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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요 14: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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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요 14:25~31) 


오늘 본문 맨 끝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어나라.” 하신 것은 이제 하실 말씀을 다 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를 떠나자.” 하신 것은 이제는 가르침과 설명의 자리에서 행동과 실천의 자리로 옮겨가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예수님의 첫 말씀은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어서 이 말을 너희에게 하였거니와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25-26절)는 말씀입니다. “내가 아직 너희와 함께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제 제자들을 떠나실 때가 가까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때까지 가르치신 모든 말씀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동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많은 말씀을 해주셨지만 이제 곧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로 가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그를 대신하시게 될 것이라는 예고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언급하시며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 하신 데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 자신을 가리키시며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요5:43) 하심으로써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강조하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을 말씀하심으로써 당신과 성령 사이의 하나이심을 또한 강조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이 어느 정도 하나이신가 하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계시 외의 다른 어떤 새로운 계시를 가져오시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모든 것을 가르치실 것이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는 것뿐일 정도로 하나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그 뜻을 제대로 깨닫지도 못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지도 못하던 그의 제자들로 하여금 예수님의 그 모든 말씀의 깊은 의미와 그 가르침의 참 뜻을 비로소 깨달아 알고 기억하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리라고 알려주신 것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 오셔서 예수님을 대신하실 것임을 알리신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더 이상 제자들과 함께하실 수 없을 것임에서 오는 제자들의 불안을 달래주시기 위한 말씀일 수도 있으나 그 안에는 그 이상의 크고 깊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보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새 질서를 부여하시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의 역사적,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 시대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가 선포된 시대였습니다. 즉 로마제국이 무력으로 지배하며 유지하는 외형적 평화의 시대였습니다. 감히 로마제국의 군사력에 대항할 힘이 있는 나라가 없음에서 오는 전쟁의 중단 혹은 종식상태를 말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권위에 도전하고 불복하면 무자비한 응징을 당할 것이 두려워 굴종함으로써 누리는 평화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평화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의 심령에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보장해줄 수는 결코 없는 것입니다. 평화란 단지 전쟁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당대의 절대권력인 로마제국이 제공하는 평화(Pax  Romana)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구가하고 있던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를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과 그 진리의 깨달음과 거기서 오는 기쁨과 내적인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제국의 속민의 평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의 새로운 평화, 진정한 평화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 평화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 평화는 이 세상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우리에게 줄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평화는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아들의 순종과 희생적 죽음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가 십자가의 길을 통해 다시 아버지께로 가셔야만 우리에게 올 수 있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해 죄의 용서와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회복 받은 데서 오는 기쁨과 평안, 그래서 마음에 정죄와 형벌에 대한 아무런 근심도 두려움도 없는 상태가 주님의 평화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이제 그 평화를 만드시기 위해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되었다고 말씀하시며 그래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신 것입니다.

계속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봅니다. 28절 말씀입니다: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예수님을 대신하실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의 오심에 대한 약속이 있기는 했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말씀은 일단 제자들에게는 기쁨보다는 근심과 두려움을 불러일으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진정 당신을 사랑하였더라면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가심을 기뻐해야 할 것임을 다시 가르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은 첫째, 그가 이 세상에 오신 사명을 완수하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신다는 것은 주님께서 본래의 영광의 자리로 돌아가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 예수님을 사랑하는 제자들이라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고 당신을 보내신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하신 말씀은 교회의 역사에서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킨 말씀입니다. 특히 삼위일체론을 부인하려는 자들이 이 구절을 많이 들먹거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 성부께서 가장 크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성경적인 정통신앙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그 신성과 영원성과 권능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동등하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하신 말씀은 빌2:6-8의 빛 아래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신 말씀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고 하나님과 동등하시나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세상에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세상 죄를 다 해결하시기 위해 세상에서 사시는 동안 자발적으로 자기를 종처럼 낮추시고 철저하게 아버지께 순종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하신 말씀은 그런 뜻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본래 하나님이 사람으로 세상에 왔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는다는 것은 아무도 믿을 수 없을, 말도 되지 않는 소리로 들릴 것이기에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반복해서 단단히 일러두지 않으면  안 될 사안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믿을 수 없는 일을 믿게 하시려고 제자들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29절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이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을 우리도 믿어야 합니다. 누구나 믿어야 합니다. 믿는 자만이 살 수 있습니다. 이 믿을 수 없는 일을 믿는 이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곧 벌어질 당신 자신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대사건을 믿어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예수님께서는 사실상 더 하실 말씀이, 아니 말씀하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음을 아시고 마무리 발언을 하셨습니다. 

30-31절을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신 것입니다.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하신 것은 곧 붙잡히셔서 제자들과 말씀을 나눌 수 없을 때가 임박했음을 다시 알리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임금”은 마귀를 말합니다. 그는 벌써 왔습니다. 

요13:2에서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또 13:26-27에서 예수님께서 떡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자 그가 그 떡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고 이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기를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셨음도 이미 보았습니다. 마귀는 이 세상의 임금이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려 할 것이었습니다. 그 마귀의 도구로 팔려간 가룟인 유다는 그 나름대로 바쁘게 움직일 것이었고, 마귀의 지상적 대리자인 로마 총독 빌라도 또한 그 뜻을 따라 그의 몫을 잘 수행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실 것이었습니다. 그와 별도로 마귀는 또 열심히 예수님의 죽음을 진척시키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을 획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말씀을 하실 시간이 많지 않으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남기실 중요한 말씀을 잊지 않고 계셨습니다. 바로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란 바로 “이 세상의 임금”인 마귀입니다. 이 말씀은 마귀가 예수님에 대하여 아무런 권세도 갖지 못했고 그의 지상의 대리자인 로마의 권력도 그에게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을 것이며 유다의 더러운 배신도 예수님께서 가실 길에 이용되는 것 외에 아무 소용없을 것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마귀의 그 흉계도 단 사흘 만에 헛된 일임이 드러날 것이었습니다. 오직 명백히 밝혀질 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주신 명령대로 희생제물로 십자가에 달리셔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빌라도 앞에 서심으로써 세상의 임금과 맞서셨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오히려 온 세상 위에 참 왕으로 올라서신 것이며, 거기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모든 악과 거짓과 사망권세에 대하여 승리하신 것임이 온 천하에 알려지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뒤따라 하신 말씀의 뜻이 바로 그것입니다. 

31절입니다: “오직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과 아버지께서 명하신 대로 행하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 함이로라.” 이제 예수님께서는 그의 “아버지께로 가심”의 의미를 설명하실 만큼 다 하셨습니다. 그래도 제자들이 아직 못 알아들었다면 이제는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그 모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들에게 가르치실 것이고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남은 것은 십자가 지실 길을 가기 시작하시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말씀인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신 것은 그래서 하신 말씀일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일어나셔서 가신 곳은 바로 기드론 시내 건너편의 겟세마네 동산이었으며(요18:1), 거기에서 만난 자가 바로 예수님을 잡으려고 횃불과 무기를 가지고 온 가룟인 유다와 군대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요18:3).

본문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진정한 평화가 무엇인지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아무런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사는 참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저 수동적으로 이기적으로 근심과 두려움 없이 사는 소극적 삶을 권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의 의미를 다 설명해주신 후 하신 오늘 본문의 마지막 말씀인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 하신 그 말씀이 주님께서 오늘 우리 모두를 향하여 하시는 말씀으로 들려질 수 있기를 빕니다. 그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세상구원의 역사를 방해하려는 마귀와 이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과 그들이 펼치는 중상과 모략과 비난과 음해와 죽음의 공격 앞에서 근심과 두려움에 싸여 주저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며 그에 맞서 당당히 싸우러 나가라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사회는 악한 세력들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모독하며 주의 몸 된 교회를 핍박하며 그리스도인들을 적대하기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가룟인 유다처럼 교회 안에서 세상과 야합하는 배신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 앞에서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맙시다. 주저앉아 있지 맙시다. 일어나 선한 싸움을 싸웁시다. 이미 우리 안에 와계시고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며 역사하신 보혜사 성령을 의지합시다. 마귀와 그의 세력들은 영원히 멸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일시적으로 발악을 해도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승리는 더욱 빠르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그동안 숨어 암약하던 악의 세력들이 그 정체를 다 드러내고 있는 때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 악한 세력들을 이 땅에서 청소하시고 이 나라와 민족을 더 정결하게 하셔서 이 시대에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데 귀하게 쓰시는 일입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에 늘 기쁨으로 응답하며 근심도 두려움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 되시기를 간구합니다. (이수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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