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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장 위대한 사랑 : 구원 (요일 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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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사랑 (요일 3:1~3)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어떻게 나오셨습니까?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한 분들이 왜 그렇게 성가시게 하면서 까지 이 자리를 오게 하십니까? 그것은 여러분을 이곳으로 초대한 손길들이 살아가면서 이것이 진리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삼고초려(三顧草廬)란 말을 아십니까?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고사로 유비가 융중에 있는 제갈량을 세 번이나 찾아가는 정성을 보였다는데 서 나온 이야기입니다. 유비는 눈보라 치는 추운 겨울에도 두 번씩이나 허탕을 치며 성의를 다해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봄이 되자 사흘이나 목욕재계를 한 후 다시 제갈량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면에서 삼고초려는 여러분을 여기까지 인도한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유비가 자신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제갈량을 찾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여러분을 찾아간 것입니다. 유비의 발걸음을 재촉한 것이 제갈량의 탁월한 재능이었다면, 우리의 발걸음을 포기 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을 모른 채 지옥으로 걸어가는 불쌍한 영혼 때문에, 그 한 사람의 구원에 대한 간절한 열망으로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처음 나온 여러분들과 함께 이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고자 이 자리까지 여러분을 초대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요한은 그 자신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1절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아마 성경기자들 가운데 사도 요한 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강도 있게 표현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특별히 '어떠한 사랑'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말은 얼핏보기에는 매우 단순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원어를 살펴보면 절대 단순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이란 말은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놀라움과 경탄을 표현할 때 잘 쓰입니다. 마태복음 8장 27절에 보면 예수님이 풍랑 이는 호수를 꾸짖어 잠잠케 하시자 함께 있던 제자들이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까? "이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고?" 바람과 바다가 그의 명령에 순종하여 잠잠해진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차원의 일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때 그들은 '어떠한'이라는 말을 써서 놀라움과 경탄을 표현했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아무런 자격이 없는 자신을 자녀로 삼아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을 다 담아 낼 수 있는 말을 생각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 사랑은 인간의 모든 언어를 초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놀라움과 감격만을 담아서 '어떠한' 사랑이라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어떠한 사랑이라는 단순한 표현에서도 그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에 대해 얼마나 감격하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사'라는 표현도 그렇습니다. 우리 한글 성경이 너무나 단순하게 번역을 해놓아서 주고받는다 할 때의 그런 단순한 의미만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주사'라는 표현보다 '샤워하다(shower)'라는 표현이 원문의 뜻을 드러내는 데 보다 적절할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샤워하면 흔히 몸을 씻는 것을 연상하기가 쉽습니다만 여기서는 그런 샤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폭우가 쏟아져 내릴 때 바깥에 나가 보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그 때는 비옷이나 우산이 비를 막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온몸이 흠뻑 젖어 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지금 하나님의 사랑이 마치 폭우와 같이 우리에게 쏟아졌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안 맞으려 발버둥쳐도 안 맞을 수 없고,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거부할 수 없을 만큼 넘치도록 사랑을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써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또 자녀로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이 엄청난 사랑에 감격하여 "보라!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사랑을 폭우같이 넘치게 부어 주셨는가!"라며 흥분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역시 변함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고 살아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살 때가 많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에도 소방관으로 재직 중인 분들이 여러분이 계시는데 이 분들의 수고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몇 해 전에 화재가 난 현장에서 소방관 6명이 아까운 목숨을 던져 순직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방화범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 정신적으로 약간 온전치 않은 사람인데 정신병원이나 기도원을 전전하면서 치료를 받은 경력이 있다고 합니다. 그 날도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와 다투다가 어머니를 때리고 홧김에 불을 질렀습니다. 불이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급히 밖으로 뛰어 나와서 소방관을 붙들고 아들이 아직 못 나오고 있으니 살려달라고 하소연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소방관 6,7명이 자기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우르르 집안으로 들어 갔다가 불 더미에 힘없이 쏟아져 내리는 벽돌더미 아래 그 고귀한 생명을 던지고 말았습니다. 

당시 뉴스에 취재 기자가 찍은 장면에 방화범은 오히려 멀쩡하게 살아서 밖에 있는 것을 보도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죽어야 될 사람은 저 사람인데 너무나 아까운 사람들이, 처자가 딸린 6명이 희생을 당했구나. 저 사람이 평생 살면서 자기가 6명의 소방관의 생명을 대신해서 살아남은 사람이라는 빚진 감정을 가지고 살까? 정말 사람이 좀 달라질까? 인간다운 존재로 바뀔 수 있을까? 자기를 위해 희생한 가족을 위해서 자기의 몸을 던져 사람답게 살아 보려고 애를 쓸까?' 하는 생각을 하며 참 안타까웠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서 오늘 우리의 모습 역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내가 내 생명보다도 너를 더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죽었노라. 그리고 지금도 나는 너를 사랑하노라" 고 말씀하셔도 우리는 별로 모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전 우주에 유일한 신이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가장 권세 있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다 가지신 분이요, 하늘에 있는 자들이나 땅에 있는 자들, 그리고 땅 아래 있는 자들이 그 발 앞에 엎드려 영원토록 찬송해야 될 영광의 주님, 승리자 되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사랑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런 엄청난 이야기를 들어도 무덤덤해요. 별로 감동도 받지 않습니다.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죄 때문입니다. 

롬3:23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 
그리고 6:23에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 인간을 보시고 구원받아야 될 존재로 선언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죄인이라는 말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는 말씀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거침없이 이 사실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입니까? 히브리서 9장 27절에 있는 말씀대로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우리 모두 다 죽습니다. 육신이 죽고 난 다음에 죄의 결과로 따라 오는 것이 있습니다. 심판입니다. 여러분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압니까? 여러분 법원에서 판사가 호출을 해도 가슴이 덜렁덜렁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신다면 그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아십니까? 우리는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심판을 면하려면 구원을 받아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으라고 하십니다.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신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십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독생자 외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분 앞에 나아갈 수 없는 죄인인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로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정결케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요즘 다시 떠오르는 '코리안 특급' 박찬호 선수의 몸값이 얼만 줄 아십니까? LA다저스에서 텍사스로 이적하면서 6년 계약에 900억 원을 받았습니다. 평균 연봉은 150억원이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동안 그 가치를 못하니까 각종 언론이 먹튀라고 얼마나 심한 모욕과 비난을 쏟아 부었습니까? 여러분은 얼마짜리입니까? 연봉이 몇 푼 안 된다고요? 직장에서 쫓겨나 요즘은 아내에게 용돈을 타 쓴다고요? 그런 기준을 가지고 여러분의 값을 매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자기 삶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그분의 제자가 된 사람을 두고, 성경은 보배가 질그릇 속에 담겼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보잘것없는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가 우리 속에 담겼습니다. 우리의 몸값은 우리 속에 있는 예수님 덕분에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500원을 주고 사면 500원짜리라고 합니다. 만 원을 주고 사면 만 원짜리라고 합니다. 우리는 얼마짜리입니까? 우리의 몸값을 위해서 지불된 것은 창조주 예수님의 생명입니다. 우리는 10억 짜리도, 20억 짜리도 아니고 '예수님짜리'입니다. 우리 몸값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지불한 것은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그분의 사랑이요 그분의 생명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알아야 할 것은 모든 인간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천하보다 귀한 사람은 천하보다 크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사람,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신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 예수님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은 귀한 삶이 아닙니다.

아무리 소유가 많고 큰 권력을 누린다 해도, 보배이신 예수님이 그 속에 없으면, 그 사람은 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귀할 수 없습니다. 보배는 예수님이요, 인간은 질그릇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보배이신 예수님을 가슴에 품은 우리는 존귀한 자들입니다. 그런 우리를 세상은 멸시할지 모릅니다. 회사에서는 나가 달라고 하고, 집에서는 늙었다고 구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세상을 향해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을 만드신 분이 우리를 천하보다 귀하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자존감을 가질 때 우리는 이 땅에서 당당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일을 위해서 오셨습니다. 인간에게는 예수님이 여전히, 아직도 필요합니다. 인간이 죄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 때문에 고통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지식이 죄를 극복하게 해주지 않습니다. 멋있는 사랑이나 돈으로 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죄는 뿌리가 워낙 깊어서 사람의 능력이나 세상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아직도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가운데는 오늘 이 예배에 한 번 참석하는 것이 뭐 그렇게 큰 일인가 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시간에 여러분의 결정이 앞으로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할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실 때, 더 이상 방황하지 마시고, 지금 여러분을 만나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나의 주님, 나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성경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포하십니다. 그 분이 들어오는 순간 우리의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후에 우리 삶에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 삶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고, 고난과 환란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도 변하게 됩니다. 또한, 우리들 안에 그전에는 없었던 새로운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그전에 주님을 알기 전에는 아주 자연스럽게 하던 말과 죄악된 행동들이, 주님을 만난 이후로는 더 이상 쉽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들 안에 선한 일을 시작 하셨고, 그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하거나 지치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님을 만난 후에 우리들 안에 생기는 큰 변화는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다는 거룩한 열망입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처럼, 그리고 이 시대에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사람들처럼, ‘나도 하나님께 붙잡힌바 되어서 쓰임받고 싶다’라는 생각을 누구나 하실 겁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도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준비하며 기도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의 생을 가장 아름답게 가꾸어 가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항상 주님의 복이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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