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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의 신앙 수준을 높여라! (단 6: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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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신앙 수준을 높여라! (단 6:4~10)

 
오늘 주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삶의 비밀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인도와 약속을 믿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삶의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을 믿으십시오.  성경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저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을 믿고 여기까지 왔고 또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주의 이름으로 권면합니다.  결코 졸자들의 평가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결코 인생의 잡다한 일에 흔들리지 마십시오.  삶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앞에서 마치 풍랑을 만난 난파선처럼 이리 흔들리고 저리 흔들리는 나약한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런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입니다.

갈대처럼 흔들리기 쉬운 영혼을 향해 다윗은 시편 31편 24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이 말씀은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사람들은 마음을 굳게 하고 힘을 내라는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모든 소망이 오직 여호와께만 있음을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여호와께만 당신의 모든 소망을 두십시오.  아침의 안개처럼 있다가 없어지는 세상의 것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백전백패할 것입니다.  수시로 넘어지고 또 넘어질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섰다가 점심때에 넘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약속을 따라서 강하고 담대하게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꿈을 꾸며 물댄 동산 같은 삶의 기쁨을 찾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생활에서 평안과 기쁨을 빼앗아 가는 모든 방해물을 없애버려야 합니다.  이 시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선포하십시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내 마음에 꽈리처럼 틀어 앉아 있는 낙심과 불안의 영은 떠나가라!
주 예수의 이름으로 명한다. 
내 가정의 평안과 기쁨을 빼앗아 가는 어둠의 영들은 천리길로 떠나갈지어다!"

믿음이 무엇일까?  믿음이란 하나님의 인도를 찾고 기다리는 가장 순수한 생명의 작업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어떤 생명, 어떤 환경도 하나님의 개입만 일어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험난한 인생 길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멋있고 큰 축복된 일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신다, 내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이 누리를 수 있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그러나 목사의 눈에 비쳐진 안타까움은 신앙을 가졌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하나님의 뜻대로 인도하심 받기를 정직하게 열망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삶에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보다는 눈에 보이는 사람의 손길을 더 열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열망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성과 판단으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몸부림을 칩니다.  그러다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절망하고 낙심합니다.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명백한 사실은 하나님의 인도만을 정직하게 받겠다고 열망하는 사람은 지금도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자신의 이성과 경험과 판단을 다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인도만을 받겠다는 거룩한 열망을 품으십시오.
 
아브라함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인도만을 기다리며 가는 길, 그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그 길이 축복의 길입니다.  성경에 보면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걸음까지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시 37:23)  하나님은 그 마음에 드는 자를 일평생 인도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힘든 시대에 이사야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1)

보십시오.  이 비밀을!  만일 사람이 하나님의 인도 안에만 있다고 하면 어떤 패배도, 실패도 최종적일 수가 없습니다.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신다는 이 비밀을 알고 있다면, 나는 물이 항상 흐르는 동산이요 물이 끊어지지 않는 샘 줄기 같은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나오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가 이 고백을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연약한 생명입니다.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고 무기력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를 내가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것이 결국 인생의 축복입니다.  우리가 여기에 눈을 뜨지 못하면 결코 신앙생활에 성장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요셉도, 모세도, 아브라함도 다 결국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 역사를 이룬 평범한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이 시간부터 하나님의 인도를 사모하고 열망하십시오.
 
그러나 제가 종종하는 말이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인도는 언제나 냉정하고 조건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의 길을 인도하시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에 합한 자의 갈 길을 인도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무조건 누구나 인도해 주지는 않으십니다.  우리가 걷는 그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일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의 발걸음을 지켜주시고 인도해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잘 믿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신앙생활을 똑 바로 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도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의 감화와 감동을 따르는 자를 인도하십니다.  소망의 기도를 따라 인도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결국 하나님은 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그 성품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그 재물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의 모든 태도에서 그 생각과 믿음에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십시오.
"주여, 나를 다시 고쳐서 쓰시옵소서.  나의 갈 길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다니엘서 5장이 끝나고 오늘 본문 다니엘 6장을 시작하기 전에 짤막한 두절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5장 30절과 31절입니다.  거기에는 한 제국이 몰락하고 또 다른 제국이 등장하는 커다란 변화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속에 역사도 변했고 정치 지도자도 변했고 체제도 변했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는 놀라운 사실을 선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역사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본문의 한 주인공이 6장이 시작되면서 계속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니엘입니다.  이제는 어린 다니엘이 아닙니다.  시대도 변했고 상황도 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나이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은 그 신앙, 그 정신, 그 진실함 삶에 있어서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아름다운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다니엘서 6장은 다니엘이 직면한 위기로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왕이 다니엘을 최고 총리로 삼고자 했습니다.
먼저, 그의 성공이 위기가 되었습니다.  언제나 사탄은 우리가 잘되는 꼴을 못 봅니다.  그래서 방해작전을 펼칩니다.
둘째로. 그는 진실한 사람이었고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만사형통해야 할 터인데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자굴 속에 던져집니다.  잘 믿어 보겠다는 것이 오히려 시험거리가 됩니다.
 
그러나 흥미진진했던 다니엘서 6장의 결론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 앞에 굶주린 사자도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 그를 모함했던 원수들을 사자가 찢어 삼켰고 뼈까지 부셔뜨렸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니엘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하나님께서 그를 그토록 아름답게 사용하셨더라는 말입니까?

본문 3절에 보면, 다니엘은 그 마음이 민첩하였다고 했습니다.  다른 번역서에 보면 "그 마음에 놀라운 영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4장 9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입을 통하여 다니엘을 향한 고백이 나옵니다.  "네 안에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구나."  5장 11절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 예수 정신으로 충만했던 사람, 성령의 감화 감동이 넘쳤던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4절에 보면 다니엘은 아무 틈이 없었다.  아무 허물이 없었다.  아무 그릇함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주경가들은 다니엘을 일컬어 삼무의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자신의 생명보다 기도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었습니다.  죽을 줄 알고도 그 무엇이나 그 누구와도 타협하지 아니하고 기도했습니다.  마음속으로만 기도해도 될 터인데 그는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창문에 이불을 드리우고 숨어서 기도해도 될 터인데 그는 창문을 열고 전에 행하던 그대로 큰소리로 기도했습니다.  나는 성전을 사모하다가 죽어도 좋다는 신앙이었습니다.  전에 행하던 대로 기도했다.  경건의 습관을 허물지 아니했습니다.
 
세월이 바뀌어도, 환경이 변해도, 생명의 위협을 받아도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던 한 가지 가치가 있었습니다.  나는 내 주님과 가지는 아름다운 교제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다.  체질화된 기도의 사람, 체질화된 감사의 사람이 바로 다니엘이었습니다.  나는 밤이나 낮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젊어서나 늙어서나 나의 신앙과 기도의 행복, 나의 경건을 잃지 않겠다는 선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니엘이 그토록 절박했던 상황 속에서, 생에 최고의 위기 상황 속에서 무엇을 기도했습니까?  목숨을 구걸하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고향으로 보내달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차원 높은 기도, 차원 높은 감사, 차원 높은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상반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후반기를 향하여 멋진 출발하는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것이 "당신의 신앙 수준을 높여라!"는 말씀입니다.

일본의 유명한 신학자 우찌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를 저주하신다면 질병이나 실패나 죽음으로 우리를 저주하지 아니하실 것이다.  한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는 막힌 귀로, 한정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도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많은 은혜를 덧입고 살아가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메마른 심령으로 그들을 저주할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독교는 감사의 종교입니다.  어느 것이 진짜 신앙이냐?  어떤 신앙이 보다 차원 높은 신앙이냐?  여러분에게 감사의 열매가 얼마나 풍성합니까? 여러분의 감사의 차원이 얼마나 높은 데에 있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간절한 기원은 있으나 감사가 없고, 축복은 바라지만 나눔이 없는 신앙은 샤머니즘입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노래는 불리워질 때까지 노래가 아니며, 종은 울릴 때까지 종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며, 사랑은 표현될 때까지 사랑이 아니며, 축복은 감사할 때까지 진정한 축복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에서는 물질적인 여유로움을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을 때에 작은 것이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누며 살아갈 수 있을 때에 그것을 일컬어 축복이라고 이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감사하는 생활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감사가 힘든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감사의 조건을 잘못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차원을 다른 곳에서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하라고 할 때 우리는 종종 '무엇 무엇 때문에' 감사하는 조건적인 감사만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1차원적인 감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받았기 때문에 감사하고, 사업이 잘되었기 때문에 감사하고, 건강을 회복했기 때문에 감사하고, 자녀들이 성공하고 만사가 순조롭게 풀렸기 때문에 감사한다면 그것은 이유가 있는 감사입니다.  1차원적인 감사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의 비극은 이 당연한 감사조차도 잊어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불행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가 열심히 기도를 해도 자기에게 특별한 응답이 없어서 몹시 실망하고 있던 어느 날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천사의 손에 이끌려서 하늘 보화창고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한 창고에 도착했습니다.  창고가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천사에게 물었습니다.
"이 창고는 어떤 창고입니까?"
"간구 창고입니다.  세상에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울며 매달려서 이것 주십시오.  저것 주십시오.  애원할 때마다, 간구하고 기도할 때마다 이 보화 창고를 열고 다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래서 빈 창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옆 창고로 인도해 가는데 보니까 더 큰 창고가 있었는데 보화가 하늘 천정까지 가득히 쌓여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창고는 무슨 창고입니까?"
천사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감사창고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작은 은혜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크게 나누어주려고, 낮게 감사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은혜를 나누어주려고 쌓아 두었던 보물창고입니다.  그런데 성도들이 하도 감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보물이 쌓여져 있습니다"

깜짝 놀란 이 성도는 다시 성전에 엎드려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헤아려 보기 시작했습니다.  일마다 때마다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손길을 느껴가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눈물 흘리며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신령한 은혜가 넘치게 되었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은혜 받기를 원하십니까?  축복을 원하십니까?  하늘에 보화가 쌓이기를 원하십니까?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 무엇 때문에 하는 감사라고 한다면 위험이 따릅니다.  만약 그 무엇 무엇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면 결국 원망과 불평으로 바뀌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사가 주어진 조건 때문에만 감사한다면 그것은 초보적인 감사의 단계에 불과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상대적인 감사란 언제나 상대적으로 불평하고 원망할 수 있겠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보고 감사했다면 사람을 보고 실망하게 됩니다.  있다고 감사했으면 없다고 원망하게 될 것입니다.  병 나았다고 감사했으면 다시 아프면 원망할 것입니다.  사업이 잘 되었다고 감사하면 그 사업에 실패했을 때 누군가를 원망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차원 높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감사를 배워야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감사를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분명한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신령한 감사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을 좀더 깊이 있게 살펴보십시다.  유다 족속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젊은이들 가운데 다니엘이라는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다른 젊은이들은 원망했습니다.  불평했습니다.  좌절했습니다.  낙담했습니다.  고국을 그리워하며 울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으로 하루 하루 살았습니다.  지혜와 총명이 넘쳤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끌려 왔으면서도 관리로 등용이 됩니다.  진실하게 나라를 섬겼습니다.  이웃을 섬겼습니다.  점점 높아져서 총리가 되었습니다.
 
다리오 임금은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하여 120명의 방백을 두었고 또 그들을 다스리는 세 명의 총리를 두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청년들은 걸핏하면 사치했고 방종했고 방만했습니다.  높은 자리에 올려놓으면 부정과 부패를 일삼았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깨끗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다니엘을 총리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여서 온 나라를 다스리게 하려는 참이었습니다.

다른 방백들이 다니엘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모함했습니다.  다니엘의 허물을 찾기 위해서 안간힘을 해 보았지만 그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완벽한 인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그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꾀를 내었습니다.  임금님을 찾아갔습니다.
"임금이여, 앞으로 우리에게 임금님에 대한 충성에 군기를 세우기 위해서 앞으로 30일 동안 이 나라 어떤 관리든지 백성이든지 임금 외에 그 누구에게 절하든지, 기도하든지 하면 사자굴 속에 집어넣기로 합시다."
이것이 임금을 향한 충성이라 여겨져서 어인을 찍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은 이 조서가 무엇이고 누구 때문이며 자기가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전과 같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목숨 건 기도를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가 드린 기도의 내용은 원수에 대한 원망이나 압박 받는 민족으로서의 자학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였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봉독한 내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다니엘은 억울한 모함을 받고서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죽을 줄 뻔히 알고도 하나님 앞에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자기 운명이 얼마나 비참해 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자굴 속에 들어가서 처참한 사자의 밥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절대적인 감사입니다.  '있다, 없다'의 문제가 아닙니다.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생사의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과 조건을 초월한 절대적인 감사였습니다.  신령한 감사였습니다.  감사의 차원이 다릅니다.  이 감사는 잃어버린 것을 슬퍼하는 세상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아직도 내게 있는 것,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다 내 곁을 떠나간다 할지라도 영원히 내게 있는 진리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울며 감사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니엘의 기도는 바로 이런 기도였습니다.  의롭게 살아가다 당하는 고난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의롭게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가난하게 살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따라 살기를 원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고통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를 향한 음모를 퇴치할 만한 힘이나 대책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역사의 흥망성쇠의 열쇠를 움켜쥐시는 분은 전능하신 내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나는 그분의 자녀가 되었다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감사할 수 있다.  이것이 다니엘의 감사였습니다.  감사는 환난의 사자의 입을 봉했습니다.  고통의 사자굴로부터 자유함을 허락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있어서 환난의 사자의 입이 무엇입니까?
감사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환난의 사자의 입으로부터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이 구원받기를 축복합니다.
사자굴 속에 빠져 신음하고 있습니까?
감사를 회복함으로 말미암아 거기로부터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노래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논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떼가 없으며 외양간 소가 없을찌라도 난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난 여호와로 인하여 감사하리로다."

여기에 보면, 여섯 가지가 없다고 이야기하는데 이 여섯 가지는 필수적인 것들이었습니다.  무화과는 양식이요, 포도는 음료수입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이요, 밭의 식물은 식량이요, 양털은 옷입니다.  소는 밭을 가는 일의 수단이요, 양은 제사의 제물이었습니다.  의식주 문제가 막막하다 할지라도 나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정치 현실을 바라보면 암담하다 할지라도, 경제에 미래가 없다 할지라도, 사업이 캄캄하게 내 앞을 가로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종교가 타락해서 썩어다 할지라도 전능한 하나님이 내 곁에 살아 계신다고 하면 나는 그분으로 인하여 감사하며 살아가겠습니다.  이것이 차원 높은 감사입니다.

빌립보 감옥에 실라와 바울이 갇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 때문에 매를 맞았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손발은 쇠고랑이 채워졌습니다.  얼마나 맞았던지 상처가 터져서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 깊은 밤에 하나님 앞에 나와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감사하기 시작했습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사이에 쇠고랑이 끊어졌습니다.  옥문이 열려졌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우리는 왜 이토록 불만과 불평이 많습니까?  하박국 선지자나 바울과 실라에 비하면 토굴대신 따뜻한 아랫목이 있습니다.  그래도 쌀독에 한 되박 이상의 쌀이 남아 있습니다.  깨끗하게 빨면 깨끗하게 입을만한 옷가지가 걸려있습니다.  그런데 왜 자족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까?
 
우리의 발은 착고에 매이는 대신 멋진 구두를 신고 자유로운 발걸음으로 거리를 거닐며 땅을 밟고 하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습니다.  지금은 내 앞에 구름이 가로놓여 있지만 구름 저 건너편에는 나를 기다리는 미소가 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당신의 채무자로 만들지 마십시오.  가만히 보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자신의 신앙과 연관시켜서 거기에 올인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신앙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슨 빚을 지셨습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당신에게 무슨 잘못을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독생자를 주셨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주셨다는 말입니다.  나 한 사람을 사랑하시려고 자신의 전부를 포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아까워서 아니주시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2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표준새번역에서는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신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전부를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무엇을 받았는지를 안다면 그분께 이럴 수는 없습니다.  솔직히 당신은 예수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하셨습니까?  진심으로 그분께 감사하기는 했었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결코 하나님을 흥정의 대상으로 세우지 마십시오.  헌신의 자리에서, 사명의 자리에서 묵묵히 인내하는 자세를 훈련하십시오.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서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조급하지 말고 기다리십시오.  하박국처럼 초가삼간을 다 잃어버려도, 바울과 실라처럼 억울한 누명을 쓰고 모질게 핍박을 받아도 내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서 충성된 자로 최선을 다하십시오.

다니엘, 그는 시대의 흐름을 역류하여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 떨고 있어야 될 그 시간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울고 있어야 될 그 시간에 전능하신 하나님과 아름다운 교제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그는 세상의 도전을 회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으로 당당히 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썩어 가는 세상 속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의 길을 다 피하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 때문에 받고 얻고 누렸던 분복만 가지고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의 길을 다 버리고 하늘의 면류관을 쓸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 좋은 것들만 감사하다가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의 옥중 고백시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주님 위하여 오는 고난을 내가 다 피하다가 이 다음에 내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오리까?  주님 위하여 당하는 수옥을 내가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내 이름과 평안과 즐거움을 다 받아 누리고 고난의 잔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주님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이제 다 피하였다가 이 다음에 주님이 너는 내가 준 유일한 유산인 고난의 십자가 어찌하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나는 무슨 말로 대답하오리까?  눈물 없이 못 가는 길, 피 없이 못 가는 길, 골고다의 길, 영문 밖의 길, 주님 가신 길 내 따르오리다."

♬"서쪽하늘 붉은노을 영문밖에 비치누나
연약하온 두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는 가시관 몸에는 붉은옷
힘없이 걸어가신 영문밖의 길이라네.
눈물없이 못가는길 피없이 못가는길
영문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무슨 말로 대답하시렵니까?
대답이 준비되셨습니까?
이제 당신의 신앙 수준을 높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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