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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밟겠으니 넓혀주소서 (대상 4: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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밟겠으니 넓혀주소서 (대상 4:9~10)
  

세상에서 복 받기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 받으려고 예수 믿는 게 아니라고 합니다. 그럼 왜 믿나요? 분명히 복 받기 위해 예수 믿습니다. 문제는 그 복이 어떤 것이냐 입니다. 일반적으로 보아 수고 안하고 좋은 것을 받을 때 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을 욕심쟁이라고 비판합니다. 기복적인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수고 안 하고 받는 것 맞습니다. 죄 용서 받고 하나님 자녀 되는데 내가 수고했나요? 거룩한 영을 받아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 거저입니다. 능력 받고 특별한 사람 되는 것도 공짜입니다. 불신자보다 삶이 잘 풀립니다. 다 거저입니다. 대가 지불한다면 기독교 아닙니다.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데 내가 무슨 실력으로 대가를 냅니까? 

신자들이 말만하고 행동 안 한다는 지적 자주 받지요? 이것은 정말 문제입니다. 하지만 신자로서 제대로 살아가는 것도 내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입니다. 하나님이 힘 주셔야만 됩니다. 매일 매일의 삶도 하나님 힘으로만 됩니다. 그러니까 신자 노릇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 의지해서가 아니라 안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살면 보통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기도하고 의지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힘을 주십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지원을 하십니다. 하나님을 정말 믿고 산다면 누구나 탁월한 삶을 삽니다. 그러므로 크게 요구하고는 용감하게 그리고 끈기를 가지고 도전한다면 최상의 삶이 열려집니다. 야베스가 그렇게 했습니다. 그 기도를 살펴보세요. 


1. 존귀한 생각의 사람이도록 

지난 번 독일의 바르트부르그 성을 방문했습니다. 산 속의 아름다운 성은 수십 개의 방들이 모두 찬란한 모자이크로 빛났습니다. 공주를 위해서 1067년 성이 만들어졌던 것입니다. 거기 한 구석 판자로 지은 가건물에 루터가 1521년 10개월간 숨어있었습니다. 이 성이 왜 존귀한가요? 몇 달 동안 루터가 머물러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치스럽고 화려해도 아무도 거기 살지 않으면 귀히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잊혀진 성이 유럽에 많아요. 초가집이라도 왕이 살면 존귀해 집니다. 그 성의 명성은 단지 루터 때문입니다. 화려한 외모나 찬란한 수십 개의 방이 그렇게 하지 않아요. 덧붙인 루터의 방 때문에 이 성 전체가 영광을 받습니다. 그 방 보러 힘들게 그 성에 갑니다. 

야베스는 형제들보다 존귀했습니다. 그는 아주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성공하기 전에 이미 존귀했던 것입니다. 유럽의 궁전들은 아무리 화려해도 화장실이 없습니다. 요강이 화장실입니다. 금그릇이라도 요강은 모두 싫어합니다. 사람은 그릇입니다. 존귀한 생각을 담아야 존귀합니다. 야베스는 늘 하나님을 그의 마음에 모셨습니다. 

그가 존귀한 이유는 그뿐이 아닙니다. 그는 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존귀한 분과 교제하는 이는 존귀합니다. 하나님을 모신 그릇이라서 존귀했고 하나님과 동행했기에 존귀했습니다. 그러니 형제들보다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존귀하고 잘 되고 싶나요? 예수 믿어도 잘 안 되나요? 더 자주 예배 나오세요. 늘 하나님 생각하고 하나님과 대화하세요. 

그러면 야베스처럼 기도하게 됩니다. 큰 사람과 만나면 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 생각 늘 하면 하나님 마음이 들어옵니다. 그래도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모든 것이 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나의 지역을 넓히소서.” 그냥 욕심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처럼 크게 보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보다 더 잘 할 수 있고 더 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나올 때 하나님은 우리 속에다 위대한 계획을 넣으셨습니다. 이 계획은 우리의 체질이나 열정에 완벽하게 맞는 것입니다. 지금보다 백배는 더 크고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규모만 그런 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거기까지 지경을 넓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늘 생각하고 하나님이 생각을 열어 주시고 도전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세요. 

아무리 그릇이 못 생겼어도 보석을 담으면 보석 그릇입니다. 주인이 항상 마음에 두고 소중히 여깁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늘 하나님을 바라고 하나님만 생각한다면 하나님만 원한다면 존귀함을 말로 다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항상 챙기는 존재입니다. 이 쉽고도 확실한 방법, 야베스는 그것을 가져서 존귀하게 되었습니다. 존귀한 삶이 펼쳐졌습니다. 


2. 환난과 근심보다 크게 되도록 

이  부분에서 대부분이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합니다. 그들은 환난을 두려워합니다. 어려운 일이 오면 근심합니다. 어려운 일은 계속 옵니다. 그러니까 미리 근심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되기 쉽습니다. 야베스는 그렇게 수동적인 고생을 생각한 게 아닙니다. 살다보면 병 오고 사고 당하고 저주가 오는데 속수무책이니까 피하게 해 달라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야베스는 누가 자기 삶의 주인인 줄을 깨닫습니다. 누가 삶을 주도하나요? 경기인가요? 환경인가요? 운인가요? 그러면 야베스처럼 할 수 없어요. 내 삶의 주인은 나 자신입니다. 어떤 문제이건 실패이건 불운이건 내가 받지 않으면 나를 장악하지 못합니다. 병이 옵니다. 가난이 옵니다. 그러나 나는 내 것으로 받지 않습니다. 

야베스의 의미는 “고통의 아들”입니다. 제 이름이 “김고통”인 셈입니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이름입니다. 그의 부모는 그 이름을 주었습니다. 그 자신도 그 이름을 사랑하고 바꾸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습니다. 수동적으로 당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듯 병이나 실패나 슬픔이나 저주의 고통이 아닙니다. 

할 만한 일을 하기 위해서 겪는 고통입니다. 병이나 가난이나 문제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할 일이 있습니다. 어차피 삶이 힘든 것이라면 신자는 할 일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합니다. “환난을 벗어나고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오고 역경이 옵니다. 그러기에 벗어날 힘과 걱정하지 않는 당당함을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야베스는 유다 자손입니다. 이 지파는 힘든 일을 향해 도전하는 정신을 훈련시켰습니다.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을 정탐할 때, 모든 지파 대표들이 못 들어간다고 거부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주었으니 너희 것이다”고 하시는 데도 말입니다. 상대가 너무 강하게 보였습니다. 유다지파의 갈렙만 말합니다.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의 밥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할 때도 그러합니다.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찜이니이까?”(수17:14) 조상 요셉 덕분에 잘 먹고 살았으니 당연히 많이 가져야 한다는 겁니다. 지나친 공로의식입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사람과 르바임 사람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15) 대답이 무엇인가요? “그 산지는 우리에게 넉넉지도 못하고 골짜기 땅에 거하는 가나안 사람에게는 다 철병거가 있나이다.” 이들이 피하려는 환난과 근심은 갈렙의 것과는 달라요. 

갈렙 보세요. “내게 산지를 주십시오. 나는 여전히 건강합니다. 내게  기회를 주십시오. 문제를 주세요. 좋지 않은 땅 주세요.” 충분히 기득권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포기하고 강한 적들이 거하는 산지를 요구합니다. 결과적으로 유다지파는 가나안을 다 점령하고 유브라데 강까지 영토를 밀어 올립니다. 이스라엘 국기에 적힌 대로입니다. 


3. 끝까지 용기와 인내로 도전하도록 

하나님 힘이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놀라운 인도와 보호하심, 누구에게 있나요? 세상 환난 근심을 넘어서는 큰 존재로 누구를 만드시나요? 하나님이 크고 존귀하게 만드시려면 우리가 협조해야 합니다. 부자를 만들고 잘되게 만들려고 해도 따라주어야지요. 아무리 부모가 돈 많고 훌륭하고 위대해도 자식이 따라 주어야 부모 이상의 존재가 됩니다.  

먼저 원하세요. 누구나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신자가 되면 더욱 긍정적인 욕망이 일어납니다. 좀 더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교회 일에 열심을 내고 가정에서 직장에서 잘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조금 하다가 금세 지칩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소원이 아름답고 클수록 하나님은 더 큰 힘을 주십니다. 

좋은 소원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 마음의 소원을 주셨으며 그 입술의 구함을 거절치 아니하셨나이다.”(시21:2) 욕심이라 두려워말고 기도하세요. 안 그러면 사라집니다. 내게 뭐 이런 게 올까? 하나님의 선물이 거부된 것입니다. 원하세요. “지경을 넓혀주세요. 어려움을 극복하게 함께 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밟아 내 것으로 하겠습니다.” 

38세 미얼스라는 여자 분이 할리우드 제일장로교회 교육부장이 됩니다. 말합니다. “하나님은 남들 하는 것 구경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게 아니다. 경기장에 나와 경기하라 부르셨다.” 야베스처럼 존귀한 생각 존귀한 도전으로 3년 만에 주일학생이 4백에서 4천명이 됩니다. 청년교사중 4백명이 전임사역자가 됩니다. CCC창설자 빌 브라이트도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재에 실망해서 스스로 복음적인 교재를 만들었습니다. 하도 그 교재를 달라는 요청이 많아서 직원들이 수고하다가 아예 출판사를 만듭니다. 고등학생 대학생들을 훈련한 수련관을 위해 기도합니다. 개인 소유 건물이 나왔는데 너무 값이 비쌉니다. 함께 기도를 계속합니다. “지경을 넓혀주소서.” 1938년 당시 35만 달러짜리를 3만에 삽니다. 

그리고는 계속 지경을 넓혀서 연예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자기 집에서 시작하다가 교회 전체에 셀 그룹을 하다가 점점 더 확장 되었습니다.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 목사들이 그분의 영향을 받고 사역을 넓힙니다. 빌리 그래함이 말합니다. “아내와 어머니를 제외하고서 내 삶에 그렇게 큰 영향을 준 여성은 그분 외에 없어요.” 

야베스처럼 축복은 삶의 모든 분야에 펼쳐집니다. 진짜 좋은 것은 앞으로 옵니다. 나이 많아요? 돈 없어요? 기도하세요. “지경을 넓혀주세요. 더 많이 예배하고 더 많이 봉사하게 해 주세요. 가정에서, 직장에서 더 많이 섬기고 봉사하고 위험을 감수하게 하세요. 어려움을 극복할 지혜와 능력을 주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두려움 없이 도전하게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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