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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행 13: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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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 (행 13:21~23)


성경에는 수백 명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창세기로부터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쭉 읽으면서 만나게 되는, 많은 성경의 인물들이 있는데, 이 분들은,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다 우리를 감동시키는 영적인 자산을 갖고 있고, 또 우리에게 도전을 줄만한 여러 가지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인물 가운데,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다윗은, 특별히 우리에게 큰 도전을 주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성경을 쭉 읽다가, 오늘 본문을 보게 되면 잠깐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도대체 다윗이 어떤 사람일까?  다윗이 어떤 인물이기에 이처럼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았던 것일까?”  이런 궁금함을, 마음속에 가지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만났습니다.  이 말은 다윗을 이제 처음 만났다는 의미도 있겠습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한참을 다윗을 지켜보신 다음에,   하나님이 다윗을 평가하시는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적인 첫 만남은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다윗이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늘에서 지켜보셨고, 다윗을 쭉 지켜 본 뒤, 그 결과를 두고,  오늘 본문과 같이 다윗을 평가 하셨다.  그렇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말씀하셨는데,  여러분, 이 말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 마음에 꼭 맞는다”  “내 마음에 쏙 든다” 이런 뜻의 말이 아닙니까?  
내 마음에 꼭 든다.  내 마음에 꼭 드는 이 사람을 통해서 내 뜻을 이루어 보겠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가 내 뜻을 이루게 하리라.”   하나님께서 다윗을 쭉 지켜보신 결과, 인정할 만한 믿음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이제 그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시겠다고 하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  할렐루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과 같이, 다윗을 통해 당신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이 세상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은 다윗을 사용하셨다는 것이예요.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 인간 가운데서 이러한 축복의 선언을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이만큼 하나님으로부터 크게 쓰임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다윗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대하면서, 우리의 가슴에   어떠한 도전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받았던 놀라운 축복을, 우리의 머리 속에 먼저 그릴 것이 아니라, 그가 이처럼 우리가 부러워할 만한 축복의 사람이 되어진 까닭이 무엇인가, 그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이러한 것을 생각하면서 우리의 가슴에 도전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도전입니까? “나도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없을까?”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놀라운 일을 행했기에 우리의 마음에 부러운 것   아닙니다.  다윗이 왕위에 오르고 성군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부러워하는 것 아닙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천지 만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오늘도 살아계시고, 영원토록 살아계셔서 영광과 찬양을 받으실 그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다는 것, 이것이 우리에게 큰 부러움으로 다가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도 다윗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좀 될 수가 없을까?” 
이런 소원을,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다윗을 만나게 되면, 반드시 가져 보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겠다고 하면서, 이런 다윗을 바라보며   아무런 느낌과 도전이 없다고 한다면, 그 분의 신앙은 어딘가 문제가 있는 신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목사님이, 이 본문의 말씀을 읽다가 너무나 도전을 받고 부러운   나머지, 갑자기 자신의 영어 이름을, “바울”(Paul)에서 “다윗”(David)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분이어서, 이미 인쇄물마다 “바울”이란 이름으로 표기가 되어져 있었기에, 이름을 바꾼 뒤 한바탕 소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목사님의 변명은 이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향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꼭 합한 자라. 내가 그에게서 내 뜻을 이루게 하리라.”  바로 이 말씀을 읽으면서, 다윗이 너무 부러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도 다윗처럼 될 수 없을까?  이런 생각하다가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는 것이예요.  아무래도 이름을 바꾸면, 내가 다윗처럼 되려고 더 힘껏 노력하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이렇게 변명을 하셨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모두도 이런 마음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도전이 있을 때, 비로서 우리의 신앙도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왜 이 성경이 있습니까?  왜 이런 인물들을 성경에 기록해서 우리로 하여금 읽고 보게 만듭니까?   이런 도전을 받게 하기 위해, 이 분들의 신앙 업적들이 성경에 기록되어진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믿음의 선진들을 바라보면서, 항상 그들을   배우고자 하는, 신앙의 도전 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예요.  그게 성경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실제로 구약의 인물 가운데서도 보면, 성경을 통해 크게 도전을 받고, 결국 그의 인생에 큰 일을 행했던 인물이 있었던 것을 보게 되는데, 역대하에 나오는 요시야라고 하는 왕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평가하실 때, 정직히 행한 왕이라 평가하셨는데, 그가 이런 평가를 하나님 앞에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다윗을 본받기로 어린 나이 때부터 작정을 하고, 정말 다윗과 같은 신앙의 삶을 살아가기를 힘써 노력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하 34 : 2 - 3절 말씀을 보게 되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길로 행하여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오히려 어렸을 때 곧 위에 있은지 팔 년에, 그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구하고” 

왕권을 가지고 백성들을 통치 할 때에, 누구를 모델로 삼았습니까?  
역대 왕들 가운데, 가장 성군이었던 다윗의 행적을 좇아 다스렸다는 겁니다. 
또한 기도할 때도, 보통의 왕들과 같이 평범하게 기도했던 것이 아니라,    다윗과 같이 오직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간구하며, 그 기도에 응답을 받아 놀라운 일을 행하는, 능력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 왕들 중,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던, 위대한 종교개혁을 그가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오늘 우리도 이런 놀라운 삶의 업적들을   남기며,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다윗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려고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요시야와 같이   다윗을 닮아가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우리의 삶에 실제적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생각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신앙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신앙이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의 남은 인생, 정말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생이 되고 싶습니까?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행하는, 능력있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 이제 여러분의 인생에 구체적인 몇 가지 목표를 분명하게 세워 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신앙생활을 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야겠습니까? 
첫째로, 우리는 변화의 목표를 가지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년 간 신앙생활 하면서도, 우리의 삶 가운데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이것만은 내가 분명 고쳐야 될 터인데.   내가 이것 안 고치면 신앙생활을 바로 못할 텐데”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부분들이, 분명히 있을 줄로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생각은 단순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닙니다.  
성령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내가 고치고자 하는 마음 이전에, 하나님이 여러분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나타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감정을 내가 느끼게 되어 내 신앙 양심에 가책을 느끼게 된 것이라는 겁니다.  그것이 내 감정으로 표현되어질 뿐이라는 겁니다. 

그러므로 내 신앙 가운데 이런 것들이 있다면, 그 부분은 반드시 고쳐서 변화 시켜야 나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변화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들을   찾아서 제거하는 것이, 변화인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회개라는 말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말입니다.  실제적인 말입니다. 
여러분에게 꼭 변화를 가져와야 될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 마음에 떠오르는 것들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고치기를, 변화시켜 나가기를 소원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어    드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신앙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교회 안에 보면, 주상복합형과 같은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보게 됩니다.   주상복합형 건물이 무엇입니까?  주택과 상가를 겸할 수 있는 건물을 말하지 않습니까?   교회를 다니면서 예전에 갖고 있던 생각이나 습관을   바꾸지 않으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와 같다는 겁니다.  

신앙과 세상의 사이를 왕래합니다.  하나님도 좋고 세상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일도 행하지만, 세상이 시키는 일도 동시에 합니다. 
교회에서 보면 분명 예수 믿는 사람인데, 세상에서 보면 또 영락없는 세상 사람입니다.  불신자와 다름없습니다.  전혀 예수 믿는 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질 않습니다. 

이런 신앙태도가 우리의 신앙생활에 습관이 되면, 더 이상 고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뭐든지 습관이 되기 전에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연륜을 자랑합니까?  신앙의 연륜도 좋지만, 그 연륜에 맞게 신앙도 변화되어 자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숀 코비(Sean Covey)는 습성을 의인화시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성공으로 밀어 주기도 하고, 실패로 끄집어 내리기도 합니다.  나를 택해 주세요. 나를 길들여 주세요. 엄격하게 나를 대해 주세요. 
그러면 당신의 발 앞에, 세계를 무릎 꿇게 해 주겠습니다.  
나를 너무 쉽게 대하면 당신을 파괴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나는 '습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습성이라는 것을 잘 선택해야 합니다. 
좋은 습성을 선택해서 잘 훈련하고 엄격하게 다루면, 그 좋은 습성 때문에 내가 세계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쁜 습성을 계속해서 받아들여 내 몸에 자리 잡게 만든다면, 결국은 그 습성이 내 자신을 파괴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반드시 변화를 시켜야 합니다.  이것을 그대로 두면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긴 어렵습니다. 
나에게 이러한 잘못된 습성이 있다면, 어떻게 하든 당장 이것을 고쳐야 되겠다고 작심하십시오.  그리고 최소한 1년간은, 최선을 다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숨은 죄도 마찬가지로 변화해야 될 부분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마음의 숨은 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특별히 법에 걸릴 일을 안 한다 할지라도,  마음으로는 그 죄를 뿌리를 뽑지 한 채 끝까지 고집을 피우는 죄가 있습니다.  예수를 30년 간 믿었는데도 뿌리를 뽑지 못하고 질질 끌려 다니는 탐욕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숨은 죄악들 까지도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온 우주에 주가 되신 가장 높으신 그분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변화의 목적을 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바꾸어야 될 것, 고쳐야 될 것을 정해놓고, 실제로 행동에 옮겨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지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태도인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여러분의 신앙에 성장의 목표를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에는 발전해야 될 것들이 많습니다.  좀 더 성숙해야 하고,   믿음의 분량을 크게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자식이 성장하지 않으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근심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그의 자녀로 삼으셨는데, 성장해야 될 부분들이   10년, 20년 그대로 남아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수가 결코 없다는 것입니다. 
엡 4 : 5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예수님을 닮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되기 위해 계속 자라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신앙은 자라고 있습니까?  아직도 자라지 못하셨습니까?  믿음이 10년 전에 비해서 아직도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됩니까? 그렇다면, 자신의 믿음을 성장시키겠다는 소원을 가지고 목표를 세우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은 계속 발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믿습니까? 

그런데 믿음이 자라지 않거나 처음 믿음에 비해 더 뒤쳐진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들겠습니까?   믿음을 키우시길 바랍니다. 
믿음을 키우고 싶다면, 교회 안에 있는 여러 프로그램들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 좋은 형제 자매들이 많이 있습니다.  믿음이 좋지 못한  사람들을 따라 다니지 마십시오.  그러면 나까지도 나중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항상 믿음 좋은 사람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리고 믿음을 키울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시간을 내어 뛰어 드십시오. 그러면 믿음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일에도 계속 성장해야 됩니다. 하나님을 한번 알았다고, 우리가 그것으로 하나님을 다 안 것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알도록 하기 위해, 우리 손에 성경을 들려 주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이세상을 향해 어떤 큰 계획을 갖고 계신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많이 알수록, 성경을 마음에 담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될수록,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자라는 것입니다. 

혹시 “나는 너무 성경에 대해 무식해. 10년 전이나 후나 달라진 것이 없어!” 하는 생각이 들면, 배우고 성장하려고 노력하십시오. 
열심만 내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습니다. 시간이 나지 않아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한다면 테이프를 통해 자습을 해도, 얼마든지 말씀의 실력이 쌓을 수가 있습니다.   바쁘다는 것은, 하나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신앙 인격은 어떻습니까? 믿음은 좋아 보이는데 신앙인격은   자라지 않아 날마다 사고를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진 않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의 신앙인격은 계속 자라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했지만 예수 믿고  10년, 20년이 지나면 예수님을 닮아가는 성숙한 인격이 됩니다. 
그래서 만나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고 덕을 세우고, 가는 곳마다 주변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의 모습을 솔직하게 시인하고 “내 믿음을 키워야 되겠다. 
하나님의 지식을 계속 배워야 되겠다. 내 신앙인격도 키워야 되겠다.” 는   성장 목표를 정해 놓고 노력하면, 오늘 여러분도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와 같은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세 번째로, 여러분의 신앙에 헌신의 목표를 세우시기 바랍니다. 
헌신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매일 신실하게 사는 삶을 말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을 빌리면, “헌신이란, 가장 위대한 도전이요, 매 순간마다 결정해야 할 신실한 삶이다.”  그리고 그는 덧붙여 말합니다.  

“당신이 먹고 마시고 일하는 것이,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 당장 그만 둬야 한다.”  곧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드리고자 하는 신실한 자세가,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종교개혁자 존 칼빈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  우리 자신과 우리 모든 지체를 그분에게  거룩하게 드리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여러분 믿으십니까?
그래서 구원받은 우리는 내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니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우리의 삶 전부는 하나님께 드려져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헌신입니다. 

여인숙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과 같이 허무하게 살다가 가는 인생, 이 인생을 움켜쥐고 있다가 끝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놓으신 것들을 사용하되,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것이 없도록 내 몸, 내 시간, 내 달란트, 내 재물, 내 모든 인생의 전부를 하나님의 손에 드리고 그분 앞에 서야, 비로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런 헌신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한번 잘 판단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내 모든 것이 쓰여지고 있습니까?  드리는 마음가짐이 있으면, 그리고 실제로 드리면      그 사람은 진실로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내가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다면, 헌신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쓰지 않으면, 헌신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다 헛된 일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위한 헌신이 특심이었던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어떡하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을까?  어떡하면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을까?  이러한 것을 늘 염려하며 고민했던   사람이 다윗이었습니다.  

그야말로 40년 동안 왕으로 있으면서 쌓아놓은 보화와 재물, 마지막에는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지을 성전을 위하여, 하나도 남겨놓지 아니하고 다 바치고 갔습니다.  자기 것을 남겨 놓고 가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다는 칭찬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을 위해 얼마만큼  헌신하고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의 신앙에 헌신의 사각지대가 있진 않습니까? 시간은 내어 교회를 위해, 전도를 위해 일하긴 하는데, 막상 헌금 이야기가    나오면 얼굴빛이 싹 사라지는 헌신의 사각지대가 없습니까? 
아니면 헌금은 하는데, 시간만큼은 절대로 내 놓지 않고 철저하게 자신만을 위해 쓰는 사람은 없습니까?  이는 헌신의 사각지대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각지대를 가지고는, 결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은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를 소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신앙에 몇 가지 목표를 반드시 설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신앙에 변화의 목표, 발전의 목표, 성장의 목표, 헌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설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책임 있는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면 오늘 여러분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지면, 하나님이 여러분의 생애를 축복하시고,   부족하지 않도록 채워 주시며, 모든 것이 선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져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우리를 통해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전승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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