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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에 소망의 씨를 심는 교회가 됩시다 (시 3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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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소망의 씨를 심는 교회가 됩시다 (시 33:8~20)


당신은 오늘 하나님의 천사가 될 수 있습니다. 

   캄캄한 독 안에 든 쥐들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실험을 했다고 합니다. 쥐를 캄캄한 독 안에 집어넣었더니 3분을 못 견디고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독 속에 한 가닥 빛을 비췄더니 그 쥐들은 36시간을 살아 있었답니다. 캄캄한 독 안에 들어 3분을 견디지 못하고 죽은 쥐는 체력이 다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절망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희망을 잃어버리면 캄캄한 독안에 든 쥐와 같이 절망합니다. 그러나 한 가닥의 소망의 빛이 비취면 힘을 얻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소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소망은 자기를 이해하고 마음의 고통과 아픔을 공감하며 그를 위해 배려하고 따스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는 사람이 있을 때에 생겨납니다. 아무리 캄캄한 절망 중에서라도 미래를 확신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일의 약속을 전달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에 소망의 불꽃은 다시 타오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자기 주위에 많은 사람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더 행복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소망의 불을 일으켜 주는 사람이 아닐까요?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사람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고 하나님이 행하실 미래의 꿈과 환상을 전달해 준다면 그는 소망을 발견하고 힘찬 미래를 향하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오늘 당신을 통해서 이 땅에서 하시고 싶어 하는 일입니다. 당신이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천사가 될 것입니다. 
 

희망과 소망 

   영어성경의 hope, 헬라어성경의 elpis라는 단어는 신구약 성경에 91회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우리 말 성경에는 두 번만 희망이라고 번역을 하고 나머지 89번은 소망이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hope를 희망이라는 단어로 번역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희망이라는 단어보다는 소망이라는 단어를 고집합니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hope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희망과 다른 뜻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희망은 사람들이 바라고 계획하고 목표하는 미래의 꿈을 이야기합니다. 예를 들면 신혼부부가 지금 지하 셋방에서 살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는 10년 후에 아름다운 단독 주택에서 사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부부는 둘이 다 취직해서 일을 하면서 수입의 절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미래 단독주택을 위한 자금으로 저축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으로 말하는 희망입니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미래를 꿈꾸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철저히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구절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말씀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무릇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내가 다 너희에게 주었노니 곧 광야와 이 레바논에서부터 큰 하수  유브라데에 이르는  gpt족속의 온 땅과 또 해지는 편 대해까지 너희 지경이 되리라.......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3,4,7,9). 

   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하게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반드시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소망의 두 가지 요소 

   희망과 소망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그 하나는 미래에 성취될 것을 꿈꾸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꿈을 위해서 오늘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신혼부부는 지금 지하 셋방에 살고 있으면서도 10년 후에 살게 될 단독주택의 꿈을 보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는 미래, 그가 발로 밟는 가나안의 모든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여 그 땅을 얻게 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 요단강 동편에 있으나 이미 가나안 땅을 얻은 것처럼 꿈꾸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오늘 최선을 다하고 성실히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신혼부부는 둘 다 일하며 수입의 50%를 저축하고 허리를 졸라매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미래를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순종하여 행하였습니다. 

   소망은 하나님께서 해 주실 일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아주 분명하게 구별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미래를 성취하고자 하여도 우리가 해야 할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 건강을 위해서 기도하시지요?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하여 반드시 여러분에게 건강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음식을 조절하고 정기적으로 운동을 하며 적당한 휴식을 취하여야 합니다. 

   소망을 잃지 않은 사람은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역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소망을 잃지 않는 자는 살아남는다. 

빅터 프랭클이라는 유대인 심리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당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수용소에 갇혀 있으면서 죽음의 기로에 선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상황에 처해있으면서도 나이와 건강 등에 상관없이 어떤 사람은 일찍 죽고 또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것을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사람들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살 수 있다는 소망이 생명을 지탱하게 하는 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실제 상황에서도 소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은 처참한 수용소 생활을 잘 견디고 버텨나갔습니다. 

그는 동료들의 수용소에 있는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하면서 이런 결심을 하였습니다. “내가 지금은 수용소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처지지만, 끝까지 삶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가지고 있는 한 나는 죽지 않는다. 그리고 이곳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내게는 행운인가! 이런 곳에서 심리학계에 공헌할 만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생존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난 곧 이곳을 나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는 소망대로 살아남아 수용소를 나오게 되었고 그 후에 로고 데라피를 창안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환경이 우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환경의 문제들, 위기들이 역사를 만들지 못합니다. 어떤 상황, 어떤 조건이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은 미래를 창조하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주역이 됩니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는 복이 있도다. 

   오늘 말씀은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는 복이 있다는 진리를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 8절에서 12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계의 모든 거민은 그를 경외할 지어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 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이 말씀은 어떤 하나님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시고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열방, 세계의 모든 권세의 음모와 계획을 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영영히 설 것입니다. 찬송가 79장 2절 가사를 아시지요?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 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만유 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세상의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의 창검이 쓸 데 없네.”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믿습니까? 믿는 자는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진리가 지는 법은 없소 

   마하트마 간디가 영국의 압제에 대항하여 민중을 이끌고 시위행진을 하고 있을 때 신문기자가 질문하였습니다. “당신의 시위는 성공할 가능성이 1%도 없을 것입니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미소를 띠고 시위행진을 계속할 것입니까?” 그러자 간디가 더 활짝 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하였습니다. “진리가 지는 법은 없소. 폭력이 이기는 법도 없소. 내가 왜 웃지 않겠소이까? 내가 왜 이 행진을 그만 두겠습니까?” 그의 기쁨과 낙관주의는 신념에서 나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1875년에 달레 선교사가 조선교회사를 썼습니다. 이 책은 쇄국정책으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하고 핍박 중에도 예수님을 믿고 승리하고 있다는 것을 쓴 책입니다. 이 책에 로마 교황 피오 9세는 이런 서문을 썼습니다. “주님의 교회는 멸망도 영락도 없다. 주님의 교회는 진리를 증언하고 모든 나라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교회는 어떤 장애나 어떤 폭군이나 상황에서도 두 가지만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아 갈 수 없을 만큼 크고 강한 장벽은 없다는 것이요, 둘째로 하나님의 복음을 이기고 믿음의 사람을 이길 만큼 강한 나라도 민족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미래를 믿고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파하여야 할 것이다.” 

   믿음이 이깁니다.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온 세상을 이깁니다.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소망을 보지 못하는 우리나라 

   여러분, 오늘 말씀은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보다는 다른 것들에 목이 메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는 엄청난 문제들에 부딪치고 있습니다. 휘발유가 한 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 작년보다 금년에 휘발유 값이 배로 올랐습니다. 작년에는 배럴 당 60달러, 70달러까지 올랐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배럴 당 13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원자재 값이 거의 폭등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물가가 말이 아닙니다. 실업자는 그대로 있습니다. 가계는 계속 불안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중심 문화, 개인주의 문화는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작은 문제에 집착할 때가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이 나라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상황에서도 역사하여 새로운 미래를 창조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위해서 지금 하나님의 말씀대로 최선을 다하고 땀을 흘릴 때입니다. 

    그런데 근간에 벌어지고 있는 광우병 쇠고기 수입문제에 대하여 이처럼 소란을 피우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광우병이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초식 동물에게 담백질을 공급하기 위하여 동물성 사료를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식물성을 먹으라고 한 소에게 사람들이 억지로 담백질을 보충한다고 동물성을 먹였으니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영국과 서구는 농지가 그렇게 많지 않기 때문에 콩과 같은 식물성 담백질을 제공할 수 있는 곡물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영국에서 동물성 사료를 개발하고 그것을 소에게 먹였다가 광우병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는 법을 만들고 시행한 후에는 광우병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은 농토가 넓은 나라입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하나인 일리노이 주만 하여도 그 넓이가 남한의 한 배 반이 됩니다. 일리노이 주의 95%가 농지입니다. 그 농지에 여름에 절반은 옥수수를, 그리고 절반은 콩을 재배합니다. 일리노이 주뿐 아니라 중서부의 넓은 평야에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식물성 담백질 사료를 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제까지 광우병 환자가 3명이 발생했으며 광우병으로 죽은 사람도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소고기가 주식인 미국 사람들은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설렁탕집에도 사람들이 발을 끊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소고기를 먹이면 광우병에 걸릴 위험이 있다고 소고기 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들은 아주 작은 문제에 집착하여 그것을 너무 큰 문제로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 시급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들이 부지기수인데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잘 하고 있는 것을 축복하기보다는 못하고 있는 것을 찾아내어 비판하는 문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마음이 문제에 집착하여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미래를 꿈꾸지 않고 현재의 작은 문제에 집착하여 그것이 마치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드는 나라에는 미래의 소망을 이야기할 여지가 없어집니다. 소망을 가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그 꿈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주위에 얼마나 보이고 있습니까? 소망이 없는 나라는 아름다운 미래를 만들 수 없습니다. 미래를 만들려고 한다면 소망의 문을 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망을 만드는 루즈벨트 

   20세기 미국의 영웅, 세계의 영웅, 장애인의 영웅이 된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처음에 탄탄대로를 따라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고 대통령의 꿈을 키우며 변호사로 시작하여, 뉴욕 주 상원의원, 윌슨 행정부의 해군 차관보를 지내고 1920년에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상치도 못했던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어린이들이 주로 걸리는 소아마비에 걸려 자기 힘으로 걸을 수도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를 밀어주고 이끌어주던 주위의 사람들은 이제까지 공든 탑이 무너지고 그의 정치생명도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지아 주 윔스프링스에 소아마비 재활센터를 짓고 거기에서 홀로 서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한 가지 꿈을 키웠습니다. 그가 다른 사람의 부축을 받지 않고 일어설 수 있을 때에 정치를 재개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초인적인 노력으로 소아마비의 저주에게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는 7년간의 노력 끝에 혼자서 서서 연설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정계에 복귀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되었을 때에 경제공황이 미국을 강타했습니다. 실업자는 쏟아지고 사업체는 무너지고, 공장들은 문을 닫고, 물가는 춤을 추고, 자원은 고갈되고, 가장과 사회와 국가는 무너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경제공황을 건져 낸 것은 그가 특별한 경제정책을 썼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경제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변의 담화”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매일 저녁 그 시간을 통해 전 국민들의 마음속에 내일에 대한 소망을 심어주었습니다. 삶에 믿음과 사랑을 넣어주었습니다. 이렇게 대통령이 방송을 통하여 끊임없이  소망을 주입시키자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신념과 소망이 되살아났습니다. 국민들은 은행에 돈을 다시 예금하고 사업을 다시 시작했으며 공장들도 문을 열어 다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망으로 마음의 불황을 극복하자 환경적인 불황도 정복하게 된 것입니다. 

   마음의 불황이 무서운 독소입니다. 실업자가 많이 생겨나고 사업체가 무어지고 공장이 문을 닫을 때에, “이제는 못 산다. 이제는 할 수 없다. 이제는 절망이다. 이제는 죽었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 는 식의 마음의 불황이 찾아오면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는 망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엇을 바라보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능력이나 환경의 조건이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면 여러분의 마음에는 불황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불황을 깨뜨리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이루실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을 가지고 나간다면 불황은 맥을 추지 못하고 무너질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소망은 당신을 다시 일어서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여러분, 현실을 진단하고 비판하고 문제를 파악하고 정책을 세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소망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미래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성취하실 미래를 위하여 우리들이 할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로 자기 하나님을 삼은 나라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복을 받는 나라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소망 공동체로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같이 읽을까요?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믿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치 않는말씀입니다. 처지가 없어지겠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치 않고 이루어질 것입니다. 

   10절 말씀은 어떻습니까? “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 도다.” 이 세상의 세력들이 거짓을 도모하고 권모술수를 쓰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소리를 한 번 발하시면 천하에 있는 모든 것들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같이 읽읍시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그 심사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따라합시다.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12절 말씀을 함께 읽읍시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빼신바 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아멘, 아멘, 아멘,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는 복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나라가 복을 받습니다. 


교회는 이 나라에 소망의 씨를 심는 공동체입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 영국의 국민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이 때 영국의 윈스턴 처칠 수상은 영국 교회의 요청에 의해서 온 교회에서 같은 시각에 일제히 종을 울리도록 했습니다. 그 종은 전쟁 중에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 주기 위한 ‘희망의 종’이라고 불리었습니다. 그 희망의 종이 울리기 전 영국 성공회의 주교 윌리엄 템플은 방송을 통해 역사적인 설교를 시작하였습니다. “대영 제국 국민 여러분, 잠시 후 이 땅의 모든 교회에서는 종이 울릴 것입니다. 종소리를 듣거든 모두 교회로 나아갑시다. 그리고 역사의 주인 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하여 희망의 종을 울리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전파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미래에 이루실 것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미래를 이루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을 하도록 격려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교회에게 이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이 나라에 소망을 전달하라고 부르십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소망을 전달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이 나라에 소망의 씨앗을 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힘을 모읍시다.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십시다. 이 나라에 소망을 전하는 하나님의 천사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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