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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라 (단 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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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라 (단 3:8~30)


1. 포드 자동차회사를 설립한 헨리 포드는 평생 다음과 같은 좌우명을 가지고 살았다고 합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든 그것은 당신 마음에 달려 있다.” (황형택, 들어가 그 땅을 밟으라, p.77)

우리는 마음 먹은대로 살고 있습니다.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음을 먹은 사람은 오늘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오셨을 것입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인생을 이끌어가게 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순도 100%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물질중심적 가치관, 
어떻게 해서든 성공하면 된다는 출세지상주의적 가치관,
속이야 어떻든 외모만 아름다우면 된다는 외모지향적 가치관,
이런 세속적 가치들이 홍수처럼 우리를 쓸어가고 있는 현실입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시뻘건 홍수물이 엄청난 힘으로 흘러가고 있어도, 작은 물고기는 좀 더 깨끗한 물을 마시고자 위로, 위로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힘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를 찾아 세상을 거슬러 사는 것, 이것이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2.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은 금으로 큰 신상을 만들었습니다. 높이가 30m, 폭이 3m나 됩니다. 아파트 10층 정도의 높이니까 얼마나 큰지 상상이 되시겠지요? 왕은 신상 낙성예식을 거행하려고 바벨론의 고위공직자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악기를 불 때에 모두 그 신상 앞에서 절을 해야 합니다. 만약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왕의 엄명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바벨론에서 그래도 성공했습니다. 바벨론의 도를 다스리는 높은 자리에 앉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바벨론 사람들 중에 그들을 시기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다니엘의 세 친구가 왕이 세운 금신상에 절하지 않은 것을 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왕은 분노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끌어오게 했습니다. 

여러분, 느부갓네살왕은 다니엘을 통하여 하나님이 참 신이신 것을 이미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하나님을 섬기도록 허락해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왕은 바벨론 사람들이 섬기는 벨 신의 금신상에도 절하기를 요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벨 신도 섬기라는 것입니다. 

14-15절 “느부갓세살이 그들에게 물어 가로되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너희가 내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내가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니 짐짓 그리하였느냐? 이제라도 너희가 예비하였다가 언제든지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듣거든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어떤 신이겠느냐?”

느부갓네살은 적당히 타협하자고 제안합니다. 이전에 절 안 한 것은 지나간 일이니 놔두고, 이제부터 절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냥 풀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느부갓네살의 타협안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16-17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왕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세 친구가 타협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신상에게 절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상을 섬기느냐의 문제였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타협보다는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3. 왕은 화가 났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었는데도 거부하였기 때문입니다. 용광로의 온도를 평상시보다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묶어서 던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불이 얼마나 뜨거웠든지 그들을 붙든 사람이 가까이 갔다가 타 죽었을 정도였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꼼짝 못하고 뜨거운 용광로에 던져졌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고난이 닥치지 말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앙생활 잘 하는 분들에게는 고난이 피해가도록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잘 믿으면, 아무 문제도 없고 복만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신학이요 잘못된 신앙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닥칩니다. 
오직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하니 죽음에 직면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24-25절 “때에 느부갓네살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 때문에 죽음에 던져진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
하나님은 그들을 그냥 죽음에 내버려두시지 않았습니다. 
천사를 보내어 그들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세 친구를 불에서 나오게 하였는데,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고, 옷 색깔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고 합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말씀 때문에 고난당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고난에 함께 계십니다. 
그 고난에서 보호하여 주십니다. 구원하여 주십니다. 

여기 중요한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고난을 피하게 하지 않고 고난에 직면하게 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한 것 때문에 고난에 던져졌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하여주십니다. 
30절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이니라.”
고난을 이겨낸 성도는 더 큰 축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에릭 리들은 1924년 제 8회 파리 올림픽 경기의 영국 육상 대표선수였습니다. 
100m 예선 경기가 주일 오후 3시와 5시에 잡혔습니다. 
그는 그 일정표를 보자마자 "저는 주일에는 안뜁니다." 라고 단호한 결정을 알렸습니다. 
이런 결정은 주일 성수를 위한 자기희생적 결단이었으며, 주일은 주님의 날이므로 주님을 위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앙의 표현이었습니다. 에릭 리들의 100m 출전 포기 소식을 들은 영국 국민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그를 가리켜 "편협하고 옹졸한 신앙인", "신앙심 깊은 척 하는 위선자", "조국의 명예를 버린 위선자" 라고 비난하였습니다. 

그 날, 에릭 리들은 평소처럼 주일을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온전히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자신의 주종목인 100m를 놓친 에릭 리들은 주종목이 아닌 200m에서 동메달을 땄고, 400m 에서는 세계신기록까지 세우면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주종목이 아닌 400m에서 어떻게 우승하게 되었는지 그 비결을 묻는 기자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처음 200m 는 제 힘으로 최선을 다했고, 나머지 200m 는 주님의 도우심으로 빨리 달릴 수 있었습니다." 

주일을 지키면 일시적으로 손해볼른 지 모릅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른지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말씀대로 사는 자는 일시적으로 고난이 오지만, 반드시 축복받습니다. 받은 고난을 상쇄하고도 남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차원을 좀 더 높입시다. 
‘나는 주일에는 일하지 않겠다. 주일에는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 주일은 주님을 위하여 일하는 날이니까,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위해 살 것이다.’ 
아무리 힘들지라도, 이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릴 게 무엇인지 알아내라.”(생각의 탄생, p.121)

여러분, 복잡한 세상이지만, 단순하게 사십시오. 
복잡한 현상에 집중하지 마시고,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그러면, 쓸데 없는 것들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깁니다. 
그럴 때, 비로소 신앙의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4.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고난을 이겨내게 도우십니다. 그리고, 고난을 극복한 후, 더 큰 축복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순교한 성도들도 많습니다. 18절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에서 건져내주시지 않으실지라도, 우리가 고난 속에서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할지라도, 고난을 당하여 목숨을 잃게 될지라도. 
우리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것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신앙고백입니까? 
죽음조차도 나의 신앙의 순수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1941년 독일 나치 치하 때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수백만명의 유태인과 정치범들이 잡혀 강제노동을 당하다가 가스실에서 죽어갔던 죽음의 수용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수용소 14호 감방에 수감된 포로 한 명이 탈출을 하였습니다. 이 수용소에는 포로 한 명이 탈출하면 그 감방의 동료 10명을 굶겨 죽이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제 14호 감방에 있는 10명이 죽어야 했습니다. 포로수용소장은 14호 감방의 포로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굶겨죽일 10명을 지적합니다.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는 포로들 앞에서 지옥에서 온 사자같이“너, 너, 너...” 손가락으로 지적합니다. 그 때, 지적당한 운 나쁘게 지명된 한 포로가 몸부림을 치며 “나는 죽을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는 처자식이 있습니다. 처자식들을 어쩌란 말입니까?’하며 절규했습니다. 그는 폴란드 독립군 소속 가죠프니체크 중사였습니다. 그 때, 포로 중 한 사람이 나섰습니다. 

“내가 저 사람 대신 죽겠소. 나는 처자식도 없는 신부요. 허락해주시오.” 

폴란드인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였습니다. 가죠프니체크 중사와는 전혀 안면이 없는 콜베 신부가 대신 죽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피도 눈물도 없던 포로수용소장 프리츠는 이를 허락합니다. 콜베 신부는 다른 9명의 아사감방에 갇혔습니다. 신부는 죽음을 코 앞에 둔 아홉명을 위로하며, 기도해주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찬송을 불러주었습니다. 감방이 천국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면서 한 명씩 죽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수천 번 다짐했기에, 처자식을 둔 저 불쌍한 사람보다는 내가 죽어야지. 이게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야.’ 
콜베 신부는 단순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 수 있다는 순수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주님께서 살아계십니다.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그렇게 살 수 있어. 너도 나처럼 살 수 있어.”
순수한 신앙, 단순한 신앙, 이 신앙으로 복잡하고 힘든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히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역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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