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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벳에돔의 복 (대상 13: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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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벳에돔의 복 (대상 13:9~14)

Ⅰ. 서론 

여러분! 여러분들은 혹시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이 영화는 인디아니 존스 라는 영화의 1편으로 성경의 법궤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2차 세계대전시에 독일의 나찌 군대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법궤를 고고학자들의 정보에 의해 찾는 것입니다. 독일 군대가 하나님의 법궤를 전쟁에서 앞세워서 전쟁하면 전세계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이 법궤를 주인공과 독일군이 서로 찾는 과정을 그린 영화입니다. 일부 성경의 근거를 둔 영화이지요. 

하나님의 법궤는 이스라엘에게는 힘의 상징이었습니다. 법궤는 언약궤라고 도 하는데, 거룩한 궤(히브리 말로는 '상자')가 왕정기 이전에는 이스라엘 지파들의 중앙 성소이자 전쟁 때의 성소였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궤를 실로의 중앙 성소에 모셔두었는데, 전쟁할 때는 민병대가 모셔가 법궤를 앞세우고 전쟁을 하였습니다. 이 궤는 눈에 보이시지 않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 가운데 계신다는 것을 눈에 드러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 벱궤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 만나, 십계명 두 돌비가 들어 있습니다. 법궤의 상징은 하나님 임재 또는 계시를 말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성막을 지었습니다. 성막의 중심은 지성소이고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였습니다. 이들은 행진할 때마 다 법궤를 앞세우고 따라 갔습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시 법궤를 가지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전쟁에 지고 법궤를 그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이스라엘의 법궤를 빼앗은 블레셋 군대는 법궤로 인해 많은 재앙을 당하고 법궤를 소 수레에 실어 이스라엘로 돌려보냈습니다. 사울왕은 믿음이 없고 관심밖에 일이라서 법궤는 아미나답의 집에 보관되었습니다. 

다윗이 정권을 잡자 다윗왕은 제일먼저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로 하고 3만명을 동원해서 수레를 새로 만들어 싣고 오는 도중 사고가 생겼습니다.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뛰기 시작하고 넘어지려는 법궤를 웃사가 붙잡는 순간 웃사는 즉사하고 말았습니다. 잔치 분위기는 초상집으로, 장례식장으로 변했습니다. 운반은 취소되고 말았습니다. 신명기에 보면 법궤는 반드시 네사람이 메고 가라 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편의주의 때문에 소 수레에 싣고 옮기려 했던 것입니다. 웃사의 죽음을 목격한 이들은 법궤 운반을 두려워했으므로 법궤는 예루살렘으로 행하지 못하고 오벧에돔이 자기 집에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3개월의 보관 기간동안 오벧에돔은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런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들여오기를 두려워 한 법궤를 오벧에돔은 자기의 집에 모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사람이 재앙이 임하는 것으로 알고 두려워했던 법궤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드려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오벳 에돔이 받은 복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둘 째, 그가 어떻게 하였기에 엄청난 복을 받았을까요? 마지막으로 오 벳 에 돔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이 이스라엘에게 무엇을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오벳에돔의 복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시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Ⅱ. 본론 

1.오벧 에돔에게 내리신 하나님의 복 

첫째로 오벧에돔에게 하나님은 엄청난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는 먼저 많은 자녀의 생산이었으며 또한 그 모든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26:4-8까지는 이러한 자녀들을 대해 기술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벧에돔에게 여덟 명의 아들을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이 오벧에돔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역대상 26장5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손들이 62명으로 하나님의 집에서 봉사하는 가문이 되었습니다(대상26:4-8). 자손이 잘 되는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축복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벧에돔의 집처럼 우리의 자녀들도 믿음 안에서 잘 성장하고 신앙적 인물들이 되는 놀라운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는 자손이 잘 되는 축복과 함께 그의 가축과 밭의 소산 등 모든 방면에 복을 받았습니다. 13장14절에서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 고 말씀하십니다. 물질의 큰복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은 석달 동안 법궤를 잘 모시고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14절에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들과 함께 석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하였습니다. 수많은 재앙을 불러일으킨 궤를 영접하기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조금 전에 웃사의 죽음도 보았기에 나도 잘못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그를 괴롭혔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법궤의 안치를 위해서 선뜻 자신의 집을 내 놓았습니다. 이런 결과로 그의 집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축복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요, 심판이요, 죽음이었던 법궤가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으로 임하게 되었습니다. 법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기간은 그리 긴 기간이 아니었습니다. 3개월 동안 머무는 동안 하나님은 눈에 보이도록 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짧은 기간에 오벧에돔의 집은 여호와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복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곧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복의 출처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외에 인생들에게 복을 줄 수 있는 신(神)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늘과 땅과 바다와 우주 만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복은 오벧에돔의 집에 임했습니다. 그곳에 수많은 사람이 있었고, 수많은 집들이 있었지만 오직 오벧에돔의 집에만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 복은 그의 모든 가족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을 일컫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영접한 오벧에돔의 집에 큰 기쁨과 믿음과 평안의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가족들과 그의 자손들 모두가 충성 되이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입니다. 이 복은 모든 사람의 눈으로 확인되는 축복이었습니다. 다윗은 이 축복의 현장을 목격하고 다시 그 법궤를 예루살렘 다윗 성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옮기는 결단을 내리게 되었습니다(대상15장). 이렇게 하나님께서 3개월 동안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내리신 것은 법궤를 통하여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나타내는 표적이요, 죄인에게는 심판의 주로 나타나지만 하나님만을 섬기고 따르는 의인에게는 축복의 하나님임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복의 근원자는 오직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벧에돔의 집! 하나님의 궤를 영접한 집이었습니다. 이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가정임을 볼 수 있습니다. 오벧에돔의 집! 하나님의 복이 임한 가정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가정에게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모든 것에 복을 쏟아 부어 주심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오벧에돔의 집! 그 집은 그리스도인의 집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집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이 오직 예수만을 영접하고 그 분만을 섬기며 따르므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축복을 얻는 은총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그러면 오벧 에돔이 어떻게 하였기에 그런 복을 받았을까요? 

첫째로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하나님을 진실 되게 예배하는 자였기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오벧에돔은 하나님을 잘 섬긴 자였습니다. 이름에서부터 "오벧"예배하는 자, 종, 섬기는 자를 뜻합니다. 법궤를 모셔다가 예배하면서 섬겼을 것입니다. 

대상 15:21절에 보면 오벧에돔은 수금을 타서 찬양을 인도하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찬양하며, 예배하는 자에게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정성을 다해 섬기는 것은 복 받을 일입니다. 오벧에돔처럼 이왕 하나님을 섬기려면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잘 섬겨 가정과 자손이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의 가정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로 그는 남이 싫어하는 일을 하였기에 남이 싫어하는 일하였기에 복을 받았습니다. 법궤를 운반하다 웃사가 죽자 모두 두려워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법궤 모시기를 다 꺼려할 때 법궤를 모셨기 때문에 오벧에돔은 복을 받은 것입니다. 남들이 다 싫어하는 일을 맡아하는 이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나 직장에서 남이 꺼리는 일을 하는 이들이 인격이 돋보이고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됩니다. 

똑같은 궤였지만, 왜 웃사는 법궤의 저주를 받았습니까? 여호와의 궤로 인해 어떤 사람은 죽고 어떤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았습니다. 웃사가 법궤의 저주를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웃사는 정결하고 경건하지 못한 행동을 하였습니다. 9절에서 웃사는 손을 펴서 궤를 붙들었습니다. 손을 펴서 궤를 붙들어 것은 거룩치 못한 손으로 궤를 만졌다는 것입니다. 

또한 웃사는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편리주의 안위로운 생각을 가졌습니다. 법궤는 12명이 어깨에 메고 가야 하는데 수레에 싣고 갔습니다. 또한 그는 말씀을 무시 자기 생각에 맞추었습니다. 법궤는 고핫 자손이 메고 가야 했습니다. 결국에는 삶의 성공을 위한 올바른 방법은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인 언약궤에 대한 하나님은 뜻은 이러합니다. 

민수기4:15절입니다. "행진할 때에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와 성소의 모든 기구 덮기를 필하거든 고핫 자손이 와서 멜 것이니라. 그러나 성물은 만지지 말지니 죽을까 하노라. 회막 물건 중에서 이것들은 고핫 자손이 멜 것이며" 라고 하셨고, 

민수기7:6절에서는 "모세가 수레와 소를 받아 레위인에게 주었으니" 라고 했고, 
9절에서는 "고핫 자손에게는 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의 성소의 직임은 그 어깨로 메는 일을 하는 까닭이었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기구인 하나님의 법궤를 옮길 때에는 반드시 레위족의 고핫 자손이 어깨로 메도록 정하셨습니다. 비록 다윗이 새 수레에 실었지만 새 수레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또한 수레를 몰았던 사람은 레위족도 아닌 유다 족이었습니다. 성물을 만지면 죽는다고 했는데, 소가 날뛰어서 언약궤가 넘어지려고 하자 '웃사'가 붙잡았습니다. 정상이 참작될 듯도 하지만 하나님께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결국, 기쁜 마음과 좋은 뜻으로 언약궤를 모시려 했던 다윗은 하나님의 거부하심이 명백하자 언약궤 모시는 것을 중단한 것입니다. 


4.오벧에돔이 법궤를 3개월 동안 모시고 복을 받았다는 소문이 드디어 다윗 왕에게까지 들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법궤를 다시 가지고 올 용기를 내게 되고, 모셔오게 되었습니다. 다윗도 법궤를 잘 모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정치해서 온 나라가 평온하고 자손들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큰 복을 받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귀감이 될 수 잇습니다. 오벧에돔으로 인해 하나님의 복을 보게 된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을 잘 섬기는 자에게 주시는 놀라운 복의 일들을 목도하게 됩니다.  사실 오벧 에돔이 3개월 동안 법궤를 잘 모셨다고 하나님이 그런 축복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평생 모실 마음을 하나님은 이미 보셨습니다.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끝까지 잘 섬겨야 합니다. 변치 않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5. 주시는 교훈

오벧에돔의 가정에 주신 복과 능력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오벧에돔의 가정은 하나님의 복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 방치되어 있던 언약궤를 준비된 장소에 모시기로 결심하고 언약궤를 메어 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가정에 머문 기간은 석 달이었으며, 하나님은 그 가정에 복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언제 복을 받게 되는가를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오벧에돔의 가정은 언약궤를 모실 때 복을 받았습니다. 언약궤란 하나님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언약궤를 모신다는 것은 하나님을 모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은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우리 가정과 삶에 하나님을 모심으로써 복을 얻게 되길 원합니다. 결국 진정한 복과 능력이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과연 이런 복과 능력을 소유하고 계십니까? 진정한 복과 능력의 소유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서 무엇을 깨닫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마음속에 어떤 소망이 있습니까? 그 소망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물으십시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구하십시오.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성공적인 삶을 누리는 비결에 있어서는, 사람의 기발한 아이디어나 요령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삶의 성공을 위해서는 오직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둘째,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웃사를 치셨을 까요? 소가 뛰어 법궤가 땅에 떨어지는 것을 대비해서 법궤를 잡은 것이 아닙니까? 그냥 떨어져 상하지 않도록 잡은 것이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 잘못을 범했지요? 하나는 법궤를 메지 않고 수레에 실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웃사가 법궤에 손을 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법궤를 다룰 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화를 내셨고, 말하자면 시범 케이스로 웃사를 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해도, 아무리 그것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해도 내 맘대로 내 뜻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배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선 편이주의입니다. 법궤를 메고 가는 것 보다 수레에 끌고 가는 편이 훨씬 편리합니다. 시간도 단축되고 또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고... 그러나 이것은 다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다음으로 합리주의입니다. 법궤가 떨어지려고 할 때 그 법궤를 손으로 잡아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어떻게든 손을 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다 사람들의 생각일 뿐입니다. 오늘도 교회 안에 이런 편이주의적 발상, 합리주의적 생각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주의 일을 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이런 세속적 물결이 밀려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하겠습니다. 

셋째, 영적 긴장을 풀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문제가 터져서 죽은 사람은 웃사입니다. 그러나 사실 죽어야 할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 이 일을 진두지휘했던 사람이 바로 다윗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다윗은 영적인 나사가 서서히 풀려가고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법궤를 옮겨오는 이 중요한 역사를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기도했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게 사사건건 하나님께 묻던 다윗이 이렇게 중대한 일을 앞두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거룩한 일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살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에게 자문을 구한다든지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 일을 어떻게 명하고 계신지 살피지 않았습니다.

13:1을 보면 군인들하고만 의논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수행하면서 하나님의 종들과 의논하지 않고 군인들과 의논한 것입니다. 그래서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앞에서 살핀 민 4:15에 나오는 대로 법궤는 고핫 자손이 운반해야만 했는데 아비나답의 아들들에게 맡기고 말았습니다. 법궤를 메지 않고 수레에 옮기는 일도 그렇고, 법궤를 옮길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교육시키지도 않았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다윗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목동 때와 달라졌습니다. 사울에게 쫓길 때와 달라졌습니다. 또 헤브론에서 다스릴 때와 또 달라졌습니다.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됐습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은 승승장구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영적 긴장이 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신문 칼럼을 읽다가 재미있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한 수도원 원장이 보잘것없는 아이 하나를 특별히 사랑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이 시기하며 따졌습니다. 그러자 원장이 아이들에게 과제 하나를 냈습니다. 새 한 마리씩을 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도 몰래 해 질 때까지 새를 죽여서 가져오라는 과제입니다. 해 질녘에 마당에 죽은 새 시체가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만 그냥 새를 산채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그 아이 말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새를 죽이라 하셔서 아무리 찾아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가든지 거기 하나님께서 보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를 죽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원장이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래서 내가 이 아이를 사랑한단다."

 그렇습니다. 다윗이 영적으로 긴장이 풀어지면서 서서히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곳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으로 일을 처리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긴장을 풀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디서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여러분의 눈에 늘 주님이 보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그래도 섬겨야 

웃사가 죽자 큰 소요가 일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12절에서 당시 그 장면을 연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날에 다윗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의 궤를 내 곳으로 오게 하리요" 그렇게도 법궤 모셔오기를 바라고 이 거대한 역사를 주도한 다윗이 겁을 먹은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모셔 들이기를 꺼려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70년 이상 머물던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답의 집으로 되돌아가야 할까요? 웃사가 죽었으니 아비나답이 그렇게 하려 했을 리 만무합니다. 목적지로 가다가 다윗이 못하겠다고 손을 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바로 오벧에돔이라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이 자기 집으로 법궤를 메어갔습니다. 자기가 자원했을 것입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으려 할 때 그가 나선 것입니다. 

사 6:8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 모두가 꺼려하는 상황에서 보낼 사람을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때 이사야가 자원했다는 것입니다. 바로 오벧에돔이 이사야처럼 자원한 것입니다.

본문을 잘 살펴보면 이 사람이 가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가드는 지도를 살펴보면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거리에 있습니다. 당시 다곤의 타작마당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곳은 다윗 성 근처입니다. 현재 예루살렘 성 안에 있는 지점입니다. 이미 기럇여아림에서 약 13키로 정도 동쪽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가드는 기럇여아림에서 오히려 서남쪽으로 20키로 더 떨어진 곳입니다. 그러니까 왔던 반대 방향으로 더 먼 거리를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근처에 사는 사람들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자 그 멀리 사는 오벧에돔에 죽을 각오를 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이 오벧에돔 집에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14절을 보면 "하나님의 궤가 오벧에돔의 집에서 그 권속과 함께 석 달을 있으니라 여호와께서 오벧에돔의 집과 그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셨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감동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크게 복을 내리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70년이 넘도록 아비나답이 법궤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복을 받았다고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오벧에돔은 불과 3개월 법궤를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께 크게 복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자원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모두가 피하고 꺼릴 때 오벧에돔은 자원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가족 가운데 또 죽게 될지 모르는 무척이나 두려운 상황입니다. 그래도 오벧에돔은 자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자원하는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모두가 피하고 꺼려할 때 자원하는 사람 그들에게 복을 내리십니다. 우리가 그래도 섬기려 나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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