 가지고 ‘은혜 받은 자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고 변하는가?’를 보여준 사건을 살펴봄으로 귀한 교훈을 얻고, 우리 교회 성도 여러분도 많은 은혜를 사모해야 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아멘으로 믿으니까 하나님은 깨닫게 하시고 은혜를 많이 부어주셨음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아멘 신앙을 통해 은혜 받았으면 두 손을 높이 들면서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을 통해서도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받기를 원하시면 두 손을 높이 들고 ‘아멘’합시다. 제가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오늘 느헤미야 6절에 보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했다고 했습니다. 

은혜 받은 자는 변합니다. 우리는 은혜를 만이 받았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 받은 나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습니까? 달라진 나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를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변함이 없는 은혜는 없습니다. 만약 변함없는 은혜를 받았다면 일시적인 흥분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에 의한 은혜를 받았다면 분명히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변화된 나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성경을 통해 살펴봅시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느헤미야서와 사도행전에 나타난 은혜의 사건을 통해서 은혜를 받은 백성들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보고 신앙생활의 교훈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1. 회개의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본문 8-9절에 보면 “레위 사람들이 다 그 처소에 섰는 백성에게 율법을 깨닫게 하는데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으로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매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 은혜 받으면 눈물이 납니다. 저도 은혜를 받을 때 회개의 눈물을 꽤 많이 흘렸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눈물이 나오고 기도를 해도 눈물이 났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너무 기뻐도 웁니다. 너무 슬퍼도 웁니다. 너무 억울해도 웁니다. 너무 고통스러워도 웁니다. 감동이 올 때 눈물이 납니다. 너무 안타까워도 눈물이 납니다. 모멸감을 당할 때도 눈물이 납니다. 시편 42:3절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생명이 곧 죽게 되었을 때도 눈물을 흘립니다. 아쉬움과 안타까움과 서러움 때문입니다.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통한의 눈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물은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 되어 간 것이 결국 자신들이 하나님을 경외치 못한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요. 죄에 대한 징계의 결과였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을 섬기거나 구약의 제사, 신약의 예배를 드릴 수 없었고, 말씀을 들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셔서 말씀을 듣게 되었으니 감사와 기쁨이 함께 북받쳐 올라 회개의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를 드리면서 눈물을 흘려본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요즘도 일어나고 있습니까? 은혜를 받고 눈물을 흘려보신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진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예배 중에 찬송을 불러도, 기도를 드려도, 말씀을 읽어도, 설교를 들어도 그저 눈물이 줄줄 흐르는 분이 계십니까? 은혜를 받은 증거인 것입니다. 

눈물의 종류는 다르다 할지라도 공통점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시편 126:5절에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눈물로 은혜의 감격을 느낀다면 거기에 기쁨이 수반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을 듣고 눈물을 흘린 것은 회개의 눈물이 더 많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7:3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이 한 가버나움이란 동네에서 한 바리새인의 초청을 받아 들어가 식사를 하려고 할 때 그 동네 죄인 취급을 받는 여자 한 사람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 여인의 눈물도 회개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여자를 향하여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눈물은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여자의 눈물은 남자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듭니다. 남자의 눈물은 여성스러움으로 나타납니다. 눈물의 기도는 응답이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이사야 선지자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 그는 자기 방에 들어가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내가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눈물은 잘못된 마음을 돌이켜 주기도 합니다. 웃음이 내 얼굴을 비추는 빛이라면, 눈물은 내 영혼을 닦아내는 물입니다. 사람은 슬플 때나 아플 때 눈물을 흘립니다. 너무 기쁠 때, 너무 고마울 때도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용서하고, 화해하고, 사랑하며 흘리는 눈물은 더 뜨겁습니다. 눈물은 사람을 맑게 합니다. 눈에 뜨거운 눈물이 맺히면 그의 영혼엔 무지개가 피어오릅니다. 당신도 은혜의 눈물을 흘리세요. 당신의 흐르는 눈물을 우리 주님이 닦아 주십니다. 눈물을 닦아내고 난 후에 당신은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눈물이란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안구 건조증’이 생기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안구 건조증’으로 인해 눈물이 나지 않아 너무 고통스러워서 결국은 치료받아야 합니다. 눈물의 고마움은 병을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여러분이 눈물을 쉽게 흘릴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혹시 성도 여러분은 영적으로 은혜를 받는 은혜의 눈물이 메말라 영적으로 안구 건조증에 걸린 분은 없습니까? 항상 은혜로 충만하셔서 은혜의 눈물이 떨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2.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본문 10절에 보면 “느헤미야가 또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자에게는 너희가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슬피 우는 백성들을 향하여 “오늘은 이 좋은 성일에 울지 말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여호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며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추라는 것입니다. 마음껏 찬양하고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회개의 눈물을 흘렸으면 이제는 기뻐해야 합니다. 용서받은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았을 때 은혜를 받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은혜를 받는다는 것을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고 잘못을 회개 회개할 때는 눈물이 흐릅니다. 그러나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의 사랑의 손길을 느낄 때 비로소 우리는 즐거워합니다. 기쁨이 생기게 됩니다. 

구원받은 감격, 용서받은 감격, 하나님께서 다시 잘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감격, 귀한 성전을 섬기고, 봉헌하고, 다시 직분을 주신 것에 대한 감격이 가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쓰임 받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이 충만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왜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생길까요? 왜 기쁨이 솟아날까요? 흔히들 이야기합니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 본성이란 '만들어 졌을 때의 본래 성질'이라는 말입니다. 쇠는 단단하고, 나무는 딱딱하고, 솜은 부드럽고, 꽃은 예쁘고, 호랑이는 사납고, 하나님은 사랑이고 등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본래 어떤 본성을 가지고 있을까요? 아기 예수가 태어나던 순간 하늘의 천군, 천사들이 이렇게 찬송을 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1:14)" 즉, 천국은 영광, 땅은 평화, 사람은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천국의 성질은 영광이요, 땅의 성질은 평화요, 사람의 성질은 기쁨입니다. 천국을 생각하면 거룩한 영광이 가득하지요? 넓게 펼쳐진 대지는 평화로움의 상징이지요? 사람은 원래 '기쁨'입니다.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사람들이 기뻐하심을 입었다고 한 것은 사람은 본래 기쁨의 존재라는 것입니다. 

기쁨이 무엇입니까? 기쁨이란 '기(기운)가 뿜어져 올라 온다'는 뜻입니다. 솟구치는 기를 막는 것은 죄입니다. 기가 막히면 정말 기막힌 일이 생깁니다. 그 사람의 본성인 기를 뿜어 올리는 방법은 웃음입니다. 웃음은 기쁨이 터져 나오게 하는 마중물입니다. 사람이라면 웃으세요. 웃으세요. 그게 사람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왜 은혜를 받으면 기쁨이 넘치게 하십니까? 기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쁨이 왜 중요합니까? 기쁨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줍니다. 두려움을 덜어주고 희망을 가져오며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을 느끼게 되면 지혜로워 집니다. 기쁨은 우리의 마음과 정서, 능력 그리고 정신적인 모든 것을 통합해서 연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본성이 기쁨이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쁨을 잃어버렸다면, 아니 기쁨이 가라앉아버렸다면 기쁨을 다시 찾아내어야 합니다.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슬픔 가운데 기쁨을, 걱정 근심과 절망 중에서 찾아내는 기쁨이어야 진정한 기쁨이 됩니다. 기쁠 땐 기뻐해야합니다. 기쁨이 기쁨을 낳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 보다 더 좋은 고백은 없습니다. 가슴을 뛰게 하는 최고의 사랑 고백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오늘은 성일이니 울지 말고 기뻐하라는 간곡한 말을 들었던 백성들은 곧 나가서 즐거워했습니다. 12절에 보면 먹고 마시고 나누어주고 크게 즐거워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회개했습니다. 그 후에 이들은 서로 교제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떡을 떼었다고 했습니다. 교제하고 떡을 떼었다는 것은 즐거워했다는 것입니다. 기쁨이 없이는 나눌 수 없고, 같이 교제할 수 없습니다. 교제하다가도 기분 나쁘면 가버립니다. 은혜 받은 기쁨이 넘치십니까? 그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우리를 영원토록 기쁨을 갖고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기뻐요. 정말 기뻐요. 주 예수 사랑 기쁨 내 맘에”라는 찬송가 가사가 있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15:11절에 예수님께서 성경을 가르쳐 주신 것은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기쁨을 충만하다는 것은 은혜가 충만하다는 증거요, 여러분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충만하다면 은혜를 잃었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 당신의 마음이 얼굴이 기쁨으로 변했습니까? 그러면 은혜 받은 것입니다. 은혜를 받아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신 분은 두 손 들고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3.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은혜를 받으면 변하는 것은 심령에 감사가 가득해지고, 행동에는 나누는 삶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부흥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을 때 회개의 눈물과 기쁨의 감격으로 즐거워했습니다. 즐거워한 것의 열매는 '나눔'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 10절에 보면 느헤미야기 부탁하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잡아먹고 단 것을 마시되 예비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나누어 주어라”고 권했습니다. 은혜 받은 자의 삶은 감사의 결정체인 나눔과가 섬김으로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 본문 12절에 보면 백성들이 '느헤미야가 시키는 대로 하여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2장의 말씀에도 보면 "떡을 떼었다"고 했습니다. '떡을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45절에 보면 재산을 팔아서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주고 날마다 모여서 찬송 부르고 기도하며 기쁨의 생활이 되었습니다. 물론 나눔의 삶을 살려고 하다가 시험이 들어 죽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같은 부부도 있습니다만 제대로 은혜를 받았으면 나눔의 삶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눔이 곧 감사의 표현이요. 기쁨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나눔은 곧 씨를 심는 것이고 결과는 열매인 복을 받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고 감사를 하지 않고, 감사의 열매인 나누지 않는 사람은 참 된 은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서에 등장하는 ‘삭개오’를 살펴봅시다. 인색했던 ‘삭개오’, 그래서 늘 손가락질만 받았던 죄인의 대명사 세리장이었던 ‘삭개오’였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구원의 은혜를 받은 후의 그 고백이 무엇입니까?

“주여 내가 만일 남의 것을 잘못거둔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고, 내가 소유한 재산의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겠습니다”라고 감사의 열매인 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참된 은혜 받은 분들은 물질에 인색하지 않고, 감사헌금을 하더라도 아깝지 않습니다. 물질의 감사를 하더라도 구원의 값비싼 십자가 보혈의 대가를 알기에 최선을 다하여 나의 힘을 다하여 헌금하고 드려도 늘 아쉬운 마음으로 합니다. 체면치례로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이 감사가 은혜를 받음으로 회복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4. 은혜 받으면 기도하고 가르침을 잘 받는 성도가 됩니다. 

본문에 백성들이 무엇에 힘을 썼습니까?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전혀”라는 단어는 전념했다는 뜻입니다. 기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기도하는 것에 우선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은혜 받으면 기도하게 됩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도의 문이 열립니다. 기도의 사명감이 일어납니다. 기도하면 은혜를 받기도 하지만 은혜를 충만히 받은 분들은 기도를 하지 않던 성도도 기도하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우리가 이번 부흥회를 통하여 은혜를 받았다면 새벽기도에 동참하는 성도가 만하져야 합니다. 금요기도가 차고 넘쳐야 합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너무 급하게 은혜를 받아서 숨고르기 하십니까? 은혜 받았으면 당신의 변화된 모습이 기도로 나타나야 합니다. 새벽기도 안하시던 분이 새벽을 깨우고 금요일에 텔레비전 보시던 분이 금요기도회에 나오셨다면 이것은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분들은 두 손들도 아멘 합시다. 이번에는 이런 은혜를 받지 못했지만 반드시 은혜를 받아 기도하는 종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두 손 들고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으면 기도하는 신앙으로 전환 될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잘 받습니다. 

그래서 구약에서 오늘 느헤미야서에 보면 강사로 모신 에스라의 설교를 듣고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느헤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다는 것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에스라를 통하여 주시는 말씀도 그대로 순종하고 느헤미야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은 은혜 받은 자의 모습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 2장에도 보면 은혜 받은 백성들의 모습은 우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깨달았을 때 첫 번째로 나타난 현상이 무엇입니까? 

베드로가 “회개하라.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베드로가 전하는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그 수가 삼천이나 더 하더라”고 했습니다. 42절에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를 바로 받으면 목사의 가르침을 잘 받아서 순종합니다. 그것이 은혜 받은 나의 변화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성경 전체가 진리요,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은 언약과 성취, 즉, 약속과 실천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닫게 되고, 진실하다는 것으로 믿어집니다. 그래서 따라합시다. “은혜가 떨어지면 믿어지던 말씀도 의심이 생기고 순종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은혜를 받으면 무슨 말씀이든지 다 믿어집니다. 그대로 순종합니다.” 아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서오 여러분!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눈물이 없고, 감사할 줄 모르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기뻐할 줄 모르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하나님께 드릴 줄 모르고 주의 백성들에게 나눌 줄 모르고,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목사의 가르침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은혜 받은 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예배드림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아름다운 변화가 여러분의 삶속에 있기를 부탁합니다. 눈물의 흘림과, 기쁨의 충만함과, 나눔의 헌신과, 기도하는 일에 앞장섬과 목사의 가르침을 잘 받으시는 신앙으로 변화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참된 은혜를 받으므로 눈물과 기쁨과 헌신과 신앙순종이이 가득한 삶을 사는 복된 생애가 되시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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