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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몸의 부활과 성도의 승리 (고전 15: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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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부활과 성도의 승리 (고전 15:35~58)
 
 
지난 4주 동안 고린도전서15장 부활 장을 가지고 여러분과 함께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15장 부활장의 결론부분으로 오늘 이 말씀을 마치게 되면, 이제 15장은 다 마치게 됩니다. 15장 마지막 부분 주제는 우리가 이 땅에서 죽게 되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삶을 다시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이 땅의 육체를 죽이고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한다. 이런 아름다운 말씀과 함께, 영생이, 부활이 사망을 정복했다는 아름다운 말씀입니다. 사도바울은 이 말씀을 아주 강력한 확신에 차서 15장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주제는 우리는 죽지만 그러나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지난 5월엔가 SBS에서 ‘그것이 알고 싶다’는 프로에서 환생이라고 하는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환생이 무엇인가요. 죽었던 사람이 나중에 다시 어떤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사상은 어디에서 왓나요? 인도 사람들은 힌두교를 믿습니다. 힌두교의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주제가 환생입니다. 불교도 환생을 아주 중요한 교리로 믿고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카스트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승려그룹이 제일 위에 그룹이고요, 그 다음이 귀족, 평민, 노예그룹으로 되어있습니다. 이 네 개 그룹에 들지 못한 불가촉 천민이라는 달리트라는 계급도 있습니다. 

이 힌두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사람은 환생합니다. 이걸 가리켜 우리가 윤회라고 이야기 합니다. 전생에 어떤 존재 였던 사람이 다음세대 또 그 다음세대에 어떤 다른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불가촉 천민인 달리트가 평민이 된다거나 평민이 귀족이 된다거나 귀족이 다시 승려 계급이 된다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전생에 어떤 사람은 귀족으로 어떤 사람은 천민으로 그들의 업보에 따라서 이미 일생이 결정이 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더 올바르게 선행하면 다음세대에 좋은 것으로 원하는 존재로 태어나기를 뜻은 가지고 있지만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업보에 따라서 정해진 사람들의 이 계급이 다음 세상에 더 좋은 것으로 태어나려면 바로 다음세대가 아니라 몇 십대 몇 백대 또는 몇 천대가 지나가야만 올바른 좋은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힌두교를 믿고 있는 인도사람들의 정신 행복지수를 조사하면 체념 불만족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상당히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것은 그들의 종교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전생에 내가 가지고 있는 업보로 인하여 내 전생의 사람이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 봤자 내 후대 몇 십대 몇 백대에 가서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 이 기나긴 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체념 때문에 그렇습니다. 

환생에 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이런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아주 물을 무서워합니다. 왜 무서워하나? 정신 심리학자를 데리고 가서 왜 이 사림이 물을 무서워하나? 했더니, 이 사람의 전생은 물을 무서워해서 물에 빠져죽은 어떤 사람이었다. 부부가 하도 싸워서 왜 싸우나? 해서 나중에 알아보니 전생을 주장하는 사람들 얘기로 이 두 사람의 전생은 아주 오래전에 한 마을에 사는 원수지간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하지요? 부부가 하도 싸우면, 전생에 원수지간이었다. 혹시 여러분 부부가 많이 싸우세요? 아마 전생에 원수지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집에서 기르는 개가 있지요? 그거 혹시 우리 조상들 가운데 업보가 아주 나빠서 개로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윤회설을 믿는 전생과 환생을 믿는 논리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을까요? 윤회와 환생의 기본적인 것은 절망입니다. 물론 희망도 있습니다. 더 좋은 일, 선을 많이 쌓게 되면, 언젠가 더 좋은 관계로 좋은 존재로 태어날 것이라고 하지만 좋은 존재로 태어나는 것은 그 다음세대에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 십대 수 백대가 지나간 다음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망과 좌절이 바로 이 전생, 환생을 믿는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환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생이 돌고 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써클 오브 라이프 (circle of life) 라고 하는 어린아이들이 잘 보는 라이온킹이라는 만화 영화가 있지요? 뉴에이지하는 사람들이 만든 헐리우드의 영화입니다. 이런 영화의 가사를 보면 삶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써클 오브 라이프 (circle of life)가 되는 거예요. 인생을 하나의 원으로 치고 말입니다. 그러니까 윤회입니다. 개로 태어났다가 선을 조금 더 쌓게 되면, 조금 더 좋은 것으로 좋은 것으로요. 인생이 돌고 돈다는 것이지요.

제가 워싱턴에서 목회할 때 뒷부분 범퍼에 여러장의 스티카가 붙어 있었는데요. 스티카를 얼마나 많이 붙여 놨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도대체 스티커가 몇 개가 붙었나 보니까 9장씩이나 붙여 났어요. 그런데 스티카 중에 제일 가운데 커다란 스티카가 제 눈에 들어왔는데요. 뭐라고 쓰여 있었냐 하면, born again이라고 되어 있는데 거듭났다, 다시 태어났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기독교인인가? 하고 생각을 했는데, 보니까 born again 이라는 커다란 빨간 글자 밑에 and again, and again, and again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다시 태어났는데 어떻게 다시 태어났냐하면, 또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지요? 무엇을 강조한 것인가요? 환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겔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30%가 환생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어느 기독교 기관이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도 27%가 환생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한국은 불교 문화권에 지배를 받아왔기 때문에 불교의 윤회 사상을 많은 사람들이 믿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다니는 사람가운데서도 간혹 가다 툭 튀어 나오는 말이 전생에 무슨 죄가 많아서, 혹시 그런 말을 하신 분들이 계십니까? 왜 전생을 이야기 할까요? 이것은 윤회를 믿는 불교인들의 사상을 영향 받아서 그렇습니다. 개나 돼지로 태어나고 가어 다니는 뱀으로 태어나는 것, 그것이 어느 날 몇 십대 후에 다시 사람이 된다는 것, 그래서 인생은 돌고 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반 성서적인가요?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 하나요?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죽는 것이 정한 이치이고, 한 번 죽고 난 다음에는 심판이 있을 뿐이지, 이 인생이 돌고 돌아서 개가 되기도 하고 사람이 되기도 하고 뱀이 되기도 하고 물고기가 되기도 한다고 성경은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에 사도바울은 분명히 강하게 확실하게 이야기 합니다.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은 반드시 부활해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번 죽고 난 다음에 또 다시 다른 존재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고 난 다음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사는 영생이 보장되어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먼저 해야 될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가 죽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육체가 죽어야만 부활할 수 있다는 사상을 사도바울이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들어서 이야기 합니다. 씨앗을 하나 심었는데 이 씨앗을 심게 되면 아름다운 꽃이 나옵니다. 열매가 있고 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열매나 꽃은 본래는 작은 씨 하나였습니다. 씨 하나가 자라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름답게 우리 앞에 있습니다. 씨라고 하는 것은 병속에 있거나 봉투에 담아져 있으면 100년 200년이 가도 절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변화되지 않습니다.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 있게 되면 이렇게 아름다운 꽃으로 열매로 변화 됩니다. 우리의 육체요? 보잘 것 없는 것 같지요?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육체가 한 번 죽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잠자는 것이라고 말했는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는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름다운 존재로 변화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입니다. 윤회나 환생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씨앗이 땅속에 들어가서 죽지 않으면 아무런 꽃도 열매도 맺지 못하듯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젠가 죽겠지요? 죽을 때는 사고로 죽거나 노환으로 죽거나 관계없습니다. 어떻게든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지만 하나님의 나라가, 반드시, 영생이, 부활이 존재함을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려면 먼저 죽어야 합니다.

이것을 신앙적인 의미로 생각해 볼까요? 사람들이 예수 믿기 전에 갖가지 나름대로의 성향이 있습니다. 기질이 있고요. 과거의 습관이 있습니다. 경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하면, 그것은 과거의 성향과 기질과 관습을 땅 속에 묻고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이지 않으면, 죽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땅이라고 하는 이곳에 하나님의 말씀 속에 자꾸만 더럽고 추한 것들을 묻어야 합니다.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땅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열매 맺을 수 없듯이 우리의 더럽고 추한 세상의 것을 매일 매일 땅이라고 하는 이곳에 묻어야 합니다. 땅 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열매 맺을 수 없듯이 우리의 더럽고 추한 세상의 것들을 죽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우리의 삶의 부활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두 번 부활하는 것을 경험 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에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모든 기질을 다 죽이고 새로운 인격, 성령의 인격 9가지 열매를 가진 새로운 인격의 존재로 부활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우리의 육신이 죽고 난 다음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 가지 부활을 기독교인이 경험하지 않으면 그는 진정 부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매일 매일 여러분의 성향과 기질과 과거의 것들을 죽이는 연습을 하시기 바랍니다. 죽이지 않으면 절대 다시 살아나지 않습니다. 교회를 5년,10년 아무리 다녀도 죽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씨앗이라도 그것이 병 속에 있거나 비닐봉투 속에 있는 한 땅속에 들어가 죽지 않으면 절대 열매를 맺을 수 없음과 같이, 우리가 교회를 십년, 이십년 다녀도 우리의 성향과 기질을 땅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속에 묻지 않는 한 우리는 거듭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부활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얻게 되는 우리의 부활의 형체는 어떤 모양일까요?

첫 번째는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2절)

우리의 몸은 썩어 없어지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해도, 아무리 건강하다고 해도, 우리의 몸은 썩어 없어질 것입니다. 불 속에 들어가면 2,3시간 만에 재가 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부활한 우리의 몸은 썩지 않는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썩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썩어 없어질 육체를 위하여만 투자합니까? 사람은 어디에 그 사람이 인생을, 재물을, 시간을 투자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삶의 질이 결정 납니다. 

예를 들어서, 돈이 많은 사람이 투자하는데 어디에 주로 투자하냐 하면 섹스에 투자한다거나, 마약을 구입하는데 투자한다거나, 아니면 먹고 마시는 데만 투자한다거나, 더럽고 추한 사업에만 투자한다고 한다면 그 사람의 인격을 우리는 어떻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저질에 더럽고 추한 인격을 가진 자와 뭐가 다릅니까? 그러나 많은 돈을 아름다운 곳에 투자한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장학사업에 투자하고,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투자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투자하고, 공부는 잘 하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사람을 위해 투자하고, 같은 돈인데도 어떤 사람은 썩어 없어질 것에 투자하고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투자합니다. 

시간을 어디에 투자하십니까? 재물을 어디에 주로 투자하십니까? 땀과 에너지와 노력을 주로 어디에 투자하십니까? 썩어 없어질 이 몸을 위하여, 내 입을 내 재미를 위하여 투자한다고 한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여러분은 불행한 사람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 몸을 썩어 없어질 것에 투자하지 아니하고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에 우리의 것들을 투자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은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몸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게 될 우리의 부활의 몸은 썩지 아니할 아름다운 것임을 믿습니다. 


두 번째, 욕된(비천한) 것으로 심는데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43절 상)

우리의 몸은 비천한 것이지요! 썩어 없어질 더럽고 연약한 것이지만, 죄의 몸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게 될 우리의 몸은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더 이상 더럽고 추하고 보잘 것 없는 우리의 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 번째,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43절 하)

사람의 몸이 얼마나 약한 가요? 우리의 몸속에 있는 질병 우리가 발견 못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 부름을 받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살게 될 우리의 몸은 다시 질병이나 고통이나 아픔이 있지 않는 강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영원한 몸으로 변화될 줄로 믿습니다.


네 번째,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44절)

우리가 살 때에는 육의 몸으로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때에는 더 이상 육의 몸이 아닌 신령한 몸으로 변화 됩니다. 

썩지 아니할 것이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며, 강한 존재가 될 것이고 신령한 존재가 되는 우리의 이 몸! 그러나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는 연약합니다. 보잘 것 없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신앙이 없는 사람은 썩어 없어질 것 연약한 것 비천한 것 보잘 것 없는 곳에 시간도 재물도 관심도 에너지도 투자하지만, 신앙이 있는 사람은 강한 것 신령한 것 그리고 영광스러운 것에 투자합니다. 여러분의 인생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첫 번째,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은 육신을 위하여 투자하지 않습니다. 그런 어리석은 것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 가지고 아름다운 부활을 위하여 투자할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몇 가지 해야 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보통 심한 중병을 앓고 있는 분을 보면 신앙이 흔들려요. 하나님이 왜 나에게 이런 어려움을 줬을까? 왜 나에게 이런 시련과 고통을 줄까? 정말 하나님이 계시는가? 신앙이 없으니까, 사업의 실패를 놓고 육신의 질병을 놓고 여러 가지 고난 앞에서 마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이 확실한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비록 육신이 연약해서 죽어도 나는 분명히 하나님의 나라에 간다. 여기서는 짧은 인생을 살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산다는 것을 믿으니까, 절대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사망이 죽음을 이기었노라. 세상에 있는 사람은 죽음을 앞에 놓고 괴로워하고 슬퍼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살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과정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우리의 거처를 옮길 뿐입니다.

썩어 없어질 육체, 이 세상에 살다가 영원한 나라로 우리의 거처만 옮길 뿐입니다. 

죽는 순간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런 것을 믿으면 흔들리지 않지요? 그러나 이 부활 신앙이 없으니까 죽으면 끝 아니야? 내가 갈 지 안 갈지 의문이 되니까 마음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이 있는 사람은 강합니다.


두 번째 부활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58절 중반절에 보면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항상 주의 일에 힘쓸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일에 힘쓸 수 있는 것은 내가 이 땅에서 사는 것이 끝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아무런 상급이 없다고 한다면 힘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 것을 믿게 되면 더 더욱 열심히 살게 됩니다. 시간이 있으세요. 그 시간 주를 위해 바치시기 바랍니다. 재물이 있고 에너지가 있고 재능이 있습니까? 주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58절 하반절에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하나님은 여러분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못 믿으면 내가 죽어서 가는 것도 못 믿으니까, 내가 수고해 봤자 하나님이 나에게 상 줄 것도 못 믿지만, 하나님의 나라 부활을 믿게 되면 내가 이 땅에서 행한 모든 것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내 수고를 갚아 주실 믿는 믿음이 생겨납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의 수고 헛되지 않습니다. 그거 절대로 잊어버리시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이 되어 있는 한 여러분이 행한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름다운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으로 갚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근본은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신앙은 사람을 강하게 만듭니다. 사람을 힘 있게 만듭니다. 즐겁게 만듭니다. 흔들리지 않게 만들고 끊임없는 용기가, 끊임없는 에너지가 솟아 날 줄로 믿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 부활 장을 마감하면서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영원한 생명, 여러분의 가슴속에 있어 언젠가 이 주님을 만나 영원히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여러분의 마음속에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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