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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때 (막 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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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으려고 해도 안 믿어질 때 (막 9:17∼24)

 성도들에게 믿음이란 굉장한 수수께끼입니다. 어떤 때는 확실하게 믿어지고 또 다른 때는 의심의 파도에 휩쓸려 심한 마음의 갈등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믿음의 갈등은 모든 사람들이 체험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염려, 근심, 고통이 다가올 때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주님께 기도할 때 응답 받은 것 같기도 하고 응답 안받은 것 같기도 하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 같기도 하고 안 도와주실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한 가운데 마음에 갈등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려고 할 때 어떻게 해야 될까요?

 1. 염려 근심이 소용없는 것을 깨달으라 

 안믿어진다고 해서 염려 근심을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는데 문제가 해결 안되니 염려 근심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마음속에 깊이 깨달아야 됩니다. 걱정한다고 키를 한자나 더 크게 할 수도 없고 내가 염려 근심 한다고 흰머리를 검게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합니다. 또 마태복음 5장 36절에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염려 근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염려 근심하므로 우리 자신이 더 파괴될 따름입니다. 염려한다고 조금도 영향력이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염려하면 병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마음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염려 근심은 엄청난 질병과 고통과 연약을 가져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7장 10절에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한 것입니다. 근심하면 영육간에 사망이 다가옵니다. 염려, 근심하면 사망이 다가오고 뼈가 마르고 살이 녹는 고통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염려 근심은 절대로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내어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기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염려 근심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염려 근심이 다가올 때 주님께 맡겨야 되는 것입니다.

 일석 이희성 선생의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그의 90평생의 삶을 기록한 것으로 이 책을 보면 그가 자손들에게 입버릇처럼 강조한 삶의 유산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해도 소용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걱정도 팔자라고 말하면서 아무리 걱정해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근심의 멍에를 걸머지고 사는데 이를 다 벗어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너희는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오늘 근심은 그날에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염려 근심을 예수께 와서 맡겨야 될 일은 억지로라도 믿어보는게 좋습니다. 걱정해도 해결이 안되고 염려해도 해결이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걸머질 수도 없으니 ‘주님께 맡겨 버리자! 살려주면 살고 죽으면 죽으리다’라고 완전히 마음에 결단을 내리고 주님께 내어 맡겨 버려야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맡기면 돌보아 주겠다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약속의 말씀 위에 염려 근심을 내어 맡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염려와 근심을 간절히 주님께 고하면 마음에 평안이 와서 마음의 생각과 모든 심사를 지켜 주겠다는 것입니다. 평안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반드시 맡아 준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맡기는지 안맡기는지를 주님이 살피시기 때문에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께 진정으로 맡기면 주님께서 맡아주시고 그 대신 평안으로 우리 마음속을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믿는 사람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말로 다할 수가 없습니다.

 존 월턴이라는 사람은 되는대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어느 것 하나 오랫동안 집중하는 법이 없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방랑생활을 하고 거지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우연히 교회에 나가 설교를 듣다가 큰 감동을 받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6절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는 말씀 듣고 그는 크게 감동했습니다.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으면 뽕나무더러 뽑혀 바다에 던지라고 하면 그대로 되는데 나는 못한다. 안된다. 할 수 없다고 할 필요가 없구나’ 그래서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겨자씨 한알을 구했습니다. 그것을 조그마한 유리병에 넣어서 가슴에 품었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침에 일어나서 겨자씨를 보고 “이만한 믿음이야 내게 있지 않느냐” 저녁에도 자기 전에 그것을 내어 보고서 “겨자씨 만한 믿음이야 내게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고 난 다음에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고 한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믿음이 없다해도 이 겨자씨 만한 믿음은 있지 않느냐. 그러니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라고 말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 여러가지 시련과 환난이 다가올 때마다 그 병을 내놓고 들여다 보고 ‘이만한 믿음이 있으니까 이 환난도 지나간다. 이 문제도 해결된다. 믿습니다’라며 오뚝이처럼 일어나곤 했습니다. 나중에 크게 성공해서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영국 여왕의 작위까지 얻었습니다. 

그리고 71세에 은퇴하면서 그가 말하기를 “내가 오늘 이렇게 된 것은 어려울 때마다 겨자씨를 보고 나는 겨자씨 만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문제는 해결되고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난다고 확신해서 모든 난관을 이기고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믿음이 있는데 없다고 생각하니 문제입니다. 큰 믿음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언제 큰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내가 있다고 확신하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하나님께 짐을 맡기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마음에 배수진을 쳐라

 믿을 때 자꾸 뒤를 돌아보면 안됩니다. 강을 건넜으면 다리를 불태워 버려야 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만들어야 합니다. 믿었으면 끝까지 믿고 나가야 합니다. ‘믿다가 안되면 도망치자’고 하면 하나님이 엉터리 믿음을 가졌다고 하십니다. ‘살든지 죽든지 흥하든지 망하든지 믿습니다’라는 마음에 각오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 3장 16절로 18절에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유다 청년들이 바벨론에 가서 포로가 되어서 특별 교육을 받고 바벨론도의 지사들이 된 것입니다. 느부갓네살이 수르광야에 금신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문무 백관으로 하여금 제막식에 와서 절을 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유대인이라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로 고발을 당한 그들은 느부갓네살 앞에 잡혀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했고 왕이 “너 우상에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 가운데 던져서 태워 죽이겠다” “왕이여,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아무리 우리를 풀무불 가운데 던져도 건겨 내거니와 안그래 해줄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다. 

물론 하나님이 건져 주실 줄 우리는 믿습니다. 안건져 주셔도 우리는 우상에 절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다”라고 마음에 배수진을 친 것입니다. 그러니까 느부갓네살이 화가나서 풀무불 가운데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던져 넣었을때 네번째 사람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불의 세력을 멸하고 그들을 건져주신 것입니다. 이와같은 믿음이 있으면 오늘날도 하나님이 현장에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믿다가 안되면 뒤로 도망치고 물러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는 것입니다. 아예 물러갈 것을 하나님이 알고 계시기 때문에 “너 물러갈 것을 알고 나를 시험하는구나. 그러면 내가 너를 기뻐하지 않으니까 너에게 역사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크거나 적으나 내가 한번 기도하면 죽더라도 믿겠습니다” 그와같은 각오로 나가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에스더의 신앙고백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사왕국에 있는 유대인들을 하만이라는 국무총리가 멸살하려고 할 때 유대인은 살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국무총리가 유대인을 멸망하기로 결정을 하고 왕의 허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왕비였던 에스더는 자기 신분을 감췄지만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민족을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뿐 아니라 왕에게 가서 호소하라고 모르드개가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아무리 왕의 아내더라도 왕이 불러야지 부르지 않는데 왕의 집무실에 들어가면 참수를 당합니다. 에스더가 그 오라버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사흘동안 금식하고 기도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왕이 나를 용납하지 아니하고 죽이면 죽으리이다”는 각오를 하고 왕이 앉아있는 보좌를 향했습니다. 

입구에 들어가서 에스더가 아주 화사한 웃음으로 웃으면서 왕에게 서니 에스더의 모습은 왕의 눈에 사랑스러웠습니다. 왕은 홀을 내밀었습니다. 왕이 잡고 있는 지팡이가 홀인데 홀을 내밀어 만지면 사형을 면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가서 홀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왕이 “에스더여 왜 왔는고? 네가 원하면 나라 반이라도 주겠노라”라고 말하자 에스더가 왕에게 사정을 말해 유대민족이 다 구출을 받았던 것입니다. 죽으면 죽으리다는 각오로써 나갔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났지 “나는 죽을까 겁이 나서 못하겠습니다” 했으면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이 복음을 증거할 때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온 소아시아를 복음화 했는데 망하면 망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믿을 때 이와같이 배수진을 치고 믿어야지 그렇지 않고 약삭 빠르게 좋을 때는 뛰어 나가고 어려우면 뒤로 물러가서 도망치겠다는 그러한 생각을 하고서 기도하고 믿으면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라

 머리가 산만하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집중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수만 있으면 부정적인 것은 보지 말고 공포를 보지 말고 집중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봐야 되는 것입니다. 군대에서 낙하산을 타는 훈련을 시킬 때 교관이 언제나 군인들에게 당부합니다. “밑을 내려다보지 말아라. 어지러워서 못뛰어 내린다. 먼 산을 바라보아라. 비행기 안에서 먼산을 바라보고 뛰어 내려야지 밑을 내려다 보면 불안하고 공포에 무릎이 떨려서 못 뛰어내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불안하고 공포가 오는 것을 보면 안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좌우를 살피고 환경을 살피고 두려움을 바라보고 마음에 떨면 안되는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41장 10절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집중해야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5절에도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고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가 물위로 걷다가 왜 빠졌습니까? 그들이 밤바다를 건너가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쳐서 아주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왔습니다. 캄캄한 밤에 바람은 불고 파도는 치는데 하얀 물체가 떴다 내렸다 하면서 다가오니까 유령이 나타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뱃사람들은 파도치는 바다에 유령을 보면 배가 가라앉는다는 징크스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배가 가라앉는 줄 알고 제자들이 다 아비규환이 되어 고함을 쳤을 때 예수님이 “내니 두려워 말라”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님이시면 나로 물위로 걸어오게 하소서” 예수님이 “오라!”고 말씀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물위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저벅저벅 물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말씀을 기억하고 집중하여 갈 때는 물위로 걸어갔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물보라가 얼굴을 치는 바람에 파도를 바라보고 캄캄한 바다를 바라보았습니다. 옷자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공포심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온데 간데 없고 바람과 파도를 바라보고 ‘사람이 어떻게 물위로 걷느냐. 내가 잘못했구나. 이제 죽었다’라는 공포가 들어오자마자 물에 빠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에 빠지면서 “주여, 내가 죽나이다. 나를 도와 주소서” 예수님이 와서 베드로를 붙잡아서 일으키시면서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였느냐?”하고 건져주신 것입니다. 의심하면 물에 빠집니다. 

의심을 하지말고 주님을 집중적으로 바라보고 말씀을 바라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사는 동안에 의심할 수 있는 환경이 언제나 다가오는 것입니다. 수없이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쳐오고 ‘너는 이제 죽었다. 너는 망했다. 너는 할 수 없다’ 이러한 암시가 마음속에 끊임없이 다가옵니다. 그런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면 의심이 들어오고 불안과 공포가 들어오면 낭패를 당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28절에서 이방인의 믿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집중하고 생각하고 꿈꾸며 믿고 선포할 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속에 한번 믿었으면 믿음을 굳게 잡고 흔들리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막 9:23)라고 말씀합니다. 안믿으니까 안되지 믿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전에도 말한 것처럼 겨자씨 한알만한 믿음은 있습니다. 나도 빠른 시일 내에 겨자씨 하나를 조그마한 유리병에 담아서 주머니에 넣고 다닐 작정입니다. 

내가 50년 동안 목회했지만 지금도 마귀가 와서 ‘안된다. 네 믿음이 약하다. 정말 네가 믿느냐?’라고 의심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그때 겨자씨를 보고 ‘나도 요만한 믿음은 있다. 요만한 믿음만 있으면 충분하다. 더 큰 믿음은 필요 없다’라고 하기 위해서 입니다. 필요하면 겨자씨 하나를 구해가지고서 병에 담고 다니십시오. 그것을 보고 믿음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도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염려 근심, 불안 공포가 태풍처럼 불어 닥칠 때 우리의 마음은 바다 물결처럼 흉흉하고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립니다. 그때 우리를 구원해 주실 하나님을 찾고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파멸에서 건져주는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만이 우리들의 미래를 열어주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모두다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것이면 뽕나무도 뽑혀서 바다로 가고 태산도 물러가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골리앗이 아무리 키가 장대하여 철갑옷을 입고 창이 아무리 커도 다윗의 물맷돌 하나에 거꾸러진 것입니다. 환경이 아무리 암울하고 무서워도 겨자씨만한 믿음 앞에 거꾸러지는 것입니다.

- 기도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
 우리에게 염려 근심 불안 공포가 쉬지 않고 출렁거리고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이를 대비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길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염려 근심 불안 공포의 파도를 물리치고 바람을 물리치고 그 위를 밟고서 건너가는 우리들이 되게 도와 주옵시고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우리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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