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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과 금은 내게 없다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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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금은 내게 없다 (행 3:1~10)

 
‘절간에서 생선 찾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치에 어긋나거나 상황과 맞지 않는 요구를 하는 것을 보고 비유하는 말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다가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만났습니다. 그는 베드로와 요한에게 손을 내밀며 돈을 요구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상대를 잘못 골랐습니다. 사도들은 앉은뱅이처럼 돈을 추구하며 사는 자가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다수가 은과 금 같은 재물이 최고인줄 알고 그것을 위해서 살지만 사도들은 그보다도 더 큰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1. 본래는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의 형제 안드레와 함께 고기를 잡기 위하여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는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요한과 야고보도 같은 장소에서 부름을 받았는데 그들은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습니다(마 4:18-22).

1) 하나님으로부터 받았습니다.

‘은과 금’은 재물에 대한 총칭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생존과 관련된 가장 기본적인 것은 거의 다 보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그가 지으신 사람들과 심지여 동, 식물까지라도 생존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은 보장해 주셨습니다. 이런 것은 세상사람 모두에게 적용되는 자연은총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물질적인 자원뿐만 아니라 건강이나 지식이나 재능과 같은 것도 모두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습니다. 다만 죄가 들어오고 욕심이 사람을 지배하면서부터 사람들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2) 가진 능력만큼 발전하고 누리게 됩니다.

누가복음 19:12-27에 보면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하여 먼 나라로 가면서 열 명의 종을 불러 놓고 한 사람에게 한 므나씩을 맡겼습니다. 똑같이 한 므나씩 받았지만 능력에 따라서 열 므나를 남긴 자도 있었고, 또 다섯 므나를 남긴 자도 있었으며, 한 므나도 못 남긴 자도 있었습니다. 훗날 그 귀인이 왕이 되어서
돌아왔을 때 열 므나를 남긴 자에게는 열 고을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섯 므나를 남긴 자에게는 다섯 고을의 권세를 주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본래는 어부로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의 재산이 있었습니다. 배와 그물을 비롯하여 고기잡이에 필요한 어구들과 그 어장에서 생산되는 자원으로 저희 필요한 것만큼은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3) 사용하기에 따라서 결과가 다릅니다.

똑 같은 자원을 가지고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납니다. 청지기 정신에 입각하여 주인의 의도에 맞게 선용하는 사람은 더 많은 것을 받게 되고 오래도록 누리면서 자신과 여러 사람에게 유익을 주게 됩니다. 그렇지만 사람이 자기의 분수를 망각하고 교만한 나머지 받은 축복을 방탕의 도구로 사용하거나 자기의 욕심만을 위해 악용하게 되면 그것이 자기를 찌르는 불행의 불씨가 되고 맙니다. 성경은 이와 같은 사고를 가진 사람을 ‘악하고 게으른 종’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을 빼앗아서 착하고 올바른 삶을 사는 자에게 더 준다고 하였습니다(눅 19:26). 사도 바울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 하였습니다(딤전 6:10).


2. 지금은 없습니다.

이들이 처음 부르심을 받았을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나왔습니다(눅 5:11). 베드로는 훗날 예수님에게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고 하였습니다(눅 18:28).

1) 목적 있는 부르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17-18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고 하였습니다. 곧 이어 야고보와 요한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고 하였습니다(막 1:20). 본래 이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하고 가족들과 함께 거기서 어부로서 자기들의 삶에 충실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게 됨으로써 그들의 삶의 패턴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물고기를 잡아서 재물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죄악의 바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을 살려내는 제자의 길을 가게 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옛날 엘리사는 소 열두 겨리로 밭을 갈다가 엘리야의 부름을 받고 즉시 소를 버려둔 채 달려 나왔습니다(왕상 19:20). 사람마다 자기의 재능과 소질에 따라 무슨 일이나 할 수 있지만 막상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에 의하여 선택을 받게 되면 거기에다 자기의 인생을 걸어야 됩니다. 특히 영혼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은 그것만을 위해서 다른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0:37-38). 재물에 대한 집착이나, 가족에 대한 인정이나, 다른 어떤 것에 마음의 일부라도 빼앗기게 되면 목숨을 걸고 수행하여야 될 사명에 전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두 가지를 다 가질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제자의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마 16:24).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눅 9:62)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아무데도 곁눈질을 하지 말고 오직 일편단심 주님만을 바라보고 따라오라는 뜻입니다. 이런 결심이 흔들릴 때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세상의 쾌락과 같은 유혹을 받게 되어 결국 사명자의 길을 이탈하게 됩니다. 디모데후서 4:10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3. 없어도 불행하지 않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재물이 없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하고, 또 더러는 그것을 자랑스럽고 떳떳하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할 때 조금도 부끄럽거나 위축되지 아니하고 당연하게 생각하였습니다.

1) 있고 없음이 행복의 기준일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물질의 많고 적음에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가름합니다. 또 재물이 많으면 행복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가치기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천국 시민의 대헌장’이라 불리는 산상보훈과 팔복의 내용도 은이나 금 같은 세상재물과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마 8:3-12). 예수님께서는 부모의 유산을 가지고 싸우는 형제를 보시고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고 하였습니다(눅 12:15). 물질의 가치와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은 재물을 소유하게 되면 물질의 노예가 되어 오히려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2)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은 대부분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권력이나 재물이나 명예나 인기 같은 것이 거의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1:9-10에 “낮은 형제는 자기의 높음을 자랑하고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제게 있는 재물이나 권세나 영화가 언제까지 그대로 있을 것처럼 착각하게 됩니다. 그것이 한순간에 풀의 꽃과 같이 시들게 되고 아침 안개와 같이 소멸될 것을 예상했다면 이보다 더 허망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요1서 2:15-17).

3) 모든 것에 부요한 사람입니다.

은과 금이 많아도 가난한 사람이 있고 그런 것이 없어도 부요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가장 부요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가난하고 가련한 자 라고 규정하였습니다. 계시록 3:17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자신은 모든 것에 부요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6:10에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소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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