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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 (합 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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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박국 선지자의 감사 (합 3:16~19)


오늘은 맥추감사 주일입니다. 감사(thank)의 어원이 생각(think)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깊이 생각할 때 감사할 수 있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 사람은 생각이 깊지 못한 경솔한 사람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삶에 대한 감사”라는 책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나로 하여금 험악한 가운데서 보호해 달라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험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나의 괴로움이 그치게 해달라고 빌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것을 정복하도록 기도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감사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소서.”그러면서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감사의 분량이 행복의 분량이다.”

그렇습니다. 감사한 만큼 행복해집니다. 감사한 만큼 강건합니다. 감사한 만큼 능률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감사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감사한 만큼 살맛나는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가 살고 이는 이 시대를 가리켜 불확실성의 시대, 불신의 시대, 위기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또 한 가지는 감사부재 시대라는 것입니다. 개인의 삶을 살펴보아도 감사보다는 원망과 짜증스러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가정들을 돌아보아도 원망과 불평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감사 부재가 우리들의 심령과 가정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교회의 4대 절기 가운데 하나인 맥추감사 주일을 맞아“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위인전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삼중고(三重苦) 성녀 헬런켈러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생후 19개월 때 열병을 앓은 후 시각장애인에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7세 때부터 가정교사 설리반에게 교육을 받고 1900년에 하버드대 래드클프리 칼리지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계최초로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로서 1904년 우등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 후 그는 미국이 자랑하는 여류작가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역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낸 사람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본받아야할 것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 상황자체에 감사하는 태도입니다. 그는 말하기를“나는 나의 역경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역경 때문에 나 자신, 나의 일, 그리고 나의 하나님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눈과 귀와 혀를 빼앗겼지만 내 영혼을 잃지 않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역경은 하나님의 나팔소리입니다. 그분의 뜻과 음성을 듣고 승리하는 사람으로 감사의 생활을 해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에 대하여 우리에게 귀감이 되는 말씀입니다. 어떤 의미로는 엉뚱한 모습 같기도 합니다. 감사할 조건이라곤 전혀 없는 상황 속에서 감사의 찬송을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중얼거리며 독백하는 것이 아니라, 수금을 타며 악장의 지휘와 훌륭한 악보에 맞춰 감사의 찬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는 어떤 내용의 감사입니까?


1. 환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한 때에 대하여 본문 16절 말씀에 기록하기를“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인하여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내 뼈에 썩이는 것이 들어 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 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활약한 그 당시 국제정세는 강대국이었던 앗수르 제국이 멸망하고 애굽 역시 국운이 기울어지면서 신흥국가인 바벨론 왕국이 강력한 세력으로 국제무대에 등장하고 있었습니다. 큰 문제는 이 바벨론이 유대나라 즉 이스라엘을 노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머지않아 말을 타고 창검을 휘두르며 유대나라를 침략하리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유대나라의 국내사정은 바벨론과 맞서 싸울 만한 힘이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러한 국내외 정세를 보고 있는 하박국 선지자는 뼈가 썩는 것 같은 아픔이 엄습해 왔으며 그의 온 몸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의 찬송을 불렀습니다. 전쟁의 기운이 감도는 어지러운 상황에서 감사의 찬양을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사함은 신앙성숙의 척도입니다. 오랜 세월동안 하나님을 알고 섬겨왔다 할지라도 그의 심령 속에 감사함이 부족하다면 그의 신앙은 성장이 멈췄거나 아니면 병든 신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광야에서 40년간 머물렀습니다. 그들의 입술에는 언제나 원망과 불평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기적을 수없이 체험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시므로 아무 힘없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거대한 홍해가 갈라져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그들은 곡식한포기 채소한포기 심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물이 없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샘물을 나게 하셔서 그 물을 마시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나 원망하기 일쑤였습니다. 원망과 불평을 일삼던 그들은 결국 하나님이 내리신 진노로 모두가 광야에서 멸망했습니다. 

조금 전 말씀드린 헬렌 켈러가 쓴“3일 동안만 볼 수 있다면”이라는 글에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사흘간 볼 수 있다면 첫날에는 나를 가르쳐준 설리반 선생님을 찾아가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겠습니다. 그리고 산으로 가서 아름다운 꽃과 풀과 빛나는 놀을 보고 싶습니다. 

둘째 날에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먼동이 터오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저녁에는 영롱하게 빛나는 하늘의 별을 보겠습니다. 

셋째 날에는 아침 일찍 큰길로 나가 부지런히 출근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표정을 보고 싶습니다. 점심때는 아름다운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쇼윈도의 상품들을 구경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 사흘간 눈을 뜨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싶습니다.”

헬렌켈러의 소망과 감사는 참으로 소박한 것으로 우리들이 매일 누리는 평범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감사해본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들의 심령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무디어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무디어진 심령들에 대하여 디모데후서 3:1-2에 말씀하시기를“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교만하며...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라고 하셨습니다. 감사에 둔감해진 것은 타락한 말세에 물든 증거라는 것입니다. 

시편 50:14-15 말씀에“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의 날이라 할지라도 감사하는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져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반면 원망과 불평을 일삼는다면 그의 기도를 외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서원을 갚는 사람 즉 약속을 지키는 진실한 사람의 기도를 들으시고 환난에서 건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15:1~2,4에 말씀하시기를“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한번 약속한 것은 자기에게 해로울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농부네 가정에 송아지 새끼 두 마리가 태어났습니다. 농부는 너무 기뻐서 아내에게 두 마리를 잘 길러서 그 중 한 마리를 팔아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자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내가 두 마리 중 어떤 것을 하나님께 바치겠느냐고 하자 남편은 그럼 것은 신경 쓸 것 없다고 했습니다. 몇 개월이 지난 후 어느 날 그만 송아지 한 마리가 죽었습니다. 이때 그 농부는 말하기를 “하필이면 주님의 송아지가 죽었어.”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대답하기를 “당신은 어느 것을 주님께 드리겠다는 것을 결정한 일이 없지 않느냐.”했습니다.“아니야, 나는 죽은 송아지 그놈을 주님께 드리기로 했는데 주님의 송아지가 그만 죽었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 농부는 살아있는 송아지가 죽고 죽은 송아지가 살았다면 또 그 죽은 송아지가 주님의 것이라 했겠지요?

하나님 앞에 서원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십니다. 서원을 지키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성도의 기도는 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환난을 이기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성령님으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이지만 원망과 불평은 악한 영들로부터 주어지는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종교 개혁자 루터는“마귀는 만성적인 불평분자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2. 무(無)에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본문 17절에 기록하기를“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라고 하셨습니다. 17절 한 절에 무려 여섯 가지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없다고 고백한 것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 아니라 반드시 있어야 하는 생활필수품들입니다. 
무화과는 과일의 일종입니다. 
포도는 음료수의 주종을 이루는 것입니다. 
감람나무 열매는 기름을 짜는 것입니다. 
밭의 식물은 하루 세끼를 먹어야 하는 식량입니다. 
양은 그 털로 옷을 만듭니다.
소는 밭을 갈고 일하는 수단입니다. 그 외에도 소와 양은 하나님께 제사하는 제물이기도 합니다. 

곧 닥쳐올 전쟁 때문에 성은 파괴되고 농작물은 짓밟히고 가축은 우리를 벗어나 흩어져 버리게 될지라도 하나님을 향한 감사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이 하박국 선지자의 신앙입니다. 의식주 문제 까닭에 신앙이 흔들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상담 전문가인 노만 빈센트 피일 박사 에게 어느 날 50대 초반의 한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그는 사업에 실패하고 실의에 빠져 있을 때 노만 빈센트 피일 박사를 만나 상담을 해보라는 친구의 권유를 받고 피일 박사의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모든 것이 끝장나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제 희망도 없고 다시 시작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깊은 좌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피일 박사는 그에게 “그렇다면 오늘 이 시간에 당신의 귀중한 재산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번 찾아봅시다.”라고 하자 “아무 것도 없는데 무엇을 찾는단 말입니까?”하고 반문을 했습니다. 피일 박사는 그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부인은 게신가요?”하고 묻자 
“결혼 생활 30년에 한 번도 집을 떠난 적이 없이 나를 격려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자녀들은 몇이나 되는지요?”
“예, 셋인데 착하게 자라고 있습니다.”
“친구가 있습니까?”
“예, 좋은 친구 몇이 있습니다.”
“건강은 어떤가요?”
“건강은 좋아서 누워본 적이 없습니다.”
“미국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할일 많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하나님은 믿습니까?”
“예, 믿습니다.”

그들은 서로 대화 중에 찾아낸 것을 재산목록에 적어보았습니다. 
① 훌륭한 부인이 있다.
② 착하게 자라는 자녀들이 있다.
③ 의리 있는 친구들이 있다.
④ 건강이 있다.
⑤ 미국에 할 일이 많다.
⑥ 살아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피일박사는 이 중년 신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것과 여기에 기록된 재산 중 어느 것이 더 크다고 생각하십니까?”그는 부끄러운 듯 빙그레 웃었습니다. “당신에게는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큰 보화는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용기를 내십시오.”그는 자신에 찬 발걸음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는 대 성공자가 되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바클레이는“우리가 만일 태양을 향해 선다면 어두운 그림자는 우리 뒤에 있을 것이고 만일 우리가 태양을 등진다면 모든 그림자는 우리 앞에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능력의 주님을 바라볼 때 소망과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빛 되신 사랑의 주님을 바라볼 때 소망과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위로의 주 성령님을 바라볼 때 소망과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다. 빛의 주님을 바라볼 때 어두운 근심과 걱정의 그림자는 뒤로 물러가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없을지라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숙한 성도의 모습니다. 


3.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둔 감사입니다. 

본문 18-19절에“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하박국 선지자가 감사하며 찬양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나의 구원의 하나님, 둘째,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말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국난의 현실을 바라볼 때에는 안타깝기 그지없지만“나의 구원의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때에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의 공포로 온몸이 떨리는 지경이라 할지라도 구원자 하나님을 바라보니 감사와 찬양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국가적 환란가운데에도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은 환난이 지난 후 하나님이 예비하신 회복의 좋은날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3:19에 말하기를“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고 했습니다. 폭풍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폭풍 뒤의 맑은 날을 바라본 것입니다. 해일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해일 뒤에 있을 바다의 새 생명을 바라본 것입니다. 

몇 년 전 IMF사태가 왔을 때 유달영 박사는 이런 글을 기고했습니다. “광복 후 뜨거운 교육열이 계속이어 졌으며, 해외로 뻗는 기상은 조국을 세계경제 10위권 문턱에 올려놓았습니다. 구름 만난용처럼 국력이 끝 간 줄 모르게 뻗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뿔싸, 그것이 화근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소돔 고모라가 따로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기고만장하고 사회는 부패일로로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이 훤히 보였습니다. 마침내 IMF 사태가 왔을 때 저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이제 살았구나!’ 이는 하늘이 주신 축복의 메시지다!’라고 말입니다. 

지금 사람들은 너나없이 하루빨리 외채를 갚고 재도약 하자고 서두르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회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되면 또다시 이 사회는 부패하고 그리고 더 부패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잠시 멈춰 서서 진정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 다시한번 깊이 생각 해야 할 때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유달영 박사는 IMF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나라의 혼란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 이 어려움 후에 있을 탄탄한 국가 경쟁력을 내어다본 높은 식견입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감사가 곧 이러한 의미입니다. 죄와 타락을 회개한 후에 다시 고치실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날 낙심하거나 후회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면서 잘못된 것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사야 40:31에 말씀하시기를“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시편 23:4에 말씀하시기를“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4:8~9에 말씀하시기를“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하나님의 자녀는 환난에 의해 망할 사람이 아닙니다. 잘못된 것 고침 받은 후 하나님의 힘에 의해 구원될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승리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힘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나의 구원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좋으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하박국 선지자처럼 믿음 안에서 감사하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환난 날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자자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에서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구원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심령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또한 이러한 심령을 사랑하셔서 풍성한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신앙이 우리 모두의 신앙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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