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아들이 되었으므로 (갈 3:26 ~ 갈 4:7)

  • 잡초 잡초
  • 313
  • 0

첨부 1


아들이 되었으므로 (갈 3:26 ~ 갈 4:7)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지난 주에 갈라디아 강해 설교를 계속하면서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는지? 율법을 주신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은혜를 나누었다.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가장 큰 목적은 우리를 에수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위해서였다. 

본문 3:24을 보자.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에게 아무 소망이 없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 앞으로 달려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율법으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그 율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가 율법으로 그리스도께로 달려 나아갈 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지를 말씀하고 있다. 우리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이다. 26절을 보자.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아버지가 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실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을 때에만 가능하다. 그 분 앞으로 나아올 때에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일어나며 그를 입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을 입으면 비로소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특권이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를 중명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성령을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영이 어떻게 이를 증명하시기 위해서 오셨는가? 

본문 4:6을 보자. ‘너희가 아들인 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아들 삼아 주셨는데, 이를 증명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체험적으로 알게 하시기 위해서 성령을 보내신 것이다. 이것을 알 때에 우리는 하나님 앞으로 담대하게 나올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더 이상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친숙한 분으로 다가오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 언어가 매우 친숙해진다. 우리는 ‘하늘의 계신 아버지, 아버지 나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아버지 나를 도와 주세요’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된다. 왜 그런가? 성령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증명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를 아무리 오랫동안 뵙지 못했다고 해도, 친숙한 아들이라면 그는 아버지를 늘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우리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권한이 주어졌다. 그리고 성령이 오셔서 그 사실을 알려주셨고 확증하셨기 때문이다. 

‘아바 아버지’라는 표현은 영어로 ‘Father, Dear, Father’이다. 우리는 무슨 특권과 명분으로 하나님을 이렇게 부를 수 있나? 바로 기도하는 자에게 이러한 특권과 명분이 주어진다. 성령이 오셔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이다. 아들의 명분을 확인시켜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 기도자들은 모두 하나님을 그렇게 부를 수 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 분을 옷 입어야 한다. 하나님을 단지 추상적인 분으로 알고 신앙 생활하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다. 하나님을 알게 되고 아들의 특권을 갖게 되었다. 그곳에는 엄청난 은혜가 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딸이다. 그러나 이같은 엄청난 축복을 누리는 가운데, 함께 오는 책임과 사명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켜야 할 세 가지 책임과 삶의 자세를 보도록 하자.

(1)두려워 하지 말라.  

아들은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자이다. 그는 고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홀로 서 있지 않는다. 질병과 고통과 불경기의 어려움 속에서, 그리고 망가지 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결단코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눈동자 같이 여기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 이름을 당신의 손바닥에 새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엄청나게 따뜻하게 하시는 사랑이다. 다윗은 인생 중에 엄청난 어려움을 지나면서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찬양했다. 

시139:7-12를 보자.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내가 혹시 말하기를 흑암이 정녕 나를 덮고 나를 두른 빛은 밤이 되리라 할지라도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취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일반이니이다’ 이 세상에 우리가 주님의 곁을 피해서 갈 곳이 없다. 산으로 피하고 하늘로 올라가도, 또 음부로 내려가고 바다 끝에 가더라도 주님은 그곳에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다윗은 인생의 고난 중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고 지금 그 분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면 우리는 고민할 필요가 없고 두려워 할 필요도 없다.

본문 4:4를 보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때가 차매’라는 말은 가장 옳고 가장 적합한 때를 말한다. 그 때에 이르러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이다. 그 때에는 로마가 온 유럽과 중동과 소아시아를 지배하고 있을 때였다. 평화롭게 보이는 때였고 로마의 대로를 타고 전 세계로 복음을 전파시킬 수 있는 때이기도 했다. 모든 육로와 해로를 지키고 있는 로마 군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을 전도여행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또한 헬라 언어와 문화로 인해서 모든 나라들이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헬라어로 된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음란한 신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음란한 신들을 경배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예배를 드리기 위한 합당한 대상이 필요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그 때를 결정하신 것이고 바로 그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때가 찬 그 때를 선택하여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문제와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를 믿고 신뢰할 수 있다. 환경은 우리를 두렵게하고, 우리로부터 기쁨을 앗아갈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로 부를 때에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소망과 위로와 평강이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책임지신다.


(2)서로 품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품고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이 모든 민족과 족속과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의 사명이다. 

3:28을 보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그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연결시킬 수 없는 갈라짐이 있었다. 

유대는 하나님의 언약의 나라이며 제사장 나라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방 성도들과는 접촉하지 않았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나누어진 두 그룹이 되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사회적 위치로 나누어졌던 ‘종’과 ‘자유인’들이었고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당시에 여성들은 심각한 차별 속에 살았다. 시대를 막론하고 폐쇄적인 사회 속에서 살았던 여성들은 모두 차별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복음이 들어 온 후에는 그들이 차별에서 놓임을 받았고 비로소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성경은 이 점에 대하여 참으로 엄청난 말씀을 전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라는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이제 모든 벽이 허물어졌다. 그들이 갖고 있는 독특함과 차이점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하나님 앞에서 그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같이 우리를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한가지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되는 것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 다툼을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려는 축복을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우리가 형제와 자매됨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에게 머물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이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성립되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고 피흘리셨고 돌아가셨다. 지금 여러분이 배척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당신이 배척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가를 검증해보아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통해서 모든 담을 제거하셨다. 자신이 배척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라. 주님의 가슴을 품고 배척하는 마음을 제거하기를 바란다.


(3)그 자리에서 충성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인가? 3:29을 보자.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그리고 4:8도 함께 보자.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 아들이기에 아버지의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다고 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함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의 대 약속의 유업을 이을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이 약속의 유업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성경의 많은 영웅들만을 위함도 아니다. 이 약속은 우리 믿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이행하여야 할 약속인 것이다. 

히11:40을 표준 새번역으로 읽어보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계획을 미리 세워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없이는 완성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들이 없이는 그 약속은 완성될 수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진들을 통해서 흐르게 하신 거룩한 언약을 우리가 완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Relay’라는 말이 있다. 모든 주의 백성들이 언약을 완성하기 위해서 모든 relay해야 한다. 우리가 완성하지 않으면 경주를 완주할 수 없다. 믿음의 영웅들도, 이름 없이 지나간 모든 성도들도 모두 이 relay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대 경주가 특정한 1-2 명의 것으로 여기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의 자리를 믿음과 충성으로 지키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가 자녀 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이다. 바로 믿음으로 유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이 때에 우리는 새 힘을 얻게 된다. 

사람들은 영웅이 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이같이 많은 믿음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충성하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민 생활 중에서 산산조각이 날 수 있다. 인생이 의미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함께 우리가 당신의 유업을 이어나갈 수 있기를 원하신다. 아무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주님의 나라를 위해서 세계를 품고 기도할 수 있어야 하며 몸 된 교회를 위해서 맡겨진 사역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역사상 참으로 유명했던 한 football 선수가 자신의 체격이 작았음에도 그렇게 powerful한 play를 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서 ‘나는 내 몸으로 상대를 치는 것이 아니라 내 soul로 친다’라는 말을 했다. 하물며 하나님 나라에 헌신하는 우리가 몸으로만 섬길 수는 없는 것이다. 온 맘과 온 몸 다해 주님을 섬겨야 한다. 주어진 자리에서 온 몸과 온 정성과 온 힘과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기를 바란다. 자녀들도 그렇게 양육하기를 바란다. 항상 목숨을 다해서 주님의 영광을 높여드리고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또한 간구한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