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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로운 사람 (마 13:4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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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운 사람 (마 13:44~46) 


여러분! ‘지혜’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로는 ‘사리를 잘 다스리는 재능’이란 뜻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이란 ‘사리 분별을 잘하는 사람,’ ‘경우가 밝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성경에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그렇다면 성경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가? 세상적 사리 분별은 좀 둔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사도 베드로는 성도를 ‘나그네’로 비유했다. 

(벧전 2:11)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그네는 자신의 출발점을 안다. 어디로부터 왔으며,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으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다. 그러나 방랑자는 분명치가 않다. 바람따라 구름따라 흘러간다고 생각한다. 어찌보면 상당히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것 같아 보이지만 천덕꾸러기 인생이 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며, 이 땅에 사는 동안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며, 또한 내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인생의 목적지가 어디인가를 알고 있는 사람이다. 

오늘날 우리는 남에게 뒤질세라 부지런히 달려가고 있다. 빨리 달리기로 따진다면 전세계 200여 국가 중에 대한민국이 몇 손가락 안에 꼽힐 것이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빨리 달리기는 잘 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태평양을 항해하고 있는 큰 배가 있는데, 선장은 계속해서 기관사에게 재촉한다. ‘속력을 더 내! 더 빨리 달리란 말이야!’ 그러자 항해사가 선장에 물었다. ‘선장님 이쪽은 우리의 목적지가 아닌것 같은데요?’ ‘말이 많다. 빨리 달리라면 달릴 것이지...’ 그 배의 목적지가 동경이었는데 도착해보니 남아프리카의 케이프타운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수고는 했지만 헛수고를 한 것이다. 

지혜로운 선장은 배가 가는 속도보다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가고 있는가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지혜로운 선장은 계속해서 항해사에게 묻는다. ‘지금 우리의 위치가 위도 몇 도, 경도 몇 도 사이에 있는가?’ 속도가 더디더라도 그 배가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면 그 배는 항해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금 열심히 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럽고 어리석은 일이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지혜로운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다. 한 사람은 소작인 농부요, 다른 한 사람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상인이다. 

(마 1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이 농부는 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가 괭이에 걸려나온 이상한 상자 하나를 발견하였다. 이것이 무엇인가 열어보니 그 안에 많은 보석이 들어있었다. 이 농부는 그 상자를 더 깊숙이 파고 묻어 두었다. 그리고 가서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샀다는 이야기다. 

두 번째 사람은 보석 상인이었다. 

(마 13: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마 13: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그는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진주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주 좋은 진주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서 그 진주를 샀다. 

이 두 가지 비유의 목적은 천국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한 것이다.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면에 있서서는 공통점이 있으나 천국을 소유하는 과정에서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먼저 어떤 면에서 차이점이 있는가? 

첫 번째 비유에서 농부는 일하다가 우연히 보물을 발견하게 된 경우이고, 두 번째 비유에서 상인은 좋은 진주를 얻기 위해 찾아다니다가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농부는 노력 없이 일하다가 보물을 발견하였고, 상인은 얻기 위해 부지런히 찾아 다니다가 발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에 따라서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 얻는 일이 쉽게 이뤄지는 사람이 있고, 평생 동안 헤매다가 어렵게 어렵게 믿게 되는 사람도 있다는 뜻이다. 디모데와 같이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하여 순탄하게 믿음을 이어 받아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울과 같은 사람은 오랫동안 교회를 핍박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괴롭히기다가 전격적으로 예수를 믿은 경우를 말하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믿음을 얻게 되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이 비유에서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보물과 진주를 얻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았다는 것이다. 본문에서 보물과 진주가 은유하고 있는 것은 ‘천국’을 가리키는 것인데 농부와 상인이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 그것을 샀다는 것은,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을 만큼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보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자신을 포기했던 사람들이다. 
1)에녹
(창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노아
(창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3)아브라함
(창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 오세였더라

4)모세 
(히 11:24)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히 11:25)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히 11:26)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봄이라

5)제자들
(눅 5: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 버리는 일을 과감히 시행하였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자신의 소유와 즐거움을 포기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그대로 방치하지 않으신다. 

(막 10: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막 10:30)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그러나 실패한 사람도 많다. 

1)롯의 아내
(창 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 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2)에서
(히 12:16)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히 12:17) 너희의 아는 바와 같이 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3)사울왕
(삼상 15:19) 어찌하여 왕이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고 탈취하기에만 급하여 여호와의 악하게 여기시는 것을 행하였나이까

4)마19장에 소개되고 있는데 ‘부자 청년’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부자요 관원이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영원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가 예수님에 찾아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때 예수께서 ‘그의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청년을 근심하고 돌아갔다. 
성경은 그 청년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마 19: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사실 예수님은 그 청년을 시험하신 것이다. 과연 그의 마음이 천국에 있었는지 아니면 재물에 있었는지 알게 하신 것이다. 그 청년은 천국보다는 재물에 마음을 두었던 사람이다. 쉽게 표현하자면 천국 없이는 살아도 돈 없이는 못산다는 것이다. 천국보다, 영생보다, 주님보다 재물에 더 가치를 두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증거하였다.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눅 12: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서도 주님과 재물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주님을 떠나서 재물을 따라 갈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믿음이 있는 것 처럼 포장하지만 신앙으로 말미암아 자신이 손해보게 된다면 돌아선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아니라 재물이기 때문이다.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이용규선교사, ‘더 내려 놓음’. 많이 내려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려 놓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쓴 글이다. 우리는 이런 신앙의 글들을 읽으면서 은혜를 받는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 내려 놓으라고 하면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안에 하나님처럼 소중하게 모시고 있는 것들이 많다. 겉으로는 하나님만 높인다고 노래하고, 손을 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쓴 소리 한 마디 하겠다. 

일주일에 예배 한 번도 제대로 안드리면서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언제든지 예수님을 떠날 가능성이 있다.

자신의 외모를 꾸미기 위해 화장품을 사고, 옷을 사는데는 수 십만원 쓰면서 한 주 헌금 만원 드리는 것도 인색한 사람, 언제든지 예수님 떠날 가능성 있다. 

게임, 오락, 취미생활에 빠져 하루에도 몇 시간씩 소비하면서도 교회 나와 봉사 좀 하라고 하면 시간 없다고 핑계대는 사람도 역시 언제든지 예수님 떠날 가능성 있다. 

공부한다면서 밤 늦게까지 매달리면서도 일주일 내내 성경 한 장 보지 않는 사람도 역시 예수님 떠날 가능성 많은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최고의 가치는 예수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의 최고의 가치는 돈이요, 자식이요, 외모요, 자기 일이요, 공부, 오락이요 취미생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을 너무 값싸게, 너무 쉽게 얻었다. 그래서 소중하게 생각지 않는 것이다. 천국을 악세사리 정도도 여긴다. 영국의 강해설교가인 존 라일 목사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 특징들이 있다고 했다.
1)구원을 가치 있는 일로 생각지 않는다.
2)믿음의 결단을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는다.
3)신앙과 세상 사이에서 언제까지나 안주하려 한다.
4)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마음이 없다. 

그 결과 주님은 그 사람의 삶 속에서 저 아래 순서로 밀려나 있다. 그러다가 결국 자신은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못하고 신앙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가 되고 만다. 

어떤 교수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중에 자신의 주장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한 예를 들었다.
그는 항아리를 책상 위에 올려 놓은 후에 부대 자루에서 주먹만한 돌을 항아리에 집어 넣기 시작했다. 돌이 아구까지 차자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예!

그러자 다른 포대에서 잔 돌을 항아리에 올려 놓고 흔들었다. 주먹만한 돌 사이에 잔 자갈이 다 채워지자 다시 물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글쎄요?

교수는 모래주머니를 꺼내서 항아리 위에 부었다. 빈틈을 가득 채운 후에 다시 물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 아니요.

교수는 물이 담긴 주전자를 들어 항아리에 부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었다.
-이 실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한 학생이 대답했다.
-매우 바빠서 스케줄이 가득 찼더라도 지혜를 구하고 노력하면 새로운 일을 그 사이에 추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아닙니다.

교수는 즉시 부인했다. 
-이 실험의 의미는, ‘만약 여러분들이 큰 돌을 먼저 넣지 않는다면, 영원히 큰 돌을 넣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애 중에 가장 큰 돌이 무엇인가? 재물인가? 승진인가? 사업? 우정? 공부? 자식...?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인생이라는 항아리 속에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먼저 채워 넣다보면 정작 나중에 주님이 들어갈 곳은 없다는 뜻이다. 

여러분이 그렇게도 소중히도 여겼던 것들 중에서 생의 마지막 순간에 가져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한 번 생각해 보라.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즉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나의 주님으로 확실히 믿고 고백하고, 그분을 나의 인생의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면 이 땅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 그분은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인가? 
오늘 비유의 말씀에서 소개된대로, 보화를 발견한 후 자신의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산 농부와 같은 사람이다. 값진 진주를 만나자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그 진주를 산 상인과 같은 사람이다. 

여러분, 천국은 우리 생애의 모든 것을 팔아 살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이다. 영원한 가치가 아닌 육신적 정욕을 위해 몰려다니고 관심을 갖는 것에 대하여 야고보 선생은 이렇게 경고했다. 

(약 4:16)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나그네는 짐이 무겁지 않다. 천성을 향한 우리의 짐이 너무 많지 않도록 불필요한 것은 정리하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최고의 가치요 능력이 소망이요 기쁨이 될 수 있도록 그분을 소유하기 위하여 버리고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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