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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은혜의 생수를 강 같이 흐르게 합시다 (사 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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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생수를 강 같이 흐르게 합시다 (사 44:1~5)


황금률을 지키자 

     김 장로님은 전원주택을 짓기 위해서 여러 곳을 다니면서 땅을 물색했습니다. 그러다가 정말로 마음에 드는 땅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땅을 소유한 주인은 그 땅의 가치를 잘 알지 못해서 아주 헐값에 그 땅을 내놓았습니다. 그 땅 주인은 부동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김 장로는 그가 제공한 구입가격이 아주 낮은 가격임을 알고 은밀히 자축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이런 좋은 땅을 발견하게 하시고 이렇게 낮은 가격에 살 수 있게 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계약하는 바로 그 전날 주일 예배 시간에 목사님은 황금률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7:12).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이익부터 챙기는 자가 아니라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상대방의 이익을 먼저 챙겨주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 말씀을 받으면서 자기가 사려고 하는 땅을 기억하였습니다. 마음속의 강렬한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는 땅 주인을 만나서 그 땅의 가치를 자세히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땅 주인이 제안한 가격의 세  배를 주고 그 땅을 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일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일도 열심히 돌보아 주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황금률이요 이것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축복의 길입니다. 


믿음은 흐름입니다. 

   좋은 이름은 그 속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좋은 이름 가운데 하나는 JOY선교회입니다. JOY는 제일은 예수님 (Jesus), 제 2는 이웃들 (Others), 그리고 제 3이 당신 (You)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제일로 삼고 이웃을 다음으로 챙기고 그러고 나서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조이의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제일로, 이웃을 제이로, 그리고 자기를 제 3으로 생각할 떼에 진정한 Joy가 온다는 것입니다. Joy는 기쁨, 환희, 행복, 기쁨을 주는 것, 기쁨거리 등을 의미합니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예수님을 제일로 모시고 이웃을 제이로 챙기고 그 다음으로 나를 생각할 때에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행복의 비밀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흐름이라고 말합니다. 믿음은 하나님께 받음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받은 것을 이웃을 향해 흐르게 하여야 믿음이 됩니다. 받기만 하고 흐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주신다는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받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풍성히 채운다는 말씀 속에는 이미 받은 것을 나누어 주고 이웃들에게 흐르게 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아낌없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넘치게 채우시는 하나님의 약속을 계시해 주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우리가 풍성하게 받은 것을 이웃에게, 그리고 세상을 향하여 흐르게 하라는 권면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먼저 본문의 말씀 가운데 1절에서 4절까지의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대저 내가 갈한 장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이 말씀은 어떤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습니까? 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읍시다. “너를 지으며 너를 모태에서 조성하고 너를 도와줄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종 야곱, 나의 택한 여수룬아 두려워 말라.” 하나님은 우리를 모태에서 조성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진품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모태에서 조성하여 하나님의 걸작 품으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돌보시고 지키시고 인도하고 행복의 길로 이끄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3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읍시다. “대저 내가 갈한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리리니.” 갈한 자에게 물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신, 곧 성령님을 우리들의 자손들에게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우리들의 자손들에게 내리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풍성히, 넘치게 하늘의 복으로 채우시겠다고 약속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이 모든 복이 여러분들에게 충만하게, 충만하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 하나님을 우리 편이 되신 하나님, 우리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1,32).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편에 서 계십니다. 우리를 위하십니다. 우리들을 위하여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은사로 아낌없이 내려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에게 그것이 없으면 안 될 것들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기대하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아들과 함께 은사로 주실 것입니다. 
    

믿음은 풍성히 받고 풍성히 주는 것입니다. 

   믿음은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풍성히 받는 것이 믿음입니다. 받음이 없이는 시작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 죄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푸른 초장 잔잔한 시내로 인도받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소생시켜 주십니다. 의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막대기와 지팡이로 우리를 안전하게 지키십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목전에서도 우리에게 상을 베풀어 주시고 우리의 머리를 들어주시고 우리들의 잔을 넘치게 하십니다. 믿음은 받는 것입니다. 받아야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믿음은 전달해야 믿음이 됩니다. 전달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 썩은 믿음이 되어버립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하나님은 우리들을 조성하신 분이시오 선택하신 분이시오 우리들에게 시내를 흐르게 하는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은 우리 후손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시고 우리 후손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을 흐르게 하라는 말씀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우리 후손이 하나님의 신을 받겠습니까? 어떻게 우리 후손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겠습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하나님의 신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전달하지 않으면 우리 후손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받은 것을 끊임없이 이웃들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흐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것을 흐르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들 속에서 썩어버릴 것입니다. 

   여러분, 물이 아무리 저수지에 가득하다고 할지라도 그 물이 흘러서 우리 밭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우리 밭에 있는 곡식은 생명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사람이 저수지를 만드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물을 받아서 저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저수지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 저수지의 물을 흐르게 하여 우리 밭에 물을 공급하여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만일 저수지의 물이 흐를 수 없다면 그 저수지는 의미가 없는 저수지가 되어버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은혜를 충만하게 내리시는 목적은 그 은혜를 강물 같이 흐르게 하여, 이웃과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우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면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16:15)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을 섬기고 충만하게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들이 받은 복을 온 천하에 전달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풍성히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신에 풍성히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조이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행복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여러분 풍성히 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풍성히 나누어 주는 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온 세상에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나누는 삶이 풍성하다. 

   갈릴리에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갈릴리의 중심은 갈릴리 호수입니다. 이 호수는 남북이 14마일 (대략 22.5km), 동서가 9마일 (대략 114.5km)입니다. 헤르몬 산에서 흘러오는 물이 갈릴리 호수에 모여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 물은 호수에 모였다가 남쪽 하구 삼각주에서 요단 평원으로 흘러내려 갑니다. 이 호수는 끊임없이 받아서 끊임없이 흘러 보냅니다. 그래서 이 호수는 생명의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곳을 배를 타고 가면 하얀 갈매기들이 수없이 좇아오면서 장관을 이룹니다. 호수 속에는 많은 생명체가 살아서 약동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여행 중에 새벽시간에 부두에 나갔습니다. 밤새 고기를 잡은 어부들이 들어왔는데 우리들에게 갈릴리에서 잡은 고기 한 마리를 들어서 보여주는데, 머리 위까지 들어 올린 고기의 꼬리가 거의 바닥에 닿아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고기였습니다. 그런 고기 153마리를 잡는다면 배가 꽉 차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거기에서 한 번은 45kg 되는 메기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비늘이 없는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이것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심하다가 포로 떠서 독일 사람에게 팔았다고 합니다. 이 호수는 아름다우며 생명으로 가득합니다. 

   그런데 갈릴리 호수를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로 만든 물이 요단강을 따라서 남쪽에 있는 사해 바다에 이르면, 그 물은 죽음의 물이 되고 맙니다. 사해 바다는 남북으로 80km, 동서로 17km로 갈릴리 바다보다는 몇 배가 크며, 지중해 해수면보다 400m나 낮으며, 바닷물의 염분 함유량 4.5% 보다 7배나 높은 31.5%의 염분을 함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바다입니다. 사해 바다는 요단강 물만 아니라 사방에서 물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 물은 다른 곳으로 흐르지를 못하고 거기에 고여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는 아름다운 생명을 일으키는 물이 사해 바다에만 들어오면 모든 생물을 죽게 만드는 죽음의 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의 법칙입니다. 만물은 받아야만 생존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만물은 나누어 주면서 살게 하셨습니다. 갈릴리 호수는 하나님의 법칙대로 끊임없이 받아서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사해 바다는 끊임없이 받으나 한 방울도 흘러 보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갈릴리 호수는 아름다운 생명의 바다를 만들지만 사해는 죽음의 바다를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사해바다를 생각하면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하신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화 있을 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배나 더 지옥자식이 되게 하는구나!”(마23:15). 아무리 팔팔 튀는 생명도 사해바다에 들어가면 죽어버리듯이 아무리 순수한 사람이라도 바리새인의 모임 속에 들어가 며 두 배나 더한 지옥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흐르지 않는 물속에서는 지옥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당신은 행복합니까? 당신에게 생명이 넘치고 있습니까? 당신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갈릴리 호수 같이 끊임없이 받아서 나누어주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불행합니까? 당신은 죽어가고 있습니까? 당신은 냄새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사해의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받아야 삽니다. 그러나 나누는 삶에 생명의 능력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받으며 나누는 삶속에 하나님의 행복을 숨겨놓았습니다.  
  

허물어진 농부의 꿈 

   젊은 농부는 꿈이 있었습니다. 가족들이 먹을 것 걱정 없이 모두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소박한 꿈이었습니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땅을 샀습니다. 그는 돈이 많지 않아서 황무지를 골랐습니다. 그는 남들보다 열배는 더 땀을 흘리며 노력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꿈을 이루었습니다. 황무지를 개간해 논을 만든 것입니다. 벼를 심고 거름을 주며 정성을 들여 농사를 지었습니다. 가을에는 가족 모두가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의 풍성한 결실을 맺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의 논 바로 아래 있는 이웃의 논에도 풍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논 또한 황무지와 다를 바 없는 황폐한 땅이었습니다. 

   ‘나보다 늦게 개간한 논인데 대풍이 들다니 믿을 수 없군. 그가 물을 자기 논에 대는 것을 한 번도 본적이 없는데 말이야!’ 곰곰이 생각하던 농부는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분명 내 논에 있는 기름진 물이 아래로 흘러 내려간 덕분일거야. 내 노력의 대가가 남에게 그대로 돌아가다니. 이런 밑지는 일은 더 이상 할 수 없어. 난 농부이지 자선가가 아니니까.’ 농부는 자신의 논에 있는 영양가 있는 물이 그 논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 몹시 아까웠습니다. 그는 겨우내 논에서 작업을 하면서 물 한 방울이라도 이웃의 논으로 새나가는 것을 허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농부가 생각한 것처럼 논의 벼들을 쑥쑥 자랐습니다. 하지만 여름도 지나기 전, 농부의 논에 고인 물이 썩기 시작했고 결국 벼들도 볍씨를 하나 맺지 못한 채 모두 죽어갔습니다. 그는 그제야 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고인 물은 썩는다.” 물을 흐르게 하지 않으면 자기부터 썩고 마는 것입니다. 물을 흐르게 하지 않으면 자기부터 썩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농부 이야기 

   또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농부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사람은 언덕바지에 계단식으로 만든 조그만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매일같이 물통에 물을 길어 험한 비탈길을 올라가서 자기 밭에 물을 주었습니다. 물은 수로를 따라 흘러 밭을 적시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농부는 부지런한 농부의 바로 아래편에 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늦으막히 밭에 나가서는 자기 밭 위에 있는 밭의 수로에 구멍을 내어서 아직도 수로에 가득한 물을 자기 밭으로 흐르게 하여서 힘 하나 안들이고 자기 밭에 물을 주었습니다. 

위쪽 밭의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장 화풀이를 못하고 자기 목사님을 찾아가 상황을 설명하고 이런 때에는 도대체 어떻게 하여야 하느냐고 상담했습니다. 목사는 계속 아침마다 물을 길어다 밭에 주기만 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게으른 농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아니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계속해서 땀을 흘리며 물을 날랐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도 게으른 농부는 같은 일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게으른 농부는 계속 얄미운 짓만 하고 있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다시 목사님을 찾아가서 상담했습니다. 이번에는 목사가 한 걸음 더 나가서 내일 아침부터는 물을 길어다가 게으른 농부의 밭에 먼저 물을 주고 그리고 나서 자기 밭에 물을 주라고 했습니다. 부지런한 농부는 할 수 없이 목사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게으른 농부의 밭에 먼저 물을 주고 나서 자기 밭에 물을 주었습니다. 3일 후에 게으른 농부는 처음으로 부지런한 농부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나도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지요?”하고 물었습니다. 여러분, 이웃을 나보다 먼저 생각할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생명의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물 같이 흐르게 합시다. 

    앞서 이야기한 김 장로님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새겨 봅시다. 그는 자기중심으로 무엇이든지 생각하였습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 물질의 문제는 자기를 먼저 챙겨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신앙적인 죄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가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자기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께 제일의 자리를 드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이익이나 자기의 행복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먼저 챙기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보다도 이웃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고 이웃을 기쁘게 하고 상대방의 이익을 먼저 챙기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웃을 자기보다 먼저 생각하였습니다. 자기가 사고자 하는 땅 주인이 제안한 값으로 사는 것이 자기에게는 이익일지 모르나 그 땅의 값어치를 잘 모르는 주인에게는 엄청난 손해입니다. 이웃의 손해를 대가로 자기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은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제안한 가격의 세 배를 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이웃을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자기의 생명을 버리고 사람들의 생명을 얻게 한 것입니다. 사람들의 죄는 자기가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그 죄의 대가를 치르고 희생하면서 사람들에게는 용서와 구원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 자신에게는 결코 십자가가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십자가는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전적으로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의 삶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예수님처럼 나 자신보다 이웃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풍성히 받은 것을 이웃에게 풍성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넘치게, 넘치게 채워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오신 목적은 우리들에게 풍성하게, 풍성하게 채우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예수님께 받은 용서와 구원과 축복을 나누어줄 때입니다. 풍성히 받은 것을 풍성히 나누어줄 때입니다. 하나님께 풍성히 받은 은혜를 강물 같이 흐르게 할 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믿음을 흐르게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을 흐르게 함으로 하늘의 복을 풍성하게 받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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