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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전심으로 찾는 자를 만나시는 하나님 (렘 29: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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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심으로 찾는 자를 만나시는 하나님 (렘 29:8~14)


만남의 체험을 갈망하는 신학생들 

대만에서 목회 하던 주연화 목사님은 중국 본토가 공산당에게 점령당하기 전, 상해에서 신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당에게 점령당하기 전 평화로울 때에는 교수와 신학생들이 신학에 관한 이론을 가르치고 공부했었지만 중국 본토가 공산당의 발에 짓밟힐 위기에 처하자 교수와 신학생들은 학업을 전폐하고 강의실에 모여 하루 종일 “하나님이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가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공산당이 눈앞에 다가오게 되자 신학적 이론은 뒤에 두고 하늘과 땅과 세계를 지으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교수와 신학생들이 한 자리에 모여 일심으로 부르짖어 기도를 시작하자 그곳에 성령의 불이 임하여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령 충만함을 받고 은사를 받고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한 교수들과 신학생들은 그 후에 공산당이 중국본토를 점령하고 기독교인에게 말할 수 없는 핍박을 가해도 그 시련을 능히 이기고 복음의 불씨를 간직했다가 지하 교회의 구역 예배를 통해 복음의 불길을 번지게 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체험이 복음의 불씨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을 만난 체험을 통하여 복음의 대열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에 흔들림이 없는 반석 위에 서게 됩니다. 먼저 욥기에서 보여주는 대로 두 가지 유형의 신앙을 소개하겠습니다. 한 가지 믿음의 유형은 욥의 아내에게서 보는 신앙으로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신앙입니다. 욥의 아내의 신앙은 무언가 손에 쥐어졌을 때에만 하나님 신앙을 가집니다. 욥의 아내는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자녀들과 재물들과 남편의 건강을 잃었을 때에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는 자기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겠느뇨?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욥2:9). 
    

내일 먹을 빵을 들고 자는 고아들 

찰스 알랜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갈 무렵 연합군은 많은 고아들을 천막으로 모아 먹을 것을 공급해 주었습니다. 성심껏 돌보는 손길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두려워했으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한 심리학자가 해답을 연구해 내었습니다. 바로 각각의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 때 빵을 한 조각씩 안고 잘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더 배고파하는 아이들에게는 추가의 음식을 제공하여 주어진 빵은 먹지 말고 들고 잠자리에 들게 하였습니다. 잠자리에 주어진 빵 한 조각은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내일 먹을 음식을 안고 안심한 아이들은 만족스런 마음에 안심하고 평안히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약속을 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 이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원주면 안심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지만 그 약속이 조금이라도 늦어지거나 눈으로 보이지 않을 때에는 원망하고 불평하고 신앙을 버리고자 하는 욥의 아내의 신앙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신앙입니다. 이런 신앙은 우리들을 불행하게 만들고 믿는다고 하면서도 불신자와 별로 다름이 없는 인생을 삽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난 신앙 

또 하나의 신앙 유형은 초월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는 신앙입니다. 이것은 욥에게서 볼 수 있는 신앙입니다. 욥은 자기의 모든 것, 자녀들과 재물과 자기 몸의 건강을 잃어버리고 목숨이 위태로운 지경에 처했으나 하나님 신앙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은즉 또한 적신이 되어 그리로 돌라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 받으실 지어다.” (욥1:21).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냐?”(욥2:10).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내 것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갑 하나를 잃었거나, 아끼던 보석을 잃었거나 심지어 신발 한 짝만 잃어버려도 그것 때문에 속이 상하고 화를 냅니다. 그것은 아직도 나의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지갑이 나의 것이고, 그 보석도 나의 것이고 그 신발도 나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의 것을 잃었으니 속이 상하고 불평이 생기는 것입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필요하니 주셨고 나에게 없어도 될 때에는 가져가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우리의 생각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것까지 봅니다. 그러기 때문에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모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욥의 신앙은 전적으로 아멘의 신앙입니다. 욥기 42장 5절,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든지 아멘으로 받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자기에게 무엇이 일어나도 그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어떤 토도 달지 않고 아멘으로 받겠다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과 조건을 만나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거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고백입니다. 오직 주님의 신앙입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신앙입니다. 바울 사도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께서 내 안에 사신 것이라.’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신앙의 목표입니다. 이것이 찬송가 431장의 신앙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합소서.” 이것이 찬송가 383장의 신앙입니다. 우리 함께 찬송가 383장 1절과 3절을 함께 부를까요?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이 신앙 생각할 때에 기쁨이 충만하도다.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성도의 신앙 본받아 원수도 사랑하겠네. 
   인자한 언어 행실로 이 신앙 전파하리라.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겠네. 

여러분, 이런 신앙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에 오는 신앙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뜻대로 하는 신앙,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는 신앙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에 우리들에게 오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저는 이런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이런 신앙을 나에게도 주옵소서.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시옵소서. 성도의 신앙 따라서 죽도록 충성하게 하시옵소서.” 교회의 문제는 목사의 문제입니다. 목사인 내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이 약하고 넘어지기 쉬운 나를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저도 이런 신앙을 가지도록 위하여 기도해 주세요. 여러분, 모두 이런 신앙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고난과 두려움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오늘 말씀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가서 온갖 고생과 차별과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사는 유대인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 말씀은 고난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유대인들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에게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유대인들과 우리들에게 주시는지 함께 보십시다. 

먼저 8절과 9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 중 선지자들에게와 복술에게 혹하지 말며 너희가 꾼바 꿈도 신청하지 말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함이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러분, 고난을 당할 때에, 두려운 일이 생길 때에,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아니할 때에, 모든 것을 빼앗기도 욥과 같이 저주 가운데 있을 때에 우리들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복술에게 혹하고 점을 치고 싶어지고  운세를 보고, 소문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이 패망의 길인 것을 알지 못합니까? 

여러분 사울 왕이 패망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역대상 10장 13절,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저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돌리셨더라.” 하나님은 아무리 무서운 일을 당하고 두려움의 강물이 우리를 덮칠지라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말씀합니다. 

10절, 11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을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합니다. 70년이 되어야 포로생활이 끝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때입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이 무엇입니까?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가 아니요.”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만나실지,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들에게 응답하실 런지, 그 사람이 언제나 변할 런지 하는 것은 아버지의 권한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장래와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을 우리들 가운데서 이루실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포로생활을 견딜 수 있습니까? 어떻게 이 고난과 두려움과 답답한 때를 견딜 것입니까?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평안을 주시고 장래와 소망을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12절과 13절은 우리에게 그 대답을 주시고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어떻게 이 고난의 때를 찬송하며 견딜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샬롬을 믿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확신을 가지고 고난을 견딜 수 있습니까? 그 대답은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하나님께 와서 기도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으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은 우리들을 견디며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난 믿음의 사람들 

여러분, 베드로의 이야기를 아시지요? 베드로가 왜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배신하였습니까? 3년간을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예수님께 배우고 훈련을 받은 베드로가 왜 배신하였습니까? 그 이유를 아십니까? 베드로는 인간 예수님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간 예수님은 능력이 뛰어나긴 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입니다. 인간 예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결코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베드로가 이번에는 이전보다 더 무시무시한 상황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기는커녕, 그 무서운 이리떼 같은 공회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행4:19,20)고 확신에 차서 말할 수 있었습니까? 이런 변화가 어디서 왔습니까? 영이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어떤 문제, 어떤 위기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주연화 목사님의 신학교 시절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평화로울 때는 신학에 관한 이론을 가르치고 토론하였지만 공산당에게 중국 본토가 짓밟힐 위험에 처했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이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하시옵소서.” 부르짖어 기도했고 성령님의 불이 임했을 때에 그들은 말할 수 없는 박해 가운데서도 시련을 이기도 견디며 신앙을 지키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 가운데서 우리가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그것을 이길 수 있게 하나님께서 성령충만한 일군들을 보내어 주셨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이성봉목사님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이성봉 목사님 이야기 

이성봉 목사는 1900년 평남 출생, 어머니가 그의 6세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이 없었습니다. 1920년 6월 과수원에서 과일을 싣고 평양으로 가던 중 가자묘 앞길에서 원인 모른 채 오른 쪽 넓적다리에 참을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며 쓰러졌습니다. 그는 이것을 사울의 다메섹 도상의 경험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3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병상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힘을 다해 기도하는 동안 병을 고침 받았고 주님을 만나는 뜨거운 경험도 하였습니다. 환난은 그를 주님께 인도하고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1925년에 경성 성서학교(현 서울신학대학교 전신)에 입학하여 뜨거운 영적 신앙 단련과 사명의 무장을 하고 부흥목사로서 66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그가 제주도에 와서 서부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3일에 한 번 밖에는 육지로 나가는 배가 없을 때이고 그 배도 작은 배여서 육지에서 제주도에 다니기가 참으로 험악한 때였습니다. 한 주간 동안 부흥회를 하는데 3일 째 되었을 때에 갑자가 배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급성 맹장염에 걸린 것입니다. 그때에는 제주도에 맹장 

염을 수술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습니다. 급히 육지로 나가서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그 날 밤에 철야하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지금 맹장염이 터져 죽게 되었습니다. 저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들에게 전하고 순교하겠습니다. 그리고 통증을 참으면서 밤새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맹장염이 사라지고 그 집회를 마칠 때까지 아무런 일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고친 것입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초월의 하나님을 체험한 후에 순교의 각오와 열정으로 하나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일제 박해와 6.25의 혼란기, 60년대의 교파분열의 아픔 가운데서 한국교회를 지키고 성장 발전하게 하였습니다. 초월의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누구든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고 아멘 아멘의 신앙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였습니다. 프랜시스 자비엘 선교사의 시를 들어봅시다.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의 하나님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오르고자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만일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원히 죽을까 두려워하여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나의 예수님! 당신은 십자가 위에서 나를 껴안아 주셨나이다. 
나를 위하여 못에 박히셨고 창에 찔리셨으며, 많은 부끄러움을 당하셨나이다. 
그러하신 당신을 어찌 사랑치 않으리까? 

축복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시어! 
그러므로 당신을 사랑하는 나의 사랑은 
천당이 그립거나 지옥이 무서워서 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에게 무엇을 얻거나 상급을 받으려는 야심이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신 까닭에 나도 당신을 사랑하나이다. 

영원한 사랑이신 주여! 그러므로 나는 당신을 사랑하며 당신을 찬송하오리다. 
사랑하는 주님이시어!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영원하신 왕이시니 이다. 

자비엘 선교사는 주님께서 십자가의 보혈로 끌어안아 주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자기를 위해 차에 찔리고 못 박히시고 부끄러움을 당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동양선교의 큰일을 했습니다. 그는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헌신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역사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빛을 온 세상에 비취는 하나님의 빛, 하나님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찾고 찾으면 만나주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오늘 우리 광장교회에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살롬으로 우리들을 채우시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장래와 소망을 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복덩이로 세우시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생수의 강 같이 흐르게 하고자 하십니다. 같이 한 번 따라할까요? “복덩이가 될지어다.” 서로 간에 축복하세요. “복덩이가 될지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두려움 가운데 있는 유대인들에게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승리의 길임을 분명히 보이셨습니다. 12절과 13절을 함께 읽읍시다. “너희는 내개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이제 우리는 부르짖을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와서 기도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찾을 때입니다. 그래서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힘을 얻습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늘의 살롬으로 충만 충만합니다. 초월하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여 생명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들이 해야 첫 번째 일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입니다. 전심으로 하나님 만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갈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고 또 찾는 것입니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이제 우리 함께 복음송가 부흥을 함께 부릅시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이제 우리 모두 하나 되어 이 땅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을 때 
   우리의 우상들을 태우실 성령의 불, 임하소서. 
   부흥의 불길 타오르게 하소서 진리의 말씀 이 땅 새롭게 하소서 
   은혜의 강물 흐르게 하소서. 성령의 바람 이제 불어와 
   오, 주의 영광 가득한 새날 주소서. 오, 주님 나라 이 당에 임하소서. 

오늘 우리 주님께서 성령의 불을 임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흥의 불을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성령님의 바람이 불어오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 가득한 새 날을 주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오, 주님, 오늘 여기에 임하소서. 오, 하나님 우리들을 만나주소서. 우리를 새롭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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