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복음은 변화입니다 (갈 1:11~24)

  • 잡초 잡초
  • 269
  • 0

첨부 1


복음은 변화입니다 (갈 1:11~24)


"그리고 그 다음에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영원이다!"
이것은 이탈리아 로마에 있는 우르반대학 대강당에 새겨져 있는 글입니다.

오래전 로마 법대 졸업반에 어려운 고학생이 있었는데 등록금을 구하기 위해 `필립 네리'라는 부자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부자 노인은 돈을 건네주며 물었습니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하겠는가?" 
"우선 법대를 마쳐야지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변호사가 될 것입니다."
노인의 질문은 계속 똑 같았습니다.
"돈을 벌어야지요." "집을 지어야지요." "장가가야지요." "자녀를 낳아야지요." "점점 늙겠지요." "죽겠지요."
`네리' 노인은 엄숙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심판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 예수 안에서는 영원한 천당, 예수 밖에서는 영원한 지옥이다"

돈 뭉치를 받아든 학생은 노인의 음성을 지워버릴 수 없었고,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원이다!"라는 말이 그에게 한 고통이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로마 법대에서 우르반 대학으로 옮겨 신학과 역사, 그리고 철학을 공부한 후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열심히 살고 바쁘게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그 끝에 다다릅니다. 죄를 뉘우치고 예수님을 모신 사람은 천국에 가고, 죄 가운데 계속 사는 사람은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요한복음 14장 6절은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지옥을, 어떤 사람은 천국을 향해 뜁니다.
당신은 죽으려고 뛰고 있지는 않는지요?

먼저 생각할 것은 복음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세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좋았다고 했으니 그 얼마나 아름다웠겠습니까?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명령하셨습니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마음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마라. 만약 그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죽음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보십시오. 아담과 하와가 가정을 꾸미고 살면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이 자라서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립니다. 가인은 농사하여 지은 것으로 하나님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가 치던 양의 새끼를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매우 화가 나서 안색이 변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왜 화를 내느냐? 왜 안색이 변하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어찌 얼굴을 들지 못하겠느냐? 네가 좋은 마음을 품지 않으면 죄가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죄는 너를 다스리고 싶어 하지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하지만 가인은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좋은 마음을 품기는커녕 오히려 아벨을 들로 꾀어내어 죽여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은 좋은 마음을 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 좋은 마음은커녕 죽음의 길로만 달려갈 뿐입니다. 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고 사람과 사람도 갈라놓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이 죄 가운데서 죽어가는 것을 그냥 두고만 보고 계실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서 아담과 그의 아내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아담과 그의 아내로 인해 결국 동물이 죽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사람들은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된 죽음의 길로 달려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위해 동물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셨던 것처럼 우리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살 길을 만들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온 세상을 만드시고 일곱 째 날에 쉬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죄의 문제가 그냥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은 오직 생명으로만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는 짐승으로 그 죗값을 대신하도록 하였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것일 뿐입니다. 매번 다시 반복되어야만 했습니다.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그래 궁극적으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로 하나님이 작정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고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어 주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을 하나님께서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서 말씀하시기를 “다만 믿기만 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구원을 위해서 우리 사람들이 한 일이라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 어떤 값도 치룬 것이 없습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신 그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바울이 내가 여러분에게 전한 복음은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서 얻은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위한 구원의 길을 마련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대신 죽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는 이제 성령님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셔서 하나님께서 마련한 이 구원의 도리를 믿을 수 있도록 감동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약속을 따라 믿어 영원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길을 계획하셨고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루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성령님이 내 안에 오셔서 그것을 믿을 수 있도록 감동하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감동을 따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구원의 길은 처음부터 하나님이 마련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믿음 안에 설 수 있도록 이끌어주시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셨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해주신 것입니다. 물론 사람을 통해서 우리 귀에 들려 주셨다고 해도 그렇게 하도록 모든 길을 마련해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또한 우리로 하여금 그 복음을 다른 사람들의 귀에 들려지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나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이 준비하여 주신 이 복음을 그러기에 우리는 널리 전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나를 자녀로 삼아주신 하나님이 내가 깨닫고 내가 믿게 된 그 예수님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복음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열어 놓으셨고 성령님을 통해서 알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성령 안에서 그 길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알 수 있도록 성령님께서 그 마음속에 역사하시기를 위해서 또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이 생명의 길로 한 사람이라도 더 나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며 그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생각할 것은 복음은 변화시키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까? 이 복음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생명 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 영원한 생명을 얻어 변화가 된 사람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는 바울 사도입니다. 그는 유대교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은 자기와 나이가 비슷한 다른 유대인들보다 더 열심히 유대교를 믿었습니다. 또한 그 누구보다도 조상들의 전통을 지키는 데 열심이었습니다. 또한 그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박해를 넘어 아주 교회를 없애 버리려고까지 계획하였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스데반을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려고 대제사장에게 가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일 수 있는 권한은 위임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고자 다마스커스로 가기까지 했던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180도 달라집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앞장서던 그가 오히려 예수님을 전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합니까? 바로 복음 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그는 놀랍도록 바뀌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은 변화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으로 말미암은 변화가 단지 죽을 자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자로 바뀌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잡아 죽이려고 덤벼들던 자가 거꾸로 예수를 전하는 자가 되더란 말입니다. 아니 도무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 그래서 화를 내고 외면하던 사람이 거꾸로 그 사람을 찾아가고 그 사람과 화해하고 오히려 사랑으로 다가가게끔 되더란 말입니다. 

누가 자기를 조금만 욕하고 비난해도 조금도 참지 못하고 씩씩대던 사람이 오히려 그것을 참아내고 견디더란 말입니다. 전에는 같이 욕하고 비난했습니다. 그런 놈 죽여 버려야 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난 다음부터는 그런 사람이 오히려 불쌍하게 여겨집니다. 그래서 그 손을 잡아주고만 싶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됩니다. 도무지 고개를 숙일 줄 모르던 사람이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까지 고개를 숙입니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을 짓밟는 것도 아주 우습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다른 사람을 세워주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항상 절망 속에서 몸부림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환경이 바뀐 것은 하나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활기차게 살아갑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캐나다의 존 케디라는 선교사는 식인종이 사는 작은 섬으로 복음을 들고 나갔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돌보고 언어를 습득하여 성경을 번역하고 교육을 시켰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그의 기념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

1848년에 그가 이곳에 처음 상륙하였을 때에는 이곳에 그리스도인이 한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난 1872년에는 여기 식인종이 한명도 없다.” 즉 그는 섬사람 모두를 그리스도인 되게 한 것입니다. 복음은 이렇게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식인종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자를 그의 자녀로 삼으셔서 신분이 바뀌게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은 우리가 원래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어둠이었는데 생명의 빛을 받고 빛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투정과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찼던 사람이 감사하고 노래하며 밝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음이요, 죄의식과 좌절로 누추하게 살던 사람이 자유함과 희망으로 청결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이 복음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정말 험악하고 거친 인생을 살다가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유순하고 아름다운 삶으로 바뀐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아니 그것이 단지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들 자신이 그것을 느끼고 있지를 않습니까? 전에는 마냥 화를 내도 좋았습니다. 당연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으면 내 생각대로 되지를 않으면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렇게 화를 내는 내 자신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매사에 부정적이던 사람이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게 됩니다. 아주 작은 것에도 쉽게 좌절했었는데 지금은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또 다시 일어납니다. 내가 생각해도 어떻게 내가 이럴 수가 있는가 싶습니다. 

꼴도 보기 싫었던 사람이었는데, 같이 앉아 있는 것조차 불편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래서 다른 사람은 다 되도 저 사람만은 안 된다고 외면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 친밀한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고 있는 자 나신을 보면서 놀라지 않습니까? 도무지 생각도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그건 말도 안 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는 일을 내가 하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당연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 스스로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왜요? 내 안에 계신 예수님 그 주님의 능력 복음의 능력이 나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아주 달라졌습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달라져도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게 바로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가운데 이렇게 교회 안에 있어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아니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욕하고 비난하던 분도 계실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그 사람들이 안타까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이 자리에 있게 만들 수 있을까로 고민합니다. 모처럼 하루 쉬는 날 교회에 가서 매달리는 사람을 보면 바보 같이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바보 같이만 생각했던 일을 지금 우리가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게 바로 복음의 능력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감사하십시오. 더 이상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당당하십시오. 복음의 능력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도무지 할 수 없었던 것을 할 수 있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사랑할 수 없었던 사람조차 사랑하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 주님의 능력으로 오늘을 살아가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 전도사가 도자기 공장지대에 사는 한사람을 방문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젊었을 때는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전도사는 그 집에 도착하여 유리 상자 속에 든 두 개의 좋은 꽃병을 보고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야, 참 멋있군요. 아주 귀한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얼마면 파시겠습니까?” 
주인은 고개를 휘저으며 전도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세상 돈을 다 준다 해도 저 두 개의 꽃병은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술주정뱅이에다 노름꾼이었지요. 말하자면 마귀에게 영혼을 맡겨놓고 다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의 권유로 교회의 집회에 참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쓰레기더미에서 흙 한 무더기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쓸 데가 없어서 버린 것이지요. 나는 그걸 집에 가져와 반죽을 하고 모형을 만들어 구워 보았습니다. 결국 저는 쓸모없던 흙으로 두 개의 아름다운 꽃병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가지고 똑같은 일을 하실 수 있을 거야.’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을 하나님의 손에 내맡기고 하나님께서 저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주시길 바랬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그 쓰레기장 흙무덤 같은 나를 아름다운 꽃병으로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었던 쓰레기와 같은 나를 보석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의 능력, 죽을 수밖에 없던 나를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가 되게 하신 그 능력이 바로 복음입니다. 그 능력이 나를 사로잡아 나를 변화시켰습니다. 내 신분이 달라졌습니다. 전에는 진노의 자녀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의 삶도 달라졌습니다. 마치 보기에도 흉측한 애벌레가 번데기로 바뀌고 이윽고는 아름다운 나비가 되듯이 그렇게 달라졌습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내 모습이 정말 내가 맞아 할 때가 있지를 않습니까? 그러한 우리의 삶을 이제 세상에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그래서 그들로 더불어 주 안에서 함께 주께 영광 돌리는 복의 근원이요 통로로서 살아가심으로 그들 모두가 다 함께 나로 인해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는 하나님의 귀한 백성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